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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자꾸 늘어-82화 (82/164)

<재능이 자꾸 늘어 82화>

11. 반격 - 1

딸이 납치됐다.

그녀가 귀가하지 않은 그날.

저쪽 핸드폰에 수십 건의 부재중 전화를 남긴 뒤에야, 형욱과 그의 아내는 그 사실을 떨리는 손끝으로 이해했다.

서프라이즈도 가출도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딸은 솔직했다. 숨기는 일에는 재능도 의지도 없었다. 마음에 뭔가 입고되면 지체 없이 아드레날린을 점화하여 입구멍으로 쏘아 올리는 아이였다.

가슴앓이를 할 성미도 아니거니와.

그걸 부모 앞에서 감추지도 못한다.

그날 아침, 딸은 타도 대상인 우엉과 시금치가 아침밥상에 대거 출몰한다는 사실에 엄마와 설전을 벌이다 등짝에 손바닥 자국의 부상을 입고 학교로 도주했다.

달리 말해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날 그녀가 귀가했다면 평범한 하루가 되었을 테지.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제발……. 제발 여기서는 뭐라도…….’

경찰의 수사는 미적지근했다.

몸값 요구가 없었다는 점 때문에 단순 가출로 판단한 듯했다.

그들 부부 앞에서는 ‘실종으로 보고 적극 수사하겠다.’고 했으나 말만 번드르르할 뿐이었다.

딸을 잃은 아빠의 눈에는 터무니없이 미진했다.

직접 움직여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 보름의 추적이었다.

딸과 마지막으로 접촉한 학생을 찾고, 그 학생을 조져서 어떤 양아치 집단에 소속됐다는 사실까지 파악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거슬러가다 보니 등장하는 이름.

조직 폭력 단체 ‘동부파’.

형욱에겐 익숙한 이름이었다.

지금이야 걸그룹이나 쫓아다니는 연예부 기자이지만, 사실 그는 전직 경찰이었으며, 형사과와 정보과를 오간 탓에 범죄 조직이라면 지겨울 만큼 알았으니까.

그는 과거 콧날을 세워 범죄의 냄새를 쫓던 기억을 떠올려 가며 여기까지 도달했다.

“당신이 연락했던 기자 양반?”

어떤 남자가 슬그머니 앞에 앉더니 묻는다.

조심스러운 태도.

형욱도 앞으로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당신이 이용만?”

“맞아.”

“일단 와 줘서 고맙습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셨을 텐데.”

“뭐, 돈 준다니까. 급전이 필요하지 않았으면 나도 안 왔어.”

“위험하니까?”

남자는 말없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이미 탁한 실내 공기에 숨결 하나를 더한다.

호프집에 사람은 적었지만 대부분이 담배 한 까치씩은 물고 있었다.

할로겐전구들이 뿌린 누런빛이 연기에 뿌옇게 스몄다.

“녹음기는 안 돼.”

“예?”

“내 목소리 남기지 말라고. 쫄리니까.”

형욱은 순순히 녹음기를 탁자 위에 올렸다. 핸드폰도 덩달아.

“그럼 이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품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쓱 밀었다.

“IC 통과 직전에 찍힌 사진입니다. 대포차 하나가 평택에 들어왔고, 이 부근에서 깔끔하게 사라졌습니다. 차종은 보시다시피 검은색 스타렉스. 분명 당신 폐차장에서 이 차가 발견됐다고 하셨죠. 맞습니까?”

“뭐, 맞지. 지금은 고철이 됐지만.”

“경위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경위라…….”

“어떻게 차가 들어왔고, 그 사람의 인상착의는 어땠으며…….”

“근데 아저씨, 나도 하나 묻고 싶은데.”

“예?”

그때 남자도 품에서 사진을 하나 꺼내 툭 하고 던졌다.

“아저씨도 얘 알아?”

사진을 본 형욱의 눈이 커진다.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목을 죄었다.

아찔한 와중에도, 남자의 비릿한 조소만큼은 또렷이 보였다.

사진에는 딸이 꽁꽁 묶인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당신 진짜 형사 아니구나? 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그게 무슨…….”

“아 뭐,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없다는 얘길 듣기는 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내가 원체 조심성이 많아 말이지. 진짜 아버지셨어? 놀랍네. 어떻게 민간인이 여기까지.”

“너 이 개자식……!!”

달려들려던 시도는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들에 저지됐다.

뒷좌석에 있던 자들이 그의 덜미와 어깨를 잡고 끌어당긴 것이다.

형욱은 앉았다기보다 구겨진다는 표현에 적합하게 의자에 처박혔다.

“너 이 개새꺄!! 내 딸!! 내 딸 어쨌어!! 놔!! 이거 놔아아!!”

“뭐 아직은 안 죽었다대. 음…… 맞나? 내 담당 아니라 잘은 모르겠네. 어쨌든 민주 시민이 말이야. 경찰을 믿고 가만히 기다리셔야지. 왜 나대서 날 귀찮게 만들어?”

“너 이 새끼……. 너 내가 얼굴 봤어! 개자식아!! 네놈만큼은 내가 경찰이 아니라 저승사자한테 친히 넘겨주……!”

“아 시끄럽네. 야, 이 아재 입도 좀 막고. 수면제 같은 거 없냐? 클로로폼? 맞나? 그걸로 한 방에 어떻게 안 돼?”

“예, 형님. 가져오고 있답니다.”

남자가 혀를 찰 때마다 담배 연기가 튀었다.

난리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호프집 주인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잠잠했다.

형욱은 그들의 태도가 방관이 아닌 그보다 더 적극적인 침묵임을 깨달았다.

모두 한통속인 것이다.

“하여간 미리미리 준비하라니까. 걱정 마, 아저씨. 우리가 그래도 인도주의라는 걸 배웠거든? 정신 잠깐 잃고 있다가 눈 뜨면 바로 천당일 거야. 고통 하나 없고. 깔끔하고. 괜히 연명 치료 지랄하면서 반시체 살려 놓는 것보단 우리처럼 죽을 목숨 깔끔하게 날려 주는 게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지 않아? 응?”

“우읍!! 우부브으으읍!!”

“그래. 동의해 줘서 고마워. 그렇게 열렬히 호응해 주니 말한 보람이 있네. 그리고 말이야, 내가 장담까진 못하지만, 당신네 딸도 곧 따라갈 테니까 걱정 마.”

“우으아아악!! 우브으우읍브읍!!”

“지금이야 상품 가치가 있다고 살려 둔 거 같은데……. 내 경험상 그런 거 얼마 못 가거든. 음……. 아닌가? 너덜너덜해져서 지박령 같은 게 되면 천당 못 가려나? 그것까진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없네. 미안.”

형욱의 몸부림이 더 거세졌지만 억누르는 손들은 그보다 더 억셌다.

남자는 킬킬 웃으며 발버둥을 감상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모자를 깊이 눌러쓴 청년 한 명이 주사기를 들고 등장했다.

“새끼가 빠져서. 빨리 와!! 빨리 이 아재 좀 조용히 시켜.”

“예, 형님.”

청년은 척척 다가오더니.

실실 웃는 남자 옆에 서슴없이 앉았다.

실로 시원할 만치 호쾌한 착좌였다.

그러곤 탁자 위의 기본 안주를 집어먹는 것이었다.

주변의 박살 난 분위기는 아랑곳없이, 원래 여기 주인인양 홀로 태연자약하다.

쩝쩝.

“……야, 너 뭐하냐?”

“안주 먹는데요, 형님.”

“아, 그래? 이 새끼야 미치셨어요? 야, 강재야. 어디서 이런 보기 드문 또라이를 데리고 왔어?”

“밑에 애들 얼굴 일일이 기억 못 하는 건 여전하시네요. 만우 형님.”

“뭐야? 야 강재!! 얘 뭐냐니ㄲ……!!”

이용만, 아니 동부파 행동대장 김만우가 황당함에 고개를 돌렸지만, 오른팔인 강재는 거기 없었다.

아니, 사실 거기 있기는 한데, 찾는데 다소간의 시간이 더 할애됐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게 뭔…….”

털썩.

쿵. 쿠궁.

그리고 호프집에 있던 조직원들이 순서대로 쓰러졌다. 빠짐없이. 김만우 본인을 제외하고 전부가.

“……너 뭐 하는 놈이야?!”

김만우가 손을 뻗어 청년의 멱살을 잡는다.

실패했다. 그의 손은 옷깃만 스치고 허공을 헤매다 가까스로 탁자를 짚었다.

딱히 청년이 피하거나 멀어진 건 아니다.

단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눈꺼풀이 무겁다.

그때 청년이 희멀끔한 얼굴로 씩 웃더니, 손가락으로 왼쪽 목덜미를 톡톡 두드렸다.

만우가 반사적으로 따라 하니, 거기 꽂혀 있던 주사기가 손아귀에 걸려 나왔다.

청년이 아까 들고 왔던 그 주사기.

“……대체 언제…….”

“영화 못 봤어요? 손은 눈보다 빠르다.”

“이런 씹…….”

마침내 김만우도 눈을 까뒤집으며 풀썩 무너졌다.

M-99 동물 마취제는 명불허전의 강력함을 증명했고.

이제 호프집은 기본 음소거 상태로 안주 씹어 먹는 소리만 남았다.

형욱은 신체의 자유를 되찾았지만, 이 갑작스런 상황 전개를 따라가지 못하고 한참을 눈만 껌벅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청년 쪽이었다.

“따님 찾으러 오셨죠?”

“당신 경찰입니까?”

“아뇨.”

“그럼? 조폭? 경쟁 조직인가? 동부파에게 싸움을 걸 정도면 구룡파? 칼치파?”

“그냥 학생인데요.”

“……학생?”

“어쨌든 은형욱 씨 맞죠? 딸 찾으러 오신.”

형욱은 긴장으로 뻣뻣한 목을 힘들여 끄덕였다.

아깐 뒤에서 덮쳤으니 이번엔 땅 밑에서 뭐가 솟으려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청년은 그저 과자부스러기 범벅의 손바닥을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시죠.”

“……어딜?”

“이런 비밀스런 얘기를 공개된 호프집에서 하자고 할 때부터 알아보셨어야죠. 여기 놈들 근거지입니다. 찾아보면 괜찮은 자료들이 숨어 있겠죠.”

형욱은 깜짝 놀랐다.

그럼 내가 호랑이 아가리에 제 발로 들어온 거란 말인가!

“이 호프집이 말입니까?”

“아뇨.”

“예? 놈들 근거지라면서요?”

“그게 아니라 이 공단 전체가 놈들 거예요. 시멘트 생산은 사실 곁다리죠. 그리고 이놈 본명은 김만우입니다. 폐차장 주인 이용만 씨는…… 글쎄요. 지금 살아 있을지조차 확실치 않군요. 얘들한테 서류 조작은 기본이에요. 그깟 서류 몇 개로 신원 확인이 됐다고 믿으시면 안 됩니다.”

“……허.”

아가리가 아니라 뱃속이었군.

형욱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감이 죽은 건가 초조함에 판단을 그르친 건가. 어느 쪽이든 이 청년이 없었다면 지금쯤…….

그때 청년이 정신을 잃은 김만우의 목덜미를 쥐고 홀을 가로질렀다.

못해도 90kg은 넘어 보이는 장정이 인형마냥 간단히 끌려간다.

“……뭐, 뭐 하려는 겁니까?”

“궁금하면 따라오세요.”

청년은 화장실까지 김만우의 거구를 운반했다.

그리고 아주 기이한 짓을 시작했다.

품에서 침통을 꺼내더니, 김만우의 손등과 손바닥에 촘촘히 꽂는 것이다.

그러곤 작은 주머니칼을 꺼내 김만우의 엄지를 썩둑 잘라 버린다.

침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출혈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안 말리시네요?”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나름 형사셨으니까.”

“옛날 일이고, 내 딸 납치범들한테 베풀어 줄 인정 따윈 없습니다. 궁금하긴 하네요. 그건 트로피 같은 겁니까?”

“아뇨.”

“그럼?”

“연쇄살인범들이 왜 시체를 토막 낼까요? 깍둑썰기가 조형적으로 아름다워서?”

“운반에 용이하라고.”

“정답.”

모자 쓴 청년은 침과 잘린 엄지를 수습해 일어섰다.

침을 제거했음에도 손가락 단면의 지혈 상태는 유지됐다.

그는 뒷문을 경유해 호프집 밖으로 나섰다.

“제 뒤만 따라오세요. 말은 되도록 삼가시고.”

“…….”

그러곤 역시나 심상찮은 발걸음으로 공단을 걷기 시작한다.

가뜩이나 가로등도 드문드문한 길, 한데 그는 그나마의 불도 피해 걷는 듯했다.

발걸음은 어둠에서 더 깊은 어둠으로 향한다.

그럼에도 청년의 행보는 곧고 막힘이 없었다.

형욱은 이유를 알아챘다.

그리고 알아채자마자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길을 다 외웠어? 아니, 그렇더라도 발밑에 뭐가 떨어져 있을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어쨌든 그가 눈을 감은 이유는 청각에 집중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그가 멈추면, 발걸음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던 말소리들이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러면 방향을 꺾어 다른 경로를 모색하는 식이었다. 경이로운 청각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어느 폐건물.

그리고 그 지하의 어느 문 앞.

청년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능숙하게 누르고는, 이내 김만우의 잘린 엄지를 센서에 찍었다.

몇 초의 지문 인식 끝에 문이 턱- 열렸다.

형욱의 턱도 비슷한 시기에 턱- 열렸다.

“……아니, 어, 어떻게?”

“엄지에는 지문이 있으니까?”

“그 정도는 압니다! 근데 비밀번호는…….”

“얘들도 본인 멍청한 건 잘 알아서 번호 어지간해선 잘 안 바꾸거든요.”

형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작하던 바를 말했다.

“……역시, 과거에 동부파 조직원이었군? 그래서 이렇게 잘 아는 겁니까?”

“글쎄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네요. 미래도 지금은 과거니까.”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하는 불이 켜져 환했고, 밖의 폐건물과는 달리 마감까지 깔끔했다.

곳곳에서 생활감의 흔적이 느껴졌다.

복도를 좀 걷자 왼편 문이 갑자기 열리며, 인기척이 툭 튀어나왔다.

“……형님? 다 끝나고 오신……. 어! 너네 누구……!!”

그때.

펑-!!

공기막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조직원의 턱이 뒤로 휙 젖혀졌다.

청년은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직진, 눈이 풀린 조직원의 목덜미에 주사기를 턱 꽂았다.

그러나 형욱의 시선은 왼손의 주사기보다 오른손을 향했다. 거긴 허리띠가 들려 있었다.

‘……허리띠? 허리띠로 저런 소리가 난다고? 저거 채찍인가?! 내 눈이 이상한가? 착시?’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본다.

‘짧잖아! 역시 짧다고! 허리띠가 맞는데?! 혹시 입으로 소리 낸 건 아니겠지?’

놀랐지만 턱을 더 벌릴 수는 없었다.

아까부터 최대치로 개방된 상태였으므로.

청년은 출몰한 잡몹1을 해치우고 지하 가장 깊숙한 방까지 도착.

이것도 지문 인식으로 손쉽게 열어 재끼고 진입한다.

“……오는 동안 이런저런 방이 있었는데. 더 안 봐도 되는 겁니까?”

“거긴 다 휴식실 같은 겁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한번 가 보세요. 당직 서는 놈도 아까 그 한 놈뿐이었으니까. 다만 장담컨대, 중요한 건 거의 이 안에 다 있습니다.”

과연 그곳은 넓고, 왠지 중요해 보이는 문서들이 빼곡했으며, 여러 대의 모니터와 복잡한 조작 콘솔이 자리해 있었다.

“챙길 거 있으면 챙기세요. 한 10분 정도 시간 남았습니다.”

“알겠……. 응? 10분? 그 구체적인 수치는 뭡니까?”

“경찰에 신고했거든요. 10분 정도 뒤엔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전 그 전에 몸을 피할 거구요.”

“……너, 너무 촉박한 거 아닙니까?”

“저한텐 아닙니다.”

그렇겠지.

아무래도 이 모자 쓴 청년은 자신과는 별개로 계획이 있던 듯했다.

자신은 얼쩡거리다 거기에 말려들었을 뿐.

“뭘 챙기셔도 좋지만, 꼭 필요한 게 아니면 두고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들고 가서 어쩌는 것보다 경찰이 더 잘 써 주겠지요.”

“잘 아시는군요.”

딸의 흔적을 찾는 게 먼저다.

동부파에 대한 복수는 옵션 사항이며 당장은 미뤄도 무방한 것이었다.

‘……장부. 또 장부. 필요 없어. 이건 브로커들 연락처? 챙겨 두는 게 낫겠지만……. 젠장. 너무 많아. 그리고 너무 적어.’

그러나 문서를 헤집을수록 그는 초조함을 느꼈다.

하기야 조폭들이 군대 조직처럼 기밀문서를 꼼꼼히 기록해 둘 이유가 있는가.

형욱은 당장 돌아가 조직원들을 직접 심문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납치하고 고문해서라도…….

“납치해서 심문할 생각이라면 접는 게 나을 겁니다.”

화들짝.

그야말로 마음을 읽힌 듯했다.

“놈들의 입을 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분다고 해도 제대로 된 정보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에 반해 당신이 짊어져야 할 리스크는 크죠.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알고 있습니다. 젠장. 안다구요!!”

사실 리스크 따윈, 딸아이만 찾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짊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다르다.

형욱은 자신의 정보가 이미 저들에게 노출됐음을 알았다.

이 상황에서 조직원까지 납치되면?

귀찮아지기 전에 딸을 제거하고 은폐하는 쪽을 택할지도 모른다.

확실하지 않다면 모험을 해선 안 된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여기까지 와서 또 헛손질을…….

“그런 의미에서 선물입니다.”

청년이 책상 위에 묵직한 뭔가를 올려놓고 지나갔다.

하드디스크다.

“이 공단에서 CCTV는 얼마 없습니다. 그리고 그걸 통제하는 장소는 여기가 유일하죠. 영상이 기록된 하드를 통째로 빼 왔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정황상, 납치범들의 대포차량은 이 공단을 경유했을 테니까요.”

“……아.”

그 순간 형욱은 청년의 등 뒤로 천사의 날개를 본 듯했다.

그러나 청년의 다음 행동을 목격한 순간 이 평가는 살짝 오묘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청년이 가방에서 하얀 가루가 담긴 봉지를 꺼내 드는 것이었다. 수십 개의 덩어리가 끊일 새 없이 등장한다.

“그, 그건, 혹시, 제, 제가 아는, 그, 그겁니까?”

“안다는 게 밀가루인가요?”

“……아뇨?”

“그럼 그거 맞습니다.”

“……!”

그러곤 그걸 방 곳곳에 숨기는 것이다.

어찌나 숨겨 둘 구석이 많은지 마치 봉지들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듯 보였다.

“이왕 털리는 거, 좀 더 본격적으로 털리면 좋잖아요?”

형욱은 사람의 목에 마취제를 쑤셔 넣고, 손가락을 자르고, 남의 터전에 마약을 숨겨 놓는 천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의외로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자신의 감성을 의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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