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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자꾸 늘어-83화 (83/164)

<재능이 자꾸 늘어 83화>

11. 반격 - 2

그 이후로도 청년의 괴상한 행보는 계속됐다.

서류에 뭔가를 끼워 넣고, 장부의 숫자를 바꾸고, 정체불명의 리스트를 보기 좋은 곳에 전시해놓기도 한다.

그건 아무리 봐도 정보 수집 보다는 정보 조작에 가까운 일이었다.

약속된 10분이 끝나 갈 즈음, 형욱의 가방은 수집한 자료로 빵빵해졌고, 반대로 청년의 가방은 텅 비어 홀쭉해져 있었다.

가져온 것을 이 안에 다 ‘배치’한 것이다.

“다 챙겼습니까?”

“예에, 필요한 만큼은.”

“그럼 가죠.”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빠져나왔다.

청년의 발자국을 똑같이 밟으며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형욱은 공단을 빠져나와 이파리 무성한 산 중턱에 도달해 있었다.

그가 잠시 멈춰 서더니 망원경을 꺼내든다. 시선은 산 밑의 어딘가를 향했다.

무심결에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저 멀리 공단 입구에 한 무리의 사람들과 경찰차가 육안으로 간신히 포착됐다.

형욱은 위화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건 몰라도, 경찰차가 ‘간신히’ 발견되면 안 된다.

“……근데, 뭘로 신고하신 겁니까?”

“집단 폭력 및 억류, 감금…… 대충 그런 내용이었죠. 제가 안 왔으면 그쪽이 그렇게 됐을 테니 잘못된 신고는 아닐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경광등은 왜 끄고 있고?”

사이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단순 민원도 아니고 형사 사건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경광등을 아예 끄고 온다는 건 수상했다.

한국 경찰은 보통 경광등을 너무 자주 써서 문제가 됐지, 그 반대의 경우는 드물었으니까.

“이상하군요.”

“그렇죠?”

그때 청년이 무선 리시버 하나를 툭 던졌다.

“뭡니까?”

“도청 장치요.”

천사님의 오늘 업무에는 마취, 신체 절단, 마약 배달, 장부 조작에 이어 도청까지 포함돼 있던 것인가.

형욱은 간단히 납득하는 자신에게 더 놀랐다. 새삼 인간의 적응력에 감탄하며 순순히 리시버를 장착한다.

-아, 그러니까……. 애당초 신고 안 들어오게 조심했으면 됐잖냐. 이게 뭐냐. 나 당직도 아닌데…….

-죄송함다. 아씨, 근데 진짜 누가 신고했지.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당사자가 신고한 거 아니야?

-아님다. 저희가 삼십 분 정도 지켜봤는데 별 낌새는 없었음다.

-됐고. 조심 좀 해라. 요새 우리 예민한 거 알지?

-옙, 경사님. 헤헤. 형님이 안 그래도 한잔 대접…….

빠득- 이 가는 소리에 뒷말이 가려졌다.

형욱의 구강 안에서 치아들이 서로를 씹겠다고 난리였다.

그는 이 난리를 굳이 만류하지 않았다. 무슨 얘기가 오갔을지는 뻔했으므로.

“……경찰을 포섭했다고?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미친 새끼들. 형사랑 조폭 새끼랑 나란히 술 마시면 사람들이 잘했다고 아주 박수까지 쳐 주겠네. 그지? 으이구 무식한 놈들아. 그딴 건 됐고 저번처럼 세팅이나 잘해 놔.

-알겠음다. 걱정 마십쇼. 형님.

-시벌 누가 니네 형님이야? 제발 가족 놀이는 너네들끼리나 하세요. 아무튼 간다. 뒤처리 똑바로 해. 또 말 생기면 그땐 국물도 없어. 알았어?

-옙. 들어가십쇼!

-하여간 띨빵한 놈들이랑 일 하려니까……. 니미럴, 반장님 말만 아니었어도…….

투덜거리는 말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경찰들이 아무 조사 없이 떠나는 것이다.

“김한용 경사. 이진 경장. 이 둘은 확실히 포섭된 거 같네요. 정황상 반장이란 사람이 비리를 주도한 거 같고. 흠…….”

“어, 근데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당신이 한 일들은 다 경찰 수색을 전제로…….”

“괜찮습니다. 쟤들이 저럴 것도 대충 예상했으니까.”

“예?”

그때, 한 쌍의 불빛이 밤안개를 뚫고 등장했다.

어둠을 흠집 내던 불빛은 공단 입구에 도달했을 즈음 한 대의 승용차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차에서 네 명이 내려서 다가오더니.

이번엔 도청 범위에 여성의 목소리가 끼어들어왔다.

-어? 한용이 네가 여긴 웬일이냐?

-……선배? 선배야말로 왜…….

-나야 당연히 신고 받고 왔지.

-신고는 제가 받았는데요. 조사는 방금 막 끝났습니다. 허위 신고였어요. 여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고? 내 신고를 왜 니가 받아?

-예? 폭력 사건이니까 당연히…….

-폭력? 아. 다른 거구나. 난 마약반이니까, 당연히 마약 신고 받고 왔지.

불온한 숨소리가 리시버를 통해 전해진다.

-야, 너 할 일 없으면 나 좀 도와라?

-아, 선배. 시간 낭비예요. 내가 다 둘러봤는데 뭐 없었다니깐.

-니가 대충 봤겠지. 이번 신고는 대박의 냄새가 나. 알맹이가 엄청 디테일한 걸로 봐선 내부자 고발인 거 같아.

-아니…….

-잔말 말고 따라와. 아저씨들. 길 좀 비킵시다.

-여긴 사유지임다. 어딜 마음대로 들락날락…….

-영장? 아, 영장이 뭐가 필요해 그냥 잠깐 들어갔다 나온다니까. 당신들이 안내해 주면 되잖아. 쫄리는 거 없으면.

-아, 가시라고요-!

-어? 얼굴이 왜들 그래? 진짜 쫄리는 거야? 아하, 좋아, 좋아. 알아봤으. 니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조폭이구나? 근데 조폭이 근무복 같은 거 입어도 돼? 세금도 안 내는 새끼들이 노동자 코스프레나 하고 말이야. 지랄이 아주 풍년이네.

-뭐라는 거야 이 여자가?! 영장 가지고 오라니까!

-그래 뭐 알았어. 자, 여기 영장. 흐흐. 진짜 있을 줄 몰랐지? 나 들어간다? 안 돼? 야, 어딜 만지냐? 야, 경철아. 깡패님들께서 공무 집행 방해들 하신다. 어? 또 만져? 경철아 성추행까지 추가다. 어째야겠냐.

-그럼 명치 마사지 좀 해 드려야겠네. 얘들아 이리 와. 오늘 내가 니들 물렁살을 장인의 손길로 어루만져 줄게. 이리 오라니까?

-씨발 일단 막아!! 막으라고!

공단 입구는 금세 난장판이 됐다.

직원으로 위장하고 있던 조직원과 마약반 형사들이 충돌했고, 비리 형사들은 멀뚱히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뒤늦게 진압에 동참했다.

조직원들 전원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을 즈음, 청년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됐네요. 이동합시다.”

“다 안 봐도 됩니까?”

“어차피 여기서는 관찰하기도 힘들 테니까요. 그리고 마약반 형사들이 제 선물을 발견해 돌아가든 그러지 못하든, 이제 더 돌이킬 수 없게 됐습니다. 제 목적은 그걸로 완성이죠.”

“……허.”

만약 ‘선물’을 발견한다면 경찰은 이 일대를 마약 수사의 기점으로 삼고 철저히 헤집을 것이다.

그러지 않은 경우라면?

그건 아마 형사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일 테니, 이번엔 경찰 조직 차원에서 집단 광기를 일으키며 여길 초토화시키겠지.

어느 쪽이든 동부파의 근거지 하나가 뿌리부터 뽑혀 나갈 것이다.

‘이걸 다 계산했단 말인가? 저 청년은 도대체…….’

형욱은 묵묵히 산을 오르는 청년의 등을 멍하니 응시했다.

*   *   *

미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대략 5년 뒤.

유투브에 <왓슨의 평범한 수사>라는 채널이 생긴다.

이 유투버는 범죄 수사와 프로파일링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썰을 풀었고, 50만 구독자를 찍으며 나름의 성공을 거둔다.

어지간한 형사 뺨치는 정보 수집능력, 정교한 통찰력, 더해서 분석한 프로파일링이 여러 번 적중하면서 인기를 끈 것이다.

심지어 미제 사건 하나를 건드렸다 해결해 버린 뒤로는 경찰까지 와서 조언을 구하는 거물급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이 유투버는 방송이나 영상을 올릴 때마다 같은 오프닝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전 절대 자살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실종되거나 자살한다면 그건 전부 동부파의 짓입니다. 제 가족을 납치한 진범을 잡기 전까지 저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유투브를 시작한 이유는 수사 진행 상황을 꾸준히 업데이트하면서, 시청자들로부터 가족을 공개적으로 수소문하고 제보를 받기 위해서였다.

유투버로 아예 방향을 튼 것도 어느 순간부터 수사가 막혔기 때문이다.

자신이 잊히지 않아야 이 사건도 잊히지 않으리라 판단했기에 채널을 적극적으로 키웠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적 영향력과 발언력이 생긴 순간.

결국 본인도 실종됐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납치 수사를 촉구하라는 인터넷 서명 운동까지 벌어지면서 한반도가 한동안 떠들썩했었지.

그러나 이 사건은 인터넷으로 맺어진 연대가 얼마나 취약한지에 대한 근거로서 연구 논문에 활용될 만큼 빠르게 식어 갔다.

뜨거웠던 건 한 달 정도, 그 뒤 팡팡 터지는 사건들로 대중의 관심사는 쉽게 분산되고 옮아갔다.

그리고 잊혔다.

그러나 내가 이 사건을 진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이런 비극적인 전말 때문은 아니다.

좀 더 개인적인 이유에서다.

-그녀가 살해당하던 장소에 나도 있었으니까.

마침내 목표했던 산 중턱에 도착했다.

거기엔 큼지막한 캔버스와 그 안의 어두침침한 그림, 그리고 그림을 떠받치는 이젤이 놓여 있었다.

“그림……?”

“제 겁니다. 며칠 여기서 자리 잡고 그렸거든요. 음, 그것보다.”

난 은형욱에게 폰 하나를 휙 던졌다.

“이건…… 뭡니까?”

“이만우의 핸드폰입니다. 지문인식이랑 패턴까지 다 풀어 뒀으니까 그냥 쓰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유심은 빼 놨습니다만, 기기에 저장된 번호들은 활용하실 수 있겠죠.”

“……당신은 필요 없습니까?”

“저한테 필요한 정보는 따로 전송해 놨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그러나 말과는 달리,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함을 내비쳤다.

“고마움과는 별개로, 이젠 진짜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날 왜 도운 거죠? 애당초 날 어떻게 알고…….”

“이름은 이한열. 말씀드렸다시피 학생입니다만. 뭐, 사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죠.”

“음?”

“제가 당신의 수사에 꽤 도움이 될 거라는 점. 그 외엔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누굴 순순히 믿기 힘든 처지라는 것도 이해하실 겁니다. 방금도 뒤통수를 맞고 온 터라.”

“그러시겠죠. 이해합니다.”

“만약 당신이 어느 조직의 하수인이고, 조직 간의 싸움에 제가 말려든 거라면, 아마 전 둘 사이에서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겠죠. 그럴 가능성까지 전 고려해야 합니다. 다시 묻죠. 절 왜 도왔습니까? 당신은 누구기에 이 모든 걸 다 아는 겁니까?”

그의 불안감이 목소리에 묻어 나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제 지식의 출처를 밝히긴 힘듭니다.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들어서요.”

“……그런.”

“하지만 당신이 필요해서 접근했다는 사실은 맞습니다. 다만, 그게 지금은 아닐 뿐이죠. 전 당신의 경찰 쪽 인맥과 뛰어난 수사 능력을 높이 삽니다. 추후 저만의 정보 조직을 만들 생각이거든요.”

“그 말은 곧, 절 스카우트하신다는……?”

“그러니까 제가 당신을 꼭두각시 삼으리란 걱정은, 적어도 당장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전 지금 당신에게 바라는 게 없거든요.”

그리고 그에게 또 하나의 폰을 추가로 던져 주었다.

“……이건?”

“그 번호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따님의 정보가 발견되면 그쪽으로 보내 드리죠. 제 제안이 동하신다면 계속 들고 계세요. 영 꺼림칙하다면 버리셔도 좋습니다. 선택은 당신 몫입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좋습니다.”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우린 헤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내 제안을 듣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정보 조직 어쩌고 한 것도 반쯤은 구실에 불과했다.

애당초 미래에 범죄 분석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은 은형욱이 아니다.

그의 아내이자, 지금은 전업 주부인 이정숙이다.

전생에서 은형욱은 이즈음 실종된다.

그리고 딸과 남편을 잃은 이정숙은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을 토대로 직접 수사에 착수, 단 몇 년 만에 그 분야의 알아주는 대가가 된 것이다.

만약 정보 조직 설립이 최우선순위였다면 은형욱을 죽게 내버려 뒀겠지.

그리고 수사에 뛰어든 이정숙을 도우면서 그녀를 포섭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은 건?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정숙이 딸아이의 전단지를 뿌리는 것을 봤을 때, 그리고 전단지 안에서 지인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날 휘감는 운명 같은 걸 느꼈다.

은지은.

대원고 학생회 집행부이자 방송부원인 아이.

4차원적인 텐션이 가끔 버겁기도 했다만, 그래도 난 그녀의 밝고 선한 면모를 꽤 좋아했다.

일이 있어 전학 갔다던 아이가 어째서 실종 상태인지는 아직 불명이다.

그리고 이정숙.

전생에 내가 직접 드럼통에 시멘트를 메우고 바다 깊숙이 묻어 버린 그 여자가 은지은의 모친이었다는 사실은 차라리 농담이었다.

난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은형욱 씨.’

당신의 아내를 살리지 못했다. 죽게 내버려 뒀다.

물론 내가 어쩔 상황은 아니었지만, 아마 그럴 수 있었어도 안 그랬을 거다.

그때의 난 겁쟁이였으니까.

난 그녀를 바다에 가라앉히면서, 인간이 인간에게 응당 가져야 할 비탄이나 연민보다, 시멘트에 공기가 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걱정을 먼저 했다.

그 사실이 사무치도록 미안했다.

‘그러니까 이번엔 다 삽시다. 내가 살릴 겁니다. 지은이도, 은형욱 당신도, 그리고 미래의 인기 유투버도. 그게 내 사죄입니다.’

그리고 동부파를 무너뜨리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은형욱 당신이 딸을 찾는 것보다 그게 빠를 테니 당장은 몸 사리면서 있기를 바란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구한다’는 귀찮은 짓을 벌여 가면서까지 당신에게 경각심을 심어 준 이유도 그것 때문이니까.

생각을 정리하며 캔버스 앞에 앉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서서히 걸어 나왔다. 난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화구를 주섬주섬 챙겼다.

“이 과장님 오셨어요?”

“……너 이 청개구리 새끼. 참 건강해 보여서 졸라게 다행이네요.”

LS그룹 보안팀의 이상용 과장은 가끔 욕설과 존대가 섞인 기묘한 화법을 구사했다.

그 ‘가끔’이란 물론 날 만날 때를 뜻한다.

저 고지식한 존댓말 캐릭터를 타락시키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뭔가 내 새끼를 키운 느낌이라 좀 뿌듯하기까지 했다.

단단한 이성을 뚫어 낸 그의 내적 빡침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나는 싱긋 웃어 드렸다.

“네. 전 언제나 건강하죠.”

“좋으시겠네요. 내 창자는 꼬일 대로 꼬여서 이젠 뱃속에서 실 뭉치가 만들어질 지경인데. 내가 이런 데 오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시발?”

“이런 데요? 이런 데가 어딘데요? 전 그냥 여기 그림 그리러 왔을 뿐인데. 경치도 좋고. 저 대회 얼마 안 남은 거 아시잖아요?”

“아하, 그러세요? 그놈의 그림 그리러 나올 때마다 경찰이 출동하고 조폭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참, 우연이네요. 우주의 신비 같은 걸까요.”

“우연은 니미럴! 너 대체 뭐 하는 새끼세요?!”

예전에 비한다면 욕설의 찰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쫀득해졌다.

이젠 하산시켜도 되겠어.

흐뭇한 미소와 함께, 난 정리한 화구를 짊어진 채 그의 앞에 섰다.

“이왕 오신 김에 저 좀 태워다 주세요.”

“부디 설사랑 변비랑 동시에 걸려 주실래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늦으면 안 되거든요.”

“……따라오세요. 개자식아.”

난 그를 따라 산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경찰차 몇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눈앞을 막 지나쳤다. 증원을 부른 거겠지. 저쪽 일도 잘 풀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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