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124화 (124/164)

<재능이 자꾸 늘어 124화>

13. 너희들의 앞에서 - 14

* * *

녹음 후 쉬는 시간.

현타가 찾아왔습니다.

‘……내가 방금까지 뭘 한 거지?’

괜히 우울한 하루였었다.

그 와중에 들려온 수준 이하의 버스커는 모종의 도전장처럼 느껴졌었다.

완식하면 공짜인 10배 매움 불닭이었고, 먼저 나가면 왠지 지는 것 같은 사우나 속 눈치게임이었다.

백해무익임을 알면서도 물러설 수 없는 인터넷 관종과의 키보드 파이팅이었으며, 시도해 봐야 돌아오는 건 아침밥상의 파탄임을 알면서도 감행하고야마는 부부싸움이었다.

말하자면, 오냐 너 잘 걸렸다, 근본부터 뜯어고치고야 말겠다, 대충 그런 오기였던 것 같다. 뒷생각 따윈 하지도 않았지.

그랬다.

곡이 아깝다는 건 사후 변명일 뿐, 그냥 홧김에 달려들었다는 게 더 정확한 심리진단이라 하겠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진지하게 데모곡을 완성시키고 방방 뛰고 있는 내가 있었다.

아니, 근데 그도 그럴 게, 완성본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좋다.

실력이나 장비의 한계로 녹음 퀄리티는 다소 조악했지만, 그런데도 마냥 좋았다.

여기에 프로급의 세션과 가수를 붙이고 제대로 된 믹싱 작업을 거치면…… 대체 얼마나 더 좋아질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내 손으로 이 노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문득 생경해졌다.

그러자,

당혹감이 폭탄을 든 테러범처럼 방문하고, 급격하게 흥분이 가라앉았다. 내가? 나 따위가? 재능도 없으면서? 그런 자조의 말들이 맥동하는 심장을 차게 식혔다.

물론 그건 의식적인 자조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랜 세월 몸에 배인 습관에 가까웠다. 이한열이라는 역사서는 이런 고양감을 모조리 ‘무모한 자멸의 전조’로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내 흥에 취해서는 안 되는 인간이라고 오랜 전통으로 정해져 있었다.

“……바보 같네.”

“그러게. 엄청 바보 같은 얼굴이네.”

민꼬가 내 혼잣말을 허락도 안 받고 받아쳐 왔다.

뭔가 울컥하여 노려봐 주었다. 자학과 피학은 내용이 같아도 기분의 더러움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

“날 바보 같다고 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앗, 그 말도 바보 같아. 바보다 바보오.”

“이 꼬맹이가 진정 전쟁을 선포하는구나.”

이걸 접어 버릴까 구겨 버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녀가 불쑥 다가오더니, 손을 뻗어 내 뺨을 감쌌다. 완벽한 타이밍의 선제공격이었다.

난 아무 반응도 못하고 그녀의 포위공격을 허락하고 말았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해?”

뭐라 답하기도 전에, 그녀가 내 뺨을 쭈욱- 늘였다 다시 짜부라뜨렸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내 구강구조가 형편없이 성형됐다. 마치 내 입이 만들어 내는 그 모든 변명들을 헝클어뜨리듯이.

“인생 한 번인데 좀 즐겁게 살아보라고. 아직 젊으면서 세상 다 산 표정이나 하고는.”

“으에어으우아이으.”

“으응. 내 말이 다 맞다고? 그래그래. 이 엄마가 다 안단다, 어린 양아.”

난 그녀의 겨드랑이를 받쳐 들고, 짐짝을 옮기듯이 반대편으로 운반해 앉혔다. 반대편으로 돌아온 뒤에야 나는 투덜거릴 수 있었다.

“네 기준으로 함부로 말하지 마. 말대로 다 쉽게 되면 세상에 누가 고생하나. 난 너랑 달라. 너처럼 마음 가는 대로 즐길 수 있는 인생이 아니라고.”

“그래서? 뭐가 그렇게 고생인데?”

“…….”

그러게. 뭐가 그렇게 고생일까, 나는.

순간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는데, 기이하게도, 그중 가장 큰 덩어리는 동명과 해명 형제의 모습이었다.

왜일까.

그렇게까지 정이 들었던 걸까? 그새에? 잘 모르겠다. 그 정도까지 가깝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왜, 이렇게, 이 순간에.

“즐거웠지?”

“……뭐?”

“오늘 말이야. 즐거웠잖아. 노래도 만들고 연주도 하고-. 녹음은 그중 특히 재밌지. 내 음악의 1호 팬은 분명 나인데, 정작 연주할 때는 집중하느라 제대로 못 듣잖아. 그래서 내 녹음본을 듣고 있으면 뭔가 각별하지. 부끄럽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근데 그 이상으로 뿌듯하고.”

“…….”

“어때? 재밌지 않았어?”

재밌었다.

재밌어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실 녹음이란 건 참 잔인한 작업이다. 비유하자면 노 메이크업으로 카메라와 조우하는 것이다. 혹은 체중계의 엄중한 선고를 직시하는 순간이다.

요컨대 녹음은 내 삑사리와 부족한 실력까지 비타협적으로 기록한다. 자신의 흠결을 여과 없이 만나는 일은 일종의 고문이다. 일종의 자뻑 방지 장치랄까.

그러나 나는 즐거웠다.

아프면서도 묵은 고름을 짜내듯 시원했다. 형편없다고? 그런 거야 당연하다. 알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맞닥뜨린 내 기타는 우스꽝스럽지도 혐오스럽지도 않은, 그저 평범히 부족한 음악일 뿐이었다.

그 사실이 나는 더없이 기꺼웠을 것이다.

“……그래, 꽤, 재밌었지. 아마.”

“그런데 왜 아닌 것처럼 굴어? 뭐가 그렇게 무거운 거야?”

“나는…… 구하지 못했으니까.”

말하고도 스스로 깜짝 놀랐다.

난 의도하지 않았는데, 대답이 스스로 의지를 갖추고 밀고나온 듯했다. 하지만 더없이 정확한 대답이란 걸 직감했다. 엉켜 있던 감정이 올올이 풀리며 정갈한 문장이 되었다.

난 최철현을 구하지 못했다.

그의 뜻대로 수학 경시대회도 우승했고, 친하던 지인도 조우하고, 마지막 소원까지 들어 주었지만, 그럼에도 그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애초에 내 손 밖에 있는 문제였다. 내가 아무리 유능하고 돈이 많아도 그에게 좋은 가족을 선물해 줄 순 없었다. 내게 혈연이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늘 폭력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이 일련의 사건은 내 안의 멍처럼 남았다.

왜 우린 이렇게 되어먹었는가.

우릴 버린 자들은 우리의 불행을 발판 삼아 힘차게도 살아가는데, 정작 버림받은 우리는 어째서 이 불법유기죄의 정범들을 희구하며 살아야 하는가.

이 불공평한 천칭은 대체 어디서 제작되었는가.

“그래서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런 건 아니지만…….”

조금 다르다.

이 순간, 왜 양 씨 형제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답지 않게 왜 그들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는지도.

‘아버지한테 인정받으면 이제…….’

‘……가족이 다시…….’

‘동생에게 양보를…….’

버림받은 아이들이 버린 자의 등 뒤를 필사적으로 뒤쫓고 있었다.

빌어먹을 일이 아닌가.

정작 비난받아 마땅할 사람을 착각하고, 상처 받은 자들끼리 서로를 상처주고 있는 그 광경에서, 나는 속이 뒤집어지는 구역질을 느꼈던 거다.

그러나 보고서를 받아본 뒤부터는, 이것이 역시나 내가 어쩔 수 없는 혈연의 문제임을 깨달아버렸다. 난 이번에도 무력했다. 그 무력감이 내 발목을 잡아채어 깊고 질척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이 무력감을 어쩌지 않고서는, 이 진창에서 난 진정으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미안.”

그때 민꼬가 뜬금없이 사과를 해 왔다.

뭔가 싶어 돌아보니 그녀는 열없는 얼굴로 시무룩해져 있었다. 텐션이 추락한 게 처음이라 난 무심코 놀라 버렸다.

“……뭐, 뭐야.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네가 갑자기 그러니까 당황스럽잖아.”

“그냥. 뭔가 미안해서.”

“뭔 소리야. 네가 미안할 건 또 뭔데.”

“세상에는 말이야, 즐거운데도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이 있거든. 순순히 행복해질 수 없는 아이들, 행복이 낯선 아이들 말이야. 그래서 미안해. 먼저 산 어른으로서, 행복에 값을 지불해야 하는 너희들에게 미안해. 당연하게 행복하지 못한 세상을 물려주어서 미안해.”

“…….”

그녀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말하고 있었다.

눈은 드럼세트 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너머를 짚어 보고 있을 것이었다.

버려져서 아프고, 아프면서도 자기 탓을 하는 가련한 너희들을, 그녀는 하나하나 공평하게 보아주려는 듯 눈매를 부드러이 누그러뜨렸다.

멋쩍어서 괜히 한마디 해 보았다.

“꼬맹이가 멋진 척은…….”

그녀가 히- 웃으며 날 돌아보았다.

“하지만 한열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내가 무슨. 난 그냥 돈 많고 힘 세고 잘생기고 전교1등인 평범한 학생일 뿐이야.”

“오오미, 엄마친구 아들도 열폭해 버리겠는데요.”

“그럼에도 무능하다는 게 포인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 따윈…….”

최철현에게 그랬듯이, 난 결국 양 씨 형제들에게 아무것도 못 해 줬으니까. 재능을 얻고 아무리 갈고닦아도 무능할 때는 무능한 것이다.

“에잇! 쫑알쫑알 말 참 많네!!”

그녀가 벌떡 일어서더니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바로 기타를 매고 칠 준비를 마친 것이었다. 고막을 시작으로 온몸으로 소름이 뻗어 나갔다. 멈춰! 요구사항은 뭐든지 들어 주겠다! 집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라고!

“잘 들어. 넌 내 노래에서 가능성을 본 대단한 남자라고! 말하자면 쓰레기더미에서 금괴를 찾아낸 초월적 안목의 소유자란 말이야! 그런 네가 못할 일이 없을 리 없어!”

“!!”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다니!

그러나 태클을 걸 수는 없었다. 상대는 폭탄을 둘러매고 스위치에 엄지를 올려놓은 상태인 것이다.

“……어, 그래. 알았으니까 그 기타는 내려놓지 않으련?”

“그런 의미에서 한 곡 들려주겠어. 제목은 ‘층간소음 뿌셔뿌셔’ 잘 들으라고!”

“그만둬!”

그러나 파멸의 문은 열리고 말았다.

그녀의 입구멍을 통해 지옥의 사자들이 꾸역꾸역 넘어와 인류문명을 침공했다. 기타의 괴성은 합주실을 지옥의 생태계로 테라포밍하고 있었다. 난 꼼짝없이 궁지에 내몰려 농성을 해야만 했다.

“으하아핫-! 네 발소리만 소리냐! 내 목청도 강려크강려크! 어디 한번 자웅을 겨루자 층간소음! 아하! 뿌셔뿌셔 막 뿌셔!”

그렇게 고막의 안정을 사수하고 있자니,

뭔가 아무래도 좋아졌다.

뭐랄까, 저런 녀석도 노래를 부르는데 세상에 안 될 일이 뭐가 있을까하는, 이래도 될까 싶을 방향으로 동기부여를 불러일으키는 음악이었다.

픽 웃다가, 실실 웃다가,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심지어 잘 들어 보면, 이 와중에 노래 자체는 명곡이다.

저놈은 작곡은 물론이고 그걸 망가뜨리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내가 분발할 수밖에 없잖은가. 안 그러면 저 곡도 영원히 발굴되지 않을 테니.

그래서 나는 일렉기타를 둘러매고 그녀 옆에 섰다.

우리는 합주를 했다.

그녀가 흘린 리듬을 주워 담고, 앙상한 목소리에 장식을 덧붙였다. 음정이 나가면 보태주고 흥이 과잉되면 템포를 누그러뜨렸다.

나는 두터운 잡동사니 안에서 기어코 아름다운 것을 발굴해 내었다. 그녀는 발굴된 것을 기꺼이 내주었다. 우린 제법 합이 맞는 파트너였다.

그렇게 엉망진창이고, 더없이 사랑스러운 합주가 길게, 길게 이어졌다.

세상의 그늘지고 구석진 곳곳마다 닿도록,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가,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아파하는 너희 모두에게 속삭듯이-.

* * *

그리고 또 현타가 왔다-.

다만 이번의 현타는 순수하게 탈진해서 발생한 것이었다.

지나치게 몰두 해서 두 시간을 내리 합주해 버린 우리는, 결국 예쁜 샌드위치처럼 포개어져 합주실 정 중앙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야.”

“응.”

“근데 넌 이름이 뭐냐?”

“……흐힣. 한열이 네가 맞춰봐.”

“내가 점쟁이냐…… 그게 맞춰본다고 해서 맞춰지는 거야? 안 가르쳐 주면 계속 민꼬라고 부를 테다…… 아오 피곤해.”

그녀가 내 배에 뒤통수를 문질문질 부대끼다, 휙 돌아누우며 내 가슴에 턱을 괴었다.

“음, 그럼 김영희로 하자.”

“……딱 들어도 가명이란 게 느껴지는데.”

피곤한 와중에도 [눈치]는 정상 작동했다. 적어도 김영희는 본명이 아니겠군.

“그럼 숙제야. 내 이름 알아내는 거.”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다 숙제를…… 맞추면 상 주나?”

“그래. 아마도.”

“……그래.”

그녀의 숨소리가 자장가처럼 내 귓가를 두드렸다.

급격하게 졸음이 밀려왔다. 눈을 감으니 옅은 무게감과 온기가 가슴팍에 얹혀 있었다. 당장이라도 흩어질 듯이 얄팍하게-.

“어, 근데 내가…… 내 이름을 말했던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다시 일어났을 땐, 깊은 밤중이었고 두터운 담요가 내 위에 덮여 있었다.

그리고 민꼬인지 영희인지 모를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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