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84화 (84/164)

<재능이 자꾸 늘어 84화>

11. 반격 - 3

“타시죠.”

이 과장이 직접 차문을 열어 주었다.

배려라기보다 죄인을 철저하게 압송하려는 의지 같은 게 느껴졌다.

순순히 조수석에 몸을 싣는다.

글러브박스 안의 물티슈를 꺼내서 뽁뽁 뽑아 쓰니, 그가 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니꺼세요? 이젠 아주 말도 안 하고 쓰네?”

“남자가 쪼잔하게. 가난한 고아한테 이 정도도 못해 주십니까. 인류애를 좀 발휘해 보세요.”

“당신 나보다 부자잖아요. 이 돈 많은 거지새끼야. 내 인류애는 그런 허튼 일에 반응 안합니다.”

“하. 도시 인심 각박하네.”

물티슈 팩을 결국 뺏겨서, 난 조막만 한 두 조각 휴지만으로 화장을 다 닦아 내는 묘기를 부려야 했다.

어느 부분은 차라리 분장에 가까울 정도인 만큼 꽤 절묘한 계산이 필요했다.

대충 처리하고 손거울을 옮겨 가며 이목구비를 꼼꼼히 점검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졌다.

“이야, 잘생겼네. 여기서 더 잘생겨지면 큰일인데.”

“재수 없으니 좀 닥쳐 주실래요.”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지만 어쩔 수 있나.

사실인걸.

[부처핸섬] 특성은 엄청나진 않았지만 대단했다. 생각보다 적용도 빨랐다.

극단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안면비대칭이 사라지고 이목구비가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원래 훈남은 흔남에서 점 하나만 찍으면 완성되는 것이었다. 으히흐핳.

왜.

뭐.

왜.

난 좀 들뜨면 안 되나.

거반 반백 년의 시간 동안 간당간당하게 평균인 외모로 살다, 전현생 통틀어 난생처음 길거리에서 번호 따여 본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방방 뛰지 않은 것만으로 난 내 품위를 충분히 지켜 냈다고 본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근데 그 화장은 직접 한 겁니까?”

“네.”

[메이크업 아티스트 옹달샘 원장의 뷰티 아트웍](Rank D)

얼마 전에 얻은 자색 탤런트다.

이 능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대놓고 활동하는 데 제약이 따랐겠지.

마스크 따위로 얼굴을 가리면 오히려 튀어 보인다. 간단한 화장술만으로 인상을 완벽히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다.

혼란을 준다는 이점도 있었다. 몽타쥬를 작성한다면 ‘눈 밑의 점’, ‘짙은 눈썹’ 따위가 강조될 테니 내 원래 얼굴과는 더더욱 멀어진다.

여기에 단점이 있다면, 누군가의 잔소리가 심해진다는 것뿐이다.

“그걸 또 직접 배우셨어? 허. 분장을 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을 계속 하시려고? 감사하네요. 당신 덕에 평생 인연이 없던 산재를 받게 생겼어요. 노이로제로 인한 정신병증 같은 걸로.”

“과찬이십니다. 한 턱 쏘실 필요까진 없어요. 핫핫.”

“그렇게 스릴이 고프면 차라리 내전 지대를 가시죠. 거긴 내 근무지가 아니니까. 가서 뒈져서 돌아오시면 참 감사할 거 같은데.”

“네. 절대 갈 일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라니까. 결정만 하시면 사비로 퍼스트 클래스까지 끊어 드릴 의향이 있습니다만.”

구시렁구시렁.

엔진 소리마저 그의 심사를 대변하듯 신경질적이었다. 우릉우릉.

그러나 RPM 게이지가 레드존을 팍팍 치는 와중에도, 핸들링만큼은 매끄럽고 부드러운 것이 과연 이상용 과장다웠다.

뭉게구름 같은 사람.

그동안은 번개 같은 분노가 그 안에서 난리를 피워도 푸근한 외면과 나긋한 태도로 주변을 잘도 속였을 것이다.

절대 번개를 구름 바깥으로 새게 두지 않았겠지.

그는 철천지원수의 배때지를 쑤신 다음에도 넥타이 상태를 점검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저 두루뭉술한 구름의 외피를 벗겨 내 뇌우를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데까지 꽤 애를 먹었지.

이제야 좀 공들인 티가 나는 듯했다.

그리고 슬슬 결정타를 찍을 때가 온 것 같았다.

“과장님,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으시죠?”

“…….”

“왜인지 제가 맞춰 봐도 될까요?”

“아뇨, 안 그러셔도 됩니다.”

물론 난 그의 사양을 사양했다.

“상사가 꽤 지랄 맞군요. 맞죠?”

움찔. 입도 다물고 내색도 없었지만 충분했다.

그의 짧은 경직은 내 가설의 마지막 조각을 완성시켰다.

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전에 뵈었을 때, 과장님께 이런 질문을 몇 번 드린 바 있습니다.”

-회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회장님한테 안부 좀…….

-회장님이 절 두고 따로 하신 말씀은 없으셨…….

그때마다 이 과장은 ‘하룻강아지가 인맥 하나 잘 잡아서 출세하려 드네.’라는 투의 조소어린 심사로, 그럼에도 깔끔한 예의를 갖춰 이렇게 답했었다.

-저는 회장님께 직접 말씀드릴 급이 아닙니다. 윗선에 보고는 올려 보죠.

그건 보안팀 직원으로서, 재벌에 빈대 붙으려는 수많은 군상에게 해 온 ‘잘라 내는 말’이었겠지.

다만 나는 그의 말에서 묘한 감정도 같이 읽을 수 있었다.

패배감.

피로감.

자포자기.

그리고 자책감까지.

난 저 문맥에서 이런 감정들이 조합될 가짓수를 몇몇 떠올려 보았다.

그 가설 중 하나.

“과장님 원래는 과장 아니셨죠? 좀 더 높은…… 말하자면 ‘회장님께 직접 말씀드릴 수 있는 급’이셨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는 건, 실수를 해서 좌천당했거나 사내 정치에서 밀렸거나, 둘 중 하나…….”

“……그만하시죠.”

“그리고 제 돌발 행동이 시작됐죠.”

내가 생각해도 최근 내 행동은 돌발적이고 무모하며, 무엇보다 기괴했다.

가는 곳마다 조폭 근거지가 발견되고 검거가 끊이질 않으며 뉴스가 매일같이 갱신됐다.

난 그걸 숨기지도 않았다.

이 과장이 내게 건넨 위성 전화를 항시 소지하고 다녔다. 나 여기 있다고 광고를 한 셈이다.

옆에서 지켜본 그로서는 매우 의심스럽고 황당했을 것이다.

-이 자식 대체 뭘까.

그런 의문이 생겼겠지.

나와 동부파 사이의 의심스러운 관계가 계속 관찰된다면, 자연히 LS그룹 보안팀은 주현보육원을 타깃으로 두고 진실을 파헤칠 게 분명했다.

회장이 주의 깊게 바라본 인재가 조폭의 영향권 안에 있다면 문제니까.

나로선 사실 그래 주길 바라고 더 성대하게 일을 치른 것이었다.

그런데.

“한데 그룹에선 이상할 정도로 반응이 없었어요. 늘어 가는 건 당신의 짜증뿐이었죠. 왜일까……. 고민을 좀 했습니다. 답은 금방 나오더군요.”

“……그만.”

“정보가 당신 상사 차원에서 차단되고 있다. 잘못되면 당신에게 다 덤터기를 씌우기 위해. 재기마저 못 하게끔 짓밟아 버릴 기회로 본 거죠.”

“그만하라니까!!”

이 과장이 소리를 지르며 도로변에 차를 멈춰 세웠다. 끼익. 브레이크가 신음했다.

핸들에 얼굴을 처박고 어금니를 사려 문다. 한마디 말도 없지만, 그의 호흡은 거칠고 적나라해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직감했다.

그가 흉중에 품고 있던 번개가 드디어 구름을 뚫고 대지에 꽂힌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다소 차분해진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내가 뭘 어쩔 상황이 아냐. 이미 황 팀장이 보안팀을 완전히 장악했어. 나만 보던 부하들은 하나둘 퇴사하거나 줄을 갈아탔지. 내게 ‘애보기’를 시킨 것도 모멸감을 줄 목적이었을 거다. 이게 싫으면 알아서 떠나라고.”

“…….”

“그걸 참아 가며 널 맡은 거다. 근데 넌 위험한 곳을 골라서 찾아다니고 있지. 내가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고 배기겠나? 만약 네가 잘못되면…….”

“예, 알아요. 관리감독 부실을 핑계로 징계든 뭐든 때려 맞겠죠. 이해합니다.”

“알면 좀 자제해 주면 안 되나?”

“그건 안 되겠는데요.”

“악마 같은 자식.”

“그 대신 그 황 팀장이란 사람, 같이 치우도록 합시다.”

“……뭐야?”

이 과장이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 둥그런 핸들 자국을 남긴 얼굴로 날 본다.

“부모에게 관심 받고 싶은 아이들의 행동 방침은 둘로 나뉘죠. 하나는 우수해지는 것. 또 하나는 쌩난리를 치는 것. 전 이 두 방법을 다 시도할 생각이었습니다.”

“…….”

“예, 제가 깡패들의 소굴을 헤집은 일들은 좀 거창한 관심 구걸에 불과했어요. 이른바 쌩난리 파트죠. 근데 시작부터 턱 걸리더란 말이에요. 그 황 팀장이라는 ‘유모’ 때문에.”

“……유모가 오지랖을 부렸다……. 아이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 양 은폐했고. 부모가 모르도록. 이건가?”

“예. 분하시겠지만, 이건 거꾸로 기회이기도 해요. 그가 정보 통제를 왜 하겠습니까. 회장님이 직접 관심을 갖고 오더를 내리면 곤란하니까 그렇겠죠. 그 와중에 당신이 일말의 공이라도 세우는 게 두려운 겁니다. 지난번 제가 조난됐을 때처럼요. 이걸 이용하셔야 해요.”

“……그래서, 뭐. 네가 직접 회장님께 말해 보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가능하다면요.”

“어떻게? 보안팀은 네 접근을 철저히 막을 거다. 넌 회장님 그림자도 밟을 수 없어. 그분과 네가 만날 수 있던 건 우연 중의 우연이었을 뿐이야.”

“말했잖아요. 행동 방침이 둘이라고.”

이 과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우수해지는 것……. ‘카이로스 예술대회’ 수상을 노리고 있군. 그럼 회장님과 독대가 가능하니까. 그러나 허황된 계획이다. 네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좀 잘나긴 했지만, 된다고 100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죠. 예술 쪽 일이니까.”

“그럼?”

“그거야 같이 머리 맞대고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손을 잡자는 내 우회적 제안에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 말이 어떤 트리거가 된 걸까. 그의 숨소리가 원래대로 차분해졌다.

이성이 두개골에 복귀하고, 번개를 뱉은 구름은 다시 흐트러진 틈새를 오므렸다.

“그럴 순 없습니다.”

말투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왜죠?”

“그건 조직 배신 행위니까요. 상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외부인과 손을 잡고 그룹의 정보를 유출할 수는 없습니다.”

“……흠. 역시 만만치 않네요.”

“애당초 한열 군만 얌전해진다면 다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절 충동질하지 마세요. 이대로 얇고 길게, 정년까지 무난하게 생존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협상 결렬이네요. 에이, 한 끗이 모자랐네.”

“내일부턴 부디 모범적인 학생이 되어 주길 바라죠. 애당초 그렇게 빈번하게 학교를 빠져도 됩니까? 학교에서 뭐라고 안 해요?”

“제가 담임 선생을 꽉 쥐고 있는 터라. 출결 따윈 아무래도 좋기도 하고.”

“…….”

이 과장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날 한참 바라보다,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뭐, 아무튼 생각해 보세요. 제안은 쭉 유효하니까. 다만, 제 목표가 이뤄지기 전까지만 유효하겠지만.”

“…….”

“관심 구걸이라고 스스로를 폄하한 건 말 그대로 폄하일 뿐이에요. 사실 전 혼자라도 상관없습니다. LS그룹은 좀 더 간편한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니까.”

“……보육원 앞에서 내려 드리겠습니다.”

그는 말을 돌렸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이미 그는 반쯤 넘어왔다.

남은 건 스스로를 납득시킬 계기뿐이다.

‘오늘은 이쯤 해 둘까.’

조급하게 굴 필요가 없으므로, 나는 별 미련 없이 일상의 텐션으로 복귀했다.

“아, 가기 전에 저기 피자집 들렀다가요. 오늘 보육원 동생 생일이라 파티하기로 했거든요. 음, 받아서 가면 시간 딱 맞겠다.”

“……시트에 냄새 배는 거 극혐입니다만.”

“에이, 방향제 사 드리면 되잖아요.”

“개새끼야. 염치는 팔아먹으셨어요?”

*   *   *

“이게 다 뭡니까? 해명을 해 보시죠.”

장진욱 부회장은 눈빛에 날을 세운 듯했다.

LS그룹 보안경호팀장 황혁수는 부동자세를 풀고 목덜미가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픈 충동에 시달렸다.

“……안 그래도 조만간 보고를 드릴 예정…….”

“황 팀장님. 팀장 단지 얼마 안 되셔서 모르시나 본데,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변명입니다. 왜인 줄 아세요?”

“잘…… 모르겠습니다.”

장진욱 부회장이 결재판을 책상에 턱 던지고는 의자에 깊숙이 앉았다.

수백만 원짜리 맞춤 의자가 소음 하나 없이 가볍게 젖혀진다.

“뻔한데 일단 시작하면 들어줘야 되잖아. 지겹거든. 살다 보니까 참신한 변명이란 건 세상에 없더라고. 그래서 묻겠는데, 지금 하려는 변명, 지루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그럼 해 보시든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변명은 됐고. 이젠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이런 사안을 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뭐, 대충 알겠어요. 보나마나 시답잖은 사내 정치겠지. 당신들끼리 티격태격 싸우는 거야 알아서들 하시구요. 제가 궁금한 건 이 학생에 대한 겁니다.”

장진욱이 서류 하나를 손가락으로 탁 짚어서 끌어냈다.

종이 위에는 누군가의 신상 명세가 간략히 적혀 있었다.

“지금 브리핑 가능합니까?”

“예, 가능합니다.”

황혁수는 민욱공원에서의 회장과 학생의 만남, 회장이 특별 경호를 지시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어떤 범죄 조직과의 깊은 관계가 의심되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정도를 간략히 브리핑했다.

“재밌네요. 뉴스에서 그렇게 봤는데……. 이렇게나 우리와 밀접했다는 사실을 제가 지금에야 알고 말이죠.”

“죄,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 범죄 조직은 뭔데요? 이 학생이랑은 대체 무슨 관계이고? 브리핑이 뭐 그렇게 두루뭉술하지?”

“아직, 조사 중입니다.”

“똑바로 말해요. 조사 중이야, 아니면 조사를 준비하는 중이야?”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다면 준비만 영원히 했을 테고? 쯧. 당신도 참 뻔한 사람이네.”

“…….”

장진욱이 깍지 낀 두 손 위에 턱을 괴며 말했다.

“이 학생 조사해 보세요. 이 범죄 조직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얘가 누구고 그룹에 끼칠 위험은 없는지 확실히 하란 말입니다. 내가 우리 그룹에서 일어나는 일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아셨어요?”

“예! 확실히 인지했습니다!”

“그래요. 알았으면 나가 봐요.”

“저, 부회장님. 그럼 회장님께 보고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 순간 장진욱 부회장을 감도는 공기가 달라졌다.

차갑다.

원래도 차가웠지만, 아깐 예리한 날붙이의 차가움이었다면 이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차가웠다.

숨 쉬는 일조차 넌덜머리 난다는 표정이었다.

“……놔두세요. 보고할 필요가 생기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버님한테는.”

“예, 알겠습니다.”

황혁수가 안심하고 방을 나설 수 있던 이유는, 부회장이 회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었다.

두 부자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그 내막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이한열……이라.”

장진욱의 시선은 아까부터 보고서 하단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여 초상화를 받았으며 장건철 회장께선 크게 만족……]

그러다 한참 뒤에 쯧-하고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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