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116화 (116/164)

<재능이 자꾸 늘어 116화>

13. 너희들의 앞에서 - 6

그때 드럼의 필인과 함께 다음 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기타의 메인 리프를 듣자마자 무슨 곡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존 메이어인가요. 제목이 아마도 Belief였나…….”

“오, 그다지 유명한 곡은 아닌데 바로 아네.”

젊은 싱어 송 라이터로서 미국 내에 압도적인 지지층을 자랑하는 존 메이어(John Mayer).

특히 기타 키드들에게는 거의 현재진행형의 전설로 추앙받는 기타히어로이기도 하다. 당연히 나도 그중 하나다.

“명색이 팬인데 당연히 그 정도야 꿰고 있죠. 근데 축제에 연주하기엔 좀 처지지 않아요? 지루해질 거 같은데.”

“존 메이어가 지루할 리 없잖아.”

“아뇨, 그게 아니라…….”

이걸 뭐라 해야 하나.

음.

앞서 에릭 클랩튼의 별명이 슬로우 핸드라고 말했던가.

그 에릭 본인에게 ‘거장’이라 인정받고 그 호칭을 물려받아, 오늘날 슬로우 핸드 주니어(Slow hand Jr.)라 불리는 이가 바로 존 메이어다.

단순히 기타를 잘 친다는 뜻이 아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과거 로큰롤과 블루스의 시대를 가장 현대적으로 구현, 계승했다는 찬사인 것이다.

그의 기타는 블루스의 녹진함이 맛깔나게 살아 있으면서도 결코 구태의연하지 않은, 세련된 핸드 필링을 자랑한다.

현대와 과거가 가장 이상적인 지점에서 맞물린 음악. 그게 존 메이어의 앨범에 담긴 사운드다.

그래서 존 메이어의 공연은 아무리 느린 템포의 곡이라도 지루하지 않다.

느리면 느린 대로 쫀득하고, 완벽한 터치로 감정을 쥐락펴락한다. 듣고 있으면 그야말로 사로잡히게 된다.

물론 노래 자체도 좋지만은, 그 압도적인 흡입력은 당연히도 이 젊은 거장의 역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내가 존 메이어 빠돌이라 말이 길어졌는데,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이렇다.

제대로 커버할 생각이 없다면 시도도 않는 게 낫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괴, 괴로워. 나한테 이런 걸 들려주지 마!’

감히 감상을 말하건대, 음,

차라리 불경을 반주로 틀어 놓고 반야심경을 외는 게 더 흥겨울 듯하다.

Belief는 템포만 느릴 뿐,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싱코페이션과 펀치감 있는 기타 사운드 덕에 내내 긴장감이 유지되는 곡이다.

특유의 ‘밀어붙이듯’ 전개되는 곡 구성은, 특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거의 락 사운드에 가깝게 텐션을 터뜨리며 절정을 맞이한다. 속도가 전부가 아니다.

근데 저건 뭐냐.

동요를 장송곡 스타일로 편곡한 건가.

가장 중요한 기타는 그냥 술에 물 탄듯하고, 보컬은 버터에다 마요네즈 말아먹는 목소리로 곡에 치근대고 있었다.

기타 등등 세션들도 모조리 수준 미달이다. 긴장감 따윈 하나도 없이 축축 처지기만 했다.

밀고 나가는 곡이 끌려가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기승전결은 어디 갔냐.

같은 리듬이 반복된다고 그냥 주구장창 똑같은 것만 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이건 정말 이건…….

“어때?”

“……음. 으으음. 아, 아아주, 드, 들을 만, 하, 하네요.”

“넌 정말 여전하구나. 거짓말은 참 드럽게 못해요.”

수림 선배가 실실 웃었다.

뭐가 웃긴 거지. 아니 이유야 어쨌든, 저 폐기물 앞에서도 웃음이 나오는 이 작자가 그냥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솔직한 평을 말해 봐.”

“마음을 비우고 들으면 괜찮을지도 모르는 어떤 평행 세계가 관측되는 천문학적 확률의 기적을 노려볼 만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연주였습니다.”

“뭐어? 꺄하하하핫!”

일부러 목소리를 죽이고 귀엣말을 했는데 이 여자는 눈치도 없이 깔깔 웃고 자빠졌다.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기에 나는 팔자에도 없는 변명을 해야만 했다.

“하하…… 내 개그가 요즘 물이 올랐는지라.”

“끄악! 끄아악! 크히히히힛! 아, 아, 나 죽어. 웃겨 죽는다고! 끄하하핫!”

결국 같이 웃자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람들에게 대충 미래에 유행할 꽁트 몇 개 던져 주어 사태를 가라앉힌 다음에야 난 풀려날 수 있었다.

물론 김수림 이 양반만은 나한테 못 받은 사채라도 있는지 옆구리에 끈덕지게 붙어서 종알댔다.

“왜 솔직하게 말을 못 하니? 너네 구리다! 너무 구려서 구더기도 너네 앞에선 질색할 지경이라고 왜 말을 못 해?! 홍길동이야?”

“…….”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아 그렇군! 내가 큰 잘못을 하고 있어!’하고 받아들이겠는가.

뭣도 모르는 놈이 괜히 홍대병 걸려서 나댄다고 하겠지.

그런 독설은 김수림처럼 실력이 뒷받침 되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전유물인 것이다.

나 같은 무능자에겐 빈말도 일이다. 난 숱한 사회생활로 단련된 낯짝과 혀를 최대치로 놀리며 말했다.

“와아. 잘 들었습니다. 연습 많이 하셨네요.”

“야, 쟤네 다 너랑 동갑이야. 말 편하게 해.”

“……하하. 친해지면 그럴 게요. 친해지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지.

어쨌든 내 필사적인 빈말이 듣기 좋았는지 연주자들은 표정들이 밝게 폈다.

특히 보컬은 우쭐함과 몸에 배인 자뻑이 콧대의 각도로 표현되고 있었다. 제발 빈말이란 걸 알아주세요. 제발요.

눈치를 의무 교육 차원에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따위의 바람은 1초 만에 헛되게 증발되고, 어쩔 도리도 없이 다음 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음. 고막이 사망했습니다. 조의를 표해 주세요.

더 이상의 묘사는 중복일 테니 생략하도록 하자.

“후후. 고문 받는 표정이네. 좋아, 좋아.”

“……대체 뭐가 좋다는 겁니까. 드디어 자신의 취향을 발견해 버린 겁니까. 정녕 그쪽으로 가시는 겁니까? 예에에……?”

“뭐라는 거니. 나만 괴로운 게 아니라는 사실이 좋은 거야. 그동안은 혼자 참고 듣는 게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알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다음 곡은 나도 들어가니까 그나마 들을 만 할 거야.”

“오.”

수림 선배가 허리를 툭툭 치며 일어섰다.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녀라면 자신만만할 자격이 충분히 있지.

“이거 우리학교 관현악단이랑 콜라보하는 거거든. 우리가 다 편곡한 거니까, 듣고 솔직 감상 부탁해.”

“네. …… 일단은요.”

“큭큭.”

김수림을 비롯한 새 연주자들이 세션을 새롭게 채웠다.

대부분의 구성이 선배 층이었다.

외부 심포니와의 합주이니 당연히 부내에서 실력이 출중한 사람만 뽑았을 것이다.

메인 스피커에서 녹음된 현악기 연주가 흘러나오고, 그걸 가이드로 삼아 드럼이 비트를 맞춰 나갔다. 베이스가 깊게 치고 올라왔다.

둥, 두둥-.

편곡이라니 뭔가 했는데, 과연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노래였다.

‘아리랑인가.’

멜로디와 정조는 대체적으로 정선 아리랑를 기둥으로 하되, 부분부분 다른 아리랑에서 차용해 온 완전한 새 편곡이었다.

전통 민요를 심포니와 밴드 사운드로 채우다니.

어울리긴 할까 싶었지만, 듣다 보니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멜로디 배치와 구성이 능수능란해서 큰 이질감 없이 기존의 처연한 정조를 잘 표현해 냈다.

물론 [라흐마니노프의 음감]의 기준을 들이댄다면 한참 모자라겠지만, 나도 고등학교 부활동 수준에서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수준이다.

다만.

‘밴드 사운드가 지나치게 이질적인데.’

한정식을 잘 차려 놓았는데 한가운데 까르보나라가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 기분은 연주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근데 그렇게나 내 표정이 적나라했나? 문득 고개를 드니, 의미심장한 표정의 수림 선배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녀가 손목을 살살 까닥이며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이리 와봐.

오라면 가드려야지.

난 깊은 한숨과 함께 그녀 옆에 섰다.

“어땠어?”

“……음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빈말 듣고 싶었으면 너 대신 내 애인 불러다 앉혔지.”

“오, 그래서 남친이 있으시겠다?”

“세상 어딘가엔 있겠지. 아무튼, 그래서?”

“음…….”

난 잠시 생각했다가,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소리 죽여 말했다.

“베이스 라인은 좋았어요. 적당히 묻히고. 적당히 받쳐 주고. 선배가 직접 짜신 거죠?”

“그래? 괜찮았어?”

“아마도?”

“뭐야 그 미적지근한 물음표는?”

불과 반년 전의 내가 들었다면, 아마 다른 건 몰라도 그녀의 베이스 라인만은 끝내줬다고 평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내 귀는 쓸데없이 고귀해지고 말았다…….

분명 벤츠에 앉아 있는데도, 기구하게도 내 엉덩이는 롤스로이스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난 그 간극에 적응해야만 했다.

“좋았다는 뜻이에요. 음, 맞아요. 베이스는 좋았어요. 곡의 맥을 잘 잡고 충실하다는 느낌이었죠. 어차피 협주니까, 더 튀면 곤란할 테니, 괜찮은 타협점이었겠네요.”

“……그래?”

그러나 그녀는 뭔가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이쯤 되니 나도 내 주둥이를 통제하기 힘들었다. 내 뇌의 일부분이 혓바닥으로 이사해서 거기서 아예 살림을 차리기 시작했다.

“네. 달리 말하면 베이스만 좋았어요. 선배들이시니 연주 실력 자체는 괜찮았지만, 편곡이 기존의 테마와 묻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 혹시 이거…….”

“응?”

“편곡 작업은 관현악단에서 다 마치고 우리 쪽에 그냥 던진 건가요? 너희 파트는 너희가 알아서 해, 이렇게?”

수림 선배가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확해.”

“그럼 그렇지. 그러니 이렇게 따로 노는 느낌이죠. 선배야 실력이 있으니 감으로 어떻게 따라가는데, 나머지는 갈팡질팡한다는 느낌이에요. 어디는 지나치게 맞춰서 있으나 마나하고, 어디는 곡의 테마를 오판해서 팍 튀어 버리고. 애당초 곡 자체가 그래요. 만들 때부터 밴드 사운드를 고려하지 않았어. 그러니 불필요하게 덧붙인 느낌이 들지.”

“……음, 그럼 어쩌지?”

“글쎄요. 안전하게 가고 싶으면 그냥 박자 맞춰서 코드만 연주하는 게 낫겠죠. 근데 그건 또 억울해서 싫으신 거잖아요?”

끄덕임의 BPM이 두 배는 증가했다.

“맞아. 레알루다가 개짜증. 안 하면 동아리 평가에 반영한다고 해서 일단 하긴 하는데…… 이거 우리 밴드 무시하는 거잖아 완전.”

“그럼 완전히 새롭게 편곡해야죠. 더 면밀하게 사운드를 덧붙여서, 기존의 편곡을 능욕할 만큼 완성도를 끌어올리면…….”

그 순간 나는 흠칫해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좌중의 모두가 나만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누군가는 입을 다물고, 누군가는 반대로 입을 헤 벌린 차이는 있으나, 어쨌든 묵묵하기로 의사단결이 된 듯했다.

근처의 마이크가 내 말을 수음해 모니터 스피커로 쏘아 보냈음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대뇌가 혓바닥에 출장 간 상태라 나만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은 이것뿐이었다.

……내가 주제넘게 무슨 말을 씨부린 거지?

그래서 내가 수림 선배보다 편곡을 잘할 자신이 있어서 이딴 말을 한 건가?

아니라면 의미도 없는 말을 왜 괜히 지껄인 건데? 내 속의 뭔가가 울컥거렸다.

“……음.”

뇌와 혀가 동시에 아노미 상태에 놓였다.

침묵이 아프게 살갗을 찔러 왔다.

길고 길었던 몇 초의 고요는, 돌연 밴드부 문이 덜컥 열리며 종말을 맞이했다.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인 남자가 요란하게 등장했다.

“개쉐리들아 형님 왔다!! 야, 내가 누구 데려왔는지 다들…… 음? 뭐야. 분위기가 왜 상갓집이야?”

그 뒤로 평복을 입은 키 작은 남자 한 명이 따라 들어왔다. 그가 까까머리를 머쓱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 혹시 와선 안 될 상황에 등장한 거니? 내가 또 염치없게…….”

그 순간 내가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선배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실례했습니다. 저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볼게요.”

벙 찐 표정의 그들을 지나쳐 부 바깥으로 냉큼 나가 버렸다.

최대한 평범하게 걸으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잘됐는지는 모르겠다.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도망친 게 맞아서, 나는 확신할 수는 없었다.

* * *

졸업한 지 5년 차.

아끼는 동생 녀석이 대뜸 “형의 귀가 필요해!”라기에 오랜만에 들른 모교 동아리실이었다.

이젠 모르는 얼굴이 대부분이니만큼 환대까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차가운 분위기부터 맞닥뜨릴 줄은 몰랐다.

“아까 그거 뭐야. 이한열 아니었어? 그놈이 여긴 왜 왔어. 근성도 없이 도망간 새끼가.”

박재준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김수림은 여느 때와 같이, 동기의 헛소리를 완벽히 무시하고 오랜만의 내방객을 맞이했다.

“고원 선배 아니세요? 와, 되게 오랜만이네요?”

“으응. 수림이도 오랜만. 잘 지냈어?”

“아니요. 죽을 거 같은데요.”

“하하. 원래 그 자리가 그래. 민이도 세 번쯤 자살할 뻔했다더라. 근데…… 오늘 무슨 일 있어? 평소에도 분위기가 이래?”

“……하하.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서 들어오세요.”

고원은 그리운 옛터에 발을 들였다. 냄새까지도 그때로부터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하하. 이 곰팡내는 세상이 멸망해도 그대로일 거 같네.”

“그러게요. 왜 우리 선배 중엔 빵 뜬 뮤지션이 없죠. 언제 선배 덕 잘 봐서 부실 바꿀 날 안 오나.”

“나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이제 2년 차 엔지니어란다.”

대학 따윈 고사하고 바로 현업에 뛰어들어, 이제야 자그마한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 보조로 일하고 있는 고원이었다.

잘 나가는 뮤직 프로듀서를 꿈꾸고 있지만, 아직은 꿈만 꾸고 있다. 사실, 살다 보면 가끔은 꿈꾸는 것도 버거웠다.

“아, 그래서 이한열 걘 왜 왔냐니까!!”

“아, 씨. 넌 아가리에 뭘 달고 다니기에 맨날 최대 출력이냐? 좀 닥쳐주라. 그리 왜? 한열이 좀 데리고 오면 안 되니?”

이전에도 박재준은 이한열을 갈굼에 있어 수림과 더불어 쌍두마차를 굴렸던 이력이 있었다.

그 당시 수림은 지금보다 몇 배는 히스테릭했고, 박재준은 선배이자 같은 기타리스트로서 딱 내리 갈굼의 은총을 하사할 위치에 있던 것이다.

“누가 안 된다고 했냐. 아니, 언제든 데리고 와. 한마디 해서 그놈 근성을 뜯어고쳐 줄라니까. 라떼는 말이야, 메트로놈 듣다 환청 한 번쯤 시달려 봐야 아 저 새끼 연습 좀 했구나 하고…….”

“쯧쯧. 벌써부터 꼰대라니 전도유망하다, 아주 전도유망해…… 아, 선배는 커피 드세요?”

“아니, 그냥 굴러다니는 거 대충 주워 마실게. 나 더 마셨다간 혈관에서 커피색이 날지도 몰라.”

고원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근데 아까 걔는? 후배?”

“네. 지금은 ‘잠깐’ 쉬는 중이지만요…… 아. 안 그래도 재준이한테 선배 얘기는 들었어요. 저희 연습 봐주신다고…….”

“응. 뭐가 막힌다며? 근데 내가 뭔 도움이 될까 싶다. 그래 봐야 나도 햇병아리 엔지니어일 뿐인데…….”

“에이. 제가 듣는 귀가 있는데요. 현장에서 한창 날리신다고. 벌써부터 스카웃 얘기가 오간다는 말이 있던데요?”

“다 과장이지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같은 시기에 뛰어든 동기들에 비해 괜찮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자부는 있었다.

러브 콜이 심심찮게 오간다는 것도 사실이다.

귀가 좋아서 믹싱 퀄리티가 훌륭했고, 지나가듯이 의견을 낸 것이 작곡가에게 받아들여져 본의 아니게 히트 곡을 만들어 낸 경험도 있었다.

“그럼 오신 김에 다 좀 들어 주세요. 얘들아! 처음부터 싹 돌려보자!”

연주자들이 다시 악기를 세팅하는 와중, 나머지 부원들이 소파에 늘어앉아 저들끼리 뭔가를 속삭였다.

“……아까 걔 좀 건방지지 않았어요? 지가 알면 뭘 안다고. 난 선배들 연주 완전 좋던데.”

“솔직히 그 이상 편곡이 가능키나 해요? 그게 최선이지. 가만히 있으면 몰라도 중간은 갈 텐데…….”

“아까 들어 보니까, 걔 하도 못해서 그냥 쫓겨난 거라는데?”

“그런 주제에 지적질을 한 거야? 세상에. 선배, 신경 쓰지 마세요. 모르면 용감하다고…….”

딱 보니,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모양새였다.

‘아까 그 잘생긴 후배 얘긴가?’

근데 정작 얘기를 듣는 선배들은 별 대꾸 없이 피로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때 악기 세팅이 끝나고 첫 곡이 시작됐다.

그러자,

사람 좋은 동네 형 같은 분위기가 단번에 일변한다.

만약 귓바퀴에도 근육이 있었다면 귀가 사납게 치솟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부위는 그런 일에 조예가 없었으므로, 대신 동공에게 표현을 위임했다.

그러나 그건 음악가의 눈은 아니었다.

그보단 도축자의 시선에 가까웠다. 썰고 파헤친 끝에, 부위별로 가지런히 정돈해 둘 기세로 그는 음악을 고막에 받아들였다.

“…….”

한 곡.

“……음.”

두 곡.

“……뭐야, 장난하나.”

세 곡. 곡이 이어질수록 그의 눈빛이 탁해지고 입가가 푸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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