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자꾸 늘어 122화>
13. 너희들의 앞에서 – 12
노래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세상은 폭우의 징후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방종하던 풀벌레도 오늘만은 얌전했다.
대지는 아스팔트를 꼼꼼히 여며 입었다. 비바람의 척후쯤 되어 보이는 돌풍은 맹인처럼 되는 대로 세상을 치받았다.
세계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 와중에 들려온 노래는 생뚱맞아서 거의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연탄에에~ 맛잇게 구워 생선생선~ 날 그렇게 보지마아~ 난 너를 기필코 구울 테야~ 맛있는 연어연어~”
인정한다.
어쨌든 존재감만은 확실했다.
절세 명창과 거장의 필치만이 이목을 끄는 게 아니다. 그 반대 지점, 보다 폭력적으로 우리의 시청각을 침범해 오는 반동적 돌발행위도 있으니, 이를 전문 용어로 어그로라 하였다.
미묘하게 어긋나는 음정.
지나치게 쨍쨍대는 음색.
노래에 자꾸 부딪치는 기타 반주.
너무 고차원적이라 이해를 포기해 버리고 싶은 가사.
그 와중에 가사 전달력은 쓸데없이 훌륭해서 듣기 싫은 걸 고막에 콱콱 박아 버린다.
저 노래는 그야말로 완벽한 설계 하에 빌드 업 된 어그로의 완성체 같은 것이었다.
무시하는 것조차 거부해 버리는 이 강력한 노래는 자연히 내 시선까지 앗아 갔다. 어떤 놈이 이토록 정성스럽게 소음을 만들고 있나 궁금한 것도 있었다.
“꼬리뼈는~~ 우려 우려 엄청 우려~~”
아담한 체구의 여자애가 열심히 깽깽대고 있었다.
기타를 매고 있다기보다, 거의 기타에 매달려 있는 수준. 맞지도 않는 비트를 탈 때마다 사이드 테일도 부지런히 흔들거렸다.
작고 귀엽고 맹꽁해서 뭔가 보듬고 싶어지는데, 하필 그놈의 노래가 지랄 맞은 말티즈처럼 단단히 버티고 서서 호감도를 실시간으로 튕겨 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지나치는 행인 중 누구도 멈춰 서서 노래를 들어 주지 않았다. 아주 적극적으로 무시당하고 있었다.
‘……언제 끝나나.’
여기서 뭐 뾰족하게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듣기 싫다면 내 쪽에서 자리를 피하면 될 일이지만, 그래도 방금 앉았는데 그러자니 뭔가 진 기분이 들어서 꾸역꾸역 앉아 있었다.
버티다 보니 다행히 끝이 찾아오긴 했다.
그나마 플레이 타임은 5분 남짓이었던 모양.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처럼 한 곡에 30분씩 했다면 결국 112에 신고했을지도 모르겠다.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이 거기 오빠! 잘 들었으면 동전 하나라도 내고 가! 그냥 가지 말고! 언니. 내 노래 어땠어? 눈 피하지 말고오-.”
노래가 끝나도 민폐군.
싫어하는 스타일임에도 아주 욕할 수 없던 건, 저 비슷한 짓을 나도 했었기 때문일까.
회귀 직전의 나는 뭔가에 씌인 게 분명했다.
소녀가 지나가는 강아지에게까지 구걸을 하고 그 모두에게 깔끔하게 무시당하길 반복하다, 결국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던 나까지 그녀의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동공이 반짝.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그녀가 종종종 다가왔지만, 난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난 안 봤어. 지나가. 그냥 지나가라고.
“학생-.”
“…….”
“학생 내 노래 잘 들었어? 어땠어? 감상 좀 들려주지 않을래? 응? 응? 응?”
거의 미저리급의 질척거림이었다.
애써 하늘로 시선을 돌려보지만, 그녀는 깨끔발까지 해 가며 내 시야를 막아섰다.
“전 귀머거리라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뭐야 잘 듣고 있었네.”
“전 아무것도-.”
“그래서? 어땠어? 아무도 내 노래 안 들어 주니까 피드백이 없잖아. 빨리 학생이라도 감상을 들려줘 봐.”
이쯤에서 나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관종은 상대해 주면 그대로 늪에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까먹은 것이었다.
난 홧김에 픽 내뱉어 버렸다.
“안 들어 준 게 아니라 도망친 거야. 너무 엉망이라 엮이기도 싫었던 거지.”
“오오오!”
“……?!”
“학생이 내 질문에 대답해 준 첫 리스너야! 나, 나, 이런 대접 처음! 완전 감격! 보답으로 한 곡 연주해 줄까?”
“보답으로 제발 좀 다물어 줬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왜 다짜고짜 반말이야? 내 절반밖에 안 되어 뵈는 꼬맹이가.”
의도적으로 날을 세워 반응했는데, 반응 자체를 받아 본 게 처음이라는 게 진짜였는지 그녀는 노상 싱글벙글이었다.
“나 이래 봬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거든? 합법 로리라고 들어 봤니? 어린애는 못 모를 수도 있지만 내가 제법 수요층이 많은…….”
“……알았으니까 그만 해.”
“응. 정 걸리면, 음, 돈 주면 그때부턴 고객님이니까 존댓말 해 줄게.”
“웃기지 마. 돈이라면 내가 받아야지. 정신적 가학 혐의로 손해 배상 청구를 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와아.”
“……뭐 반응이 그래?”
“너 음악 하는 아이구나?”
두근, 하고 심장이 움찔댔다.
“……아닌데?”
“응? 아니야? 이상하네. 보통 이렇게까지 치근대면 귀찮아서라도 동전 하나 던져 주고 떨궈 내려 들거든. 고객 됐으니 이제부터 내가 갑이다, 그런 위치 규정을 하는 거지.”
“…….”
“근데 음악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은 대개 안 그런단 말이지. 음악에 금전 가치를 매기는 일에 예민한 거지. 수준 미달이니까 백 원도 주기 싫다는 거잖아? 역으로 말해, 그건 내 음악을 고민해서 듣고, 정당한 가치를 매겨 줬다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까지 해석이 되나?
궤변 같은데 묘하게 설득이 되어서, 난 무심코 그녀와 시선을 맞추게 됐다.
그녀가 내 손을 감싸듯이 탁- 쥐었다.
“고마워!”
“……응?”
“내 음악을 귀 기울여 들어 줘서 고마워! 걔도 누군가 들어 줘서 행복했을 거야!”
처음으로 그녀를 바로 보았다.
실로, 맑은 웃음.
앳되었지만 분명한 어른의 얼굴이었다.
세월의 멍에처럼 박혀든 잡티를 화장으로 가리지도 아니했다. 그녀의 맑음은 아마, 때 타지 않은 아이의 것이 아닌, 얼룩을 성실히 지워 온 삶에서 풍겨 오는 것이리라.
그녀는 홀로 웃었으나 그 미소는 외롭지 않아 보였다.
우리 모두가 살다가 뒤로 젖혀 두고, 그러다 아예 잊어버려 두고 떠나 버린 것들을, 그녀는 주섬주섬 주워서 같이 살아왔을 것이다.
헤진 곳을 서로의 넝마로 기워 가며, 웃을 때는 그 모든 버려진 것들과 함께 웃는다.
내게는 그런 미소처럼 보였다.
“……정말?”
“그럼. 진짜로.”
“그래. 그러냐…….”
그러므로 그녀에겐 좋은 음악도 나쁜 음악도 없고, 그저 음악만이 있었다.
씁쓸해진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어쩌면 나와는 영원히 섞일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 노래는 너무 구렸어.”
“끼햐아하핫! 완전 돌직구네요!”
그녀가 이마를 탁 치며 왈가닥의 웃음을 뿜어냈다.
저 감성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구만-. 더 엮였다간 나까지 이상해질 것 같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수고하셔. 난 갈라니까.”
“얘, 얘, 그러면 내 곡은 어땠어?”
그렇게 헤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언제 기타까지 챙겨 왔는지, 그녀는 아예 내 옆구리에 달라붙을 기세로 쫄래쫄래 따라오고 있었다.
“아 아까 말해 줬잖아. 엉망이라고. 음정이나 발성은 그냥 둘째치고. 보아하니 네 노래와 음역대도 안 맞아. 그리고 네 음색으론 그냥 동요가 딱이야. 그 이상을 시도하니까 무슨 텔레토비가 메탈리카 부르는 거 같다고.”
“아니, 아니이. 그거 말고. 나 노래 별로인 건 나도 알아.”
“얼씨구. 알면서 그러셨어요? 그래서?”
“내 가창력 말고 곡 자체를 봐 달라고. 어때?
“그거야…….”
나는 그녀가 부른 노래를 머릿속에서 재가공해 보았다.
말해 두건대, [라흐마니노프의 음감]은 적색이 아니라 청색 탤런트다.
요컨대 귀가 물리적으로 좋아진 게 아니라, 음을 사고하고 다루는 인지능력이 향상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나라면, 머릿속에 시퀀서 프로그램을 깔아 둔 것처럼 가상으로 음악을 구상해 볼 수 있다.
대충 이렇게-.
음정을 교정하고, 음색을 가다듬고, 특히 가사 부분은 그냥 멜로디로 치환하고, 그녀가 놓쳤을 뉘앙스들을 매만져서 끼워 맞춰본다.
음.
……어라?
‘……좋은데?’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엄청 좋다.
물론 제대로 연주된 걸 들어야 분명해지겠지만, 내 앙상한 구상력만으로 좋은 게 느껴진다면, 작곡의 질 자체는 월등히 훌륭한 것이다.
그 이상의 열악한 노래에 가려져 본질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잠깐. 미래에 이 비슷한 노래가 히트 친 적이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노래는 비슷한 것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망했다는 것인데…….
짐작컨대, 이 곡이 괜찮은 편곡과 어울리는 가수를 만난다면, 뜬다는 보장은 못해도 소수의 충성도 높은 팬들은 반드시 생겼을 것이다.
전생에선 그런 조짐조차 없던 걸로 봐서, 그냥 기획 단계에서 묻혔거나 정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음반 시장이야 운빨이 심하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리 있는 가정을 해 보자면…….
‘……혹시 얘가 스스로 부르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초전 박살 난 거 아니야?’
왠지 그런 것 같다.
싱어송 라이터로 밑바닥부터 성공하겠다는 헝그리 인디 정신에 입각하여 버스킹과 홍대 공연만 주구장창 돌다가 그대로 지구의 먼지가 되었다는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미디 찍은 것만 다른 사람에게 들려줬어도…….
“너, 이거 네가 작곡한 거야?”
“당연하지. 어때? 괜찮은 거 같아?”
“……흠.”
그렇다고 좋다고 순순히 말해 줄 순 없겠지.
그러면 그 사실만 믿고 의기양양해서 더 적극적으로 전생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어쩐지 그렇게 두고 싶지 않았다.
나도 욕심이 난 걸까. 이런 훌륭한 곡이 누구의 조명도 받지 못하고 잊힐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려면 주제 파악을 시켜 줄 필요가 있겠군.
미안하지만, 당신에겐 플레이어의 재능은 없다. 당신의 노래는 타인이 불러야만 진가를 발휘하리란 걸 직시해 주어야…….
“어라, 비 온다.”
빗방울이 팔뚝에 툭 떨어졌다.
비는 그동안 꿍꿍 참아왔던 것을 한 번에 쏟아 내듯 순식간에 그 부피를 늘려 갔다.
“앗. 아앗. 아, 안 돼! 내 기타아아!”
그녀가 기타 케이스를 감싸 안았지만, 그녀 체구로는 가려지는 면적보다 아닌 부분이 더 많았다.
그녀가 황급히 회피처를 찾다, 급기야는 나를 발견하곤 돌진해 왔다.
“잠깐 빌릴게!”
그러곤 내 티셔츠를 들어 올리더니, 기타와 함께 그 밑으로 쏘옥 파고들어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한테 폭 안기는 자세가 됐다.
아직 서민 감성이 남아 있는 나로선, 아, 티셔츠 늘어나면 또 못 입는데, 따위의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가자고! 간이 우산!”
“……이런 미친.”
뻔뻔함이 도를 넘으니 화도 나지 않았다.
걷기 엄청 불편한 구조였기에, 난 그녀와 기타를 통째로 안아 들고는 빗속을 내달렸다.
옷 밑으로 살갗을 맞대고 있는데도 야릇한 감정 따윈 정말 1도 들지 않았다.
보육원 떼쟁이 동생들을 운반하는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여자 엄청 가볍네.
그렇게 뛰고 뛰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내 무의식이 의도한 건지 뭔지, 실용 음악 학원과 악기사, 합주실이 세트로 붙어 있는 건물이었다.
“……선생님, 수건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악기사 할아버지가 물을 뚝뚝 흘리는 날 마뜩잖게 바라보더니, 안으로 들어가서 갈아입을 옷까지 건네주었다.
심술쟁이 할아버지 같은데 의외로 친절했다.
그 와중에 악기 구경을 하는 여자를 보며 난 도끼눈을 치떴다.
“……넌 엄청 뽀송뽀송하네.”
“응. 우산이 성능이 좋았거든.”
“좋겠다. 아주 좋겠어. 응?”
“으헤헤. 아무튼, 온 김에 여기서 네 악기 하나 사가자.”
“응? 왜?”
“왜냐니? 나랑 합주 맞춰 보려고 여기로 온 거 아니었어? 그럼 악기가 있어야지.”
아무 합의도 없었는데 혼자서 얘기를 막 진척시키고 있었다.
근데 왠지 그 방향이 묘하게 내 뜻과 부합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내 실력도 아직 허접하지만, 그래도 내게는 [손재주]가 있었으므로 이 여자보단 월등히 낫다 자부할 수 있다.
대충 실력 차를 보여 주면…….
“오와, 여기 완전 언밸런스하네. 대부분이 입문용 악기인데, 그 와중에 엄청 고가가 막 끼어 있어. 있지, 너는 펜더파야 깁슨파야?”
……정말 매사에 힘 빠지게 하네. 이 여자.
“……기타리스트면 그냥 닥치고 둘 다 있어야지. 뭘 가리고 있어. 둘 다 훌륭한 악기고 성향만 다른 건데. 우펜더 좌깁슨 몰라?”
“그래도 호불호라는 게 있잖아. 너는 어느 쪽이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대답은 금방 나왔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