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87화 (87/164)

<재능이 자꾸 늘어 87화>

11. 반격 - 6

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

우에스기 겐신의 것으로 감정된 고대 오오요로이.

값을 매기기 힘든 두 보물의 값을 친히 매겨 주러 일본에서 날아온 호ㄱ…… 아니 컬렉터들이었다.

“신기한 일이네. 일본까지 소문이 퍼진 걸까?”

“그럴 법한 아이템들이긴 하죠. 야스사다처럼 있다가 사라진 것들은 특히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법이니까요. 충분히 퍼져 나갈 만합니다.”

“그러게. 발굴된 지 세 달 됐나? 출처 불명의 역사가 만들어지기 충분한 시간이네.”

“아무렴요.”

실제로 지금 일본에서는 ‘조센징들이 야스사다를 약탈해서 숨겨 두고 있었다.’는 식의 괴담이 학계의 만장일치를 얻은 정설로 둔갑해 재생산되고 있었다.

팩트는 일본 밀수꾼들이 빼돌려 중국에 팔아먹으려다 인천에서 분실했고 그 후 여차저차해서 이완용에게 넘어갔다는 것이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진짜 경위가 아니라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현 상황이다.

지금 일본 정부는 꽤 난감할 것이다.

만약 경매에 출품된 걸 눈 뜨고 놓쳐 버린다면 비난 여론이 어디로 향하겠는가.

“일본 정부 차원에서 통제를 안 했던 걸까?”

“글쎄요. 시도는 했을 테지만, 이런 사실은 감추기 힘드니까요.”

사실이겠지만, 솔직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일본 정부는 내 생각보다 유능했다.

언론 통제는 수월했고 실제로 발굴 두 달이 넘어가기까지 일본 메이저 신문사들은 침묵을 지켰다.

감추기 힘들지만 그들은 감춰 냈다.

변수만 없었다면 열도는 평안했을 테지.

내가 흥미롭지만 이력서에 쓰기엔 곤란한 전직을 거쳤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불행이었다.

난 말단 조직원에 불과했지만, 그랬기에 말단만이 기억할 법한 자질구레한 정보들에 밝았다.

각국의 주요 장물아비 연락처도 그중 하나다.

나는 그중 일본을 주요 근거지로 둔 자들에게 고의로 정보를 흘렸다.

그들은 내 기대대로 정보를 일본 내 컬렉터들에게 팔아 치웠다.

일본 정부가 엄중히 단속한 엠바고는 어둠의 경로로, 증권가 찌라시로 퍼지다가, 마침내 인터넷까지 옮아가 불처럼 번져 나갔다.

일본 정부는 이제 관심 없는 척 날로 먹을 수 없게 됐다.

그 방증으로, 홀 안은 언어를 칼로 삼은 사무라이들의 결투장 같았다.

비장하게 시끄럽다.

무조건 낙찰은 받아야 하니, 낙찰가를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사전 교섭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번 경매에서 빠지면 일본 외무성에서 자네 회사 공장 부지 문제를 해결해…….”

“우리끼리 경쟁하면 조센징들 배만 불려 주는 꼴이 아니고 뭔가! 결단을 하게!”

“우리랑 연합하지. 현금왕인 자네만 날 밀어준다면 낙찰은 거의 확실시…….”

대충 그런 말들.

아, 일본어 아니냐고? 당연히 일본어다.

그리고 내겐 Rank A급의 언어능력이 있었고, 원어민 수준으로 등극하는 데 한 달이면 차고 넘쳤다.

어쨌든.

‘이 자리에서 용을 써 봐야 완전한 합의는 불가능할 테지.’

양지의 부호들이야 정부의 조율 하에 서로 입을 맞추는 게 가능하겠지만, 대리인들만 은밀히 보냈을 음지의 검은손들까지 포섭할 수는 없을 테니까.

몇몇은 더 큰 시장에 되팔 생각을 할 테고, 몇몇은 정말 순수하게 컬렉터의 마음가짐으로 경매에 참가할 것이다.

이 다이나믹한 경쟁 상황은 일본 정부의 속을 태우고 내 통장을 채워 주겠지.

성대한 거품 잔치가 예상됐다.

“어쨌든 오늘 기대되네. 뭔가 익사이팅 할 거 같아. 어서 들어가 보자, 한열아.”

“넵.”

동감이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꽤 익사이팅 할 것이다. 하지만 오 여사님, 아마 그건 당신 기대와는 많이 다를 겁니다.

난 미소를 삼키며 경매장에 입장했다.

*   *   *

“……따라서 이 그림은 김채덕 선생의 유작이자 미완성작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미완성이 역설적으로 주제의 완성도를 더하면서 ‘미완의 완벽’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김채덕 선생의 ‘절벽’의 시작가는 5천만 원…….”

훌륭한 그림이다.

이해를 넘어선 직관이 그렇게 말했다.

왜인지 당장은 몰라도 좋은 건 알겠다.

시간이 충분히 있다면 왜인지도 밝혀 낼 수 있다. 왜인지 안다면 그 이상을 그려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약 나라면 다르게 접근해서…….

……따위의 감상들이 내 의지와는 별개로 머릿속에서 툭툭 터졌다.

Rank C 이상의 재능들은 너무 거대해서 가끔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춘 듯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수리적 통찰] 덕에 지나가다 구름을 보고 무심코 프랙탈 구조를 연상한다든가.

[침술] 탓에 바느질하는데 어느새 바늘을 침처럼 역으로 잡고 있다든가…….

어쨌든.

[장민욱의 미학]이라는 기막힌 발 받침대는 내 안목을 단숨에 거장의 눈높이까지 끌어올렸다.

작품 앞에서 거장은 수다쟁이가 돼서 내 의식을 예술의 언어로 가득 채웠다.

하나의 발상이 증식하고, 다른 발상과 엮이고, 터지거나 봉합되면서, 시냅스에 기이한 궤적을 그려 냈다.

날 가로지르는 영감.

그리고 천재의 영감은 미학적 지식을 뛰어넘어 작품의 가치를 통찰했다.

“……‘절벽’은 일억 삼천 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김채덕 선생의 ‘절벽’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저 사람, 가치보다 싸게 샀네요. 장담컨대, 십 년 뒤에는 저 가격의 열 배는 호가할걸요.”

“한열이 전문가 다 됐네.”

“뭐, 초보자의 사소한 궁예질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1부 경매 중에 나도 몇 개의 작품을 구매했다.

이시영의 <백야>를 1,500만 원에. 장만수의 <봄의 색>을 1,000만 원에. 라흐마니노프의 습작노트를 5,800만 원에 구매했다.

<백야>는 솔직히 동하진 않지만, 미래에 수십억 가치까지 뛴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요컨대 재테크용이었다.

반면 <봄의 색>은 그냥 안목이 시키는 대로 구매해 버린 케이스였다.

장막이 벗겨진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연한 수채화, 가녀린 색감, 그러나 생동하는 붓의 흐름과 패턴을 보고 있자면 세상이 통째로 빨려 들어간 기분이었지.

‘저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대번에 들었다. 작가가 터무니없이 저평가 받고 있다는 사실도.

미래에 가격이 오르든 말든 이건 안 팔 거다.

마지막으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노트.

가장 비싸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하는 쇼핑이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을 발표하지만 평단의 혹평을 받고 오랫동안 슬럼프에 시달렸습니다. 이 책자는 그 시절 그가 끼고 다니던 작곡 노트들입니다. 그의 좌절과 방황, 망설임, 그리고 마침내 극복하는 과정이 음표와 사변적인 메모로 남아있지요. 재기의 계기가 된 <피아노 협주곡 2번>의 프로토타입도 수록되어 있어서, 음악사적으로도 무척 가치가 있는…….

물론 음악사적 가치보다 거기에 깃든 청색 카르마 하나가 내겐 더 귀했다.

난 기꺼이 오천만 원을 지불하기로 했다.

‘……뭐, 오늘 최대 1억 원까지는 쓰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이 정도면 합리적인 소비지.’

그 뒤로 별 관심 없는 몇 개의 매물들이 오르내리고 경매 1부가 끝났다.

“2부는 1시간 뒤에 시작된다고 하네. 오늘 클라이맥스는 거기 다 몰린 거 같아. 네 것도 그때 올라가겠네. 어때? 떨려?”

“아뇨.”

“에이 떨리면서 쎈 척한다. 근데 쉬는 시간에 뭐하지. 잠깐 카페나 갔다가 올까?”

“감사한 제안이지만, 잠깐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응?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봐?”

“비슷하죠. 딱히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

복도를 나와 북적이는 사람을 뚫고 걸었다.

누굴 만나러 간다고 했지만, 엄밀히 말해 어딜 갈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이미 내 곁에 있었다.

“한열 군, 지금 어딜 가십니까?”

순간 그림자가 말을 걸어온 듯했다.

“휴게실 가는데요. 커피 한 잔 마시러.”

“커피가 목적이었다면 오 여사를 따라가도 됐을 텐데요. 만난다는 분은 누구십니까?”

“당신이요.”

그림자가 드디어 사람의 표정으로 침음했다.

어느새 내 옆을 나란히 걷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김대섭.

LS그룹 보안경호팀 대리 직급으로 이상용 과장의 직속 부하다. 그리고 지금은 밀착 경호라는 명목하에 내 껌딱지 내지는 방해물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키운 심복이죠. 이놈을 왜 붙여 드렸는지는 잘 아시리라 봅니다.

“음, 저도 당신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잘됐네요. 커피는 제가 사겠습니다.”

김 대리는 상쾌한 호남이었다.

행동에는 훈련된 절도가 배었는데 반대로 말투는 유유한 데서 묘한 긴장감이 어렸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이었다.

살아온 대로 몸가짐이 가다듬어지고 창자 밑의 생각까지 목구멍을 타고 숨김없이 드러났다.

나와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는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내려 내게 건넸다.

“왜 방식을 밀착 경호로 바꿨는지 들으셨습니까?”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대충 짐작은 합니다. 뭐랄까, 옆에서 감시하려고?”

“맞습니다. 당신은 너무 튀어요. 위험하고. 경호팀으로서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거 사생활 침해 아닙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합당한 비용 청구라고 표현하고 싶군요. 안전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당신처럼 특수한 상황이라면 더 비싼 값이 필요하죠. 돈, 시간, 자유를 지불하세요. 셋 중 돈은 안 내도 되니 더 수월하군요. 그것조차 못한다면 결국 누군가 추심에 들어갈 겁니다.”

“혹시 그 추심원이 저승사자고 목숨을 징수하는 겁니까?”

“잘 알아들어서 좋네요.”

“흠, 폭력적이군요.”

“의사가 메스로 살을 째는 걸 폭력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아프기야 하겠지만.”

“환자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째면 문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리분별도 못하는 환자라면 임의로 치료 활동에 나설 수 있지.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강력하거든.”

“거절합니다. 환자인지 아닌지도 구분 못 하는 돌팔이 의사는 내 쪽에서 사양이니까.”

“…….”

김 대리가 날 빤히 쳐다보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전술을 바꾸었다.

감정에 호소하는 쪽으로.

“우리 과장님, 불쌍하신 분입니다. 좀 봐주십쇼.”

“대충은 알아요. 하지만 저도 사정이란 게…….”

그때 한 남자가 한눈팔고 커피를 들고 가다가 날 정면으로 부딪혔다.

팍-!

커피가 중력을 거슬러 튀어 올라 내 재킷을 덮치기 직전, 김 대리가 신속히 달려들어 몸으로 막아 냈다.

그의 등짝에 거대한 대륙 하나가 솟아올랐다.

“어, 죄, 죄송합니다. 제가 딴 곳을 보다가 그만…….”

“……김 대리님 괜찮으세요?”

“전 괜찮습니다. 재킷이 두꺼워서.”

“저도 괜찮은 거 같네요. 아저씨, 저흰 괜찮으니까 가보세요. 저희끼리는 얘기할 게 남아서요.”

세탁비 내겠다, 괜찮다, 실랑이를 한참 벌이다가 남자를 떠나 보냈다.

“……어쩌다 보니 얘기의 맥이 끊겼군요.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부디 제 말을 유념해 주십시오. 당신 안전을 위해서라도.”

“고려는 해 볼게요.”

“아, 그리고 하실 말씀 있으시다는 건…….”

“급한 건 아니어서요. 일단은 옷부터 갈아입고 오세요. 나중에 말씀드리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 대리까지 떠나고, 휴게실에서 한 명, 두 명 사라지고, 혼자 남았을 즈음에 나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걸 유심히 관찰하다, 충분히 봤다 싶어 다시 집어넣고, 이번에는 가방을 열어 새로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건 그냥 편의점에서 산 피처폰이다.

난 그걸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안타깝게 됐네요. 당신 심복이란 사람도 아마 넘어간 거 같은데요.”

-…….

수화기는 묘한 화이트 노이즈만 뱉어 냈다. 이상용 과장은 자기 말들을 스스로 먹어치우는 것처럼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확인은 그쪽에서 해 보세요. 위치 추적 해 보면 빠르겠네요. 아마 지금쯤 경매장을 벗어나 신나게 어딘가로 가고 있을 텐데.”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난 의자에 앉아 피처폰을 무릎 위에 얌전히 올리고, 잠시간 방금 벌어진 일을 상기했다.

내게 커피를 쏟으려던 남자는 십중팔구 배우다.

물론 김 대리가 섭외한 배우.

그들은 합을 맞춘 액션 배우처럼, 서로 약속된 대로 커피를 쏟고 막고 정해 둔 시간만큼 뜸을 들이다 떠났다.

그 모든 건 내 시야를 현혹하기 위한 미스디렉션(misdirection).

내 주의를 이쪽에 돌린 동안, 뒤에 대기 타던 누군가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주머니 속 핸드폰을 바꿔치기 했다.

지금 이렇게 말한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제지하지 않았다는 뜻.

이 과장을 확실히 설득시키기 위해서 난 그들이 알아서 날뛰도록 방치했다.

잠시 후 이 과장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당신 말이, 맞군요. 위치 추적 결과, 당신은 지금 경매장을 벗어나 고속 도로를 타고 있는 상태로 뜨는군요.

“물론 전 아직 경매장입니다. 소매치기범들이 참 부지런해요. 그쵸?”

-대체 이게…….

“제 핸드폰을 좀 개조해서 다시 돌려주겠죠. 원격 조작과 조회를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도록. 그래야 증거를 만들어 내기 쉬울 테니까.”

-…….

내가 잠시 유보시켜 두었던 유물 경매를 재개하자마자, 내게 김 대리가 붙었다.

그러겠지.

내가 발굴한 유물을 훔친 장물로 위조하고, 그 스토리를 잘 엮어 날 조폭 조직의 하수인으로 만들려면 경매 전후를 노려서 증거 조작을 해야 한다.

위의 정황과 내 촉을 종합해 판단컨대, 김 대리는 황 팀장이 비밀리에 회유한 히든 카드임이 분명했다.

“포렌식(Forensics)으로 조사했을 때 발견되도록 교묘하게 조작할 생각일 겁니다. 전화 기록이나 문자 기록 등을 남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그럼 핸드폰이 제 손에 다시 돌아왔을 즈음엔 전 이미 범죄자가 되어 있겠죠.”

-……그렇게 두지 않을 겁니다. 제가 오늘이라도 당장 김 대리를…….

“아뇨, 놔두세요. 저한테 생각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음, 이건 딱히 중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 과장님의 정신 건강을 위해 덧붙이는 말인데요.”

-…….

“제가 표정이나 어조로 심정 같은 걸 잘 읽어 내거든요. 제 판단에 따르면, 김 대리는 이 일을 하면서 죄책감에 버거워하고 있습니다. 아마 황 팀장에게 약점이 잡혔다거나, 아니라도 말 못 할 어떤 사정이 있는 거겠죠. 마음까지 넘어간 건 아니란 겁니다. 뭐, 저한텐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지만, 과장님한테는 아니겠죠?”

-……감사합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했습니다.

“예, 그럼 어쩌시겠어요?”

모든 걸 잃은 남자가 마지막 자리만은 보전하려 고개를 낮추고 있었다.

근데 상대방이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으리란 게 확실해졌거니와, 더욱이 자신이 아끼는 부하들까지 건드리고 있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인다던데, 하물며 그는 상처 입었더라도 한때는 용이었던 남자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 없다.

-네 말에 따르도록 하지. 시발. 어차피 절벽 앞인데 풀악셀은 지져 보고 뒈져야 싸나이 아니겠어?

그의 말투가 험악하게 바뀌었다.

물론 기껍기 그지없는 변화였다.

이로써 LS그룹 보안경호팀을 장악하기 위한 첫발이자 가장 큰 고비가 극복됐다.

-그럼 또 연락해라. 나도 나대로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그러죠.”

전화는 그렇게 끊겼지만, 아직 내 일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사실 김 대리를 순순히 돌려보낸 데에는 경호원 따위가 있으면 지금부터 할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도 있었다.

“……자, 그럼 이 경매장을 무너뜨려 볼까. 우선 주춧돌부터…….”

난 움직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