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자꾸 늘어 111화>
13. 너희들의 앞에서 - 1
전생의 어느 기억.
“이야, 너 기타도 칠 줄 아냐?”
정확히 어떤 뉘앙스였는지 이제 와선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몇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너 따위도 할 줄 아는 게 있나?’
혹은
‘이 새끼 봐라, 농땡이 칠 기력이 남아 있어?’
어쩌면 그 둘 다.
분명한 건 감탄의 어조는 아니었다. 인격을 열화시키고 모멸감으로 상대를 저미고 싶다는 감정이, 저 짧은 문장 안에 낭비 없이 담겨 있었다. 미숙한 나라도 알 수 있게끔 분명하게.
난 그대로 다른 ‘형님’들 앞에 끌려가서 일인 공연을 하게 됐다.
“어디 노래 한 곡 뽑아 봐라. 형님들이 심사위원 해주마.”
다른 건 안개처럼 흐릿한데 선곡만큼은 바로 떠오른다.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고른 이유는 내가 코드를 외우고 있는 유일한 노래였기 때문이다.
머리에 피가 몰려 화끈했다. 쇳가루를 들이마신 듯 목이 멨다. 그럼에도 난 기타를 치며 재주껏 목청을 뽑았다.
다른 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웃었다는 것만큼 분명했다.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세상이 떠나라 웃어재꼈다. 과장되게 환호하고 앙코르를 연호했다. 드물게 찾아낸 오락거리에 그들은 환호했다.
“제 점수는요, 씨발, 내가 아랫구멍으로 열창해도 너보단 낫겠다. 마이너스 일억 점!”
“크하하하학!”
지나치게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음악을 들은 게 아니었다. 17세기 귀족들이 콤프라치스의 기형인간을 보며 유열을 즐겼던 것처럼 그들은 내 공연을 향유했다. 조롱으로 소일했다. 난 성능 좋은 어릿광대로서 그들 앞에 전시됐다.
“어? 저 새끼 운다.”
“크하학. 우니까 더 못 부른다.”
“어어, 노래 끊긴다. 누가 그만 부르랬냐, 새꺄. 계속 안 뽑아? 아주 편하지?”
“야 왜 애를 갈구고 그래. 이럴 때는 앵콜을 해야지. 그게 뮤지션에 대한 예의 아니겠냐?”
“오오. 그럼 앵콜! 앵콜!”
제발 좀 더 웃겨달라는 의미에서 그들은 앵콜을 쳤다.
그럼에도 내가 코드를 아는 곡은 하나뿐이었으므로, 같은 것만을 몇 번이고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는 퀄리티에 그들은 더 만족했었지.
목청이 다 나가 쇳소리만 날 때 쯤 그날 공연은 중단됐다. 중단 사유는 뮤지션의 컨디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쯤에 관객들이 질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10년 동안은 음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 시절은, 나를 근본적인 부분부터 성형시켰다.
번화가를 선호하지 않는 버릇도 그때 생겼다. 번화가엔 항상 음악이 흘렀으니까.
어쩌다 라디오를 틀어야 할 때면 꼭 클래식이나 종교 채널을 선택하곤 했다. 그 음악들은 좀 견딜 만했다.
어쩌다 노래방에 끌려가게 되면 그날 밤엔 새벽 내내 구역질을 하다 변기 위에서 잠들곤 했지.
지금도 가끔 그때의 꿈을 꾸곤 한다.
모든 게 모호한 가운데, 조소, 그들의 조소만이 안개 속 도깨비불처럼 사위를 거닐었다. 그 꿈을 꾸다 깬 날이면 꼭 귀마개를 지참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하루 일상이 유지되지 못했다.
차라리 그대로 음악이 싫어져버렸으면 좀 나았을까.
왜 하필이면 음악이어야 했을까.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부터 제 자리로 돌아와 이어폰과 기타를 찾았다. 재능에 절망하고, 트라우마가 다시 엄습해 와도, 그런 날 보듬어준 것 또한 음악이었다.
마이클잭슨과 프린스, 프랭크 시나트라와 빌리 홀리데이, 퀸과 U2,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가 없었다면, 내가 있는 이 새까만 밑바닥에서도 볼 수 있는 그 위대한 별들이 없었다면, 난 그 지치도록 지루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그곳에 갈 수 있습니까?
아무리 물어도 저 위대한 얼굴들은 답이 없다.
그런 주제에 뻔뻔할 만치 찬란하여서 내가 눈을 떼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난 그저 멍하니 올려다보는 것이다. 그 과거부터 지금까지 줄곧. 다가가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지도 못한 채.
홀린 듯이,
그저 갈구만 하는 날들이-
* * *
“…….”
왜 아침에 그런 꿈을 꿨는지 이제 좀 알겠네.
“저, 저는 하기 싫었습니다. 그냥 이, 이길재 그놈이 그냥 시켜서…. 믿어주십쇼 나으리!! 아니, 그 쪼매난 것한테 주사를 꽂는 게 어째 사람이 할 짓이랍니까?! 깡패질도 정도가 있지!”
“아, 넌 하기 싫었는데 다 시켜서 한 거다?”
“예, 예, 딱 그 말입니다 나으리.”
“흠, 그렇군.”
절반은 깨끗하게 벗어졌고, 나머지 절반은 곱슬이 우거진 비대칭적인 반대머리.
주먹코에 넙데데한 입술.
꿈에서도 모호하던 윤곽이 디테일을 찾아가며 기억에 채워졌다.
이놈의 이름은 진규하. 이길재 사냥 작전 와중에 아지트에 있어서 잡혀온 잡몹 중에 하나다.
은지은 납치에 관여했던 자 중 하나라기에 교차검증 목적으로 심문하는 중이었다.
고위 간부로 올라갈수록 전문훈련을 받았는지 자백제가 제대로 안 먹혀서 고전적인 방식을 쓰는 것인데, 이 방면에선 LS그룹 보안팀을 통틀어도 나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굳이 수고를 무릅쓰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자가 한둘이 아니므로, 이 잡몹에게 내 기억력을 소모할 이유 따윈 본래 없었다.
이놈이 내 관심의 대상이 된 이유는 내 트라우마의 근원이기 때문.
에누리 하나 없이 전적으로 그 이유에서였다.
“음, 좋아. 앞뒤 말이 다 맞아떨어지는군. 훌륭한 진술이었어.”
“예! 감사합니다! 나으리.”
“그러니까 좀 맞자.”
“예? 으어억!!”
이 기적에 경배하라.
내가 누군갈 후드러 패는 일에 일가견이 있다면 바로 눈앞의 이 자 덕분이다. 때리는 것도 맞은 놈이나 할 줄 아는 법이니까.
아아, 그 시절, 실로 깊은 배움이 있었지.
그야말로 뼈와 살에 배기다 못해 영혼에까지 새겨진 가르침이었다.
그중 하나, 구타에도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너무 빨리 뻗어버리면 때릴 맛이 없으므로, 고통을 최대화하면서 기절의 근사치를 넘지 않는 절묘한 조절이 요구된다.
유열 속에서도 자제를 할 줄 아는, 절제의 미덕을 갖춘 신사만이 구타의 마스터가 될 수 있다.
그런 열렬한 가르침에도 과거의 나는 참으로 미숙했지.
스승님의 참뜻을 제대로 통달하지 못했던 못난 제자였다.
그러나 괜찮다.
난 다시 태어났고 훌륭한 재능으로 재무장했다.
Rank D의 [손재주]로 정도를 갖춘 신묘한 펀치를, Rank C의 [눈치]로 어딜 때려야 꾀병 하나 없는 진짜배기 고통이 터져 나오는지를, 더하여 Rank C의 [침술]로 보완된 주먹으로는 한 치 낭비 없는 효율로 핀포인트 타격을 가했다.
“으허, 으허헉!! 서, 선생님!! 전 사실을 말했…!!”
“네가 맞는 이유는 거짓을 말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그럼, 어째서…?”
“네 주먹코가 그냥 때리고 싶게 생겼어. 시뻘건 것이 왠지 과녁 같거든.”
“그게 무…! 꾸에엑!!”
미안하지만 그건 사실이다.
전생에서부터 기회만 된다면 그 루돌프 짝퉁 코를 뭉개버리겠다는 열망을 항상 품어왔었다. 그리고 오늘로서 버킷리스트 하나가 달성되었다.
아무튼, 참관한 요원이 질린 표정을 짓다 아예 달관해버릴 때까지 내 해피 타임은 계속됐다.
“이걸로 용서는 안 되지만 대충 화풀이 정도는 되겠지.”
“흐어, 흐어어….”
놈에게 물을 한 바가지 퍼부어 강제로 각성시킨 다음, 거칠게 놈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놈의 면상 바로 앞에서, 숨결로 콧잔등을 후려칠 수 있을 만큼 힘차게 콧바람을 뿜어주었다.
“잘 들어라.”
“…예, 예. 드, 듣겠습니다.”
“지금 네가 지껄인 말들. 경찰에 자수해서 그대로 읊어. 네 죄를 한 치 어긋남 없이 소상히 고하란 말이야.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닥치고 계속 들어. 아직 말 안 끝났다.”
“넵.”
“만약 경찰한테 가서 한 진술이 오늘 한 말과 토씨 하나라도 다르면….”
난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공포에 물든 눈동자의 떨림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그대로 눈가를 지나쳐, 놈의 귓가에 바로 입을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내 전 재산을 퍼부어서 최고급 변호사를 선임해주지. 그리고 최선을 다해 널 무죄로 만들 거야.”
“…예. 예?”
“그리고 구치소 문을 나선 그날, 너는 이 자리에서 나를 다시 보게 되겠지.”
“흡!”
놈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치게 열렬한 바람에 호흡곤란이 올 지경이었다. 이쯤 해둘까.
“그리고 새끼야. 공연을 공짜로 들었으면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라. 마음에 안 든다고 악플 쓰고 그러지 말고. 그러고 싶을 때마다 날 찾아와. 네 악플 욕구를 주먹으로 다스려줄 테니.”
“예? 예예.”
“좋아.”
난 그를 뒤로 두고 신문방을 빠져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 과장이 날 기묘하게 쳐다봤다.
“왜 저놈한테만 저렇게 공을 들이냐? 첫눈에 반하기라도 했어?”
“예. 딱 꽂히더라고요.”
“뭐, 어쨌든 교차검증도 이걸로 끝이네. 은지은이란 아이는….”
“중국에 있습니다. 약을 써서 못 도망가게 막은 모양이네요. 아마 지금쯤….”
“유흥가에 팔렸겠지. 그나마 통나무로 팔린 게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되나? 젠장. 그 어린 것을….”
“바로 손 써주실 수 있습니까?”
이 과장이 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쉽지 않아.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봐야 내수용이지. 중국에도 정보원들이 있지만 그건 비즈니스 목적이야. 첩보 방면으로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거든.”
“그건 돈을 퍼부어서 해결하죠. 최대한 빨리 데려와야 됩니다.”
“뭐, 돈이야 네가 대는 거니까 나는 불만 없다만.”
“부탁드려요.”
“…꽤 신경을 쓰는군. 친했냐?”
“그렇게까지 친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의 까르르 웃는 모습이 이 끔찍한 사건에 오버랩 됐다. 그 철없고 사차원적인 성격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최소한 죽지 않은 게 확인됐으니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그리고 내겐 전생에 그들 가족의 비극에 관여했다는 부채감이 있었다. 그녀만큼은 어떻게든 내 손으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게 내 최소한의 속죄다.
“이제 이길재는?”
“좀 더 뽑아먹은 다음에 경찰에 넘기죠.”
“그래, 더 데리고 있기 나도 지쳤다. 빨리 털어버리고 싶네.”
“과장님은요? 팀장 승진 언제 합니까?”
그러자 이 과장이 뭔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흐흐 흘렸다.
“각 잡고 있지. 요새 황혁수 그 새끼 안절부절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거든. 이길재가 연락이 안 되니 불안하겠지. 가장 적기에 날려버릴 거다. 성대하게.”
“…뭐, 너무 질질 끌다 헛발질이나 마세요.”
“이걸 내가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걱정 마라. 완벽하게 할 테니까.”
이 사람도 성격 나오는구만. 난 픽 웃으며 그를 지나쳐 걸었다.
“그럼 저 갑니다. 뒤처리는 부탁드릴게요.”
“벌써 가냐? 요새 뭘 그렇게 바빠?”
그러게. 좀 한가해져도 될 것도 같은데 이상하게 일을 만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난 단어를 잠시 고르다가,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아냈다.
“음, 애보기랄까요.”
* * *
“좋아. 그럼 열 바퀴 더.”
세상이 무너졌다고 들었어도 지금의 동명처럼 절망하진 못할 것이다.
“모, 못 일어….”
“일어나. 내가 베이비시터인 줄 알아? 난 네 응석 들어주러 온 거 아니다. 못 하면 나 그냥 갈 거야.”
“으이씨이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시 발을 놀리는 것을 보니 녀석도 천상 스포츠맨이었다.
거의 종이인형처럼 트랙을 도는 동명을 보며 나는 하품을 했다.
트레이너의 [안목]에는 여러 기능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인간의 한계치를 꿰뚫어보는 것이다.
놈에겐 불행이겠지만, 나는 몸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인간을 쥐어짜낼 수 있었다.
그리고 동명은 아직 저 10바퀴에 추가로 5바퀴는 더 뛰어도 될 것이었다. 그리고 저걸 다 뛰고 온다면….
[안목]이 이번에도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