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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자꾸 늘어-118화 (118/164)

<재능이 자꾸 늘어 118화>

13. 너희들의 앞에서 - 8

* * *

소독약 냄새가 먼저 나를 반겼다.

생각해 보면, 소독약만큼 병원과 잘 어울리는 것도 없다.

소독이란 청결과 건강을 위한 것이지만, 본질을 따지고 보면 균과 바이러스를 박멸하거나 추방시키는 작업이다.

죽음을 환부에 뿌리는 일이다. 동물은 그래야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바깥을 철저히 죽여 두어야 겨우 살아갈 수 있을 때가 있다. 드문 일도 아니다. 크게 상처 입은 자는 흔히들 그런다.

새하얀 병상에 누워 있는 한 소녀는 내게 정확히 그렇게 보였다.

그 자체로 깊게 파인 흉터가 거기 있었다. 지나치게 독한 소독약을 뿌려 두고 자기 안에 틀어박힌 가련한 몸뚱어리였다.

“……자는 겁니까?”

“그래. 발견 당시에도 딱히 제정신은 아니었다 하더군. ……그런 표정 짓지 마. 심각한 질환은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다만-.”

이 과장이 얇은 이불을 쓱 들어 올렸다.

가녀린 팔은 멍으로 가득해 살색을 찾기도 힘들 정도였다.

“……저건.”

“주기적으로 마약을 투입했다. 시간을 들여서 길들일 생각이었겠지. 심신이 지친 상태라 깨어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이길재 그 새끼 경찰에 인도했습니까?”

“그래, 며칠 전에…… 어이. 마음은 알지만 그건 안 돼.”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아시고?”

“탈옥시켜서 두들겨 패고 싶다는 얼굴이었는데.”

“점집 하셔도 되겠네요.”

왠지 입맛이 쓰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피 맛이 입안에 흥건한 거였다.

어금니를 꾹 깨물고 있었더니 잇몸이 아주 만신창이었다. 순간 내 힘을 깜빡해 버렸다.

그런가. 지금의 나는 무심코 내 몸을 박살 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정도로 통제 불가 상태였던 것이다.

숨을 가늘게 쉬어 가며 머리를 식혔다.

“더 빨리,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자책하지 마. 그동안 넌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연달아 해 왔다. 거기서 더 분발하는 건 불가능했어.”

“……그랬죠.”

“그리고 이번 납치는 의심스러울 정도로 깊게 은폐돼 있었어. 심지어 정보가 교란되기도 했지. 왜 이렇게까지 했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이길재를 잡기 전까진 꼬리도 잡을 수 없었잖아. 네가 제일 잘 알잖나.”

“…….”

실제로 그랬다.

지은의 모친인 이정숙이 진상에 도달하기까지 몇 년이나 걸렸음을 생각해 보면, 신속하다고 평해도 좋겠지. 보통은.

……하지만 내겐 회귀자로서의 어드밴티지가 있다. 내 기준은 보통과 달라야만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게 최선이었는지는 더 따져 봐야 할 문제였다.

‘나라면 더 잘할 수…….’

동부파를 궤멸시키는 일보다 탐색을 우선했다면. 단서를 찾는데 좀 더 골몰했더라면.

내가 입양이라는 시답잖은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그런 수많은 ‘만약’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됐어. 다 끝난 문제잖아. 이길재는 철창에 갇혔고 동부파는 와해 직전이다. 저 소녀의 악몽은 이제 끝이야. 네가 구한 거다.”

“……예.”

이 과장이 내 어깨를 툭 두드리며 말했다.

“보호자들이 와 있는데 만나 볼 테냐?”

“지은이 부모님들이요? 벌써?”

“너보다 한참 먼저 왔었다. 어디서 대기하고 있는 줄 알았지 뭐야. 둘 다 눈물 줄줄 뽑다 지금 실신해서 옆방에서 요양 중.”

“……헐.”

안 그래도 둘은 만나둘 생각이었지.

옆방에 들르니, 누가 부부 아니랄까 봐 둘이 똑같은 자세로 젖은 수건 하나씩 눈 위에 얹고 누워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은형욱 씨가 수건을 빼꼼 들고는 날 확인했다.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당신은?”

“오랜만이네요.”

“허? 허허…… 당신이었군요. 그래, 당신이었어…….”

벌떡 일어서더니 내 손을 맞잡아 오는 것이었다. 퉁퉁 부운 눈두덩 사이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순간 당황해서 이 과장에게 입술 모양으로만 물었다.

-제 얘기 안 했어요?

-펑펑 울기만 해서 말할 틈이 없었지.

-아하.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당신이 우리 가족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크흑…… 으허어엉……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음, 이러지 마시죠.”

“제가…… 제가 어찌 은인 분께…….”

아니 내가 불편해서 그러니까 그만 하시라고.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정숙 씨는 짧은 순간 내 정체를 알아채고는, 무시무시한 분위기로 접근.

그 기세 그대로 남편의 두상을 옆으로 쓱 치우더니, 대신하여 날 탁-! 잡으셨다.

좀 유별난 점이라면, 잡은 부위가 손이 아니라 두 뺨이다. 그녀는 그대로 팔을 끌어당겨 나를 품에 포옥 안았다.

더 면밀히 표현하자면, 엄청난 곳에 내 안면이 ‘파묻혔다.’

“……웁.”

여담이다만, 그녀는 나이에 비해 한 미모 하신다.

미래에 잘나가는 유투버가 될 수 있던 것도, 물론 컨텐츠의 질이 우수해서지만, 그녀의 압도적인 동안의 영향이 없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은형욱 씨랑 나란히 있으면 단란한 가족보다 범죄의 현장이 연상될 정도라면 설명이 되겠지.

게다가 아담한 체구임에도 특정 부위가…….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도록 한다.

“학생 내 아들 안 할래요?”

다짜고짜 입양 제안을 받았다.

당연히 거절했지만, 내 거절은 실시간으로 거절당했다.

“……웁우웁. 웁웁.”

“아이. 너무 좋아서 말도 못 하는 거 봐. 좋아서 숨이 그렇게 거친 거죠? 우후후. 엄마라고 불러 봐요. 엄마-.”

“우우웁 푸하. …… 여사님. 진정…… 웁. 웁!”

“……여, 여보. 은인께서 괴로워하시잖아.”

“당신은 조용히 해 봐요! 이 기세로 밀어붙이면 절륜한 아들 하나 생기는 거야!”

“아니, 단어 하나가 잘못된 듯한.”

“우후후. 옳지. 그대로 고개만 끄덕이면 된답니다. 이 기간에 가입하시면 엄마의 따듯한 밥상이 매일 무료……! 사은품은 절세미녀의 프리 허그!”

아, 그랬지.

이 여인은 저세상 텐션과 안드로메다 개념을 동시 부착했던 그 은지은의 모친.

그 정신세계를 어디서 물려받았나 싶더니, 과연 원조가 여기 있었다.

어쨌든 산소 두절로 인한 착오로 무심코 수긍해 버리기 전에 탈출하기는 했다.

그 경위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만.

“……제안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보통은 가족이 있다고 상정하는 게 상식…….”

“어머? 고아 아니었어요? 그렇게 보였는데?”

“예?”

“세탁 상태는 좋은데 다림질은 안 되어 있고. 근데 교복은 꽤 비싼 브랜드. 언밸런스하게 양말은 또 동대문에서 산 거 같네.”

“…….”

그녀가 볼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에 데자뷰가 생길 뻔했다. 이정숙의 트레이드마크랄까.

유튜브 영상에서, 생각이 좀 길어질 때마다 그녀는 저런 포즈를 취하곤 했다.

“근데 신발은 또 명품이네요. 그새 로또라도 당첨 됐어요? 돈다발을 주웠나? 돈 없다 갑자기 생긴 사람들한테나 이런 복장이 발견되거든. 헉, 설마 재벌의 사생아였다는 반전? 으음…… 그런 거면 입양시키기 좀 까다로우려나…….”

“……네. 고아 맞으니 그만 하셔도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아들 해요. 네에? 이런 기회 또 없다니까. 완전 떨이야 떨이.”

“죄송하지만 전력으로 거부하겠습니다.”

“아니, 왜?”

그 집에 가면 왠지 장롱에서 외계인이 튀어나올 거 같거든.

“지금 보육원이 좋거든요.”

“쳇.”

“……쳇?”

“모녀덮밥을 마다하다니 사내가 아니네요!”

“아니, 그게 남편 분 있는 앞에서 할 말…….”

그러자 옆에 있던 은형욱 씨가 내 어깨를 턱 짚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우리 집 여자들은 이해하기보다 적응하는 게 빠릅니다. 전 이미 적응했으니, 은인께서도 빨리 적응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 미친 집안에서 빨리 멀어지고 싶어졌다.

* * *

어쨌든.

입양 소동이 어떻게 정리되고 분위기가 차분해졌을 무렵, 난 둘에게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제안을 꺼냈다.

“……정보 조직입니까? 흔한 개념은 아니네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큰 규모의 기업에서나 운용되는 게 보통이죠. 여기 이 과장님도 LS그룹에서 그런 일에 종사 중이시구요. 그 부분만 딱 떼어 온다 보시면 됩니다.”

“……언론사는 아닌 거죠?”

“전혀 아닙니다. 일반 대중을 고객으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대중에게 밝혀지지 않을 때에나 가치를 발휘하는 정보들을 취급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 중 ‘그런 정보’가 뭘 뜻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진실은 공공재다? 일반론일 뿐이다.

현실은 그런 식일 수 없고, 정보를 선점하고 한 발 앞선 자들만이 승리해 왔다.

“정보를 판매하는 겁니다. 꼭 돈이 아니어도 좋죠. 권력자에게서 권력을 사고, 판사에게서 판결을 살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정보들로 장사를 해 볼 생각입니다.”

내 머릿속에는 이후 30년 동안 벌어질 크고 작은 일들이 저장돼 있다.

내 개입으로 미래도 변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정보전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음은 당연하다.

물론 내겐 ‘미래의 결론’만 있다.

발로 뛰어 가며 직접 증거를 취합하고, 그 ‘미래의 결론’이 과연 진짜인지 만들어진 건지 확인할 사람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 정보들이 필요할 ‘고객’을 찾아내는 게 이 구상의 가장 큰 난점이다.

현 시점의 세력 구도는 어떠한가.

이 정보가 어디서 가장 크게 점화될 것인가. 누구 손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일 것인가.

요컨대, 내 정보를 누가 가장 비싼 값에 사 줄 것인가……

그걸 제대로 하려면 꽤 견실한 조직과, 종합적인 정세 분석이 가능한 유능한 인재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난 이 둘이야말로 적임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말은 쉽습니다만 그게 생각대로 될지는…… 대충만 들어도, 학생 한 명과 전직 형사만으로 가능할 일은…….”

“그리고 미모의 주부도 있어요!”

“……아니, 이게 제일 모르겠네. 왜 제 아내가 선결 조건인 겁니까? 그냥 집안일 하던 주부인데요?”

“그냥 주부라니. 미모의 주부라니까.”

“아 쫌.”

난 픽 웃었다. 당연히, 당신보다 그 집안일 하던 주부가 유능하니까 그렇지.

“아까 얘기 듣고 딱 삘이 오던데요. 이분 보통이 아니라고. 아니, 오히려 재능을 썩히고 있진 않을까 의심이 됩니다만.”

“아니, 머리 좋은 건 알지만요 이게 그것만으로…….”

“그런 것까지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가능할 일이냐고 물으셨습니다만…….”

깍지를 낀 손을 입가에 얹고 그들을 지그시 쳐다봤다.

“제가 조직 하나를 통째로 말아먹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만 떠올려 보시죠. 더 이상의 자격 증명은 필요 없을 텐데요.”

“…….”

은형욱 씨는 내 시선을 피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니, 별로 의심하는 건 아니었구요. 그리고 은인께 도움이 될 일이라면야…… 예, 전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단지, 불법적인 일은…….”

“물론, 그 부분은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아무 불만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자리에 동석시킨 이 과장을 등장시켰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분은 LS의 보안팀을 이끄는 분이십니다. 제가 조직을 본격적으로 완비하기 전까지는, 이분 밑에서 정보전과 프로파일링의 기초를 교육받으세요.”

“이상용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예.”

이건 이상용 과장을 포섭할 당시부터 얘기를 해 둔 부분이었다.

언제까지고 그에게 의존할 생각은 없으나, 바로 그렇기에 뽑아먹을 때는 확실하게 뽑아먹어야 하겠지.

이 과장 정도면 선생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다.

그리고 그때까지 말없이 내 얼굴만 말끄러미 바라보던 이정숙 씨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아들이 싫으면 사위는 어때요? 나 장모도 잘 할 수 있는데.”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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