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81화 (81/164)

<재능이 자꾸 늘어 81화>

10. 냉정과 열정 사이 - 32

* * *

“그럼, 이만 가 볼게요.”

탁.

이한열이 떠나자 학생회실에 묘한 어색함이 감돌았다.

접근하는 포인트는 각자 달랐지만 도달한 감정 자체는 비슷했다.

이걸 뭐라 표현해야 좋을까.

전상진이 펜으로 관자놀이를 박박 긁으며 말했다.

“뭐랄까. 배신당한 건 아닌데 버려진 기분이고 이해는 되지만 납득은 안 되고 섭섭하지만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럴 자격은 없는…….”

“그거지. 혼자 썸 탄 기분. 뜸이 들었다 싶어 고백했더니 ‘어머, 미안. 난 그런 게 아니었어……. 우리 친구로 지내자.’라는 대답을 들은 거 같아.”

“그거다! 너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왔어?”

방민종이 부연하고 전상진이 호응했다. 마지막으로 다인기가 덧붙였다.

“난 선물 받았다 뺏긴 느낌이네. 흠. 그 정도로 빠릿하게 일 잘하는 애가 없는데……. 아쉽네. 당연히 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걸 김칫국 신드롬이라고 하죠.”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뭐. 다 한열이 선택인데.”

떠들썩한 학생회실을 배경으로, 윤정희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한열이 학생회 집행부 자리를 거절했다.

누구든 들어오고 싶어 안달인 자리다.

집행부는 배경이나 집안이 아니라 능력으로 뽑히는 경향이 높으므로, 야망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거의 등용문처럼 여겨지는 자리다.

이한열도 분명히 들어오고 싶던 눈치였는데…….

-그렇게 간절하지 않아졌거든요. 앞으로 다른 일로 바빠질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이유를 묻는 말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의미심장한 말까지 남겼다.

-누군가의 힘을 빌린다는 건, 결국 빌려주는 사람의 의사에 종속된다는 뜻이죠. 힘을 빌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정희 선배라면 이해하시겠죠.

이해하다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그 권세를 빌리기보다, 스스로 그 권세가 되겠다는 오만한 말이었다.

다른 사람이 저렇게 말했다면 비웃음조차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하게 무시하고 잊어버렸겠지.

그러나 이한열이라면 능히 하고도 남으리라는 이 예감은 과연 뭘 근거로 하는 걸까?

윤정희는 쓰게 웃었다.

‘이런. 약발이 너무 세게 먹혔네. 아쉬운 일이야.’

이한열에게 배윤하의 사정을 털어놓은 건, 당연히도 양심이 시켜서가 아니었다.

약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한열의 유능함은 지나치다못해 위험했고, 가끔은 불가사의하기까지 했다.

그동안은 그가 자신에게 바라는 게 있었기에 통제가 가능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없다.

더 나아가 그 유능함이 자신을 적대한다면? 상상만으로도 오싹하다.

그래서 배윤하를 이한열의 족쇄이자 약점으로 만들고자 했다.

배윤하와의 갈등이 사라진다면 분명 밀접한 관계가 될 테고, 지킬 것이 있는 자는 허점을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노림수가 지나치게 성공해서, 아예 이한열의 내적 갈등까지 해결하고 자립을 돕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르지. 어차피 내가 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 다만 경계 수위는 높여 두어야겠군.’

윤정희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다음 서류로 넘어갔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뽑아야겠네. 다음 후보는 이 아이로 생각 중인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서류 위에는 배윤하의 신상 명세가 적혀 있었다.

* * *

일과를 다 마치고 병원에 들를 즈음엔 이미 밤이었다.

배윤하의 병실 앞에서, 나는 의외의 방문객과 조우했다.

“…….”

“……아, 안녕.”

“여긴 어쩐 일이냐? 배윤하 암살하러 왔냐?”

“무, 무슨 소리야! 단순히 얼굴 보러 온 거거든?”

“흐음.”

흑장미 동맹의 한 축인 장세미가 있었다.

미심쩍은 눈으로 미간을 간질여 주니 ‘으으으-’하다 알아서 실토를 한다.

“진짜야. 그냥 병문안이라고. 윤하한테 사과하고 싶어서…….”

“사과?”

“알아. 나도 안다고. 이제 와서 이러는 게 염치없다는 거.”

“그런 말은 안 했다만. 친구 관계야 걔가 알아서 할 일이고. 난 그냥 갑자기 이러는 게 의심스러울 뿐.”

장세미에 대해선 조사해 본 바가 있었다.

사연 자체는 하잘것없다.

1학기 때까지만 해도 같은 반 친구로 그럭저럭 친분이 있었는데, 윤하의 무리에서 소외감을 느끼면서 서운함이 커지고, 결국 반감이 된 케이스였다.

여고생 집단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

그게 극단적인 음해로까지 번진 이유에는 이세희의 장난질이 한몫했겠지.

그러나 본인의 의지가 분명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서운함도 있었지. 근데 그건 계기일 뿐이었어. 같이 있을 땐 몰랐는데, 멀찍이 관찰하니까 윤하가 우릴 장난감처럼 다룬다는 확신이 들었거든. 뭐랄까, 마치 장기말처럼…….”

“…….”

관찰력이 제법이군.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녀의 인맥질은 명백히 목표 지향적이니까.

“나도 저 안에서 저랬을까 싶으니까…… 갑자기 반발감하고 배신감이 확 들어서……. 다른 애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남친 어쩌고 한 건 사실 핑계지. 원래부터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근데 이번 사건 겪고…… 생각 많이 해 봤거든. 윤하가 계산적이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다 그런 면이 있잖아? 걔는 좀 극단적일 뿐. 그리고 너랑 있을 때의 윤하는…… 확실히 다르더라. 우리랑 있을 때와는.”

“…….”

“그렇게 생각하니까, 뭐랄까, 그냥 우리가 얘 마음을 열지 못한 거구나, 너무 많이 아픈 아이라 그럴 뿐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대체 내가 뭐 한 걸까 싶고…….”

“그렇다고 네가 한 일들이 없어지진 않아.”

“알아. 그것도.”

장세미가 쓰게 웃었다.

“그래서 자수할 거야. 그게 날 구해 준 윤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

“……자수?”

“응. 원래 계획은 감금이었거든. 결과적으로 미수가 됐지만 범죄는 범죄지. 물론 나머지 두 명은 부인하겠지만.”

“……흐음.”

“죗값을 치른 다음에, 그다음에도 윤하가 받아 준다면, 그땐 진짜 친구가 되어 보려고. 물론 힘들겠지만 노력해 볼 생각이야. 진짜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나 진짜 윤하 좋아했거든. 그래서 배신감도 컸던 거지만…….”

아예 쓰레기는 아니었구먼.

돌이켜보면 나머지 둘에 비하면 얘는 그나마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윤하를 억류하는 상황 자체를 언짢아했고, 그녀의 건강 상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왜 나한테 이런 디테일한 것까지 다 말해 주는 거지?”

“당연히 배윤하 관련자니까 그렇지. 경고해 주고 싶었거든.”

“경고?”

“조심하라고. 이세희, 위험한 아이야. 전학 오자마자 배윤하가 반 실세인 걸 알고 수작 부리는 거거든. 자신보다 돋보이는 사람은 없어야 된다 이거지. 아마 상진이를 좋아하는 것도, 배윤하에게 뺏기기 싫어서가 80퍼센트는 될걸?”

“…….”

“그러니까 네가 윤하 편인 이상 분명히 부딪치게 되겠지.”

난 [눈치]를 곤두세우고 그녀의 마지막 말까지 잘 다져서 맛보았다.

결론.

거짓은 없으며 심지어 믿을 만하다.

“그럼 간다. 또 보자고.”

“윤하 안 보고 가냐?”

“응?”

“너 손에 선물 세트 그대로잖아. 못 본 거 아니냐? 사과한다면서?”

“아직 못 깨어난 거 같더라고. 또 와야지.”

“아직도?”

“그러니까. 의사 선생이 문제는 없다니까 그러려니 하고는 있는데. 너무 늦는 거 아닌가 몰라.”

배윤하는 사고 직후 나랑 비슷한 시기에 혼절했다.

나는 단순 피로라 금방 깨어났지만, 윤하의 경우 트라우마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된 터라 두뇌 차원에서 전면휴업 선언을 한 상황이었다.

검사 결과 문제는 없었으니 깨어나긴 할 테지만 이틀 차가 되니 슬슬 걱정이 됐다.

“그러니까 네가 깨워 봐. 공주님 깨우려면 왕자님 키스가 있어야 하잖아?”

“가족끼리 그런 거 하는 거 아니다.”

“푸핫, 뭐래.”

장세미가 픽 웃으며 날 지나쳐갔다. 난 그녀를 잠시 멈춰 세웠다.

“야.”

“응?”

“자수, 그거 하지 마라.”

“왜?”

“자수해 봐야 뭐 얼마나 나오겠냐. 기껏 봉사 활동 몇 시간 되겠지. 그걸로 진짜 죗값 치렀다고 할 수 있겠어?”

“……그럼?”

“나한테 협력해. 다른 데 정력 쏟지 말고 윤하를 직접 도우란 말이야. 진짜 친구가 되고 싶은 게 맞다면.”

“…….”

지금까지 판단한 바에 의하면 얘는 꽤 믿을 만했다.

특히 그 관찰력과 판단력이라면 정보원으로서 퍽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100퍼센트 신뢰하긴 힘들겠지만 그거야 내 [눈치]로 어떻게든 된다.

그녀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고 우린 서로 번호를 교환한 후 헤어졌다.

취침 시간 이후라 병실은 소등된 채 복도의 불만 쐬고 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안에 들어가 윤하 옆의 보호자 침대에 앉았다.

입원 환자가 두 명 더 있었으나 때마침 퇴원해서 오늘 밤엔 그녀 혼자였고, 그녀는 잠들어 있다.

세상이 나를 위해 외따로이 고해소를 차려 놓은 듯했다.

적막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입을 떼었다.

“배윤하. 난 네 영웅 따위가 아니야.”

“…….”

“히어로면 좀 더 근사해야지. 배트맨까진 아니어도 로빈 비스무리하게는 목표로 해야 할 거 아냐. 나같이 꾀죄죄한 걸 멘토로 삼으면 어떻게 하냐? 바보같이.”

음.

원래 멋있게 자기 고백을 하려고 했는데 말하다 보니 배윤하 성토대회 같은 걸 개최하게 되었다.

“네가 그러니까 부담감 만땅이잖냐. 차라리 몰랐다면 모른 대로 살았을 텐데. 책임질 게 없으면 말이야, 아주 인생이 즐거워지거든. 내 입만 먹이면 되니까 삶이 풍요로워진다 이거지. 근데 이젠 그럴 수 없게 됐잖아. 자식아. 다 너 때문이라고.”

네가 나를 보았으니까.

너의 고성능 콩깍지 필터를 거친 내 모습을 봤을 때 나는 내 마음의 군살이 부끄러웠다.

이건 뭐 신개념 고문인가 싶었지.

그럼 어쩔 수 없잖아.

날 저렇게까지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대체 뭐라고. 난…… 아무것도 아니야. 그 시절 나선 것도 다 어린 날의 치기지. 멋있어 보여서 그런 거라고. 네가 힘들 때 옆에 있지 못했어. 무능한 데다 겁만 많았지. 나 따위보다는 훨씬 그럴싸한 놈들이 있었을 텐데. 대체 왜 하필 나를…….”

“그럴 수도.”

“…….”

“그럼에도 넌 내 영웅이었어. 언제나. 한 번도 아닌 적이 없었어. 네가 내 손을 잡아 준 그 어린 날부터.”

그녀의 손이 이불 밑을 빠져나와 침대에 걸쳐 있던 내 손을 쥐었다.

사선으로 마주한 두 손바닥이 서로의 맥박을 교환했다.

보이지 않는 저편에서, 그녀가 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어째서?”

“네가 내 옆에 있어 줬으니까.”

“…….”

우린 늘 이런 식이었던 모양이다.

이상적인 청사진, 그러니까 부모 없이 자라난 우리는, 미래의 나를 상상하기 위해 늘 주변을 참고해야만 했다.

따라서 배윤하는 날 보고 베끼려 들었고.

반대로 나는 배윤하를 모델로 내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마치 일그러진 데칼코마니처럼.

“그래서 엄마 노릇은 할 만했냐?”

“……할 만해서 하나.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왜. 네가 아빠가 되어 줄 거야?”

“그건 좀 싫은데.”

“뭐죠. 이 흐름에서 이 비협조성은?”

“니가 엄마고 내가 아빠면 강제 결혼이야 뭐야. 삼촌 정도로 퉁치자.”

“헐. 고백도 안 했는데 실연당했어.”

“엄마면 가정에 충실하세요.”

“엄마도, 엄마도 여자란다……!”

“그래도 그 놈팽이는 안 돼요. 왜냐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은……!”

“가발인 거 나도 알아……! 그치만 난 그 남자의 두피까지 사랑해!”

갑자기 시작된 뜬금포 역할극에 기어코 웃음이 터져 버렸다.

갈라지고 잠긴 목소리로 하는 연기 톤이 쓸데없이 애절해서 더 웃겼다.

“푸히히히……. 배윤하 아직 안 죽었네.”

“나야 머 항상 쏴라 있지. 크히히히…….”

들숨날숨이 서로 섞여, 왠지 그녀의 웃음이 내 폐에서 진동하는 듯했다.

나는 5년, 아니 전생까지 포함 30여 년 만에, 비로소 배윤하와 마음으로 화해했음을 깨달았다.

“줄 거 있다.”

“……응? 반지는 좀 일러요. 당신.”

“개소리는 슬슬 집어치우고.”

난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배윤하에게 건넸다. 새까만 DSLR.

“……이건.”

“같은 기종은 구하지 못했어. 다 단종됐더라고. 그래도 같은 브랜드 플래그쉽 모델이니까 얼추 비슷하긴 할 거야.”

“……이거 비싸지 않아?”

“오빠 돈 많다. 줄 때 받아 둬.”

“어…….”

“그래. 지금이 울 타이밍이야. 어디 한번 질질 짜 보시지. 배윤하.”

“개넘아. 방금 네 발언에 눈물샘이 파업했다. 사과해! 내 감동 돌려내!”

배윤하는 빽 소리 지르면서도 카메라는 소중히 품에 안았다.

스트랩까지 목에 감으니 이제야 좀 배윤하 같다.

“어때? 예뻐?”

“돼지 목에 하이엔드 카메라네. 전위적이라 좋아.”

“전위적으로 맞아 볼 테야?”

“힘도 없으면서 허세는.”

그때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역시 눈물샘 파업론은 블러핑이었던 모양이지. 목소리에 울음기가 가득했다.

“……어쨌든 고마워. 잘 간직할게. 진짜로.”

“오냐.”

그녀가 곡면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며 카메라를 매만졌다.

레이아웃은 구형 카메라와 거의 비슷했다. 셔터를 비롯한 조작 계통은 물론 액정의 크기까지 동일하다.

하지만 사용감이 뚜렷한 구형과는 손에 익은 감촉에서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럼에도 난 괜찮으리라 믿었다.

추억을 공들여 어루만지다 보면 거기도 나이테처럼 과거가 새겨지지 않겠는가.

“줄 거 줬으니까 간다.”

“……응. 잘 가.”

카메라 상단부가 점점이 젖는 걸 보고, 난 눈치 있게 병실을 빠져나왔다.

하기야, 그날 밤은 작별하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

안녕(安寧) : 탈 없이 평안함.

난 그녀가 충분히 오랜 시간 그에게 안녕을 고하고 마침내 스스로도 안녕해지길 바랐다.

사방이 조용해 흐느끼는 소리가 복도 끝까지 울렸다.

아마도 그녀의 흐느낌을 밤이 한껏 안아 같이 울어 주는가 하였다.

* * *

숙소 방에 돌아와, 베개를 등받이 삼아 침대에 앉았다.

방은 오래된 수조처럼 내 몸을 편안하게 가라앉혔다.

육체가 축 젖어 있는 동안 의식은 수면 위로 둥둥 떠 표류했다.

스쳐 가는 단상들.

최석현은 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가.

배윤하는 어째서 중도를 모르고 자기 파괴적인 책임감에 집착하는가.

난 그 답을 알았다.

무능하기 때문이다.

최석현은 무능했다.

그에게는 타인에게 사랑받는 재능이 없었다.

어린아이라면 본능적으로 깨우치는 가장 간단한 아양 기술조차 그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인가.

배윤하는 무능했다.

그녀에겐 유연하게 사고하는 재능이 없었다.

죄책감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편집증적인 사명감은 그녀의 유연성을 후천적으로 앗아 갔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되고 싶어 그리된 것인가.

그들의 무능이 그들의 탓인가.

왜 강제로 주어진 것들을 그들이 죄다 감당해야만 하는가.

과연 무능은 죄인가.

-아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렇다 해도 나만은 아니라고 말해 주겠다.

누군가 죄라 말한다면 내가 대신 용서해 주마. 당신들의 일그러진 삶조차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끝끝내 긍정해 내겠다.

같은 이유로, 나는 내 무능했던 과거를 용서하기로 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웅크리고 울고 있는 내 안의 어린아이를 안아 주기로 했다.

난 방 한구석에서 침묵을 견디고 있던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를 꺼내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쳤다.

뭘 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쳤다.

아름다운지 추한지 멜로디인지 반주인지 박자가 어떤지 불협화음은 아닌지 전혀 구분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신나게 긋고 때렸다.

오늘 밤만큼은, 유능한 냉정이 내 무능한 열정을 폄훼하지 못했다.

아마 그러다 잠들었던 모양이다.

꿈속에서도 나는 기타를 쳤다.

꿈속의 내 기타 소리는 마치 만져질 듯이, 발밑에 차오르는 물처럼, 덧없는 먼지를 품고, 멀리 와류를 일으키며 또 어딘가로 흐르다.

마침내 내 안으로 돌아와 음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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