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자꾸 늘어 131화>
14. 막을 테면 막아 봐 - 1
사실을 말하면.
예술대회에 제출하려 했던 그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림은 어른의 사정으로 중단된 건설 현장 같았다. 앙상한 골조. 무의미한 구도와 거친 색감.
변기 갖다 놓고 예술을 논하는 시대다. 저것도 나름 ‘무제’나 ‘미완성의 완성’ 같은 그럴듯한 말을 붙이면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 애들이 끄적인 낙서도 큐레이터가 발탁하고 홍보팀이 분발하면 바로 예술품으로 ‘생산’될 수 있으니.
이누이트에게 냉장고를 팔아먹는 자본의 힘은 예술의 순수성을 어르고 달래며 이미 그 안에 강하게 침투해 있었다. 이 시대에 예술은 없다. 상품만 있을 뿐이다…….
정말로 그런가?
이 불모의 시대에 예술은 사망했는가?
대중의 조소와 자본의 회유에도, 그러나 여전히 예술가는 질문을 던진다.
붓 한 번의 터치만으로, 몇 가지 색의 조합만으로, 어떤 형태도 스토리도 없이, 심장을 뛰게 하고 울음을 터뜨릴 작품은 있는가. 감정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은 거기에 가 닿을 수 있는가…….
그리고 놀랍게도, 세상에는 서슴없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인간들이 있다.
시대에 외면당하고 평론의 칼날에 난도질당해도, 그럼에도 송곳처럼 튀어나와 기어코 우리의 심장에 박히고 마는 예술들이 있다.
비루한 지성과 불민한 이성들을 차분히 설득하며 스스로 가치를 획득하는 불멸의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장민욱은 그런 역사적인 거장들의 말석에 이름을 올렸음이 분명했다. 그 재능을 이어받았기에 알 수 있다.
제삼자이자 동시에 당사자인 나만이 단언할 수 있었다. 그는 가짜가 창궐하는 이 시대에 얼마 없는 진짜배기 예술가 중 하나다.
그렇기에 나는 그림 하나도 허투루 그려 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여기서 ‘어른의 사정’이란 어음 부도도, 은행 파산도, 노동자 파업도 아니다. 예술가의 과욕이나 슬럼프 때문도 아니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완성본의 청사진이 완벽히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제출을 미룬 것은, 마감 마지막 날에 도착을 해야만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이건 감상자들에게 온전한 예술을 시연하기 위한 장민욱의 위트인 것이다.
‘장민욱으로서도 처음 하는 시도였지.’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좀 더 들뜬 템포로 심장이 쿵쿵댔다. 마치 내 안의 장민욱이 같이 설레어 하는 듯이.
12시 37분.
나는 붓을 들었다.
그리고 계산했던 바대로 5분 만에 그림을 완성했다. 황량하기만 하던 그림에 분명한 배열과 형태가 갖추어졌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다, 마르자마자 [손재주]를 한껏 발휘해 30초 만에 캔버스를 포장. 포장을 들고 곧바로 현관으로 향하자 때마침 초인종이 울려온다.
“퀵시키셨…… 우악.”
“잘 부탁합니다. 선생님.”
거액을 주고 고용한 기사에게 배달을 부탁한다.
남한에서 가장 신속 정확하기로 유명한 남자이므로, 대회 본부까지 27분 만에 배달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됐다. 오차는 가감 5분으로,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정확히 28분 뒤에 배달을 마쳤다는 메시지가 날아왔고 나는 그에게 보너스를 보냄으로써 서비스의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여기서부터는 나도 모른다.
죽고 나서야 인정받는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 심사위원 눈들이 죄다 옹이구멍이라 옥석을 가려낼 안목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비리가 횡행하여 알고도 무시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특이 사항이 아니라면 이 작품이 묻힐 가능성은 없다.
나는 그만큼 이 재능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 * *
“……죽을 거 같애. 죽을 거 같애. 죽을 거…… 죽을 거야. 나 죽을 거라고.”
“미도레숍시파시파시팔시팔씨팔…….”
“구웩. 구웨에에엑. 구웨에에에에에.”
“…….”
점심시간.
밴드부실.
이곳에 만연한 시궁창 기운을 감지했는지 날벌레조차 잠잠했다. 생피에 환장하는 좀비마저 이자들 앞에선 무심코 질색하여 지나쳐 버리고 말 것이다. 아무튼 대단한 광경이었다.
“수림 선배, 커피 더 드릴까요?”
“……아니이.
수림 선배는 후라이팬에 눌어 붙은 인간 부침개 같은 모습으로 납작 엎드려 대답했다.
“나 지금 혈관에 피 대신 카페인이 흐르는 거 같아. 그 어느 때보다 머리는 명료해.”
“그렇군요.”
“명료하기만 해. 악상은커녕 구구단도 안 떠올라. 떠오르는 거라곤 단지…… 어라, 재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님? 왜 거기서 손을 흔들고 계세요?”
“이거 글러 먹었네.”
그때 재준 선배가 손을 하늘하늘 흔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본다.
“시팔시팔시팔시팔…….”
올 필요가 없었군. 손을 흔든 게 아니라 사후경직 같은 거였던 모양이다.
나머지 한 명인 찬익 선배는 부실 구석에 처박혀 헛구역질만 하고 있었다. 위치를 보니 드럼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고 싶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멀쩡해지기에 살펴보니, 눈 뜨고 기절해 있었다. 다행히 숨은 쉬는 듯했다.
요약하자면, 인세의 지옥이 이곳에 강림해 있었다.
“……이거 심각하네.”
“너도 같이 밤 새우지 않았니…… 너만 어떻게 멀쩡한 거지?”
수림 선배가 뭔가 억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목소리에 삼일 철야를 내리 버텨 낸 자의 한이 서려 있었다. 나로선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해 봤는데 일주일까지는 괜찮더라구요.”
“……젊어서 좋겠네에.”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당연히 이건 나이가 아니라 [역발산기개세] 때문이다. 이 특성을 얻은 뒤부터는 하루 2시간만 자도 충분했으니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좀 쉬는 게? 이렇게 무식하게 한다고 뭐가 나올 거 같진 않은데요.”
“닥쳐! 원래 예술은 극한의 상황에서 창조되는 법이야!”
“구린내는 창조되는 거 같네요.”
“앗. 아앗! 하, 할아버지! 그 악보는 두고 가세요!”
“…….”
상황이 대충 짐작될 것이다.
관현악부의 도발에 호기롭게 응수. 근데 막상 덤비고 보니 답이 없어서 멘탈만 깨져 나가는 나날.
다들 나가떨어진 가운데에도 이 삼인방만은 최후의 최후까지 침식을 잊어가며 편곡 작업에 몰두했으나…….
뭐.
이쯤 되면 첫날에 날 샌 것이 아까워서 이러는 게 아닐까.
방금까지 할아버지를 쫓았는지 팔을 휘적거리다가 다시 급격히 축 늘어지는 수림 선배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다른 건 몰라도 좀 씻어요. 이거 완전히 노숙자 룩이네. 바로 서울역 진입해도 위화감이 없겠어요. 여자라는 자각은 있으십니까?”
“몰라아…… 네가 씻겨 줘어…….”
“이거 제정신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네.”
“으으으…… 그 여자 입꼬리를 주저앉히기 전까지는 쉴 수 없어어…….”
이들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구는 이유가 있다.
며칠 전, 내가 밴드부로 복귀하기 전에 관현악부와 1차로 합주할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응은 대충…….
-너네는 이걸 편곡이랍시고 해 왔니? 뭐 이렇게 경박해? 우리랑 협주하는 거 맞아? 이건 한을 담은 음악이라고! 담담하면서도 절절하게! 조용하면서도 피 끓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 살아야지! 옆에선 울고 있는데 너네만 왜 헤드뱅잉을 하는 건데?!
관현악부 고문 마가렛 정(본명 정말자) 씨가 어김없이 등장해서 혓날을 세웠다. 증언에 의하면 분명 쓴소리를 하는데 기분이 엄청 좋아 보였다고.
-그냥 놀고 싶은 거면 너네끼리 놀아. 어디 안 보이는데 숨어서. 제발 좀 민폐 끼치지 말고.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결국은 들리는 혼잣말로 ‘하여간 딴따라 새끼들은 수준 낮아서…….’라며 지나가더라는 것이었다.
혐오 주의자가 혐오한 게 별일은 아니므로 그냥 뭐 밟았다 치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지만…… 진짜 문제는 누구도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다 사실이었으니까.
말자 씨의 태도야 어쨌든, 수십 년 음악을 해 온 경륜만큼은 무시 못 했다. 분하지만 수준 차는 확연했다. 결국 남은 건 정면 승부에서 발렸다는 패배감. 그리고 악과 깡뿐이었다.
‘……이놈의 학교는 학생이 집에도 안 들어가는데 제지하지도 않고. 쯧쯧. 잘 돌아가는 집구석이다.’
우리 학교는 특이하게 겨울 방학 직전에 축제를 하고 바로 방학에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이제 기말고사도 끝났으니 선생님들도 풀어져서 학생들이 뭘 하든 신경도 안 썼다. 모든 동아리실은 24시간 개방되어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요컨대 폐인이 양성될 최적의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다음 2차 협주까지 며칠 남지 않은 게 이들의 초조함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쩝. 호기롭게 들어왔는데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네.’
제아무리 항우의 힘과 세종대왕의 언어 능력과 로빈슨의 격투 실력이 있어도 음악적 역량은 빈약했다.
어디서 음악 재능 하나 툭 안 떨어지나. 이젠 클럽이나 오페라 극장 같은 걸 순회해 봐야 하나 싶었다.
그때 문자가 띠링 울렸다.
나는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 말했다.
“저 일이 있어서 잠깐 다녀올게요. 이참에 선배들도 좀 쉬고 씻고 하세요.”
“안 돼에. 어딜 가아아……! 죽어도 같이 살자!”
“뭔 소리야.”
이러다간 진짜 큰일 날 거 같아 침술을 써서 셋 모두를 강제로 수면시켰다.
세 선배를 소파에 나란히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드린 다음 나는 밴드부실을 나섰다.
목적지는 교도소였다.
* * *
[율리시즈의 나침반]으로 탐지한 결과, 오카리나의 마지막 조각이 교도소에 있음이 밝혀진 이후.
-이게 인명부 전부입니다. 지금 당장은 간단한 신상 명세 정도입니다. 더 자세한 정보를 취합하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만. 어쩌시겠습니까?
일단은 부탁해뒀지만, 그 이전에 인명부 자체에서도 흥미로운 이름이 발견됐다.
딱히 연결 고리는 연상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면회 신청을 했다.
그리고 면회 당일인 오늘, 나는 며칠 만에 교도소로 돌아와 별로 안 그리운 얼굴과 대면하고 있었다.
“……뭐냐? 네가 면회 신청했다고 해서 얼굴에 침이나 뱉어 줄 생각으로 나왔는데. 아쉽게도 뭔가 막고 있어서 그럴 수는 없겠네. 다행으로 알아라.”
“건강해 보이네요.”
“당연히 건강하지. 교도소 밥이 다 건강식이거든. 존나 맛이 없다는 점에서.”
팔짱을 턱 끼고 온몸으로 불평불만을 발산하는 이 남자의 이름은 김만영.
별명은 압구정동 발바리.
기억 못하는 분들을 위해 첨언하겠다.
본인은 전국구 타짜 귀수의 수제자라 주장하지만 사실은 뭣도 없는 똘마니로서, 양부인 귀수를 배신하고 그 죽음에 일조한 대가로 이 감옥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나와 이 남자의 사이라면, 이 손으로 직접 교도소 편도 티켓까지 끊어드렸으니 아주 각별하다 하겠지.
요약하자면
오지게 악연이었다.
“그때는 벌벌 떨면서 도망쳤으면서.”
“그때야 네 뒷배가 무서웠으니까! 근데 너 TV 나온 거 보고 다 개뻥인 걸 알아차렸다. 개새야. 그놈들 수하라면 제음일기 같은 문화재를 국가에 헌납할 리 없지. 아니냐?”
“눈치는 제법이셔.”
난 씩 웃었고, 그는 콧방귀를 뀌며 응수했다.
“그래서 왜 또 왔냐? 새나라의 전도유망한 사기꾼 새끼. 어디서 주워들은 걸로 또 등쳐먹으려고? 이젠 안 속는다.”
“혹시 이런 거 본 적 없어요?”
난 단도직입적으로 그의 앞에 오카리나 조각을 꺼내어 내밀었다. 눈앞의 놈에게는 나침반의 느낌이 전해지지 않지만, 혹시나 하는 바람은 있었다.
그는 그걸 곁눈으로만 보고는 고개를 팽 돌렸다.
“몰라 새끼야. 더 할 말 없으면 간다.”
거짓말이다.
본 적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대로 일어나려기에 난 절묘하게 타이밍을 찔러 미끼를 투척했다.
“여기 나가고 싶은 생각 없어요? 누명 벗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