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90화 (90/164)

<재능이 자꾸 늘어 90화>

11. 반격 - 9

*   *   *

주소도 없는 깊은 숲이었다.

길이라기엔 지나치게 터프한 굴곡들이 타이어를 밀어내거나 떨어뜨리며 놀이기구에 가까운 승차감을 선사했다.

준비한 차가 오프로드 대용인 이유.

그리고 내가 운전자를 재우지 않고 대리운전을 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나 혼자서는 이 자갈과 바위 속에서 길을 찾아내지도, 그 위에서 곡예에 가까운 운전을 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찌걱찌걱. 자동차 프레임이 힘겨워하는 소리.

우거진 숲 아래, 차창 위는 햇살이 쏟아 낸 소박한 얼룩으로 반짝였다.

“여기가 길 맞아?”

“……맞다니까. 아니 사람을 그리 못 믿나?”

“나 엿 먹이려고 산봉우리까지 직진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그리고 넌 사람이 아니라 조폭이잖아.”

“조폭은 사람 아닌가?! 시벌 못 해먹겠네! 꼬우면 그냥 니가 운전하시든가! 아 그냥 찔러! 그깟 주사 맞고 기절하고 말지!”

“첫 번째, 조폭은 사람 아냐. 배신을 밥 먹듯 한다는 점에서 강아지 이하이기도 하지. 수준으로 따지면 괴팍한 물벼룩쯤 될까. 두 번째, 내 나름의 배려를 그렇게 폄하하면 섭섭하지.”

주사기에 겨누어진 상황이 불만족스러운듯하여 다른 대체재를 찾아드렸다.

누가 조폭 차 아니랄까 봐 근처에 괜찮은 후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실한 사시미를 골라잡아 운전자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있나. 고용주로서 응당 고용인의 니즈를 반영해 드려야지. 이걸로 바꿔 드릴게. 실수로 당신 목에 빨간 그림을 그리게 되어도 불평하진 마세요.”

“그게 무슨 궤변…….”

“아이쿠, 차가 막 흔들리네. 손이 막…….”

“제가 소싯적부터 주사기 성애자로서 이름이 높았습니다, 형님. 부디 헤아려 주시지요.”

“그래요? 그런 건 진작 말씀하셔야지.”

컴플레인 하나에 귀를 다 기울이고, 내가 이렇게 양심적이다.

어쨌든 이 기묘한 고용 관계에도 끝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 험로들이 점점 얌전해지더니 이윽고 평탄해졌다. 난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이봐, 여기서 멈춰 봐.”

“……아 왜 또 다 와서…….”

“사시미 말고 톱도 있던데.”

“정차하겠습니다. 사장님.”

엔진 진동음을 들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과연 시간에 맞을까.’

이미 변경된 거래 장소의 GPS 정보는 경찰에게 통보해 두었다.

다만 경찰 병력이 여기에 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난 30분 전의 김한용 경사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더 이상 내가 해 줄 건 없어. 빌어먹을. 너 때문에 다 망했어. 난 다 망했다고!!

떨리는 숨소리를 듣고 있으니 상황이 짐작됐다.

“협박을 받았군요. 내가 해 드린 협박보다 엇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것을.”

-그래. 그러니까 뿌리든 말든 맘대로 해라. 어차피 이길재에게 찍힌 이상 난 끝장이야. 차라리 비리 경찰로 감옥에 들어가는 편이 낫지. 이길재 이 새끼의 뒤끝은…… 그 이상일 테니 말이야.

“시야가 좁아졌군. 비리 경찰.”

-……뭐야?

“왜. 안 걸리고 잘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어? 우리 둘 모두에게 협박을 받은 순간부터 당신은 호랑이 등에 탄 셈이야. 우유부단하게 굴다간 이대로 호혈로 직행이지. 둘 중 하나를 찍어 뭉개야 살아남을 수 있어. 근데 내 감은 당신이 ‘아무것도 안 한다’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네.”

-…….

“도망치지 마. 선택해. 당신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만, 그래도 당신 가족들까지 휘말리게 할 순 없잖나.”

-네놈을 선택하라는 건가?

“당연하지. 어차피 당신한텐 다른 선택지가 없어. 왜냐고? 당신도 이길재도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 이건 꽤 크지.”

-널 도와 이길재를 처넣어도 내가 파멸한다는 사실을 똑같을 텐데. 이길재는 배신자를 살려 두는 취미가 없다.

“아마추어 같은 소리 하지 마. 비리 경찰이라면 비리 경찰답게 살아남으라고.”

-뭐?

“이길재 빨대가 당신만 있는 줄 알아? 내가 알기론 고위층에도 꽤 있다. 그리고 당신에게 그랬듯, 그들의 약점을 어떻게든 남겨 뒀을 거다. 이길재를 처넣고 그 사이에 관련된 증거들을 찾아내. 그리고…….”

-그들에게 선물로 넘겨라……. 이거군. 과연 내 자리를 보전하고 이길재를 확실히 매장시키려면 그게 최선이겠어…….

“역시 비리로 흥한 사람답네. 이런 점에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

숨겨 뭐 할까.

이 비리 경찰이 두 번째 협박 폭격에 멘탈 터져 있을 상황도 상정하에 있었다.

그래도 한때 오야로 모셨던 사람이다. 이길재의 습성 따위는 꿰고 있단 말이지.

“그럼 당신이 이제 어째야 할지 알겠지?”

-이젠 숨길 것 없이 내가 직접 움직일 수 있겠군. 내 손으로 이길재를 직접 친다. 시간 싸움이 되겠어.

“그래.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게 관건이겠지. 좋아. 양동으로 가자고.”

-양동?

“서장에게만 은밀히 말해. 정보가 샜고, 거래 장소가 바뀌었다고. 추가 병력을 얻어 내고 직접 이곳을 덮쳐. 가능하겠지?”

-가능은 하겠지만……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그리고 한 번 더 정보가 새지 않으리란 보장이…….

“이길재는 감이 무서울 정도로 좋은 놈이지만, 한 번 밟고 지나간 땅은 되돌아보지 않는 버릇도 있지. 당신 쪽은 이제 신경 안 쓸 거야. 내가 왜 이 얘길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 거 같나?”

-……설마, 이길재가 눈치챌 수도 있으니까?

“그래. 놈도 나와 비슷한 부류거든. 당신의 반응을 읽고 완벽히 굴복했다고 판단했을 거야. 그리고 판단을 완전히 믿어 버리겠지. 자기 감이 틀린 적이 없을 테니까. 우리는 그 허를 찌른다.”

재능 있는 자들의 맹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축적된 성공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기 확신.

그들은 그 강력한 추진력으로 또 다른 성공으로 도약하기도 하지만, 그 노도와 같은 관성을 타고 더 깊은 실패의 수렁으로 처박히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렁 맛집을 소개해 드리지, 이길재. 영원히 거기 처박혀 있을 수 있게끔.

다시 현재.

생각이 막 끝날 찰나 오 여사님에게 타이밍 좋게 전화가 왔다.

-얘! 경매 이제 막 시작한다는데 대체 어딜 가서 안 오는 거니?!

“오 여사님. 2부에 판매되는 미술품 중에 <오후의 숨결>은 사 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나머지는 그럭저럭입니다.”

-얘는 갑자기 무슨 딴소리야? 그래서 언제 오는데?

“경매 끝날 때쯤에는 돌아가겠네요. 저녁에는 비싸고 맛있는 거 먹죠. 제가 살게요. 오늘 경매는 꽤 성공적일 예정이거든요.”

통화를 끊고, 폰을 모조리 무음으로 돌린 후, 나는 쥐고 있던 주사기를 운전기사에게 더 깊이 들이댔다.

“이제 출발해.”

*   *   *

“물건은 언제쯤 도착하나?”

“기다려 보쇼. 시간 되면 어련히 안 올까.”

“한국인들은 시간에 철저하다더니. 깡패들은 거기서 예외인 건가. 신기한 습성이로군.”

“뭐여? 뭔 지들은 깡패 아닌 척하고 있어.”

“하기야 너희들이 근면한 건 열등한 피를 어떻게든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데서 발생한 민족 특성일 뿐이지. 너희는 거기서도 더 저열해진 것이니…… 뭐, 이해 못 할 일은 또 아니로군.”

“미친 새끼가 뒷담화를 할 거면 일본말로 씨부리든가. 굳이 한국말로 하는 건 싸우자는 거지?”

“야쿠자는 뒤에 숨지 않는다. 뒤에서 하는 욕은 치졸한 법이지.”

“이 새끼는 뭔 병신 같은 말을 하면서 폼을 잡고 있어?”

김득칠은 이 대치가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접선 장소와 시간이 바뀐 건 이쪽 과실이었으므로, 일본 놈들이 다소 건방지게 떠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특히나 이 카토라는 말상의 야쿠자는 쓸데없이 한국말을 잘했다.

‘……설마 이러다 파투 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전쟁 날 분위기인데. 시벌. 이 판국인데 길재 형님 새끼는 그림자도 안 보이네. 아오. 개새끼 진짜.’

야마구치구미의 무장한 야쿠자 50명.

일본의 고위 관료를 통해 이길재가 그들을 끌어들인 건 사실이다.

만약 오늘 거래가 성사된다면 그들의 관계는 보다 끈끈해지겠지. 그러나 아직까진 껍데기만 그럴 뿐이다.

누군가는 이 협의를 ‘반도 정벌’로 해석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조직이 정치권에 더 깊게 예속된 징후로 해석했다.

고대 유물로 본토가 떠들썩한 건 안다. 정치인들이 지금 상황을 무척 부담스러워한다는 점도.

하지만 그게 극도의 아들들이 나서야 할 일인가? 여론에 휩쓸리면 그게 야쿠자인가? 우리는 정치권의 더러운 칼일 뿐인가? 케케묵은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이유로, 젊은 조직원 사이로 탐탁찮아 하는 여론이 꽤 있었다.

그것이 오늘 동부파의 실수와 맞물려 실로 위태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던 것이다.

수틀리면 꼬투리 잡아 판을 깰 생각도 가득이겠지.

그런 조마조마한 시간 끝에.

밴 한 대가 진입로를 비틀비틀 통과해 공터에 진입했다.

“……왔다!”

차는 공터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더니, 무성한 숲을 옆구리에 끼고 끼익 멈춰 섰다.

동부파의 조직원들이 다급히 다가갔다.

“……이게 뭐야.”

문은 쉽게 열렸지만 기대하던 반응은 없었다.

아니, 반응 자체가 없었다.

완벽한 수면 분위기 속에서 차 안의 모두가 잠들어 있었다. 예외는 없었다. 심지어 운전자조차도 핸들에 얼굴을 처박고 숙면에 돌입했다. 대체 어떻게 운전해서 정차시켰는지부터가 불명이다.

그 순간 김득칠의 뇌리에 이길재의 당부가 스치고 지나갔다.

-밴에 쥐새끼 한 놈 잡아 놨다더라. 그놈 신상 파악해서 나한테 보고해.

잡혀 있다는 쥐새끼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불안감이 불쑥 치솟았다.

“뭔가 잘못됐어.”

“그래서, 물건은?”

야마구치구미의 카토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와서 물었다.

“……물건이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뭔가 잘못됐다고……!”

“그건 우리 사정이 아니다. 우린 물건만 넘겨 받으면 돼. 혹시 물건까지 분실된 건 아니겠지?”

“성급히 굴지 마! 일이 잘못되면……!”

“잘못되면 다 니네들 탓이지. 아닌가? 유물을 안전히 이송해 오는 것까지가 너희 책임이었어. 왜 책임을 떠넘기려는지 모르겠군. 그래서 유물은? 도난당했나? 너희의 무능을 우리가 어디까지 감당해 줘야 하는지 분명히 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김득칠의 불안과는 별개로 일은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조직원들이 유물을 꺼내 와서 공터에 풀어 놓았고, 일본 정부에서 보내온 감정사가 달라붙어 실물 여부를 감정했다.

몇 번의 검증을 마친 물건들이므로 2차 감정도 빠르게 진행됐다.

“……다행히 물건은 제대로 배달된 거 같군.”

“…….”

“빨리 끝내도록 하지. 한국의 공기는 너무 탁해. 돌아가서 쉬어야겠어.”

일본 정부에서 파견된 관료가 브리프케이스를 열어 안을 보여 준다. 수백 페이지의 문서들이 그 안에 빼곡했다.

“당신들이 요청한 사업장 등기. 그리고 면세품 사업에 관한 허가서들이오. 몇몇 편의 사항들은 서류로 남길 수 없으니 감안하시고. 하지만 장관께서 두말하시는 분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을 거요. 나머진 야마구치구미와 알아서 협의하시오.”

모든 게 순조롭게 착착 맞아 들어갔다.

문제는 없다.

쥐새끼 한 마리가 도망쳤지만 달리 말하면 단지 한 마리일 뿐이다.

여기 백여 명의 깡패들이 즐비한데 겨우 그 한 마리가 뭘 어쩌겠는가?

김득칠은 자신의 초조함을 그런 논리로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게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사실은 단 5분 만에 증명됐다.

*   *   *

공터를 왼쪽에 끼고 반대로 우측엔 수풀이 우거진 숲을 둔 채 정차했다.

정차를 마친 운전자를 재우고, 바로 사이드 도어를 통해 신속히 내리니 놈들은 날 발견하지 못했다.

난 신속히 근처 덤불에 숨었다.

그리고 기록했다.

캠을 꺼내서 공터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찍었다. 유물 박스 밑에 심은 도청장치는 한숨에서부터 농담까지 빠짐없이 녹음했다. 협잡의 모든 정황이 내 디스크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나 문제는-.

‘흠. 이러다간 경찰이 오기 전에 해산하겠는데. 물론 수집한 자료만으로 꽤 타격이 될 테지만……. 아무래도 현장 체포만큼의 임팩트는 없겠지. 어쩔 수 없이 내가 시간을 벌어야 한다…….’

나는 덤불을 헤치고 일어나 공터를 향해 걸어갔다.

100여 명의 무장한 조폭들.

반면 나는 고작 몇 달 운동했을 뿐인 고딩.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상대는커녕 방해 거리도 못 되겠지. 10초 안에 인간에서 피떡으로 격하되어 버릴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난 당당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내 자신감을 설명하려면.

Rank C급 [어느 투석꾼의 투석]이란 자색 탤런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이 탤런트의 주인은 임진왜란 때 누이를 잃고 열도 땅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니던 투사였다.

그리고 누이를 납치한 다이묘의 대대급 병력과 홀로 맞닥뜨려

모조리 섬멸했다.

그가 동원한 무장이라곤 오로지 천지에 널린 돌멩이 뿐이었다.

“何あれ?”

“……저 새끼는 또 뭐야?”

공교롭다면 공교롭겠지.

이곳은 깊은 숲이며.

눈앞에는 일본도보다 좀 짧은 칼로 무장한 짝퉁 사무라이들이 즐비했고.

그리고 주변에는 쥐고 던질 짱돌로 가득했다.

그러므로 오늘 이곳이, 1603년 오우미의 어느 산속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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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석 기술 총론 고급> 5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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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p였던 황색카르마가 단숨에 1,430p까지 추락하고, 지잉, 시야가 흑백으로 반전되며 시간이 고밀도로 농축됐다.

“저놈이야! 저 쥐새끼 잡아 와!”

“捕まえ!!”

“あいつを殺す!!”

논리적인 판단 이전의, 신경과 근육 단계에서 내려지는 본능이, 내 악력을 돋우고 전완근을 조이고 삼각근을 당기며, 내 몸을 하나의 완벽한 발사대로 전환시켰다.

두 눈은 냉철하고 신속하게 저쪽과 이쪽을 잇는 사로를 그린다.

남은 건 응축된 힘을 알맞게 풀어헤치는 것뿐.

던진다.

던진 순간, 나는 그 짱돌이 한 야쿠자를 영원히 부정 교합으로 만들어 버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건 이미 확정된 미래다. 왜냐면 내 안의 [투석꾼]의 감각이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에.

그리고 0.8초 뒤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빡-!

오늘 있을 수십 번의 스트라이크 중 첫 번째가 터지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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