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빅엿
카시마르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가 획득한 아이템은 레벨 1에 얻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아직 코즈믹 게이트의 시스템 상에서 공개된 적 없는 수준의 무기.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다가 성장형 아이템이니 쓰면 쓸수록 능력도 더 좋아질 거였다. 그는 말 그대로 초대박을 터트린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튜토리얼 마지막에 준비된 보스몹인 ‘미러존의 괴물’ 이 괴물을 상대로 얼마나 오랜 시간 버티고, 데미지를 입히느냐에 따라 게임 시작할 때 주어지는 아이템이 달라진다. 아직 그 누구도 깬 적 없는 퀘스트를 카시마르는 클리어하고 만 것이었다. 그것도 한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카시마르는 눈을 감고 그동안의 고생을 떠올렸다. 처음 시작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왜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었을까?
카시마르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피식 미소를 지었다. 처음 시작은 그때의 대화 때문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오기가 생겨서 포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야. 아무리 너라도 이건 클리어 못 하겠는데?”
“하면 될 거 같은데? 별다른 스킬은 없잖아. 그냥 좀 빠르고 센 정도인데. 차분하게 패턴만 익히면 되지 않을까?”
“그러기에는 스탯에서 너무 차이가 나. 한 백 대는 때려야 눕겠네. 너는 몇 대만 맞아도 끝나고. 스피드에서도 차이가 있고. 이걸 어떻게 이기냐. 그리고 패턴도 일정하지가 않아.”
“클리어하면? 클리어하면 어쩔래?”
“미친놈. 또 쓸데없는 거에 승부욕 발동한다. 야. 네가 저거 깨면 내가 네 취향대로 닉네임 바꾼다.”
“진짜지? 그거 약속한 거다? 형 내가 저거 깨면 진짜 아이디 바꾸는 거야. ‘똥 먹는 사람1’ 이런 걸로 바꿔 버릴 거야.”
“야. 저걸 어떻게 깨. 깨라고 만들어 놓은 거 아니라고 운영진들도 이야기했다니까?”
“그렇지만 보상으로 전설급 오리지널 템을 준다잖아. 내 아이디 들어간 템 나오면 그걸로 대박 아니야?”
“깨면이겠지. 저거 깬다고 시간만 낭비하다가 날려 먹으면 그만큼 뒤처지는 거야. 뭐, 뒤쳐져도 상관 없으면 해보고. 아. 그래도 깨지 않더라도 적당히 기록만 나와도 좋긴 하겠네. 꽤 좋은 템 나온다니까. 한 시간 정도를 목표로 해봐. 너무 오래하지는 않고.”
“됐고. 난 전설템 한 번 먹어볼래. 대체 무슨 템인가 한 번 구경이나 해봐야지.”
“적당히 해. 저거 깨라고 만들어 놓은 거 아니라니까.”
그렇게 카시마르의 ‘미러 존의 괴물’ 공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공략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는 것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러 존의 괴물.
코즈믹 게이트의 튜토리얼을 끝내고 본격적인 게임에 앞서서 만나게 되는 보스 몬스터. 유저와 똑같이 생긴 모습의 몬스터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 이 괴물과 싸워서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에 따라 시작할 때 주어지는 아이템이 달라지기 때문에 최대한 오래 버티려는 게 중요했다.
재미난 점은 이 몬스터를 상대할 때 기본적인 장비를 유저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카시마르는 방패와 검 방어구까지 풀로 착용한 다음에 도전했다.
그리고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생명력과 공격력이 좋은 거라면 어떻게 컨트롤로 버텨보겠는데, 미러존의 괴물은 유저보다 훨씬 다양한 패턴으로 공격했고, 스피드도 더 빨랐다. 그러니 유저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많은 유저들인 미러존의 괴물을 클리어하려고 붙들고 있었지만 길어봤자 삼 일을 넘기기 힘들었다.
미러존의 괴물을 길게 붙들고 있으면 있을수록 손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유저들은 미러존의 괴물이 운영진이 만들어놓은 함정이라는 걸 깨달았고, 대부분 적당하게 기록이 나오면 넘어가는 그런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만 빼고.
그는 일주일 동안 주어지는 모든 무기를 조합해서 퀘스트에 도전했다. 기록이 꽤 좋아지긴 했지만 턱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재미난 점을 발견한 카시마르.
그건 미러존의 괴물이 주어지는 장비를 이용해서만 공격을 한다는 점이었다. 그 이후로 카시마르는 아무런 장비도 착용하지 않고 미러존의 괴물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는 팬티 한 장에다 장검 하나만 들고 도전하기 시작했다.
장검을 하나든 이유는 그걸 들고 시작하면 미러존의 괴물이 장검을 이용해서만 공격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장검으로 취할 수 있는 동작은 많아 봤자 한계가 있었다.
카시마르는 피하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미러존의 괴물의 공격을 모조리 피하면서 쓰러질 때까지 두들겨 패기.
누가 들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고 했겠지만, 카시마르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D랭크를 넘어서 C랭크로 전직한 유저까지 나왔다고 커뮤니티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여전히 게임 시작도 못 해 본 채로 묵묵히 미러존의 괴물과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미러존의 괴물의 공격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맨몸으로 그의 공격을 정타로 허용하면 두 방이면 유저는 사망했고, 재수 없게 치명타가 들어오면 한 방이면 죽었다.
공격을 막아도 데미지가 들어온다.
그러니 유저들 사이에서는 괴물의 공격을 피하려고 하지 말라는 공략법까지 나올 정도였다.
피하지 말고 시작하자마자 반대로 달린다. 그러면서 사각의 방을 쉬지 않고 빙빙 돈다.
미러존의 괴물이 유저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대놓고 도망치는 유저를 상대로는 잡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꽤 넓은 맵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꼼수.
실제로 이 공략법으로 20분을 넘게 버텨서 레어 아이템을 보상으로 받고 게임을 시작했다는 유저가 있을 정도이니 나쁘지 않은 공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채앵!
카시마르는 인상을 썼다. 벌써 한 시간 넘게 퀘스트가 진행중이었다. 이제까지 거의 맞지 않고 공격을 넣어온 카시마르였는데, 막판에 판단 미스가 나버렸다. 결국, 카시마르는 검을 들어서 괴물의 공격을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괴물은 두 손으로 검을 잡고 위에서 아래로 공격했다. 카시마르는 뒤로 물러나면서 검을 들어 막아냈지만, 데미지가 들어왔다. 그렇지만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으면 괴물의 공격을 막는 순간 검을 놓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만큼 괴물과 유저의 기본적인 스텟의 차이는 심각했다.
챙!
이 퀘스트가 짜증나는 부분이 바로 이런 점이었다. 미러 존의 괴물은 한 번 공격을 적중시키면 동작이 더 빠르고 강력해진다.
쉽게 말해서 한 번 맞으면 계속 맞는다는 점이었다.
챙! 챙! 챙!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압박하는 미러 존의 괴물. 카시마르는 뒤로 물러나면서 최대한 방어에 힘을 썼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방어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방어만 하다가 그대로 누워버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괴물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발걸음 수를 세고 있었다. 얼마나 뒷걸음질 쳐야 벽이 나오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휘잉!
미러존의 괴물은 양손으로 찌르기를 넣었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검을 바꿔잡고 그대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카시마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뒤로 점프해서 벽을 박차고 나와 미러존의 괴물을 넘어버렸다.
탁! 휘이익!
마치 체조 선수가 뜀틀을 넘으면서 공중돌기를 하는 것처럼 몸을 틀어서 넘어버리는 카시마르.
보통 사람의 움직임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동작이었다.
카시마르는 공중돌기를 하면서 검을 깊숙이 찔러넣어 미러 존 괴물의 목을 공략했다.
취익!
검은 괴물의 경동맥을 살짝 긋고 지나갔다.
푸슈슉!
괴물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아무런 능력 보정을 받지 않은 유저의 움직임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공격.
아무런 보정을 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저런 동작을 구사한다는 건, 현실에서도 똑같이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 말은 카시마르가 어마어마한 운동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
취익!
카시마르는 비틀거리는 괴물의 등을 그었다. 운이 좋았다. 급소를 공격해서 괴물이 잠시 상태 이상에 걸렸고, 그 덕분에 움직임이 느려진 상태였다.
괴물은 뒤돌아서 카시마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까보다 동작이 느려져 있었고, 카시마르는 이런 상황에서 괴물이 어떤 공격을 구사할 지 대충 예상한 상태였다.
횡으로 날아온 검을 아슬아슬 하게 피한 다음 다시 한 번 검을 찔러넣는 카시마르.
푹!
복부에 깊숙이 박히는 검.
그러자 괴물이 카시마르의 검을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카시마르는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버리고 주먹으로 괴물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이 상황에서 몇 번이고 당한 적 있기 때문이었다.
괴물은 이렇게 깊숙한 공격이 들어오면 그대로 검을 잡은 상태로 유저에게 접근해 힘으로 전투를 끝내버린다.
카시마르는 과감히 검을 버리고 괴물의 얼굴을 두들겼다.
퍽! 퍽! 퍽!
괴물의 주변을 현란한 스텝으로 맴돌면서 공격을 퍼부었다. 이미 퀘스트 시간은 1시간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공격이 들어갔는데도 미러존의 괴물은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계는 있었다.
결국, 카시마르는 미러존의 괴물을 쓰러트렸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미러존의 괴물을 쓰러트렸습니다! 전설급 랜덤 상자를 시작 보상으로 받게 됩니다.]
회상을 마친 카시마르는 전설급 오리지널 아이템인 ‘카시마르의 가면(Lv1)’을 바라보았다. 오리지널 아이템은 그 유저의 이름이 새겨진 아이템을 말했다. 쉽게 말하자면 코즈믹 게이트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아이템이라는 뜻.
카시마르는 바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가면을 착용했다.
[가면을 착용하였습니다. 가면의 착용자는 모든 데미지를 ‘10’ 적게 받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리 높은 수치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성장형 아이템인 걸 감안 하면 장난 아닌 능력이였다. 과연 오리지널 아이템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어력 이용 - 가면의 착용자는 상대의 방어력을 역 이용하여 추가 데미지를 입힙니다. 랜덤 퍼센트 적용. 최하 1퍼센트 / 최대 100퍼센트]
호우! 이건 대박 옵션이었다. 방어력 이용이라는 옵션의 아이템이 있다는 걸 그는 아직 들어본 적 없었다. 이 능력은 상대의 방어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추가 데미지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상위 랭크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훨씬 빛을 발할 것이었다. 특히 방어도가 유난히 높은 몬스터에게는 아주 효과적인 옵션이 될 수 있었다.
“와. 전설급 템이니 성장템이어도 붙어 있는 옵션 자체가 차원이 다르네.”
미소가 귀에까지 걸린다. 이런 좋은 템을 시작 아이템으로 받았으니 좋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이 정도면 한 달 늦게 시작했어도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고 볼 수 있었다.
전설급 오리지널 아이템.
아주 좋았다. 여기까지는 카시마르의 기분을 상하게 할 그 어떤 징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으로 뜨는 메시지가 그의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가면의 저주에 걸렸습니다. 착용 해제 불가.]
가면의 저주? 뭔가 이상했다. 착용 해제 불가라니?
“응?”
[가면의 저주에 걸렸습니다. 액티브 스킬이 영구 봉인됩니다.]
“뭐? 이게 뭔 소리야? 뭐···뭐라고?”
평소 욕을 잘 하지 않는 카시마르였지만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액티브 스킬 봉인?
가상현실 게임에서 액티브 스킬 봉인한다고? 그것도 영구 봉인?
그럼 시작 퀘스트는?
랭크 업은?
직업 선택은?
로그 창을 열어 아무리 확인을 해도 잘못 뜬 메시지가 아니었다.
“아! 뭐야! 이게! 이게 뭐냐고! 이 개새끼들아아아아아!”
그렇게 카시마르는 역대급 뒤통수를 맞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