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160화 (160/164)

<재능이 자꾸 늘어 160화>

14. 막을 테면 막아 봐 - 30

* * *

“……뭘 한 거지?”

“발버둥.”

윤정희는 언젠가 날 보며 발버둥 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제법 맞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줄곧 실패의 삶을 살아왔다.

한 번도 내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손아귀에 쥔 것조차 언젠가는 흘러내려 사라졌다.

내 것을 단단히 쥐는 데에도 재능이 필요했고, 난 무능했으므로 언제나 혼자였다.

“내가 없었다면, 윤하는 선기무역을 통해 별 탈 없이 젠린에 입양됐을 수도 있지. 그걸 당신도 알았으니 윤하를 발탁했을 거고.”

배윤하는 샤오진을 닮았다.

난 그녀에게 어떤 연기도 시키지 않았다. 그냥 순수하게 본질이 닮은 것이다.

나 역시 샤오진의 기억을 더듬다 퍼뜩 놀란 부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납득되는 것도 있었다.

모든 생을 통틀어, 배윤하는 유능해서 윤정희의 눈에 띄었던 게 아니다. 샤오진과 닮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이상하긴 했지. 당신이라면 심복이 꽤 많았을 텐데. 왜 그들을 다 제쳐 두고, 안지 몇 달밖에 안 된 배윤하를 끌어들였는지.”

“…….”

“근데 윤하는 눈치가 꽤 좋거든. 당신들은 최대한 감췄겠지만, 윤하는 모종의 방식으로 당신들의 속내를 간파했을 거야. 어제 얘기하다 보니 더 잘 알겠더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현생의 얘기만은 아니다.

오히려 전생의 의문에 대한 답에 가까웠다.

어제 배윤하가 건네 온 말은 그 단서를 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상하긴 했어. 나 외의 후보들은, 뭐랄까, 어딘가 어긋나 있었거든. 고아들이니 그럴 수 있다 쳐도, 정희 선배와 전씨 집안에 대한 광적일 정도의 충성도는,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어.

합숙소에 있던 근 며칠 동안 그녀가 느낀 게 그 정도.

더 있었다면 이 거북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겠지.

그리고 내가 아는 배윤하는 딱 떨어지는 걸 선호하고 의문이 있으면 철저히 해소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그녀라면 흉중의 위화감을 가만히 보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조사했을 것이고…….

“어쩌면 알아서는 안 될 사실을 알았을 수도 있겠지. 지은이처럼.”

“……흐음.”

그래.

나는 배윤하가 꽃가마 타고 중국 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게 아니다. 젠린에서 잘 먹고 잘사는 모습을 확인하지도 못했다.

입양됐다는 소문과 함께 어느 순간 사라졌을 뿐이다.

그럼 전생의 배윤하는 정말로 입양됐던 걸까.

왜 전생의 그녀는 단 한 번도 연락을 취해 오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당신들은 샤오메이와 윤하를 절대 대면시키지 않았을 거야. 일말의 가능성까지 없애기 위해, 세상에서 아예 지워 버렸겠지.”

나만은 안다.

놈들의 악랄함을 최전선에서 실행하고 겪어 본 나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리라 확신했다.

“재밌는 소설이었어. 근데? 그게 사실이라면 더더욱 우리 손을 잡아야지. 착한 윤하가 위험에 처하게 그냥 둘 거니?”

“당신들은…….”

난 잠시 입을 다물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어젯밤 윤하가 해 준 마지막 한 마디를 기억해 냈다.

-나는 싸울 거야. 상진이 앞에 다시 서기 위해서라도. 그러려면 강해져야겠지. 누구보다도 더.

그래서 그녀는 강해지기로 했다.

입양이든 뭐든 총력을 다해 그들과 맞설 힘을 갖추기로 했다.

여자애가 이렇게까지 투지를 불태우는데 내가 꽁무니를 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당신들은 내 인생을 망쳤어.”

“……뭐?”

난 전생을 단순히 없었던 일로 지워 내지 않을 것이다.

“평생 기타를 칠 수 없게 됐지. 음악만 들리면 도망가던 시절을 견뎠어. 그거 알아? 받아들여진 적이 없는 사람은 받아들일 줄도 몰라. 그래서 난 언제나 혼자였어. 기회는 있었지만 잡을 수 없었지. 그녀를 잡기에는 내가 너무 무력했으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를…….”

“그러니까 다 당신들 때문이야. 윤하가 그렇게 된 것도. 준이 그렇게 죽은 것도. 내가 그딴 식으로 산 것도. 다 네놈들 때문이라고……!”

준은 일할 때가 아니면, 내 앞에서만 노래를 불렀다.

어쩌면 그건 우회적인 구조 신호였을 지도 모른다.

살려 달라고. 제발 내 손을 잡아달라고. 부디 내 안을 들여다 봐 달라고.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기에 그러지 않았다.

언제나 절름발이의 걸음으로 언저리만 돌아다니기만 했다. 그때의 난 그녀의 굴곡진 마음을 건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난 겁쟁이었다.

물론 내가 겁쟁이인 것도 다, 네놈들 때문이다.

“난 음악을 할 거야. 사랑하고 사랑받을 거다. 기필코 행복해지고야 말겠어. 너네가 망친 내 인생을 바로잡을 거라고. 그러니까 너네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해.”

“…….”

“어디 막을 테면 막아 봐.”

난 몸을 휙 돌려 그녀에게서 최대한 빠르게 멀어졌다.

윤정희는 이놈이 뭔 소리를 하나 싶겠지.

알아주길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선전 포고는 저들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나를 준비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니까.

난 강당으로 돌아와 아직도 다리를 달달 떨고 있는 수림 선배에게 다가갔다.

“선배.”

“……어어.”

“기타 제가 칠게요.”

“……응?”

수림 선배가 날 올려다보며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내가 미쳤는지 돌았는지를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언제까지 기죽어 있을 거예요? 할 수 있는 건 해 봐야죠.”

“……야, 무슨 소리야. 너 밴드부 돌아와서도 기타 한 번도 안 쳐 봤잖아. 연습도 없이 할 수 있을 리가…….”

“할 수 있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난 그녀의 어깨를 잡아 강제로 일으키며 눈을 가까이 마주쳤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들어 엎어 보자고요.”

그리고 나는 얼마 전, 장건철 회장의 저택에 방문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 * *

“……그냥 창고네요?”

“예. 정확히 말하면, 버리기엔 거시기하고 내놓기엔 더 거시기한 것들을 보관하는 장소죠.”

“방금 설명 참 탁월했어요.”

창고는 홀과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들이 가득했다.

내놓지 않은 이유는 위작 논란이 있어서다. 하지만 논란은 논란일 뿐이고, 진품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일단 관리해 두는 것이었다.

언젠가 오명을 벗고 빛을 볼 수도, 영원히 이곳에 처박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후자의 운명을 따른다고 하였다.

“진품이 되는 사례는 아주 드물지요. 하지만 가주님은 만에 하나까지 생각하시는 겁니다.”

“……그렇군요.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저 안쪽에 그 만에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까맣게 타 버린 한 대의 기타가, 찬란히 빛나는 보랏빛 카르마를 흩뿌리고 있었다.

“……저건.”

“더 도어즈The Doors의 로비 크리거의 것으로 알고 구매했는데, 그 본인에게 아니란 걸 확인받고 이쪽에 안착했지요. 하지만 어쩐지 느낌이 나쁘지 않아 버리지 않으신 겁니다.”

“……역시 무당 하셔도 되겠어요.”

“예?”

난 탄화된 바디 위에 손을 얹었다.

* * *

그날 라이브 클럽에는 많은 뮤지션이 있었고, 몇 명의 기타리스트가 있었다.

제프 벡Jeff Beck은 기타리스트이자 관객이었다. 그리고 방황하는 사람이었다.

“……음.”

무대는 놀랍도록 활기찼다.

들끓는 열기, 혼신의 연주, 무대 밖으로 넘쳐흐르는 에너지, 음압은 또 어찌나 빡빡한지 마시던 맥주를 뱉어 낼 뻔했다.

짧게 말하면, 완전 시끄러웠다.

‘진부해. 재미도 감동도 없고.’

최근의 로큰롤은 정체해 있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옛것을 답습하거나 오용했다.

새로운 시도들은 얄팍했다. 음악적인 깊이를 가다듬지 않은 채, 그저 볼륨을 키우고 비트를 몰아세웠다.

오늘날의 뮤지션들은 음악에게 끌려다니고 있다…….

가장 답답한 것은 문제의식을 알면서도 뚫고 나가지 못하는 자신이었다.

그랬다. 그 역시 정체한 기타리스트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프, 뭐가 그렇게 심각해?”

장발을 말끔하게 빗어 넘긴 남자가 히죽 웃으며 맥주병을 물었다.

제임스 패트릭 페이지, 약칭 지미 페이지Jimi Page역시 기타리스트이자 관객이었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다.

야드 버즈Yard Birds에서 기타 파트를 양분하는 두 사람은 라이벌이자 친구이기도 했다.

제프 벡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또 아무것도 아니란다. 쯧쯔. 그냥 흘려들어. X밥들이 X밥스러운 거야 당연하잖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제프 벡이 볼 때, 지미 페이지는 천재였다.

기타만 쥐면 창의적인 릭과 솔로를 쏟아 냈다. 평소에는 가볍고 느슨해 보여도 일단 착상에 들어가면 지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는 자신의 깊고 웅혼한 우물에서 영혼의 샘물을 퍼낼 줄 알았다.

요컨대 할 때는 하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평소의 저 경박한 태도조차 그 순간에 몰입하기 위한 정신적 이완 절차일지도 모른다.

“캬캬캬. 우와아. 존나 못 쳐! 저거 쪽팔려서 더 악쓰는 거 같은데? 크크. 이거 던지면 저기 무대까지 날아가려나?”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지미. 자네는 다 좋은데 말이야…….”

“아아, 거기까지. 난 다 좋은 걸로 만족하겠어. 그 뒤의 잔소리는 딸내미한테나 하라고.”

“나는 딸이 없다만.”

“그러니까 하지 말라는 소리야.”

“나 참.”

두 천재의 수준에서 엉망진창이었던 무대가 끝났다.

그제야 둘은 건성이던 태도를 접고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오네.”

“나오는군.”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는 크림Cream의 차례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음악이라면 믿을 수 있지.’

야드 버즈에서 탈퇴하고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찾아 떠난 에릭 클랩튼은 제프에게 있어 선구자이자 롤 모델이었다.

그는 존경할 가치가 있는 뮤지션이었다.

모두가 미래의 로큰롤을 향해 내달릴 때, 그만은 과거의 블루스에 안착했다.

현재의 로큰롤이 빠르고 화려해진 대신 얕아지고 있음을 간파하고, 본류로 거슬러 올라가 음악의 정수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런 음악적 시도는 크림의 성공으로 증명되며 더욱더 만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무대 뒤로 시점을 옮겨 보자.

에릭 클랩튼은 기타리스트였고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절찬리에 황당해하고 있었다.

“……뭐라고?”

“나쁠 거 없잖아? 자네도 재밌을 거야.”

“채스, 자네가 아니었으면 나 그냥 나갔을 거야.”

채스 첸들러는 난감하게 웃었지만 말을 물리지는 않았다.

애니멀스Animals가 해체하고 뭐 하나 싶었는데, 오랜만에 등장해서는 베이시스트 때려 치고 매니저로 전업했단다.

그것부터가 황당한데 데려온 놈이 대뜸 하는 말은 더 황당했다.

“한번 해 봐. 나 몰라? 나 채스 첸들러야. 내가 데려온 사람이라고.”

“그래도 그렇지. 공연 5분 전에,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같이 무대에 올라가자면 누가 섣불리 오케이 하겠느냐고. 그것도…….”

에릭은 방 한구석에서 얌전히 서 있는 흑인을 흘깃 보았다.

“……검증이 안 된 사람을 말이야.”

듣보잡 신인이라는 말을 간신히 고쳐서 말했다.

하지만 채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게 뭐 대수냐는 태도였다.

“자네 밴드는 즉흥 연주가 특기잖아. 어떤 상황이든 대응할 줄 알아야 진짜 뮤지션이지.”

“아오, 진짜. 알았어, 알았다고. 딱 한 곡뿐이야. 자네 나한테 빚 하나 진 거야?”

“글쎄. 공연이 끝나면 자네가 나한테 고마워할걸.”

“……뭐?”

“제임스! 준비하자고!”

흑인이 스트랫을 빗겨 맨 채로 어슬렁 다가왔다.

그는 단정하지 못한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맑은 눈과 나지막한 목소리 탓인지 난잡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낯 앞에서 박대하기도 뭐 했다.

“하울링 울프Howlin`Wolf의 킬링 플로어Killing Floor 가능할까요?”

“……뭐, 안 될 거 없지. 우리도 자주 하던 레퍼토리니까.”

“정말 영광이에요. 저 크림 노래 자주 듣거든요. 같이 연주해 보는 게 꿈이었어요.”

에릭은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행동이 너무 앞서잖아.

‘순진한 건지 당돌한 건지. 아무튼 진짜 웃기는 놈이네.’

어쨌든 채스가 소개해 준 사람이니 적어도 기본은 하겠지.

불안과 설렘을 각자 품어 안은 채 둘은 무대에 올랐다.

에릭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겨나 보자는 심산으로 텐션을 끌어올렸다.

즉흥 잼Jam이란 것이, 특히나 슈퍼밴드 크림과 보조를 맞추는 잼이 얼마나 수준 높고 녹록치 않은 일인지 똑똑히 보여 줄 생각이었다.

“원, 투, 쓰리.”

드럼의 신호가 끝나자마자 전주가-

쿠왕- 구아아앙-!!

시작되자마자 강렬한 오버드라이브 사운드가 뺨을 후려치듯이 뛰쳐나오고, 에릭은 깜짝 놀라 피크를 놓칠 뻔했다.

관객석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제프 벡은 벌떡 일어섰다.

여유를 즐기던 지미 페이지는 빨던 맥주를 대차게 뿜어 버렸다.

기타 연주는 첫눈에 관객들을 휘어잡은 채, 그들을 소리의 꽁무니에 매달고 쉴 새 없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킬링 플로어가 아니잖아!!’

단지 음계와 비트만 같을 뿐.

경쾌하게 통통 튀는 로큰롤은 사라지고 진짜 늑대가 사납게 울부짖고 있었다.

으르렁대고. 자글대는 숨을 놓고. 이빨을 드러내어 위협했다.

처음 듣는 음색.

완전히 새로운 어프로치.

저 기다란 손가락은 연주 중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허공에서 소리를 빚고 짜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타는 몸 밖의 도구가 아니라, 본디 몸의 연장으로서 거기 붙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저자는…….

좡-! 지잉- 찌이이잉-!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제프도 지미도 에릭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에릭은 잼이고 뭐고 저 소리를 받아 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제프는 테크닉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자빠져 버렸다. 지미는 소리 안에 파묻혀서 분석할 생각조차 못했다.

무대는 이미 한 무명의 기타리스트에게 완전히 장악됐다.

노래가 끝나고, 관객들이 경악과 충격 속에 빠져 있을 때, 아프로 머리의 흑인만이 천진하게 웃으며 에릭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재밌게 놀았어요.”

“……어, 어응. 그, 그래.”

악수를 하고 무대를 내려가는 순간까지도 에릭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가장 먼저 이성을 되찾은 건 제프 벡이었다.

그는 발길을 다급히 옮기며 연주자 대기실로 향했다. 저 멀리, 매니저인 채스와 미소 띤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는 흑인의 모습이 비쳤다.

“저기!”

“네?”

“……그.”

제프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묻질 못했다.

어떻게 기타를 그렇게 칠 수 있는가.

흐느끼는 비브라토. 할딱이는 리듬. 심장을 쥐는 초킹과 그 모든 매혹적인 리릭들.

그건 다 어디에서 나왔는가.

어떻게 해야 그렇게 칠 수 있나.

어째서 나는 당신처럼 하지 못하는가…….

그 모든 걸 어찌 한마디에 담겠는가.

결국 제프 벡은 오른손만을 반사적으로 내밀었다.

“……이름, 당신의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아까는 제대로 소개를 못 들어서.”

그러나 흑인 남자는 내밀어진 손을 말끄러미 내려다보다, 마치 거울처럼, 반대편 손을 내밀었다.

제프의 오른손과 남자의 왼손 끝이 맞닿았다.

제프가 뭔가 싶어 당혹스러워 하자, 남자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왼손으로 악수합시다. 그쪽이 심장과 더 가까우니까.”

“아.”

사실 오른손으로는 기타 케이스를 쥐고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리라.

배려가 담긴 재치에 제프 벡은 멋쩍게 웃으며 왼손을 맞잡았다.

무대의 온기가 담긴 손이었다.

그리고 흑인 남자는 그제야 음악의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그 이름을, 제프 벡에게 건네었다.

“제임스 마샬 헨드릭스. 지미 헨드릭스라고 불러 주세요. 제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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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기타의 신 : 지미 헨드릭스](Rank A)를 습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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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고등학교의 강당.

그러나 뒤에는 마샬 진공관 앰프, 어깨엔 펜더의 스트라토캐스터가 걸려 있고, 내 팔목 위쪽으로는 지미 헨드릭스의 그것이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이곳이 1969년 우드스톡의 무대가 되지 말란 법은 어디에 있는가.

피크로 현을 매끄럽게 매만지니, 현은 지잉-하고 떨리는 감촉을 고스란히 되돌렸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무대 위에서라면 나는 뭐든지 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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