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117화 (117/164)

<재능이 자꾸 늘어 117화>

13. 너희들의 앞에서 - 7

“수림아.”

“예.”

“지금 1학년 애들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지?”

“……네. 중간에 한 번 물갈이된 적이 있죠. 못 버티고 나가고, 공연 하나 끝나면 또 우르르 들어오고…… 선배도 아시잖아요.”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잖아. 이게 뭐냐, 애들 학예회야? 아님 요양원 재롱잔치냐고. 공연 이 주 뒤라며. 그 안에 이걸…… 야, 재준아.”

이 판국에는 안하무인인 박재준조차 목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예, 형.”

“넌 나한테 애들 기본기 가르쳐달라고 부른 거냐? 설마?”

“에이, 아니죠.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해야죠. 제가 여쭤보려던 건 따로 있었어요. 저희 관현악이랑 협주하는데 그게 영…….”

“뭐야?”

“예?”

고원이 마지막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자, 수림과 재준이 바짝 긴장했다.

“……아니 됐다. 그럼 그거 연주해 봐.”

그리고 아까와 같은 세팅으로 똑같은 연주가 진행됐다.

이번엔 아까처럼 어이없다는 기색은 적었지만, 대신 불유쾌한 표정이 떠올랐다. 연주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고원은 턱을 괸 채 말이 없었다. 그러다 불쑥 입을 연다.

“뭔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는 꼰대가 지껄이는가 싶겠지만, 그래도 너네보다 몇 년은 음악 밥 먹은 사람으로서 말할게. 일학년들은 너무 엉망이라 말하기도 싫으니까 알아서들 하고. 단지…… 보컬.”

“예? 예.”

“넌 노래를 부르러 온 거냐 성대모사를 하러 온 거냐?”

“……어어. 노, 노래요.”

“넌 ‘멋있는 나’라는 이미지가 딱 잡혀 있지? 그리고 그대로 목소리를 흉내 내는 거지. 네 목소리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도리어 그걸 너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탈인 케이스야. 그러니까 모든 게 다 과잉인 거지. 알아들어? 네 혓바닥은 너무 느끼해서 그 위에다 원전을 세울 수도 있겠다고.”

“……예.”

1학년 보컬이 고개를 푹 숙이고 모기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관현악과 협주하는 아리랑 말인데…….”

고원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턱을 긁적였다.

“관현악 고문 쌤 아직도 말자 씨냐?”

“네? 네네. 사실 육아 휴직하셨다가 올해 돌아오신 거라 저희로선 처음이긴 한데…… 선배 때도 그러셨어요?”

“어. 아오. 그럼 그렇지. 그 아줌마 밴드 사운드라면 질색하거든. 골수까지 클래식 신봉자. 락이나 팝은 전부 가당찮은 외도. 뭐 그런 구시대의 찌꺼기 같은 인간이랄까. 그래서 장난 친 거야. 너네한테.”

“네에에?!”

옛날에도 똑같은 수법이었던 것이다.

완전히 꽉 들어찬 심포닉 사운드를 만들어 내, 밴드가 비집고 들어올 구석이 없도록 원천 차단한다.

그런 다음 알아서 편곡하라는 식으로 사후 통보를 하는 것이다.

밴드부는 대대로 고문이 없거나 계약직 교사들이 맡았으므로, 이런 식의 부당한 처우는 전통처럼 이어져 왔다.

“……수림이 베이스 정도만 들을 만했어. 나머지는 다 빵점이야. 이건 피겨 스케이팅이 아니야. 기교를 잘 부린다고 가산점 주는 시스템이 아니라고. 기존의 곡과 잘 얽히면서 존재감을 잃지 않고 단단히 맞서야 돼. 그러니까 이건 전투다. 이말자와 밴드부의 한 판 승부.”

늘 그래 왔다.

이렇게 클래식 골수주의자가 숙제를 던지면, 밴드부는 열정과 지식을 미친 듯이 짜내어 그에 걸맞은 해답을 내왔다.

우리도 음악을 하고 있다는 언더독의 외침인 것이다.

고원은 그 뒤로도 자잘한 평가를 늘어놓았는데, 그건 디테일만 조금씩 다를 뿐, 하나같이 이한열이 중얼거린 지적 사항과 정확히 일치해 있었다.

그러자 일 학년 한 명이 불퉁하게 묻는다.

“딱히 상관없는 거 아닌가요? 저희가 듣기엔 충분히 좋았는데…….”

“네 선배들 면상을 보고도 그딴 말이 나오는 거냐?”

“예?”

막상 연주를 한 세션들은 고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듯 모두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

“넌 음악 왜 하냐? 남들한테 보여 주려고 해? 아니지. 내가 만족해야지 진짜 내 음악이다. 달리 말해, 날 납득시키지 못하면 그건 그냥 멍청한 소리에 불과하다고. 넌 네 선배들을 뮤지션이 아니라 단순한 BGM 취급하고 있어. 자각은 있냐?”

“……그, 그럴 생각은 없었어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아까 그 후배가 정확히 뭐랬는지는 모르겠다만, 뭐든 간에 뮤지션이면 그딴 식으로 반응하면 안 된다. 그 이상이 가능하냐고? 그런 건 왜 묻고 있어?!! 만족이 안 되면 가능하든 안 하든 덤벼들어야지!!”

고원의 목소리가 점층적으로 커지다 결국 고함에 이르기까지 튀어 올랐다.

“그리고 말이야, 음악 좀 못하면 지적도 못하나? 그딴 썩어빠진 생각을 할 거면 당장 귀가해서 엄마 젖에나 매달려 있어. 너넨 그깟 자존심 때문에 평생 그 주변을 못 떠날 테니까.”

-아까 들어 보니까, 걔 하도 못해서 그냥 쫓겨난 거라는데?

-그런 주제에 지적질을 한 거야? 세상에. 선배, 신경 쓰지 마세요. 모르면 용감하다고…….

그것은 일전에 후배가 지껄인 비아냥에 카운터를 치는 일침이었다.

고원은 연주가로서는 썩 대단찮았다. 몸치여서 손발은 느리고, 박자는 늘 한 박자씩 어긋났다.

그래서 빠르게 세션 뮤지션을 포기하고 음향 엔지니어와 작곡 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그 선택이 우연히 잘 들어맞았지만, 세션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그만의 주홍글씨가 된 것이었다.

후배들의 말들은 우연찮게도 그의 역린을 스쳤다.

“……그럼 어째야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새로 편곡을 해. 머리를 모아. 지혜를 짜내. 이게 짜고 짜서 나온 최종본이라고? 음악에 그딴 건 없어! 무조건 말자 씨를 주먹코로 만들어 주겠다는 각오로 달려들란 말이야. 만족하지 못할 거면, 차라리 협주 따윈 포기해!!”

“……어, 뭔가 실용적인 조언 같은 건 없나요?”

그러자 고원은 최초의 협조적인 태도 따윈 온데간데없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런 건 너네가 알아서 해야지.”

“잉……?”

“난 6년 전에 이미 이말자 퀘스트를 통과했다고. 내가 왜 너희를 위해 수고를 감수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가끔 와서 평가는 해 줄게. 하지만 시험은 너희 스스로 극복해야지. 다들 뮤지션이잖아? 뮤지션 안 할 거면 파워코드나 즁즁즁 긁어 대시든가.”

공연까지 이 주 남짓한 시간.

밴드부에게 헬 난이도의 퀘스트가 떨어졌다.

그리고 고원은 지난 몇 년 동안 퀘스트를 제대로 통과한 기수 따윈 없음을 비밀에 부쳤다.

바로 그의 선배들도 그러했기 때문에.

또한 아직 누구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키를 쥔 누군가가, 부실로부터 급속도로 멀어지며 오늘의 이불킥에 관한 다각도의 고찰을 하고 있음을.

* * *

“……아. 어제의 이불킥은 정말 환상적이었지.”

난 어제의 예술적이었던 킥을 떠올렸다.

내 지론이랄까.

이불킥. 그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당연히 흑역사를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훌륭한 이불킥이란 그 자체로 빠져들 요소가 있어 사고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고 유도의 방향성, 깊이, 복잡성 따위가 그 이불킥의 질을 판가름한다.

그 논리적 귀결로서, 어제 나는 이불로 제기차기를 시도해 보았다.

아닌 밤중에.

이불을 차서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목적으로, 공기 역학과 중력 가속도, 위상 수학으로 ‘정확한 킥’을 정밀 계산.

‘정확한 킥’의 수행을 위해 관절의 유연성, 근육의 탄력, 균형감, 박자 감각, 몸의 모든 기능이 총 집결.

걸렸을 때는 ‘살짝 신비로운 방식으로 이불을 터는 중이었다.’라는 변명을 준비.

[역발산기개세]라는 공전절후의 버프 능력과 인류 최고의 지성을 대차게 낭비하고 있다는 죄악감까지.

정신과 육체, 심리적 자산까지 퍼부어가며 행해진 이불킥은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찰나를…….

그만하자.

(여러 의미에서) 혼돈의 밤을 지내고, 다음 날 나는 반사적으로 양동명과의 훈련장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쓸데없는 회상에 빠져 있던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양동명이 약속 장소에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야 이놈. 뭔 일 있나?”

전화를 해 봐도 받질 않는다.

요새 트렌드인가 보다. ‘당신, 관심을 끌고 싶다면 전화를 씹어라.’ 책으로 내도 되겠어. 효과는 내가 절절이 체험하는 중이므로 추가 입증도 필요 없다.

“이느므스끄가 금희 늘 씁읏으…….”

그렇게 15분을 환장하는 주전자 꼴로 버텼으나 여전히 답신 하나 없다.

만나면 그놈 머리칼을 죄다 뽑아야지, 아니, 그놈은 빡빡이잖아, 그럼 핀셋으로 뽑아야 하나, 따위를 생각하고 있던 때, 저편으로부터 인기척이 슬그머니 전해져왔다.

“야! 너 왜 이렇게 늦었……!!”

거기 있는 자는 양동명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숨소리만 듣고 암수 구분이 가능한 내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녀석은 양동명이 아니었다.

“……양해명? 네가 여기 웬일이냐?”

양동명의 쌍둥이 형제, 양해명은 날 빤히 바라보더니 깜빡이도 없이 본론에 진입했다.

“동명이는 오지 않을 거야.”

“뭐? 어째서…… 아니 그전에 그걸 왜 네가 말하는데.”

“합의를 봤거든.”

“무슨 합의?”

“이제 그만 좀 포기하라고 설득했지. 그래서 설득이 됐고, 형제끼리 합의를 마쳤다. 동명이는 너 볼 면목이 없다면서 날 대신 보냈고. 그게 전부야.”

“…….”

양동명이 선발 투수 자리를 순순히 포기했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선발을 내려놓는다는 건, 양동명에게는 야구 자체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놈에겐 욕심도 있고 열망도 있었으니까.

스스로 그 빛나는 향상심을 꺾는다.

그건…….

순간 난 어제 양동명과 헤어지기 전 그의 기이했던 행동거지를 떠올렸다.

“너네, 무슨 일 있었냐?”

“무슨 일이야 계속 있었어. 동명이는 그걸 이제야 깨달았을 뿐.”

“알아듣게 말해.”

“됐어. 말 안 할래. 이쯤하자고. 나도 널 대신할 투수는 찾았으니까. 너도 이제 우리 형제에게 신경 쓰지 마라. 그만 좀…….”

“싫다면?”

“그만 좀!!”

양해명이 버럭 소리를 치더니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 멱살을 잡아 올리는 것이었다.

“……동명이 그만 좀 자극해. 너 같은 말도 안 되는 재능은,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걔한테 미련을 만든다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당연하지. 그놈이 그딴 걸로 절망할까 보냐. 걘 벽이 높을수록 눈을 빛내고 쫓아가는 놈이라고! 내 형제니까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럼 그렇게 놔두면 되잖나.”

“웃기지 마. 넌 모르겠지……! 절대 손에 닿지 않을 텐데, 다 알고 있는데도, 결국 포기할 수 없어서……! 계속 쫓기만 하는 사람의 심정 같은 걸……! 너 같은 천재가!”

“알 리가 없다고? 내가?”

난 픽 웃고는, 내 멱살을 쥔 놈의 손목을 꾸욱 잡았다.

열등자의 심정 따위 내가 알 리가 없다고?

감히 누구한테 그딴 말을 지껄이는 건가?

전생에서, 어쨌든 난 마흔 해 넘게 살았고 심장을 뛰게 했다.

그래. 심장 박동 같은 건 외면해도 어느 순간 느끼고 있는 것이지. 난 그 거지 같은 기분을 평생 동안 만끽하고 살았다.

그런데 이 햇병아리가 감히 나한테?

가소로움을 넘어 어이없기 짝이 없네.

“……큭.”

양해명의 손목을 쥐고 틀었다. 그가 신음하면서 내 손을 뿌리쳤다.

“……어쨌든 내 말은 이게 끝이야. 우리 형제한테 이제 신경 쓰지 마. 이걸로 다…… 원래대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 원래대로.”

그 중얼거림은 단순한 혼잣말이라기보다, 어떤 주문이나 제언처럼 느껴졌다. 옅은 광기까지 느껴지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뒷걸음 쳐 사라졌다.

“……하.”

미안하지만, 너흰 접근법을 실수해 버렸어.

날 멀리하고 싶었다면 양동명이 직접 와서 사정을 설명했어야 했다. 근데 뭐? 너네가 날파리 쫓는 태도로 꺼지라면 내가 꺼져 주어야 하나?

기뻐하도록.

별로 너네 사정 따위 궁금하지 않았는데, 네 한마디로 내 관심이 거기 붙어 버렸다.

말 한마디로 날 좌우하는 일은 드물거든. 기념으로 삼아도 좋다.

이렇게 된 이상 너네 사정 따윈 무시해 주지.

양동명 너는 예정대로 선발이 되어 주어야겠다. 아, 네 의지 따윈 상관없어. 강제로 멱살 잡고 일으켜서라도 널 마운드 위에 세울 테니까 그렇게 알아라.

그렇게 머릿속으로 사악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전화가 웅 울려왔다.

[LS 이 과장]

“……예. 전화 받았습니다.”

-어, 나다.

“네, 무슨 일이신데요?”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 전해져왔다.

-은지은. 발견해서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내일 입국하는 대로 바로 병원으로 보낼 생각이다. 목숨에 지장은 없으니 너무 걱정은 말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