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자꾸 늘어 135화>
14. 막을 테면 막아 봐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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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예술회관은 기이한 열기 속에서 북적였다.
어째서 기이하느냐면, 지금이 대회 예선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는 정해진 심사 위원과 필요 최소한의 관계자들만 드나들 수 있도록 대회 규정에 박혀 있다. 심사하는 동안 위원들은 핸드폰까지 반납하며 건물 안에 격리된다.
심사의 투명성을 위해 당연한 조처였다.
그동안 모든 예술인들은 상식과 교양 이름으로 이 규정을 존중해 왔었다.
딱 작년까지만 그랬다.
올해부터의 트렌드는 꼼수와 합리화라고 다들 합의를 마쳤는지 너 나 할 것 없이 회관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일단 감행하고 뻔뻔함은 그다음에 지참했다.
초반엔 당연히 쫓겨났지만, 인류가 늘 그래 왔듯 그들은 방법을 찾아냈다.
규정을 낱낱이 분석하여 이 ‘관계자’의 범위에 본인을 끼워 넣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소위 법리 전문가들이 ‘관계자라 아니하다 볼 수 없는 근거가 없다고 판단된다.’라고 떠들어 대자 주최 측은 얼떨결에 그들의 진입을 허가해 버렸다.
일단 길이 트이자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 기하급수적 증가 추세를 보이며 본격적으로 시장판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2일 차에는 다섯 명.
3일 차에는 소문에 솔깃한 열 명이 방문하여 본인도 ‘관계자’임을 주장.
말과 말이 새끼를 치고 불어나다 예선 마지막 7일 차에는 거의 수십여 명의 예술가들이 회관 2층을 점거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 초유의 사태에 주최 측은 대략 생각을 포기했다.
포기랄까, 폭주에 더 가까웠다.
한술 더 떠 2층 로비를 손님방으로 개조하고, 자체적으로 도시락 주문마저 받으며 아예 내방객들을 서비스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리고 본인들도 ‘올해는 망함’을 선언하며 그냥 이 시장판의 대열에 합류해 버렸다.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어째서 이 문화와 예술의 수호자들이 혼돈의 무법지경에 기꺼이 뛰어들었는가.
그 답은 회관 2층의 자그마한 구석 방,
이젤이 받치고 있는 그림 한 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주기가 어떻게 되지? 언제 바뀌는 거야?”
“보통은 6시간 단위인데…… 그게 또 일정하지는 않아. 안심하고 있다가 통수 맞은 사람 여기 수두룩하다.”
“계속 지켜봐야 되나…….”
“보통은 5분에 걸쳐 변하니까 그때 어디 멀리 있지만 않으면 돼. 난 벌써 삼 일 동안 여기서 노숙 중이라고.”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바뀌면 난감하겠는데.”
“여기 미처 못 닦고 나온 사람들도 수두룩함.”
“……!”
‘그림이 실시간으로 변한다.’는 소문에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코웃음을 쳤다.
포스트 앤디 워홀 시대였다.
신기하고 창의적인 시도라면 지겹도록 보았다.
오히려 젊은 예술가들이 그런 겉치레에 치중하다 본질을 놓치는 것을 예술계는 경계했다. 그저 반짝 서커스에 불과한 쇼일 뿐이라고 그들은 결론 내렸다.
하지만 소문은 간단히 묻히지 않았다.
‘이건 진짜다’, ‘지금 못 보면 영원히 후회’, ‘안 믿을 거면 말고(풉)’ 등등의 말들이 갈수록 무성해졌다.
혹시나 싶어 방문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었고, 그들 모두가 늪에 빠진 꼴로 이곳에 붙박였다.
숫자가 여기서 더 늘지 않은 이유도 비슷했다. 후반부에는 모두가 완전히 매혹되어 누굴 부르거나 할 정신조차도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광경이었다.
“와, 백기철 선생님도 오셨어. 옆에 얘기 나누는 건 LS 장 회장 아니야?”
“와아아…… 지금 가서 사인 받으려면 해 주시려나?”
“저건 JK 아니냐? 아이돌이 여길 왜 왔어?”
“모르냐? 쟤 예술가병 걸려서 자기 이름 걸고 전시회도 하잖아.”
행위 예술, 회화가, 건축가, 비디오 아트, 장르를 불문 한국에서 예술가로 통칭되는 모두가 이곳에 모인 듯했다.
예술대회는 한 주 앞당겨져서 이미 이곳에서 개최되어 있었다. 단 한 점의 그림 때문에.
“……근데 저거 진짜 어떻게 그린 걸까?”
“들어 본 적이 있어. 공기 중에 천천히 산화되는 물감이 있다고. 전위적인 무대 공연에나 쓰여서 보통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한데. 순차적으로 지워질 것을 계산해 가며 레이어를 쌓아 올린 거잖아.”
원리만 보자면, 하나의 완성된 그림에서 색과 선을 점차 지워 가며 표현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경악스런 점은 7일이 지난 현재, 저 그림이 최소 17번의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17개의 그림을 겹쳐서 극사실주의적인 완성도의 최초의 그림을 그려 냈다는 것이다.
“글쎄. 난 그 자체는 그렇게 놀랍지 않았어. 치밀한 설계가 있으면 가능하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각각의 그림들이 전부 충격적인 완성도를 자랑한다는 거야.”
처음에는 밝은 얼굴의 사내였다.
모두가 그 안에서 힘찬 희망과 한계 없는 애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씁쓸함과 행복의 경계에 서 있는 남자였다. 본인은 행복하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표정처럼도 보였다. 그건 모진 현실에 이상이 침탈당한 아버지였다.
여기까진 어쨌든 사실적인 화풍이었다.
그러나 다음 그림에서 남자의 형태는 일그러지고, 그 주변으로는 빨갛고 노란 원색이 강렬한 붓터치로 뻗쳐 있었다.
이제 그는 세상에 배반당해 울거나 분노해야만 한다. 아주 중요한 것이 그의 세상에서 떨어져 나갔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이 그림 자체만으로는 대단히 모호함에도, 감상자 모두가 전작과의 연속성 속에서 비슷한 감상을 뽑아내었다는 것이었다.
“탁월해. 중간의 그림 하나만 뽑아서 보면 이게 무슨 뜻인가 싶지. 그런데 연속된 맥락 속에서는 완벽하게 해석되는 거야. 이견의 여지를 원천 봉쇄한달까? 어쩌면 해석을 강제하는 느낌마저 들지. 하지만…… 그게 불쾌하지는 않았어.”
“그래. 오히려 불친절함이 미덕이 된 현대 미술을 야단치는 것도 같았지. 따끔하면서도 상쾌한 느낌이었어.”
“……누군가가 떠오르는 건 착각인가?”
“나도 그랬어. 이런 예술을 하는 사람이…… 있었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림 속의 남자는 계속해서 변해 갔다.
그는 가끔 행복했으며 자주 버거웠다. 그리고 일관되게 늙어 갔다. 슬픔의 정조는 눈물이 아니라 주름과 암부로 표현됐다.
아이가 클 때면 뿌듯하지만, 동시에 품에서 떠나가므로 서글프다. 일련의 감정이 고조되다 결국 납득되는 과정이 그곳에 잔잔하게 스며 있다.
누군가는 거기서 자신의 아버지를 보았다.
또한 누군가에겐 아버지가 된 자신이 읽혔다.
어느 쪽이든 완전히 몰입해서 이 남자의 생애를 따라가게 됐다. 추체험이든 공감이든 가리지 않고 강렬한 기세로 빨아들였다. 그곳의 모두를 예외 없이. 장장 7일 동안이나.
그리고 마침내.
“엇! 어엇!”
“……바, 바뀐다!!”
“어엇, 벌써? 벌써? 이 타이밍에 바뀐다고?”
“이봐! 이봐 일어나!”
“으아앗. 나 아직 밥 덜 먹었는데에엣!”
소란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근처의 모두가 2층의 관람실-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에 집합하는 데에는 3분이면 충분했다.
또 한 번, 예술이 다음 단계의 페이즈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변질이 완료됐을 때, 그들은 이번 그림이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색은 어디도 없이, 그저 흑색의 곡선만 남은 그림.
그것은 언뜻 아무렇게나 뭉쳐진 실타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앞서 모든 그림과 마찬가지로,
관람자들은 그 안에서 의미를 간단히 발견해 냈다.
저건 배우자와 크게 다퉜을 때 일그러진 주름. 저건 자식이 결혼했을 때 그어진 미소. 저것은 시간에 짓눌려 굽어진 등이구나. 그래. 저 선들은 저 남자의 일생이고 그것이 집결된 얼굴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뒷모습이었다.
그렇게 생각된 이유는 명백했다.
남자의 구도는 변화가 진행될수록 정면에서 측면으로, 그리고 측면에서 후측면으로 점차 틀어지도록 설계됐다.
그 논리적 귀결로 저건 분명 뒷모습일 것이며, 그걸 떠올리는 순간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보였다.
그렇다면 저 화가가 말하고 싶은 바는 명료할 것이다.
아버지란 마주 보아 웃다 결국은 뒷모습을 보여 주는 존재다.
결국 우리는 아버지를 얼굴이 아니라 등으로 기억한다…….
“아…….”
“으…….”
그 순간 뭔가가 북받쳐 올랐다.
흉곽 안쪽에 꿍하게 뭉쳐 있던 뭔가가 툭하고 터져 나간 듯하였다. 그것은 울대를 죄고 코끝을 건드린 뒤 정수리까지 치고 올라왔다.
누군가는 흐느끼고 누군가는 허탈하게 주저앉았다. 7일 동안, 삶을 압축하여 경험한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였다.
그리고 모두가 깨달았다.
왜 이 예술가가 실시간으로 변하는 그림을 그렸는지. 어째서 보존되는 영상이 아니라 일회성의 그림이어야만 하는지.
당연히도,
삶은 한 번 뿐이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린 아버지의 뒷모습을 더 이상 돌려 세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은 그렇게 지나가 버렸음을 그들 모두에게 절절하게 선고했다.
“……기찬아, 이거 다 찍었냐?”
김창현 교수가 글썽인 눈물을 닦아내며 물었다.
조교는 더 깊게 감상에 빠졌는지, 한참 뒤에나 대답했다.
“예.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빠짐없이 다 찍었습니다. 영상으로도 사진으로도 모두 남겼습니다.”
“우린…… 어쩌면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을 목도한 건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영상으로는 제대로 담기지 않을 거예요. 이 순간은.”
“그래. 절대 담기지 않겠지.”
이 작품은 일회성이기에 의미가 있다.
기록 영상을 돌려 본다고 지금의 감동이 전해지진 않을 테지. 절대로. 그건 단지 기념일 뿐 더 이상 불멸의 예술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김창현 교수는 이 순간에 자신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더없이 감사했다.
“어쩌면 저걸 재생하는 것 자체가 이 예술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그건 아니지 않을까요?”
“어째서?”
“……음. 우리가 사진 찍는 이유가 그렇잖아요. 이 순간을 붙잡을 수 없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흔적이나마 남기고 싶어서. 어쩌면 저 예술가는 우리가 찍을 것까지 예상하지 않았을까요?”
“그런가. 그래. 맞아. 그건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시간이 좀 지나고, 얼마간 감정이 가라앉았을 무렵, 어떤 예술가들은 모종의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비슷한 경험이 언젠가 있었다.
파격적이고 과감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친절한 예술을 선보이던 누군가의 그림자가 이곳에 겹쳐 보였다.
그들은 그 이름을 기어코 꺼내어 입에 담았다.
“……장민욱.”
“장민욱 화백이 돌아왔어…….”
“장민욱이다!”
“우리의 젊은 예술이 부활했다!”
그 순간 우두커니 서 있던 장건철 회장의 무릎이 꺾였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이 실장이 다급히 그를 부축했다.
그 순간 그의 입매는 충격으로 일그러짐과 동시에 더없는 환희로 가득했다.
그는 지금이 아니라 더 깊은 과거를 돌이켜보았던 것이다. 병상에 누워서 말라 가면서도 끝내 웃던 누군가의 얼굴을.
-아버지, 전 아버지를 등이 아니라 얼굴로 기억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웃어 주세요.
그래서 그는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하하. 아하하하…….”
예술대회는 이제 예선이 막 끝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을 공유한 모두는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려 버렸다.
볼 것도 없이 이미 대상은 정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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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허공에 팝업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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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장민욱의 미학] : 퀘스트 달성!
- 나쁘지 않았어. 그동안 수고 많았다. 친구.
- 자색 카르마 3,000p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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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임계치에 도달했습니다!
- 보상으로 황색 카르마를 400p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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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이제야 일주일이 지나서 ‘그림이 완결’된 모양이지. 그리고 완성된 순간에 맞춰 업적이 달성된 것으로 쳐준 모양이었다.
‘아무쪼록 부디.’
그 장소, 그 순간의 그들이 7일의 일생 속에서 위로받았기를 빌어 주었다.
그 모든 아버지들을 대신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