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자꾸 늘어 149화>
14. 막을 테면 막아 봐 - 19
* * *
“Somewhere over the rainbow…….”
그녀는 가끔 노래를 불렀다. 달리 말하면 난 그걸 가끔만 들을 수 있었다. 요리사가 집에서 프라이팬을 괄시하고 배달 음식을 편애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준은 가수였다.
앨범 한 장 내 본 적 없고, 예인으로서의 프로 의식은 캬바레에서만 발휘됐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틀림없는 가수였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했다.
그때의 난, 아주 악의적이고 치사한 이유에서, 그걸 같잖다고 생각했다.
“시끄러워.”
“Someday I‘ll wish upon a star and…….”
“시끄럽다고. 좀 자게 닥쳐 봐.”
자주 부르지는 않았지만, 일단 부르기 시작하면 무슨 항의를 하든 준은 기어코 완창을 하곤 했다.
그럼에도 난 지치지 않고 투덜댔고 그녀는 익숙하게 날 무시했다.
그게 우리 관계의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같이 있어도 우리 사이의 공간은 철저히 구획되어 있었다. 어떤 말을 해도 치명적으로 빗나갔다.
애정어린 이해, 연민과 애틋함, 서로를 긍정해 가며 완성되는 로맨스의 문법은 우리 사이에 통용되지 않았다.
“넌 왜 날 만나냐?”
어느 날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고민하는 척도 않고 내 질문을 무시했다. 그날 우린 평소보다 저돌적으로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혹사시키듯 서로를 쥐어짜낸 정사 뒤에, 담배 연기와 습한 열기에 둘러싸인 그녀가 독백처럼 웅얼댔다.
“적당히 못생겼고. 적당히 못됐고. 그리고 꽤 무능해. 무엇보다 나한테 관심이 없어. 너는.”
“뭐야, 왜 난데없이 시비야. 죽을래?”
“……배고프다. 짬뽕 시킬래.”
“그럼 난 짜장면.”
짜장면의 래핑을 벗겨 낼 즈음에야, 난 그것이 질문에 대한 답변임을 깨달았다.
멀리해야 할 남자 리스트 탑10을 늘어놓고는 그게 만나는 이유란다. 황당한 발언이었지만, 더 황당한 건 그걸 이해해 버린 나였다.
당연하게 납득한 그 당시의 나도 어지간히 뒤틀려 있긴 마찬가지였다. 왜냐면 내가 그녀를 만나는 이유도 비슷했으니까.
“나한텐 안 물어보냐?”
“대충 알아. 아니어도 별로 듣고 싶지 않아.”
“알았다.”
그녀는 내가 무능하고 구제불능이었기에 나를 파트너로 삼았다.
그건 얼굴이 새파래지면서도 호러 영화를 굳이 찾아 보는 심리와 비슷했다.
영화에선 끔찍한 죽음과 소름 돋는 악몽이 가득하지만 그건 스크린 안쪽의 사정일 뿐이다. 영화가 끝나면 우린 현실로 복귀하여, 우리가 안전함을, 핏빛 몽상이 우릴 쫓아오지 않음을 깨닫고 안도한다.
그 급격한 심리적 수직 이동, 거기서 발생되는 카타르시스의 마찰이 호러 영화를 보는 이유 중 하나다.
그녀도 나도 그랬다.
우린 서로를 보면서, 저 끔찍한 삶도 살아진다는 사실에, 당신보다 내가 그나마 낫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 서로를 만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인이 아니었다.
연인일 수 없었다.
우린 서로에게 영화 속 점프 스케어였고, 욕실에서 살해당하는 자넷 리였으며, 쏘우에게 인생 대충 살았음을 선고받는 등장인물이었다.
한껏 끔찍해져서 서로를 위안하는 일그러진 관계였다. 그게 어떻게 사랑이겠는가. 시체들의 사랑도 그보다 차갑지는 못할 것이었다.
“내일은 저택에 노래 부르러 가.”
“그러냐. 몸조심해서 갔다 와. 저번처럼 뻣대다 처맞고 그러지 말고.”
“지는. 넌 안 뻣대도 처맞고 다니잖아.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 어디서 더 빻아서 돌아오는 거야? 어디 곱게 다지기 경연 대회라도 준비하니? 으휴.”
“이게 걱정을 해 줘도 지랄이네.”
“흥.”
저택.
그건 조직에 몸이 저당 잡힌 여자들이 만든 은어였다. 조직이 접대해야 할 VIP를 초대하는 별장이, 별장치고는 지나치게 으리으리해서 ‘저택’이라 불렸다.
여자들은 주기적으로 그곳에 불려 가서 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베풀었다.
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까, ‘노래 부르러 간다’는 건 아주 완곡한, 최후의 자존심이 적어 낸 표현인 것이다.
“데려다 줄까?”
“싫어. 그러지 마.”
그녀는 건조하게 떠났고, 돌아올 때는 잔뜩 젖은 상태였다.
다음 날.
토사물인지 양주인지 모를 액체들을 잔뜩 묻힌 채, 얼굴과 팔뚝에 몇 개씩의 멍을 매달고 돌아온 그녀는 사람 모양의 거대한 상처 같았다.
척 봐도 내 조언을 듣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옷 벗어 봐. 파스 붙여 줄게.”
우리는 서로 약을 발라 주는 관계이기도 했다.
당연히 내 쪽이 다쳐오는 빈도가 더 잦았지만, 대신 그녀는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헤져서 돌아왔다.
우린 서로를 위한 붕대를 늘 상비해 두었다. 그래도 상처를 달래 줄 만큼의 의리는 있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 정도가 우리가 공유하던 연대감의 최대치였다.
그날의 상처는 유독 더 심각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는 것이다.
살갗의 멍 자체는 평소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그때의 난 그것만으로 판단을 마치고 반창고를 무덤덤하게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나는 거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늘 그랬듯 “울리니까 가만히 좀 있어 봐.”라며 퉁명하게 반응했다.
얼룩덜룩한 흔적들이 네모 반듯한 패드로 뒤덮이고 엷은 노랫소리가 공기를 물들였다.
처치가 거의 끝나 갈 무렵,
그녀가 중간에 노래를 멈추고 대뜸 이런 말을 찔러 왔다. 표현에 주목하라. 그건 그야말로 날붙이처럼 날 관통했다.
“너 기타 칠 줄 안다면서? 왜 말 안 했어?”
“……그거 어디서 들었냐.”
“너네 형님.”
“그럼 내가 왜 말 안 했는지도 알겠네.”
내 안의 가시가 너무 뾰족해서 난 그녀를 헤아릴 수 없었다.
말의 맥락도, 그 이유도, 서로의 감정도, 그런 사소한 걸 살필 만큼 우리는 여유롭지 못했다.
“내 노래에 반주해 주지 않을래?”
“헛소리 하는 거 보니 별로 안 아픈가 보네.”
“왜? 못 하겠어?”
“개소리 집어 치워!”
난 파스를 집어던지며 그녀를 밀쳤다. 가녀린 몸은 쉽게도 휘청였다. 그녀가 픽 웃으며 날 올려다봤다.
“역시 우리 한열이 쫄보네.”
“……선 넘지 마라. 네가 날 얼마나 하찮게 보는지는 안다만, 그래도 지껄여선 안 될 말이 있어.”
“왜? 형님들 앞에선 할 수 있으면서 내 앞에선 못 해? 그게 그렇게 어려워?”
“…….”
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뭔가를 던져서 박살 냈다. 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복구불가의 상태로 쓰레기봉투에 처박았는데 뭐든 무슨 상관인가.
다만 매우 날카로웠던 건 기억난다.
내 손을 베어 내 며칠 붕대를 감고 다녀야만 했던 것도. 그러나 그 외의 것은 전부 흐릿했다.
“꺼져. 당장.”
“……우린.”
그녀는 별다른 대꾸도 없이 옷을 걸쳐 입고 나갔다. 한마디의 질문만 남기고.
“그래서 우린 결국 뭐였던 걸까?”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그녀는 며칠 뒤 자기 방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
짧은 검시 끝에 뱃속의 아이가 발견 되고, 누가 아비인지 밝혀질 겨를도 없이 화장되고, 장례식이 무성의하게 치러지는 가운데, 나는 그녀가 던진 질문을 되새겼다.
그래서 우린 결국 뭐였던 걸까.
우린 살갗의 상처만을 얼렀다. 몸을 아무리 길고 깊게 겹쳐도 결국 표피의 온도만을 나누었다.
우린 되도록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동공은 상대의 깊은 안쪽이 아니라 나의 거친 민낯만을 비추었으니까.
그러므로 우린 연인이 아니었다. 사랑이랄 수도 없었다. 서로의 상처에만 기생하는 나약하고 서글픈 사이를, 나는 어떤 단어로 명명해야 할지 헤아릴 수 없었다.
아직도.
여전히.
* * *
“……저기, 진짜 괜찮으세요?”
그녀는 동요를 한가득 담아 물어 왔다.
본인이 찍어 버린 상처가 얼마의 병원비로 되돌아올지에 대한 걱정은, 놀랍게도, 아주 미미한 지분만을 차지했다.
[눈치]로 분석컨대, 자책감, 미안함, 당혹감까지 합해서 45퍼센트, 그리고 존잘을 배알한 자의 어쩔 줄 모름이 그 나머지를 차지했다.
이 자식 알고 보니까 얼빠였잖아?
“진짜 괜찮아요.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기도 했고.”
“……그래도요. 저희 집에 가면 응급키트 있으니까 바, 반창고 발라드릴게요.”
“네, 뭐. 그러시죠.”
난 태연하게 대답하면서도 힐끔힐끔 그녀를 훔쳐 봤다.
사심이 남아 있다기보다, 신기해서였다.
준이 수줍어하면서 말을 한다. 내 질문에 냉소가 아니라 호의로 대답한다. 흉터로 뒤덮이기 전의 그녀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싶어 꽤 적응이 필요했다.
‘그런가. 이 녀석도…….’
우린 서로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치듯 나눈 대화와 정황을 더듬어 보면 짐작 정도는 됐다. 우린 비슷한 경로를 밟아 비슷한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천호보육원도 우리처럼 공중분해되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고아들을 키우는 장소이거나.’
어느 쪽인지는 지금부터 알아 봐야겠지.
물론 내 본심이야 어쨌든, 난 영락없이 여고생을 훔쳐 보는 남고생이었고, 지윤 역시 얼굴을 붉히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심히 수상해 보였다.
지희가 우리 둘을 음흉한 눈빛으로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 이 장면 어디선가 본 적 있어.”
“그 입 다물라.”
“지윤 언니의 애장품 에로 망가에서 자주 나오는…….”
“꺄아아악! 너, 너 무슨 소릴 하는 거니?! 아하하. 얘가 농담을 참…… 아하하…….”
지윤이 지희를 얼른 채가서 주둥이를 틀어막았다.
온몸으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해도 소녀의 쪽팔림 앞에선 도리가 없다. 물론 난 신사답게 못 들은 척하며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 에로 망가는 무슨 내용일까. 대체 뭐기에 애장품까지 있는 걸까.
“하, 한열이도 1학년이라고 했지…… 요? 우리 말 놓지 않을래…… 요?”
“그러지 뭐. 지윤이라고 했지?”
“으응. 근데 한열이는 우리 보육원은 왜 가는 거야?”
“뭐, 알아볼 것도 있고. 만나볼 사람도 있고…….”
그렇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보육원 정문까지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 정문에서 소란이 와글와글 일고 있었다. 보자마자 상황을 짐작했다. 이거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 그래서 어디에 있냐고. 내가 내 새끼 얼굴 보겠다는데 왜!”
“……아니, 그러니까, 지금 잠깐 애가 없어져서…….”
“그게 말이 돼! 원장 선생이란 여자가 말이야 무책임하게! 혹시 우리가 못 본 사이에 빼돌린 거 아니야?! 어?!”
“아니 무슨 말이 그래요? 빼돌리다니요. 우리 애가 무슨 밀수품이에요?”
평범한 중년 여자 앞에, 근육 돼지와 그냥 돼지의 사이를 오가는, 편의상 오크라 부를 수 있을 남자들이 대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오크 중 대전사쯤 되어 보이는 놈이 멀찍이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어? 저기에 있네. 내 새끼.”
그러곤 비릿하게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 덩치에 그 얼굴로 활짝 웃으니 상큼하게 찢어 죽이겠다는 선전포고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희야아-. 아빠 왔다. 이리 와. 아빠한테 안녕하세요 인사 해야지? 어서!”
“……으아아.”
“빨리 안 나오냐?! 이 버르장머리 없는 스끼가.”
물론 지희는 새파랗게 질려서는 내 뒤로 후다닥 숨었다. 다리에 매달려서는 오들오들 떤다.
그제야 난 지희가 ‘아빠란 사람이 못 생겨서 싫다’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용모의 미추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눈빛에 배인 비열함.
낯짝의 개기름에 섞여 있는 간사함.
덩치에서 피어나오는, 폭력을 업으로 삼는 자들의 위압감.
외견에서 압도해 오는 저 위험한 분위기를 아이의 섬세한 감각이 감지해 낸 것이다.
“지희야, 저 사람이 너 입양하겠답시고 온 사람이야? 그 못생겨서 극혐이라는?”
“……으응. 맞아.”
그리고 굳이 한마디를 부연했다.
“그리고 대머리야!”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아.”
“못생긴 빡빡이야!”
“아니, 두 번이나 말할 필요는 없다니까.”
오크 대전사의 훤한 민머리에 십자 혈관이 툭 불거지고 입매가 뒤틀렸다. 말하자면, 더 못생겨졌다.
“이 씨불람들이 뭐라 지껄이는겨? 아놔 저번에도 알아봤다만, 우리 아새끼는 성질을 돋구는 재주가 있구만? 으허허. 가정교육이 필요하것어.”
“지희야 물러서 있어.”
“옴매? 이 아저씨는 누군가? 저리 안 비켜? 근데 어디서 많이 본…….”
그리고 사실 우린 구면이었다.
전생까지 합하면, 나로선 더욱더 징글징글하게 봐 온 얼굴이지. 난 남자의 시야에서 지희를 완전히 틀어막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네 조직 망하기 직전 아닌가? 여기 신경 쓸 시간은 있어?”
내가 얼굴까지 알고 있는 동부파의 덩치 포지션 중 하나.
그렇다.
상대는 조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