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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자꾸 늘어-102화 (102/164)

<재능이 자꾸 늘어 102화>

12. 새로운 시작 - 9

*   *   *

“너 대체 뭔 짓을 저지른 거냐?”

차에 올라타자마자 형사가 대뜸 그런 말을 건넸다. 나는 픽 웃고 말았다.

“참고인이라면서요?”

“참고할 테니까 사발 좀 풀어 봐. 내가 안쓰러워서 그런다. 아저씨가 네 또래 조카가 있어요.”

“그럼 조카한테나 잘하세요. 비리 경찰 씨.”

“이 자식이 말끝마다 비리비리. 혓바닥에 비늘 얹겠다. 새꺄.”

김한용 경사가 투덜거리면서 담배를 빼어 물었다.

창문을 열었음에도 연기가 오래 머물렀다.

꼴초 형사의 파트너답게 낡은 중형차 스스로 연기를 머금어 맞담배라도 피는 듯했다. 그야말로 폐인의 향기가 감돌았다.

“아까 걘 뭐냐? 혹시 몰라서 모른 척했다만.”

“잘 하셨어요. 걘 아무 것도 모르거든요. 앞으로도 모르게 할 거고.”

“씨벌, 내숭인지 지랄인지…. 그래도 뭐, 마냥 괴물딱지는 아닌 거 같네. 친구도 있고.”

“빈말은 됐고.”

보면 알겠지만, 김한용 형사와 나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구축했다.

그도 나도 이길재가 완전히 몰락하기 전까진 두 다리 뻗고 못 잔다. 김한용은 특히 더 그렇다.

‘예상과 달리 이길재는 징그러울 정도로 끈질긴 놈이거든.’

내 제안대로, 김한용은 이길재가 모아둔 고위층의 약점을 캐내서 딜을 걸 계획이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장을 급습하고 부하들을 신나게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왔을걸.

이길재의 철저함은 나조차 질릴 정도다.

나도 나름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득칠을 잡아다 족쳐 봤지만, 이길재의 흔적은 뭐 추적할 수 없었다.

지금 김한용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더 급한 일들을 막고 대처하느라 형사 따위 ‘잔챙이’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거다.

달리 말해, 김한용의 목숨 줄은 이길재의 변덕이나 여유 따위에 달려있다.

백척간두의 상황.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기분.

그야말로 고삐리 손이라도 잡아야 할 처지였으니 잡았겠지.

우리의 한시적 동맹은 그렇게 체결됐다.

“일단 넌 이틀 동안 구치소에 처박히게 될 거다.”

“왜요?”

“참고인으로 동행을 요청했는데, 거부하고 도주하려다 경찰을 폭행하게 되거든. ‘그런 시나리오’다.”

“……이틀 뒤에는?”

“그 안에 구속영장이 나올 테지. 무슨 명목으로 붙들지는 나도 몰라. 내게 지시 내려온 건 여기까지거든.”

“흠.”

난 황혁수의 저급한 접근에 살짝 실망했다.

‘이렇게 노골적인 방법이라니. 아마추어같이.’

보안팀을 이끈다고 해서 뭔가 배후 조종을 하는 흑막 같은 느낌을 상상했는데 완전 기대이하다.

이건 그냥 LS그룹의 이름값을 빌려 경찰을 매수한 거 아닌가.

수 싸움의 측면에서 보자면 공격하겠다고 찌라시 뿌리고 안내 방송까지 돌린 다음에야 기습을 하는 격이었다.

각오가 어설프다. 방법은 조잡하다. 발상은 진부했다.

고로, 난 비웃음을 한껏 담아 픽 웃어 주었다.

“이한열을 잡아 가두고, 증거물 형식으로 핸드폰을 압수. 포렌식 수사로 핸드폰 내에서 대거 증거 발견. 대규모 스캔들을 잡아낸 경찰들은 대중의 박수를 받는다. 대충 그런 거래였겠네요.”

“정석적이지만, 아니, 정석적이라서 틈이 없지. 그럼 어쩔 거냐? 참고로 내가 더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

“이번 검거로 콧대 좀 높아지신 거 아니었어요?”

“광수대 발령에 특진까지 하게 됐지. 그럼 뭐해. 나 뒤 구린 거 알 만한 놈들은 다 알아. 그동안은 죄다 공평 무사하게 뒤가 구려서 조용히들 있던 거지. 근데 내가 출세한단 말이야?”

“견제를 받을 타이밍이다 이거네요. 그러니 지금은 나댈 때가 아니다?”

“뭐, 그렇지. 그래서 대놓고 도와줄 순 없다. 지금처럼 정보 제공이나, 뒤 좀 봐주는 정도밖엔 못 해. 나한테 기댈 생각 마라.”

김한용의 발언은 종이 두께의 틈도 없이 견고했다.

그것이 새삼 기껍다.

언뜻 냉혹해 보이지만 자기 처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욕망이 뚜렷하고 그걸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자기 능력을 과신하지 않는다.

내면의 코드가 명확한 인간이다. 괜히 나대다 암 걸리는 변수를 만들 타입은 아니라는 점에서 난 그를 신뢰했다.

아무튼.

“도움 따윈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냐?”

“뭐, 좋을 대로 씹고 뜯고 맛보라고 하죠. 이미 모든 준비는 다 끝난 상태니까.”

한쪽에선 거대 조직의 간부가 잔뜩 약이 올라 사시미를 갈고 있고.

그 반대편에서는 자리보전에 혈안이 된 샐러리맨이 내게 눈 먼 칼을 휘두르려 한다.

언뜻 상황이 막막하지만, 하나씩 상대하려니 막연하게 느껴지는 거다.

모조리 끌어내려 주마.

풀숲에 숨은 뱀도, 고층에 도사린 이무기도, 내 전장으로 끌어와서 한꺼번에 상대해주지.

각개격파도 귀찮으니까 너흰 그냥 떨이 처분이다.

네놈들한텐 특별히 도매급으로 썰려 나가는 양민의 기분을 맛보게 해 주겠다. 날 믿고 맘 놓고 추락하시라.

그 전에, 예전부터 궁금했던 사실 하나만 물어보도록 하자.

“근데 구치소 밥은 맛있나요?”

“……나도 몰라 새꺄.”

그렇게 김한용과 헤어진 바로 다음날.

‘진짜’ 참고인 소환은 교실까지 형사가 찾아와 나를 데려간다는 떠들썩한 형태로 진행됐다.

내가 연행에 가깝게 끌려갔다는 사실은 그날 저녁 언론에 바로 실렸다. 의도가 뻔히 짐작되는 신속함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유물의 원주인, 사실은 조폭과의 밀월 관계?’ 따위의, 논리보다는 느낌표와 물음표가 앞서는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난 불운한 피해자에서 시대의 사기꾼으로 급속 승격됐다.

진실 공방 따위는 여론의 격랑 속에서 희석됐다.

날 묻어 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점철된 악의가 인터넷에 침투한 듯했다. 뭐,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닐 테지. 사단급의 댓글 부대가 나셨을 테니까.

어쨌든.

초대형 스캔들 뒤에 있던 또 다른 스캔들에 대중이 어떤 의미로든 달아오르는 가운데.

일주일이란 시간이 물새처럼 지나갔다.

*   *   *

“하루아침에 반도 전용 욕받이가 된 기분이 어때? 학생?”

“…….”

“말이 없네. 왜? 기분 나빠? 설마 이럴 줄 몰랐어? 애새끼라도 악플 무섭다는 정도는 알지 않나? 시대에 뒤떨어진 거야, 머리가 덜떨어진 거야? 어쭈. 눈까리 봐라. 왜, 꼽냐? 꼬우면 니가 사시 통과하시든가. 그래 봐야 내 연수원 후배일 테지만.”

남자는 단정하고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은 신사였지만 혓바닥만큼은 양아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평가관이 인성 평가를 살짝 실수해 버려서 잘못된 놈이 검사가 된 게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렇다.

눈앞의 저자는 검사였다.

높으신 분들께서 사안의 중대함을 고려했음인지, 경찰이 사건을 검찰로 신속하게 토스, 그 결과 나는 황송하게도 대검 취조실에 앉아 팔자에도 없던 거물의 기분을 맛볼 수 있게 됐다.

남자, 이응식 검사가 두터운 서류 뭉치를 내게 툭 던졌다.

“사실, 말 안 해도 상관없지. 어이쿠, 포렌식 감식결과가 요로코롬 팍 나와 부럿네. 요새 기술이 아주 일취월장이여. 뭘 하든 숨길 수가 없잖아. 현대 과학 만세다. 안 그래?”

이응식 검사가 실실 웃으며 서류를 한 장씩 넘겼다.

“자, 이거. 경매 당일 구룡파 행동대장과 나눈 문자 기록. 여기서 나온 10억이란 돈. 그리고 은행 기록을 찾아보니 네 명의의 통장 하나가 다음날 개설됐어. 그리고 이체한 사람은 이 문자를 보낸 당사자고.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발뺌할 거야?”

“…….”

“그래 뭐. 묵비권. 그거 편하고 좋지. 너의 경우엔 더 신속하게 좆 된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나한테 좋다는 거야. 그러니까 계속 입 다물고 있어라. 난 계속 떠들 테니까. 자, 다음…….”

그 뒤로도 검사는 자료를 조목조목 짚으며 신나게 썰을 풀었다.

나와 구룡파라는 폭력 조직이 모종의 관계가 있으며, 적대 조직인 동부파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일본 정부까지 엮인 거대 규모의 ‘던지기’를 시도한 것이 이 ‘일본 유물 절도 사건’의 전모라는 스토리였다.

스토리텔링이 어찌나 정교하고 흥미진진한지, 나조차 무심코 결제하여 다음 화 보기를 신청해 버릴 뻔했다. 저거 만든 보안팀 직원한텐 진심 보너스 줘야 된다.

“너 빠져나갈 구멍 없어. 이거 감식 결과 나오자마자 언론에 발표됐다. 기자 회견 빠방하게 열어서. 어제 인터넷 꽤나 뜨거웠는데 확인은 해봤냐? 아, 너 구치소에 있어서 확인 못 하나? 그건 다행이겠다. 다행인 김에 너 평생 빵에 있어라. 그럼 마음에 상처도 안 입고 좋잖냐?”

“……기자 회견을 벌써 했다고?”

“어, 입 여네. 이야, 새끼 너 벙어리 아니었구나?”

“포렌식 결과가 그렇게 빨리 나올 수도 있나? 완전 엉터리네.”

“몰랐냐? 대한민국 IT 기술력이 으마으마하거든. 그리고 새끼야. 어디 어른한테 반말지꺼리냐?”

“아, 난 연상이어도 쓰레기한텐 존대 안 해. 쓰레기는 오래 묵을수록 구리잖아? 나이 쳐드셨다고 존경받을 일이 아니다 이거지.”

이응식 검사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지만, 이내 반강제적으로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하, 그래. 그렇게라도 분풀이를 해야 속이 시원하겠지. 그래라. 좋을 대로 지껄여 봐. 그럼 너 더 할 말은 없는 거지? 이제 이 취조도 의미가 없어지는 거 같은데, 슬슬 접어도 될까나?”

“음, 할 말이라면 좀 있긴 해.”

“뭐, 맘대로 지껄여 보시든지.”

“당신 LS그룹 장학생이지? 나 매장하는 건으로 얼마 받아 처먹었어? 어느 선에서 연락받았지? 설마 보안팀장이 직접 연락했나?”

“……갑자기 뭔 헛소리야? 내가 사건에 대해 말하랬지 누가 니 꿈꾼 거 썰 풀랬냐?”

“흠.”

난 턱을 쓸었다.

반 박자 느린 반응, 살짝 높아진 톤, 이마에 땀, 미묘하게 낮아진 시선.

모든 반응을 종합해 추론하건대, 내가 지적한 모든 내용이 적중했음을 나는 확신했다.

그는 LS그룹의 장학금을 받아 검사가 된 자이며, 그 뒤로 자연히 스폰 관계로 이어져 그룹의 뒤처리까지 해왔을 것이다.

그거야 재벌들이 공공연히 하는 짓이니 나로선 아무래도 좋았다.

이 검사도 그렇게 가볍게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번에 그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선택해야 할 쪽을 살짝 오판하고 만 것이다.

“미안하지만 보안팀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지시를 따른 건 실수였어. 그건 그룹의 총의가 아니라 팀장의 독단이었거든.”

“……무.”

그는 무슨, 이라고 무심코 뱉으려다가, 황급히 입술을 깨물어 말을 억눌렀다.

하지만 입 사이로 새어나오는 당혹감만큼은 어쩌질 못했다.

“그러니까 이 일이 잘못되면 당신은 그룹의 비호를 받지 못해. 검찰에서 잘려도 LS 법무팀으로 이직하게 될 일은 없어. 글쎄, 불명예스럽게 퇴직한 검사를 받아 줄 로펌은 없을 테니까 개인 사무실을 추천하지.”

“……하, 꼬맹이가. 마지막 만찬이냐? 그래, 저주라도 퍼붓고 싶은 심경이겠지. 네 맘대로 해라. 그래 봐야 변하는 건 없으니까.”

“몇 시야?”

“뭐?”

“몇 시냐고. 슬슬 올 시간이 된 거 같아서 말이지….”

“이 새끼가 아까부터 건방지게……!”

그때였다.

취조실 문이 덜컥 열리며, 하이웨이스트 정장을 차려입은 미모의 여인이 또각또각 걸어왔다.

난 반갑게 웃으며 그녀를 맞아들였다.

“어서 오세요, 이연희 변호사님.”

“오랜만입니다. 이런, 은인이 이런 누추한 취조실에 계시도록 놔두다니……. 제 불찰……. 압도적 불찰!!”

“아니, 불찰도 아니고 누추하지도 않으니까요.”

“저 덩어리가 은인을 괴롭히는 돼지새끼입니까? 생긴 것부터 불온하게 생겼군요.”

순식간에 돼지새끼로 격하된 이응식 검사는 이 해괴한 상황을 해독하는 데에 두뇌의 모든 리소스를 할애하는 듯 보였다.

요컨대, 멍청한 표정으로 이연희 변호사를 망연히 관망하기만 하였다.

“……이게 뭔 개수작.”

“이 삼겹살 예비 지망생에게는 교육이 필요하겠군요.”

탕!

이연희 변호사가 두터운 서류를 탁자 위에 팽개치듯 내려놓았다.

포렌식 보고서보다 세 배는 두꺼울 법한 압도적인 종이뭉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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