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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자꾸 늘어-105화 (105/164)

<재능이 자꾸 늘어 105화>

12. 새로운 시작 - 12

*   *   *

밤이 깊었다.

나는 미등만 켜둔 채 기타를 퉁겼다. 소리는 길게 뻗어 불빛의 바깥까지 기웃거렸다.

회귀 전부터의 버릇이었다. 내 미욱한 소리가 부끄러워 나는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만 연습을 하곤 했다. 어둠은 조용하여 내 기타소리를 가뿐히 받아냈다. 그들은 좋은 관객이었다.

딩-디딩-딩-♬

수학여행 마지막 날 들었던, 수림 선배가 작곡한 를 나름 핑거스타일로 편곡하여 연주하고 있었다.

자평하자면, 조악한 소리다.

현장의 분위기에 매혹됐을 뿐, 사실 원곡도 아주 명곡이랄 순 없었다. 더하여 내 편곡실력은 조잡했다.

그러나 연주하다보면 그럭저럭 괜찮은 곡처럼 느껴지는데, 그건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내 연주력이 그 이상으로 처참하여 상대적으로 낫게 여겨질 뿐이었다.

실로 총체적 난국. 이걸 계속 듣고도 버티고 있는 내 고막의 내구성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꼈다. 나는 한숨과 함께 손을 멈췄다.

“에효. 역시 쉽지 않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휘둘리는 건 그만두었다.

당신들이 뭐라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 잿더미를 더듬어 불씨를 찾아낸 그날 밤, 새벽의 박명 속에서, 묵은 씻김굿을 하듯 기타를 치며 나는 다짐한 것이었다.

덕분에 한동안은 꽤 즐거웠다.

[손재주] 덕에 전생보다는 수월해진 사정이 한몫했다. 내 손은 이제 제 박자에 움직이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노상 제자리걸음이던 예전과 달리, 실력을 하루하루 쌓아가는 충실감도 느껴졌다.

딱 [라흐마니노프의 음감]을 얻기 전까지만.

물론 연습은 계속 했고, 아마 그만큼의 진보가 있었을 것이다. 가정형인 이유는 잘 실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근본에서는 ‘그래서 그게 뭐?’라고 반응하고 마는 것이다.

[음감]의 재능이 좀 지나친 게 문제였다.

요컨대 음악을 듣고 평가하는 기준이 아득하게 상승했다.

귀도 손도 평등하게 허접했던 과거엔 단 한 발자국의 진보도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듣는 귀의 수준만 비대칭적으로 발달되자 그 모든 노력은 단번에 하찮아졌다. 마치 고층에서 땅 밑의 개미를 내려 보듯. 그렇게 힘들여 일군 성과가 다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안 좋은 점은 잔뜩 귀에 들어오는데 실력은 아무리 해도 개선되지 않는다.

의욕이 생길 리 만무하다.

그 이후로는 거의 의무적으로 손을 놀리고 있었다. 일종의 슬럼프다. 그 와중에도 우월한 [음감]은 ‘슬럼프 운운할 수준은 되냐?’며 내 실력을 조소했다. 입안의 쓴맛을 느끼며, 난 기타를 벽에 세워놓는다.

“…….”

그러니까, 외부의 비난을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자마자 내 내면의 비난이 날 가로막는 것이었다.

이 기막힌 방해공작에는 나조차 어안이 벙벙했다.

언젠가 괜찮은 음악적 재능을 얻게 될지 모르지. [음감]의 수준에 걸맞는 재능을 갖춘다면 이 지독한 무력감도 해소될 것이다. 그때까지만 참으면 된다….

‘…정말 그런가?’

그러나 난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사실 이 모든 건 악마의 농간이라서, 이런저런 잡다한 재능은 퍼주면서 내가 가장 바라는 재능만큼은 평생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럼 두 번째 인생도 그렇게 흘려보낼 것인가.

언젠가 인생의 황혼을 맞이할 그때, 그저 하늘이 날 외면했다며 툴툴거리기나 할 텐가…. 그런 삶에 나는 납득할 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나는 다시 기타를 집어 들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 노력이 의미 있을지 아닐지 결론을 내려두지 않았다. 그저 어제도 그랬듯 피크를 쥐고 메트로놈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 음악이 아닌 미숙한 소리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왜냐면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는 안 된다고, 내 삶을 간단히 결정지어버린 세상에게 엿을 먹이고 싶었다.

그걸 관철해낸다면, 뭐랄까, 그럭저럭 보람찼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미뤄둔 결론, 괴로운 고막, 고집 센 손가락과 잠잠한 어둠. 그렇게 오늘의 밤도 여느 때와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   *   *

팍-!

공기층을 터뜨리며 야구공이 글러브에 빨려 들어간다. 포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없이 공을 되돌리고 투수는 다시 피칭을 재개한다. 그 과정이 심플하게 반복됐다.

평범한 훈련처럼 보이지만, 사실 조목조목 따지고 보면 전혀 평범하지 않다.

양동명이 불안한 듯 혀를 내둘렀다.

“…이게 훈련이 되나 모르겠네.”

“왜? 안 될 거 같아?”

“뭐랄까, 애당초 훈련인지도 잘 모르겠어.”

“믿음이 부족하네. 네가 방송부에 널리 퍼진 ‘이한열 무당전설’을 들었다면 그런 소릴 못 할 텐데.”

“나한테 필요한 건 무당이 아니라 코치인데….”

“시끄러. 내키지 않으면 안 와도 된다고 했잖아. 쫄래쫄래 와놓고서 이제 와서 딴소리야?”

“아니 딴소리한 건 아니고. 나는 그냥….”

“그럼 그냥 잘 보기나 해.”

난 그의 입을 막듯이 투구 자세를 취했다. 온몸을 쥐어짜내 만들어낸 힘이 손아귀에 응축된다. 공은 허공에 잠시 등장했다가 글러브 속으로 사라졌다.

팡-!

“…역시 모르겠어.”

양동명이 고개를 젓는다.

그렇다.

투수 훈련은 맞지만 정작 전력투구를 하는 사람은 나였다. 양동명은 포수 포지션에서 공을 받아내고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주문한 건 단 하나.

“그냥 보는 게 훈련이라고?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

“거참 말 많네. 그렇게 싫으면 다시 체력훈련이다.”

“아바이 수령님. 전 수령님의 영도에 의문을 품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늦었어. 운동장 스무 바퀴. 버피 100개. 스쿼트 100개. 실시.”

“악마다. 너는 확실히 악마야….”

그렇게 힘을 쫙 빼고, 두뇌에서 이성까지 빼버린 뒤, 그에게 다시 포수를 맡겼다.

난 아무 설명 없이 투구를 재개해 글러브에 공을 꽂는다.

처음엔 의구심을 품던 그도 몇 번의 체력훈련과 병행하자 나중엔 군말 없이 지시만을 따르게 됐다. 납득한 게 아니다. 생각이 거세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턴 던지고 받는 소리만이 공터에 가득 찼다.

양동명의 시선이 공을 벨 듯이 날카로워졌을 무렵, 나는 돌연 훈련을 중단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응? 으응? 끝? 여기서 끝?”

“그래. 이대로 끝.”

“으어으에으앙브에르이….”

양동명이 프랑스 방언 같은 정체불명의 신음을 흘리며 흙바닥에 뻗었다.

난 말없이 그의 옆에 앉았다.

그는 의문인지 원망인지 구분이 모호한 복잡한 눈으로 날 보다가, 이내 질끈 감아버렸다. 한동안 거친 숨소리만이 침묵에 부딪혔다.

한참 뒤, 호흡이 잦아들었음 무렵에야 그가 말했다.

“…다섯 개 정도.”

“맞았어.”

내가 오늘 던진 공은 구종으로 따지면 하나뿐이었다. 포심 패스트볼. 흔히 말하는 직구.

처음부터 끝까지, 난 모든 공을 같은 구종으로 동일한 스트라이크 존에 꽂았다. 실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단, 회전을 달리 주어 궤적과 구속, 그리고 무브먼트에 차이를 두었을 뿐.

그 종류가 정확히 다섯 가지.

오늘 난 그가 그것들을 구분할 수 있을지 확인해본 것이었다. 그러나 확인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투수한테 공을 못 던지게 하다니…. 고문이야? 정신력 훈련 같은 건가?”

“내가 봤을 때, 네 투수로서의 자질은 그럭저럭 괜찮아.”

“칭찬이야?”

“그렇게 들려? 프로를 지향한다면 명백한 혹평이지. 일류는 절대 못 된단 소리니까.”

“…그런가.”

“하지만 고교 레벨에서라면 큰 문제는 아니지. 어차피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 ‘그럭저럭’에 속해 있으니까. 평범하다는 걸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어. 그러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네 진짜 문제는 지나치게 위축돼 있다는 거지.”

양동명이 입을 꾹 다물었다.

“넌 저조한 자신감이 네 실력을 다 까먹고 있어. 본 실력의 절반도 못 내는 거지.”

“…선후관계가 잘못된 거 아냐? 실력이 없으니까 자신감이 없는 거지.”

“그게 악순환이 되긴 했지. 그 상태가 오래 지속돼서 네 실력이 원래 그 모양이라고 착각해버렸을 거야. 그게 네 가장 큰 문제다.”

“…….”

“뭐, 근데 자신감이란 게 자반고등어도 아니고. 어디서 떨이로 팔아서 사들고 올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그게 이 괴상한 훈련하고는 무슨 상관인데?”

“이 경우에는 약점을 보완하는 건 큰 도움이 안 돼. 네 강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내 결론은 그거였어.”

“내 강점이 뭔데?”

“눈.”

그러자 양동명이 해괴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반신을 비스듬히 세우더니 날 어이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납득이 안 된다는 얼굴이네.”

“아니, 투수가 그거 좋아서 뭐해. 눈에서 빔 쏴서 타자를 쓰러뜨릴 것도 아니고. 어깨가 단단하다던가. 제구가 좋다던가. 그런 게 중요한 거 아니야?”

“흥. 그딴 뻔한 건 너네 코치한테나 배워.”

“영문을 모르겠네.”

지금은 모르겠지.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재능을 타고 났는지. [안목]으로 놈의 잠재능력을 간파하고 한동안은 어이없어서 말도 못 꺼냈지. 이런 걸 가지고 그 정도밖에 못한다는 게.

‘뭐, 지금 설명해봐야 제대로 이해도 못하겠지만.’

강도 높은 체력훈련도 그 자체론 의미가 없다.

내 의도는 체력과 함께 머리를 깔끔히 비우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괜한 생각을 못하고 온전히 안력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는 자신의 눈에

“그런 건가. 사륜안 같은 거? 보면 그 구위를 막 똑같이 따라할 수 있게 되고? 내게 그런 숨겨진 재능이….”

“만화냐. 넌 눈이 좋은 거지 제구가 월등한 게 아니야. 백날 따라 해도 넌 나처럼 던질 수 없어.”

“아 그럼 대체 뭐지.”

“생각이 많아 보이네. 우리 운동장 스무 바퀴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전 원숭이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죠. 왜냐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 으아아! 오 분만! 오 분만 더 쉬자고!”

그러나 나는 그를 기어코 일으켰다.

동일한 루틴의 훈련이 몇 번 반복되고 누적 버피 개수가 사백 개를 넘었을 즈음에야 오늘 계획도 마무리 됐다.

그 즈음 양동명은 푹 퍼져서 대지에 묻은 얼룩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자신감이 좀 회복 됐나?”

“…저는 물벼룩입니다.”

“악화됐군. 딱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여기까지가 아니어도 난 더 못 움직여…. 물리적으로 안 된다고.”

“입 다물고 엎드리기나 해. 등짝을 좀 보자.”

“…응? 으응?”

왠지 모르게 퍼덕이는 놈을 제압하고 등과 하체에 침을 꼼꼼히 놔주었다.

근육을 이완시켜 회복을 촉진하는 침 구성이었다.

벤치에 엎드린 자세로 그가 웅얼웅얼 말을 꺼냈다.

“한열아.”

“응?”

“…고마워. 그리고 미안. 바쁠 텐데 괜히 나 때문에. 아, 뉴스는 꼬박꼬박 찾아봤어. 애들이랑 검찰청에 시위하러 가려고 했는데 그 전에 나와 버리더라? 하하.”

“별 쓸데없는 걱정을. 너네 왔으면 쪽팔려서 내 쪽에서 구치소에 처박혔을 지도.”

“…뭔가 신기하네. 넌 여기 있으면 안 될 거 같은데.”

“그건 또 무슨 말이냐.”

그리고 그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잠깐 쪽잠에 빠진 건지 생각 중인지 내 쪽에서 알 도리는 없었다. 어느 쪽이든 숨소리만은 가지런했다. 그러다 불쑥, 꿈결에서 읊조리듯이 그가 말했다.

“넌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고 훈남에다가 매스컴에도 종종 이름이 오르내리잖아. 근데 나는 야구 하나에만 매달렸는데 그조차도 어중간하고…. 모르겠어. 내가 도와달라고 하긴 했지만 진짜 도와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

“…그러냐.”

“응. 난 네가 우릴 싫어하는 줄 알았으니까. 그때 부탁했던 것도, 반쯤은 자포자기 심정이었달까. 거절당해도 당연하다 생각했어. 그래서 신기하네. 솔직히 말하면 왜 나랑 어울리는지도 모르겠고….”

예전엔 나도 몰랐다.

처음엔 배윤하와 전상진을 꽂아주기 위해 찾아온 곳일 뿐이었다. 그리고 당초의 목적이 비껴나간 지금 내가 여기 있을 이유는 없었다. 예술대회 추천장을 위해서라는 답은 궁색하다. 잘 찾아보면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난 생각했다.

고심했고,

떠오른 것들을 잘 추슬러 풀어내었다.

“니콜라이 달 박사는 아마추어 비올리스트였지. 비올라는 음역대가 낮아서, 바이올린에게 솔로이스트의 지위를 쉽게 뺏기지. 동시에 중저음의 질을 따지자면 첼로의 중후함에 비할 수 없어. 아래위로 치이는 둘째 같은 놈이랄까.”

어제 밤도 라흐마니노프의 [음감]에 괴로워하다 왔기 때문일까. 이런 이야기가 쉽사리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기에 달 박사는 비올라를 연주했어.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스스로 찾아냈지. 라흐마니노프를 구원한 건 그의 음악적 멘토도 위대한 거장도 아니었어. 미숙하고 어중간한 비올라의 음색이었지. 그래. 그동안은 외면했지만, 아마도 난 너희들이 필요했던 거야. 너희의 그 반짝이는 젊음이.”

그래서 양동명이 야구를 포기하겠다고 나섰을 때는 화가 났다.

내가 동경하던 그들의 빛나는 부분이 옅어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만큼은 거기에 그대로 있기를 바랐다.

말하는 도중 돌아보니 동명이는 코까지 골아가며 잠에 빠져 있었다.

난 조용히 침을 회수한 후 크게 기지개를 폈다.

그러니까 청춘은 청춘대로 있도록. 난 이제부터 어른이 해야 할 일을 하러 갈 테니.

“뭐랄까, 납치당하기 좋은 날이구만.”

난 잠든 그를 뒤에 두고 서서히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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