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115화 (115/164)

<재능이 자꾸 늘어 115화>

13. 너희들의 앞에서 - 5

* * *

그날 밤, 전화만 스무 통은 한 것 같다.

나는 뭔가에 쫓기듯이 전화기를 붙들고 새벽 내내 원장실을 지켰다.

그러나 달빛이 샛별의 쨍함에 밀리고 마침내 어스름에 잠길 때까지 세상은 이변 없이 고요했다.

원장 쌤은 뭐랄까, 기계 부품처럼 사는 사람이다.

완전품이 아니라 부품이란 점이 포인트다.

한낱 톱니바퀴에게 컨베이어 벨트의 전원을 올리고 내릴 결정권이 없듯, 마기철이란 사람이 본인의 삶을 다루는 태도 또한 꼭 그러했다.

삶이라는 거대한 운행에 복무하는 부품.

정해진 매뉴얼을 경전으로 삼고 엄격하게 엄수하는, 어떤 수동적인 처세가 삶의 전반에 배어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규칙과 약속에 한해선 정말 얄짤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 보육원아들은 하나하나가 혼돈의 자식들이라, 원장 쌤의 엄격주의와 얼추 밸런스를 맞춰 간신히 사람으로서의 구색을 맞춘 게 아닌가 한다.

아니었다면 이 집구석은 옛적에 무법지대가 되었을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원장 쌤이 약속을 무단으로 어긴 데다 연락 두절인 상황은, 내게는 완전한 비상사태로 비쳤다.

날 진정시킨 몇몇 정보들이 없었다면 아마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응? 나한테는 한동안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운다고 했는데? 그래서 연락 안 될 테니까 거래 건에 대해선 이 선생하고 직접 얘기하라고…….”

“언제요?”

“글쎄. 어제 저녁인가? 그쯤? 왜?”

보육원에 납품하는 김 아저씨를 붙들어 물어보니 그런 대답이 돌아온 것이었다.

“뭐 이상한 낌새는 없었어요? 뭔가 평소랑 목소리가 달랐다든가. 누구한테 강요받아 하는 말처럼 들리진 않던가요?”

“응? 전혀? 허허. 그건 상상도 안 되네. 마 선생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 얼굴에 그 목소리일 거 같은 사람인데.”

“……그건 그러네요.”

보육원을 싹 돌아서 다른 직원들을 수소문해 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일이 생겼다고 일일이 전화로 전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도 이런 일이 종종 있어서 이상한 기색이라곤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게 모두의 공통된 증언이었다.

‘……그럼 왜 나한테만 말하지 않았지?’

나한테 전화하려는 그 순간에 배터리가 나가 버렸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상만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경산. 깊은 지하. 설계도에도 명시되지 않은 은폐 공간. 아무래도 수용소가 연상되는 좁은 방들. 오카리나의 두 번째 조각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인과가 있어 우리 보육원의 원장실에 이어진단 말인가.

“……아아, 모르겠다.”

“……으으, 모르겠네.”

혼돈의 한탄은 나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양동명의 탄식은 어제의 앓는 소리와는 좀 달랐다. 애당초 오늘은 나부터가 정신이 없어서 고문, 아니 체력 단련이 평소처럼 빡빡하지 않았다.

“넌 또 왜 그래?”

“어, 응? 어어. 아냐. 어제 네가 낸 문제가 어려워서. 응, 그래서 그래.”

“……그러냐?”

이렇게 속 읽기 쉬운 놈도 드물겠네.

거의 온몸으로 ‘나 거짓말하고 있소’하고 외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양동명을 지도하는 일은 이젠 반쯤은 취미의 영역이었다.

근데 얘가 본인 사생활로 고민하는 것까지 내가 알게 뭔가. 원장 쌤 일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거 같은데.

난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응? 어, 진짜?”

“그래. 나도 오늘은 집중이 영 안 되네. 내일 보자.”

“…….”

근데 이상하게 이놈이 우물쭈물하는 게 아닌가. 내가 눈살을 찌푸리니 녀석이 과할 정도로 화들짝 놀란다.

“뭐야? 그렇게 나한테 굴려지고 싶었냐?”

“아니, 그것만은 진심으로 아니야.”

“그런 거 같네. 그렇다고 정색할 것까진 없잖아.”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으으.”

정색하다가도 순식간에 쫄보로 회귀하는 게, 이놈도 오늘따라 텐션이 이래저래 맛이 갔다.

오늘은 그냥 훈련이고 뭐고 건너뛰라는 징조인가.

“……저, 한열아.”

“응?”

그 순간 그는 어설프게 그린 소묘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에선 용기와 망설임이 아슬아슬하게 길항하며 일 초에 몇 개씩의 감정이 흘러지나갔다.

몇 초의 시간이 어쩌지도 못한 채 우리 뒤편으로 도주해 버렸다.

“……아냐. 아무것도.”

“싱겁기는. 그럼 내일 보자.”

“어어, 그래.”

그것으로 끝.

아마 평소의 나였다면 세심하게 그의 상황을 간파했을 테지.

그러나 이때의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살짝 고장이 난 상태였다.

난 복잡한 마음을 품고 교사를 정처 없이 걸었다.

이럴 때 나만의 버릇이 있다.

의도적으로 생각을 지우는 것이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생각하고, 몸이 이끌리는 대로 움직인다.

그렇게 정신을 반쯤 빼 둔 채로 다니던 와중, 돌연 불협화음이 내 귀에 직격했다.

그냥 발걸음을 돌렸어도 될 텐데, 난잡한 소리들에 사로잡히기라도 한 듯 더 안쪽으로 따라 들어가게 됐다.

뭐랄까, 스스로도 잘은 모르겠지만, 조금은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라흐마니노프의 [음감]을 얻은 뒤, 나는 세상이 온갖 쓰레기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소음공해다.

저 지붕에 떨어진 물소리는 G에서 4분의 3만큼 플랫 된 소리다. 방금 지나친 바람 소리는 E와 F를 오가면서 가끔은 겹치는데, 미묘하게 배음을 벗어난다.

이 환풍기 소리는 A 음계가 옥타브를 오가면서 울리는데, 하나는 G#에 가깝고 하나는 Bb에 가까워서 아-주 거슬린다.

둔감한 귀에게는 그냥 ‘소리’이겠으나.

Rank B급의 재능 충만한 귀는 이걸 다 음의 배열로 받아들인다.

세상에 이토록이나 안 어울리는 소리들이 층간 소음을 참아 가며 이웃으로 지내고 있음을, 나는 알아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것이 자연음이라면 참을 만하다. 그건 그냥 어쩔 수 없이 나는 소리니까.

그러나 ‘인공의 소리’가 철딱서니 없이 뭉쳐 있는 꼴은 도통 들어 줄 수가 없다.

난 풀숲 뒤편에 앉아서, 건물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밴드사운드를 잠자코 들었다.

[음감]을 얻기 전의 나였다면 멋지다고 생각했겠지만-.

“……구려.”

완곡한 표현이었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요양원 할아버지들이 트림하는 소리를 모아서 리믹스를 해도 이것보단 낫게 할 자신이 있었다.

“드럼은 자기애에 취해 있잖아. 박자는 계속 절면서 영문도 모를 필링을 집어넣지 말라고. 베이스는 대체 뭐냐. 줏대가 없는 거야 생각이 없는 거야. 드럼을 따라갈 건지 자기 박자에 맞출 건지 결정해. 기타는 졸면서 치는 건가? 아님 앰프에다 술이라도 뿌렸어? 소리가 뭐 이렇게 휘청거려?”

“보컬은?”

“아아, 보컬은 그중 가장 최악이지. 명색이 Radiohead의 Creep이잖아. 근본이 찌질한 놈이 찌질한 말을 하는 노래라고. 근데 보컬은 멋지게 부르려고 발악을 하네. 감정을 잡는 포인트부터가 글러먹었어.”

“보컬 음색은 나쁘지 않지 않아?”

“음색 자체는 훌륭해. 근데 저 근본 없는 겉멋은 뭐냐고. 섹시 강박증에라도 걸린 건가. 혀가 아랫도리에 달렸다고 살짝 착각해 버린 거 아냐?”

“말이야 쉽지. 고치기가 어려우니까 아직 저 모양이야. 어떻게, 고칠 방법이라도?”

“그러니까 나라면…… 응?”

근데 나 누구랑 얘기하는 거지?

뼈마디에 기름때가 낀 듯 고개가 끼기긱- 돌아갔다.

거기엔 퍽 익숙한 얼굴이 미소를 가득 품고 있었다.

“안녕?”

“으앗!”

그린 듯이 정석적인 엉덩방아.

“……수림 선배? 거기서 뭐 하세요.”

“나 애들 먹을 간식 샀다가 돌아오는 길이지. 그 말 똑같이 돌려줘도 돼?”

“안 됩니다.”

“거기서 뭐 해?”

“안 된다니까요.”

난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전에 경산 페스티벌에서 무대 설치 건으로 조우한 바 있던 김수림 선배였다. 수준급의 베이시스트에다, 우리 학교 밴드부의 캡틴이기도 하고.

그녀가 날 보며 짓궂은 미소를 흘렸다.

“혀끝이 날카로운 것이 왕년의 나를 보는 거 같네. 날 원망하기는커녕, 본심으론 멘토로 삼고 싶었던 거 아냐?”

“……아니, 면전에 대고 말하지는 않을 거거든요. 선배랑 달리요.”

“흐응.”

“그 의미심장한 표정 뭡니까. 걱정 안 하셔도 부외자는 이제 꺼져 드립니다아-.”

“온 김에 들렀다 가.”

“예?”

그녀가 두 손 가득한 비닐봉지를 쓱 들어 올렸다.

“아아 무거워서 어깨 빠질 것 같은데. 지나가던 힘 센 남자애가 도와주지 않으려나.”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선배.”

“에잇, 말 참 많네.”

그러더니 내 품에 비닐봉지를 강제로 안기고는 자긴 빈손으로 털레털레 앞서 걷는 게 아닌가.

난 어쩔 수 없이, 봉투를 한아름 들고 그녀를 따라가야만 했다.

‘……진짜 오랜만이네.’

그만둔지 꽤 됐으니, 전생의 시간을 제외해도 퍽 오랜만이었다.

“……봉투만 두고 바로 갈 거예요.”

“그러지 말고. 와서 애들한테 독설 한바가지 퍼부어 주고 가는 건 어때? 들어 보면 알겠지만 얘들 상태가 심각하거든.”

“안 되죠. 슬로우 핸드 이한열한테 그런 말 들으면 다들 수치스러워서 자살해 버릴 거라고요.”

슬로우 핸드Slow hand는 본래 기타의 거장 에릭 클랩튼의 별명이다.

물론 에릭 클랩튼에게는 반어법이지만 나에게는 진담으로 쓰였다는 점만이 다를 뿐.

“그래?”

“그리고 밴드부원들도 저 별로 안 반길 테니까요.”

“음, 그건 아닐 거 같은데?”

“아니-.”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 부실 앞까지 당도했다.

그녀는 내 망설임 따윈 싹 무시하고 문을 지체 없이 열어 재꼈다. 심지어 쩌렁쩌렁 소리치며 광고까지 해 댔다.

“얘들아! 누가 왔는지 좀 봐봐!”

어찌나 목청이 큰지 그 시끄러운 앰프소리마저 단숨에 제압해 버렸다.

두 손이 짐으로 봉쇄되지만 않았다면 당장 얼굴을 감쌌을 것이다. 아오.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오! 한열이 아니야?”

“와 오랜만이네!”

아는 얼굴도 있었고, 아예 신입 회원인지 처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의외로?’

의외로 왜 왔냐며 타박하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 그만둔 밴드부였다. 스스로 나왔을 뿐 사실상 방출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들어와! 들어와! 이야 이게 얼마 만이냐?”

“……찬익 선배, 잘 지내셨어요?”

안면이 있던 선배 한 명이 내 어깨를 감싸며 안으로 맞아들였다.

“나야 뭐 똑같지. 넌 어째 얼굴이 폈냐? 성형이라도 했어? 아님 수림이 잔소리에서 벗어나서야 포텐이 터진 건가?”

“하하…….”

쓸데없이 말 많은 건 어째 똑같으시네요…… 라는 속내는 물론 감추어 두었다.

대신 말해 줄 사람이 있으니까.

수림 선배가 나와 찬익 선배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 더럽게 말 많네. 찬익 선배는 옆으로 꺼져 봐요.”

“이년이 선배 알기를 여전히 개똥으로 아네.”

“실력이 똥이니까 똥으로 알지. 드럼 연습이나 좀 하고 선배 타령을 하든가.”

“그건 싫다! 왜냐면 귀찮으니까!”

둘이 투닥거리는 사이, 안면이 있던 부원들이 하나둘 와서 내게 안부를 묻고 돌아갔다. 대부분이 형식적이었지만, 그래도 왜 왔냐며 따지는 식의 대접은 없었다.

……내 생각과는 달리.

‘……그냥 내 자격지심이었던 건가.’

나 따윈 아무도 반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라고 하지 않는 건가요?”

“응? 왜?”

“……그냥요. 책임감도 없이 멋대로 그만둔 거니까요. 그리고 제 세션은 완전 엉망이었으니까…… 다들 절 싫어할 거라 생각했어요.”

“뭘 그런 생각을 다 했냐?”

찬익 선배가 탁자에 음료수를 꺼내어 세팅하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야 모른다만 난 너 안 싫어했는데. 아니, 좋아하는 쪽이 가까웠으려나.”

“왜요?”

“네가 수림이 욕을 다 들으니까? 상대적으로 나까지 비난이 안 돌아왔단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다시 돌아오는 건 어떠냐. 요즘은 고막에 딱지 얹겠어.”

“그러니까 연습을 하라니까요!”

수림 선배가 찬익 선배의 등짝을 짝-! 후려쳤다. 실로 찰진 것이 많이도 후려쳐 본 솜씨였다.

“악!! 야, 이거 봐라 한열아. 모르긴 몰라도 등짝에 굳은살 박였을 거야. 아오. 어째 얜 등짝 스매시에도 그루브가 있냐 어떻게.”

“더 맞아야 돼 아주.”

“……하하.”

생각해 보면, 그 시절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날 떠나보냈는지, 지금의 내 기억력으로도 확실히 떠올릴 수 없었다.

왜 그랬을지, 이젠 알 듯했다.

그때의 난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거다.

누군가는 자책했고, 누군가는 하잘것없는 이유에서라도 날 그리워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은 관심도 없었겠지.

밴드부에서의 나날이 날 선 시선으로만 기억되었던 건.

그저 그때의 내 안에 가시가 많았고.

내가 나밖에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허무하네. 고작 이런 거였나. 고작.’

그때 수림 선배가 내 옆구리를 툭 찌르며 말했다.

“우리 학교 축제 때 공연할 레파토리 연습 중이거든. 근데 이번 1학년 애들 실력이 들쑥날쑥이라 좀 불안해. 네가 듣고 좀 판단해 봐. 어떻게 해야 할지.”

“왜 저한테…… 제가 뭘 안다고.”

“기억 안 나? 너 손은 느린 주제에 귀는 날카로웠잖아. 나 네 말 듣고 참고한 적도 꽤 있었는데?”

“예에? 설마요.”

그런 적이 있던가?

모르겠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었다.

있더라도 어쩌다 던진 말이 운 좋게 들어맞은 경우일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음악적 통찰력이 있었을 리 없다.

“진짜라니까.”

“……예예. 일단 들어 보긴 할 게요.”

그때 드럼의 필인과 함께 다음 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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