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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자꾸 늘어-101화 (101/164)

<재능이 자꾸 늘어 101화>

12. 새로운 시작 - 8

*   *   *

깡-!

야구공이 비명을 지르며 솟았다. 안타라면 안타겠지만, 내 눈에 저 야구공은 대충대충 날아가는 듯 보였다.

의지박약의 비행. 허약한 추락. 외야수의 글러브에 간단히 포박 당함으로써 그 짧은 여행이 끝을 맺는다.

타자도 털레털레 벤치로 돌아간다.

얻어맞은 야구공조차 하품을 할 법한 광경이었다.

우리 야구부의 단면을 극으로 써서 무대에 올리면 정극보다는 꽁트에 가까울 테지만, 그럼에도 아드레날린 범벅에다 의기만만인 점만은 장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유일한 장점이겠지.

그런데 오늘은 그런 열기조차 다소 미지근했다.

“뭔 일 있나?”

“또 싸웠다나 봐. 냉전기야 냉전기. 쟤들 때문에 요새 분위기 살벌하다니까. 야, 이것 좀 들어 봐 봐.”

배윤하가 비품을 내게 토스하며 말했다.

싸움의 주체가 누구들인지는 뻔했다.

“흠.”

“저 형제들은 뭐가 또 불만인지 모르겠네. 서로 그렇게 꼴 보기 싫어하면서도 굳이 쫓아다니면서 으르렁거리는 건 뭔 심리지?”

“뭐, 싸움도 애정이 없으면 못한다는 거겠지.”

“요새는 더 그러는 거 같아. 옛날에는 그래도 데면데면하더니.”

양동명은 동생과 화해하고 싶다 어쩌더니 막상 맞붙으면 또 개처럼 싸워 댔다.

과연 저게 형제인가. 저들에겐 서로를 아끼는 심리와 저놈에게 쌍욕을 박겠다는 의지가 쉽사리 공존하는 듯했다.

“으앗, 또 시작했네.”

양해명이 씩씩거리며 마운드까지 걸어가더니 양동명의 멱살을 쥐는 것이었다.

고함이 쩌렁쩌렁한 가운데, 부원들이 달려들어 둘을 때어 냈다.

부모 안부를 묻는 욕설 빼고는-그랬다간 본인에게도 딜이 들어오므로- 죄다 등장해서 서로를 할퀴었다.

“아우 저러다 쟤들 큰일 나겠다. 야야. 가서 좀 말려 봐.”

“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쟤들 싸울 때마다 울고불고 하지 않았냐.”

“너무 자주 싸우잖아! 이젠 나도 몰라! 싸우든지 말든지!”

그러나 배윤하의 두 다리는 완벽한 언행불일치를 보이며 재게 움직였다.

부원들이 이미 둘을 그라운드 양 극단까지 찢어 놓았기에, 그녀는 잠시 머뭇하다 양동명에게로 발길을 틀었다.

마침 잘됐군. 안 그래도 그 반대쪽에 용무가 있던 참이었다.

난 포수 헬멧을 집어 던지고 있는 양해명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그러면서 얼마 전 배윤하가 건넨 정보를 떠올린다.

-야구선수 양진수. 그 배우자가 동양 미술계의 거장 백남훈의 딸 백진주였어. 백진주 본인도 꽤 이름 있는 예술인이고.

-양진수 선수가 동명이를, 백진주 씨는 해명이를 데려가서 각자 키웠지 아마? 내가 알기론 그래.

그러니까 대회 출품에 앞서 추천사를 받으려면 양해명 쪽으로 접근하는 게 옳다. 재료도 낙낙히 준비해 뒀다.

‘공교롭게도 양해명의 양동명의 바람은 일치하지.’

무능한 선발 투수를 제끼고 내가 직접 공을 던지는 것.

위선이든 자포자기든, 양동명이 제 입으로 직접 부탁해 온 일이었다.

거리낄 것은 없었다. 남은 건 없는 의욕을 창자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리는 것뿐.

어차피 한동안 어울려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어떤 식으로든 결판이 날 테니까.

그때 가서 그만둬도 되고, 변덕을 좀 더 부려 야구에 취미를 붙여도 나쁠 건 없겠지.

‘요컨대 귀찮음과 추천서를 맞바꾼다. 선발 투수, 까짓것 한 번 해 주지 뭐.’

그런 요행을 꿈꾸며 양해명에게 다가간다.

녀석은 벤치에 앉아 성난 숨결을 가다듬고 있었다.

“젠장. 뭐야! 그 얼빠진 공은 뭐냔 말이야! 그딴 공을 던질 거면 내가 대체 왜…….”

“진정해, 인마.”

“한열이네. 너 마침 잘 왔다! 제발 저 돼먹잖은 피칭 좀 어떻게 해 봐! 던져지는 공이 불쌍해질 지경이라고.”

“머리에 열도 좀 빼고. 뇌 익겠다, 야.”

냉장고에서 막 꺼내온 생수를 휙 던져 주었다.

해명은 포수다운 손놀림으로 병을 잡아채더니 목구멍에 아무렇게나 물을 쑤셔 넣었다.

사레들리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난폭한 음용이었다.

“……후. 고마워.”

그러나 사태는 그다지 진정되지 않았다.

뜨거운 철판에 뿌려진 물은 증발하며 시야를 어지럽힌다.

생수를 몸속에 끼얹은 양해명의 상태도 꼭 그러했다. 분기로 들끓던 목소리는 차분해진 대신 두서를 잃고 뿌옇게 흩어졌다.

“이제 전국체전이라고. 근데 저건 안 돼. 저따위론 안 된다고. 공을 잘 받으려면 잘 던져져야 하지. 저따위 공으로는 내 능력을 입증할 수 없어. 경기는 져도 돼. 하지만 잘 져야 돼. 아버지가 날 다시 보게 하려면…….”

목소리가 휘청거렸다. 난 거기서 또렷한 초조함을 읽어 냈다.

‘그랬던 건가. 이놈은 또 이놈 나름대로 인정받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거네.’

포수만큼 자기 역량을 입증하기 힘든 포지션도 없다.

타자는 잘 치면 되고 투수는 삼진을 잡으면 되지만, 포수의 활약은 그런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제아무리 경기를 잘 읽고 상황 판단이 빨라도 일선에 선 투수가 따라 주지 않으면 똑같이 무능하게 보일 뿐이다.

오는 전국체전에서, 어떻게든 자기 능력을 시위하여 존재감을 보이고 싶은 그의 입장에선, 양동명 정도의 투수는 역량 미달로만 보였겠지.

그것이 요새 저 둘의 충돌이 유독 더 잦아진 이유일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메시아가 등판해야…….

“무능한 새끼.”

“…….”

“한심한 놈. 재능이 없으면 일찌감치 그만두고 처박혀 있었어야지. 대체 왜 기어 나와서 민폐를 끼치고 지랄이야. 주제를 알라고. 왜 그걸 모르는 건데.”

“……야.”

“결국 고교야구를 그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 거잖아. 한가하게 자기 욕심이나 채울 곳이 아니라고 여긴.”

그러니까 내가 대신 공을 던지겠다.

그 대신 너는 네 어머님을 좀 소개시켜 주면 된다.

저 몇 마디 말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텐데-.

“안 되면 인정할 줄도 알아야지. 시발 그건 또 자존심 상했나 보지? 저 새끼의 그 같잖은 이기심으로 몇 명이 피 보는 거야. 대체.”

그런데 도무지 입이

“공을 아예 못 만지게 해야 돼.”

아교로 꼼꼼히 틀어막은 듯이 꽉 막혀 움직이지 않았다.

“재능 없는 놈은 아예 처음부터-.”

“…….”

“가타카처럼 열성인자를 일찌감치 배제해야-.”

“야.”

간신히 두 입술을 찢어 떨어뜨리자,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그 틈새를 무섭게 치고 나왔다.

그러나 입 안에서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났는지, 그 말은 원래의 것과 상이한 것은 물론 내 이성과 계획으로부터도 완전히 이탈해 있었다.

난 차갑게 뇌까렸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뭐?”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솜털만 한 재능 하나 얹었다고 대단한 선각자나 된 듯이 굴지 마라. 해명아. 추하니까.”

좌중의 모두가 당혹감에 입을 다물었다.

이 ‘모두’에는 당연히 나도 포함된다.

주둥이의 돌발행위에 내 두뇌는 무정부주의적 혼란 속에서 초토화됐다.

그러나 이성이 사태 파악에 나서기도 전에 내 몸은 절로 발길을 돌려 자리를 뜨고 있었다.

어떤 생리적인 거부감으로부터 비롯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넌 재능이 없어. 넌 언제쯤. 포기해. 네 주제에 무슨. 안 되면 적당히 그만둘 줄도 알아야.

민폐야. 그만둬. 평생을 가도. 그냥 죽어 버리면 어떠냐? 무능은 죄이므로 죄인은 마땅히 벌을 받으라…….

내 전생을 쥐고 흔들던 말들이 그곳에 아지랑이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역겨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몸이 자동으로 반응해서 피해 버린 것도 납득할 만한 일이다.

저질러 버렸다.

돌발적이고 즉흥적이며 어리석은 짓이었다. 실로 그러했다.

그럼에도 하나도 아쉽지 않아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야, 양동명.”

그리고 그라운드 반대편, 양해명과 비슷한 포즈로 분을 삭이고 있는 동명의 앞에 섰다.

“네 제안, 미안하지만 안 받을 거다.”

“……응?”

“공 따윈 안 던질 거라고. 너네 형제 일은 너네가 알아서 해결해.”

“갑자기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 판국에 그런 말이냐.”

양동명이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물론 난 아랑곳 않고 콧김만 흥 날렸다.

“이 판국이니까 하는 말이지. 그리고 말이야, 너, 마운드 내주기 싫잖아.”

“…….”

“아니야?”

“그럼 뭐 해. 나도 안다고. 내 고집만 피울 때가 아니…….”

“대답이나 해. 그럼 내줘도 상관없어? 네 땀과 발바닥으로 다져온 마운드잖아. 야구엔 열정도 의욕도 하나 없는 나 따위가 함부로 밟아도 돼? 그래도 될 만큼 그 자리가 하찮아? 대답해 봐.”

그의 움푹 파인 눈, 그 안에 고여 있는 것은 분명 새까만 시간들일 것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한 과거의 퇴적물.

그러나 나는 분명 봤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튀어 오르는 작지만 활기찬 불티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

“그래!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떠밀리듯이 내려오는 건…… 너무 비참하잖아!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까지도 안 바래. 적어도 마지막만큼은 후련했으면 했어. 그게,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냐고…….”

“그럼 마지막 기회가 있다면 잡을 거야?”

“그런 건 당연하잖아. 말할 필요도 없어.”

“말 잘했다.”

난 씩 웃고는, 근처에 있던 야구공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투석]의 재능을 한껏 투입해 동명의 가슴에 쏘아 던졌다.

동명이 화들짝 놀라며 글러브를 들어 올린다. 글러브에 빨려 들어간 야구공이 팡-! 하고 상쾌한 기성을 내질렀다.

“뭐, 뭐, 뭐를…….”

“훈육해 주마. 뜯어고쳐 주지. 네 몸에 배인 잔재에서부터 정신머리까지. 싹 포맷시켜 애기 몸으로 만들어 버린 다음에 올바른 것들만 때려 박아 주겠어. 잘 따라오면 일류는 못 돼도 이류에 발 걸칠 수는 있을 거다. 어때?”

체육관에서 이준을 깨부수고 얻은 두 개의 탤런트 중 하나.

[트레이너 이종수의 안목](Rank C)

이종수는 이정철 관장의 부친으로, 그 스스로도 복서였고 은퇴한 뒤로는 줄곧 복싱 트레이너로서 후인을 양성했다.

그는 복서로서의 기량은 썩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 눈.

걷는 동작만으로 나쁜 버릇과 골격의 뒤틀림까지 순식간에 간파해 내는 악마적인 안목.

개인에 맞춰 최적의 훈련법을 찾아내는 뛰어난 통찰력.

불행히도 그에게 제자 운은 없었다. 모인 건 삼류 싸움꾼들뿐.

그러나 그는 그 쓰레기조차 훌륭하게 재활용하여 특A급의 스포츠맨으로 탈바꿈시켜 올림픽과 챔피언십을 휩쓸었다.

이정철은 순수 트레이너로서의 능력만큼은 부친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함을 시인한 바 있었다.

그런 [안목]으로 확언컨대,

양동명은 성장할 여지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어때? 그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 주면 되는데.”

양동명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   *   *

“근데 네가 동명이를 가르칠 수 있어?”

귀갓길.

배윤하가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기에 대충 말을 지어서 던져 주었다.

“코치님이 나 인정하신 거 기억 안 나냐. 나 투구 신동이야. 그러니까 내 개인 교습이면 걔도 내 절반은 하겠지. 내 절반이면 이 동네는 쌈 싸먹을 거고. 완벽하네.”

“수상한데…….”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

배윤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반대로 표정은 의미심장하게 느물느물해져 있었다.

“흐응. 흐으으응.”

“아 뭔데.”

“아니이. 그동안은 야구부 매니저 왜 하고 있나 싶었는데 말이야. 의욕도 애정도 없어 보이고. 근데 웬일로 팔을 걷어붙였나 싶어서.”

“글쎄다. 나도 너한테 바보 병이 옮았나 보지.”

“애들 반짝반짝하는 게, 괜히 돕고 싶어지지?”

과연 그런가 싶었다.

배윤하도 나도,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을 엄격히 구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명백히 후자에 무게를 싣는 자들이고. 그래서 우리와 정반대인 아이들에게 끌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골목길에서 어떤 사내가 불쑥 튀어나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배윤하를 뒤로 물리고 경계심을 곤두세운다. 남자는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더니,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아주 사무적인 눈빛이었다.

“이한열 군?”

“……그런데요? 누구시죠?”

“경찰이야. ‘일본 유물 절도 사건’ 참고인으로서 경찰서까지 좀 동행해 줘야겠는데.”

단순 참고인에게 이렇게 고압적으로 요청하는 경우가 있을까. 난 눈살을 찌푸리면서 한편으로는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

드디어 LS 보안경호팀장 황혁수가 움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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