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자꾸 늘어 108화>
12. 새로운 시작 - 15
“최대한 빠르게 끝낸다.”
주변이 회색으로 탈색되며 손끝에 강렬한 전능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난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며 발을 박찼다.
첫 타겟은 정면.
예상보다 빠른 속도에 놈이 움찔하며 나이프를 내찌른다.
엉겁결의 반응이었겠지만, 수없는 반복 훈련으로 몸에 배었을 살인술은 그 와중에도 치명적인 예기를 뿜어냈다.
날붙이 앞. 움츠러들어 마땅할 상황.
본능과 의지가 오랜만에 일치단결하여 물러서라고 권고했지만, 어쩐 일인지 내 몸뚱어리는 보다 저돌적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멈추기는커녕 전례 없는 출력으로 근섬유가 펌핑된다.
대지가 가볍게 발을 밀어낸다.
흙이 튄다. 지나가던 바람이 내 안면에 치여 흩뿌려진다.
온몸이 민감했다.
평소에는 불필요하여 절삭해 뒀을 정보들이 폭력적으로 밀려 들어와 내 안에 쌓였다.
공기의 흔들림. 동공의 움직임. 다리의 위치. 하중의 이동.
발바닥에서 시작된 힘이 근골계의 흐름을 타고 손목에 이르기까지.
상대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읽혔다.
이것은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적인 투사의 감각이
항우의 초월적인 신체 능력과 결합하며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팍!
나이프를 당연하다는 듯이 피하고, 일 초 사이에 복부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십 수 번의 연타를 쏟아붓는다.
위액이 역류하기도 전에, 몸의 상태를 안색이 반영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신음을 토하기도 전에, 나는 마무리 라이트 훅으로 놈의 안면을 날려 버렸다.
속으로 남몰래 사죄했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평생 딱딱한 걸 씹을 수 없을 겁니다, 라고.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어 말했어도 소용없었을 테지.
이미 놈은 눈을 까뒤집고 뒤로 넘어가고 있었으니.
한 놈을 정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대충 2.5초.
“……후.”
그 뒤에야 숨을 내쉰다.
주변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는 게 느껴진다.
이 틈에 뒤로 넘어가는 놈의 허리띠를 빼내어 팔에 둘둘 둘렀다. 칼을 상대하려니 맨살로는 버거울 것 같아서 말이지.
“……무슨.”
놈들이 경악 속에서 멈칫한 찰나.
나는 가장 가까이 있던 놈에게 바로 달려들어 턱주가리를 날려 버린다.
이걸로 두 명째 리타이어. 난 이번 녀석의 허리띠도 빼내어 반대쪽 팔에 감았다.
자.
이로써 방어 대책은 끝났다.
“빠르다! 둘러싸! 혼자서 대응하지 마라!”
장이화의 사나운 일갈에, 하수구의 사냥개들이 민첩하게 내 주변을 돌기 시작한다.
나는 스텝을 가볍게 밟으며, 시야를 넓게 두고 눈알을 굴렸다.
과연, 집단전에도 능한 놈들이다.
보폭이 일정하고 동선에 겹침이 없다. 두세 명이 한 단위로 움직임에도 하나의 생물처럼 통일감이 있었다.
달리 말하면, 난 3초 만에 그들의 콤비플레이의 요체를 꿰뚫어 봤다.
바로 대응한다.
놈들의 동선 중간을 치고 들어가 흐름을 차단한다.
움직임이 꼬이고 순간적으로 혼란이 퍼진다. 난 그 혼란의 끄트머리를 밟아 가며 놈들을 하나하나 무력화시켰다.
지금의 내 눈엔 그 모든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감각되고 있었다.
“크으윽……! 이이……!!”
나이프를 피한다.
파고들어 때린다.
크라브마가와 복싱. 그러나 날붙이를 상대한다는 공포만 걷어 내면, 사실상 싸움의 본질은 동일한 것이다.
상대의 공격은 무력화하고 내 공격은 성공시킨다.
그것이 전부다.
권투니 가라테니 이름과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격투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실 이 단순한 진리에 수렴하는 것이다.
리치가 좀 더 길어지고 가드조차 주의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첨가됐지만.
하늘이 내린 싸움꾼, 슈거 레이 로빈슨의 재능은 그 대응책 또한 실시간으로 몸에 업데이트시켰다.
내 초인적인 신체는 그 업데이트를 아무 무리 없이 소화해 냈고-.
마침내 조직의 최정예를 유린하는 현재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비켜!”
마지막 두 놈만 남았을 시점, 장이화가 한 놈의 어깨를 짚으며 옆차기를 가해 왔다.
난 가드를 올려 놈의 발을 막아 냈다.
팍-!
착착.
몇 번 뒷걸음을 치고 놈을 응시한다. 장이화는 당초의 장난스런 기색은 일절 없이 날 진지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
“……예상 이상이군. 될성부를 떡잎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빨리…….”
“알았으면 당장 비켜 줄래? 너도 아들뻘한테 쳐맞으면 기분이 별로일 거 아냐.”
“건방진 것도 마음에 들지만 말이야…… 이런 전개는 영 곤란한데.”
“같잖은 수작질은. 시간 끌려는 게 훤히 보인다고.”
난 짱돌을 집어 들어 냅다 던졌다.
장이화의 면전에 일직선으로 쇄도하는 투석. 그는 나이프 손잡이 끝으로 돌을 튕겨 낸다.
그러나 돌덩이 바로 뒤에는 내 펀치가 숨겨져 있었다.
화악-!!
내 전력을 담은 오버헤드 훅이 먼지를 헤집고 놈의 면상에 직격-.
“크윽-.”
-하지는 못하고, 광대만 어설프게 빗겨 친 채 허공을 갈랐다. 훙-!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튄다.
장이화는 고개를 젖힘과 동시에, 역수로 쥔 나이프를 내 쇄골에 찍었다. 피하지 않는다.
과감하게 더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 놈의 손목을 차단.
그대로 잡아채려고 했지만 놈은 물처럼 유연하게 내 손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유연한 동작인 탓에 손목의 힘이 순간 풀렸고, 난 그 낌새를 눈치채고 팔을 거칠게 뿌렸다.
놈의 손아귀에 착 붙어 있던 나이프가 휘날려 허공 어딘가로 사라진다.
움찔. 놈은 그 순간에도 내 목덜미에 킥을 꽂았지만-.
상체를 웅크리고 오른팔을 들어 단단하게 방어. 몸을 틀면서 왼손 훅으로 놈의 무릎을 가격한다.
쩍-!
놈이 킥을 다급히 회수해 관절에 직격하진 않았지만, 내 주먹엔 분명히 손맛이 남아 있었다.
부러지진 않았어도 꽤 시큰하긴 할 거다.
난 내 승리를 직감했다.
잠시간의 대치.
놈의 새하얀 이마에 식은땀 한 줄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이건 사람이 달라진 수준인데. 하하. 이런 일이 진짜 가능하단 말이야? 이거 위험한데.”
“그걸 알았으면 빨리 비…….”
“그래서 미안하게 됐다.”
철컥.
장이화가 뒤춤에서 권총을 꺼내어 내게 겨누었다. 순간 든 생각은, 어잇 시발, 이건 반칙이잖아, 였다.
“원래라면 잡아다가 키울 생각이었지만…… 이걸로 확신했다. 호랑이 새끼는 키워 봐야 호랑이가 될 뿐이겠지. 널 이대로 놔두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하하. 한국에서 무슨 총이야. 이거 세계관 붕괴 아닌가.”
“그래서 어지간하면 안 쓰지. 총기 규제가 심한 남한에서 총격의 흔적이 남으면 우리로서도 골치 아프거든.”
“그렇지? 오늘도 당신의 골치를 긍휼히 여기는 게 어때?”
“그 이상으로 네 위험성을 높이 산 거다.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아.”
“조까. 하나도 안 자랑스러워.”
난 안력을 돋우며 생각했다.
총알을 피할 수 있을까.
‘……아무리 나라도 그건 힘들겠…… 지?’
회귀자에다 별별 경험을 다 해 본 나라 해도, 총구와 아이 컨택을 하는 이 유니크한 경험 앞에선 과연 눈앞이 새하얄 수밖에 없었다.
멀티미디어는 위대했다.
총탄이 뇌수를 흩뿌리는 그 수많은 영상 매체들은 내 상상을 쓸데없이 실감나게 만들었다.
입이 바싹 탄다.
시각화된 죽음이 내 정신을 휘어잡는다.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 [역발산기개세]가 최고조로 발휘, 온 신경이 총력 태세에 접어들었다.
시점은 총구 끝에 일점 집중.
완전무결한 몰입 속에서 시간이 길게 늘어지고, 내 사고가 그 위를 빠르게 질타했다.
‘총알을 보는 게 아니야. 낌새를 읽는 거다.’
인간의 동체 시력 따위가 총알을 볼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격발 직전의 낌새, 트리거를 당기는 전완근의 미동, 그리고 결정적으로 놈의 살의를 읽어 내는 거다.
총알을 피하는 게 아니야. 놈의 조준을 피하는 거다. 집중. 집중하자.
일 초.
이 초.
아직. 아직이야.
결정적인 순간까지 기다려라. 어설픈 타이밍에 움직였다간 그냥 움직이는 과녁이 될 뿐이다.
그렇게 영원과도 같은 삼 초가 그렇게 지나가고-.
삼 초째, 돌연 살의가 점화되며 놈의 손가락이 트리거에 맞닿는다. 그래, 지금-.
“꼼짝 마!”
그 순간, 좌측의 수풀을 헤치고 인기척들이 대거 등장한다.
장이화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쪽으로 총구를 돌려 격발한다.
탕-!
머즐 플래시가 경박하게 튀어 오른다.
그 순간 난 땅바닥에 떨어진 나이프를 집어 들어 투척했다.
나이프는 빙빙 돌아 장이화의 손등을 헤집고 뒤편의 나무에 박혔다.
놈이 권총을 놓친 순간 나는 전력으로 내달렸다.
그렇게나 용쓰며 단련했음에도 기술 따윈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원초적인 육박전만이 그 순간에 떠올린 전부였다.
나는 몸통박치기를 감행했다.
콱-!!
“으윽!!”
“크흑!”
그리고 그것이 정답이었다.
내 무식한 돌격에 떠밀려 장이화는 덤불 저편으로 형편없이 튕겨나갔다.
장이화는 낙법을 멋지게 펼쳤으나, 권총으로부터는 멀리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이를 으득 깨물며 외쳤다.
“……젠장! 철수한다!”
빠른 결단.
권총이 내 발밑에 있는 이상 더 이상의 대치는 무의미할 것이다. 그들은 등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난 잽싸게 권총을 집어 들어 겨누었지만, 그들은 우거진 나무들을 은폐물로 삼으며 노련하게 후퇴했다.
유효 사거리 너머로 그들이 사라진 뒤에야, 난 총구를 내렸다.
“……뭐야, 저 새끼들 총까지 가지고 있었어?”
저편에서 등장한 것은 이상용 과장이었다.
아지트 내부를 전부 제압한 뒤, 내 위치 추적을 따라와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의 뒤로 몇 명의 요원들이 따랐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때맞춰 등장해서 살았네요. 다친 사람은 없어요?”
“부하 중 하나가 총에 맞았어. 다행히 어깨를 관통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다만. 이길재는? 놓쳤나?”
“…….”
난 대답하지 않고 둔덕 위로 가만히 올라섰다.
이길재가 어느 쪽으로 도망가는지 정도는 확인해 뒀다.
교전은 짧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놈은 멀리도 도망친 상태였다.
이젠 거의 점으로 보였는데, 우거진 수풀 탓에 그 점마저 흐릿해지고 있었다.
“……저거 못 잡겠는데. 저대로 숲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저렇게 도주할 것까지 상정해서 여기에 아지트를 잡은 거겠죠. 여기서 놓치면 안 되겠네요.”
“젠장……! 다 잡은 거였는데!”
“흠.”
이상용 과장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고 주변의 가죽옷들을 수집했다.
나이프로 가죽을 쓱쓱 썰고 매듭으로 이어 붙인다. 내 [손재주]는 가죽옷을 다른 무언가로 빠르게 변모시켰다.
“……갑자기 뭐 하냐?”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단 말이죠.”
다시 한번 딴 소리를 해야겠다.
탤런트 [투석]의 원주인은, 기이하게도 다른 투사 무기에는 별 재능이 없었다.
활이나 쇠뇌도 써 봤지만 평범했다.
맨손을 도구로 쓸 때에만 그 괴이막측한 재능이 발휘됐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으니, 천에 돌을 담아 휘둘러 던지는 ‘투석구’를 쓸 때만큼은 능력이 온전히 반영됐다.
그런 이유로, 방금 난 가죽옷을 이어 붙여 간이 슬링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늘어뜨린 슬링 안에 주먹만 한 짱돌을 담고, 돌린다.
훙, 훙, 훙 훙훙훙-.
어깨가 뻐근할 지경까지 회전속도가 치솟는다.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근력으로 회전을 제어하고, 매에 근접하는 시력으로 목표를 포착하며, [투석]의 재능이 궤적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그리고, 놓는다.
짱돌은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마치 허공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풀잎이 튀고 새들이 푸드득 날아오른다. 이 과장과 나는 저 멀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점처럼 보이던 이길재가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난 픽 웃으며 이 과장을 돌아봤다.
“저거 주우러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