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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5화 (5/205)

# 5

더 더티하게 갚아준다

카시마르는 순식간에 10연승을 찍었다. 승리를 할 때마다 그의 복장은 점점 달라졌다. 지금은 꽤 높은 방어력이 있는 가죽옷에 묵직한 공격력을 보장하는 건틀렛까지 있는 상태였다.

10연승을 찍었지만 아직 레벨은 8에 불과했다. 레벨은 8에 불과했지만 이제부터 만나는 상대들은 E 랭크 마스터 레벨들이었다. 마스터 레벨을 만난다는 키슈의 안내에 카시마르는 보너스 포인트를 투자할까도 생각했지만 마음을 접었다.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특히 가면에 붙어 있는 옵션 중에 모든 데미지를 10 줄여준다는 옵션이 가장 큰 꿀이었다.

공격을 당해도 클린 히트가 아니면 데미지가 줄어들기 마련인데, 컨트롤로 회피를 자주 사용하는 카시마르와 시너지 효과가 장난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10연승을 하면서 대부분의 게임을 퍼펙트로 이어나갔다. 상대의 레벨이 낮은 탓도 있었지만 카시마르가 워낙 독보적으로 기술이 뛰어났다.

카시마르는 대기실에서 아이템을 살짝 점검한 다음 경기로 나섰다.

배정된 맵.

정령의 숲.

이번에 배정된 맵은 정령의 숲이라는 곳으로 마탑과 다르게 맵이 꽤 넓었다. 울창하게 솟은 나무를 이용해서 공격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맵에 대한 이해도와 전술이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었다.

카시마르는 이 맵에 대해서 잘 알았다. 아니 투기장 시스템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게임을 시작하기 전부터 투기장 시스템이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잘 맞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투기장 맵에 대해서는 훤히 꿰고 있었다. 미러 존의 괴물을 공략하다가도 남은 시간에는 틈틈이 커뮤니티를 돌며 알려진 맵에 대해서 조사하고 연구했다.

지금까지 코즈믹 게이트에 자크르 전용으로 배정된 맵은 모두 서른 개 정도였고, 계속 추가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맵 중에서는 마탑처럼 특수한 상황에 처해지면 그대로 게임이 끝나는 맵도 있었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했다.

‘뭐지? 음유시인인가?’

이번 상대는 원시 부족 같은 옷차림에 피리와 비슷한 생김새인 악기를 들고 있었다. 막대기처럼 생겼는데, 피리보다는 크고 길었다. 피리의 색깔은 초록색과 파란색이 뒤섞여 있었다.

E 랭크에서 얻을 수 있는 스킬 중에는 일반 스킬과 다른 히든 스킬도 있었다. 그 중에서 스킬을 얻으면 스킬 관련된 아이템이 따로 배정되는 종류도 있었는데, 바로 음유시인 계열의 직업이 그러한 경우 중 하나였다. 아직 E 랭크라서 직업이 확정된 건 아닐 테지만 보아하니 사내는 보통의 직업군과는 조금 다른 진로로 캐릭터를 육성하려는 게 분명했다.

“님 연승 중이에요?”

사내가 물었다. 사내는 민 머리에 키가 작고 눈이 똘망똘망한 전체적으로 귀염 상의 얼굴이었다. 반면에 카시마르는 190에 가까운 키에 온몸이 근육질이었다.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지만 건틀릿이 인상적으로 보였다.

“예.”

“하. 저 이번이 처음인데 왜 연승 상대랑······.”

“처음이에요?”

“옙.”

“마스터 레벨이죠?”

“예. 마스터 레벨이긴 하죠. 이제 D 랭크로 가기 전에 투기장에서 명점 좀 얻고 올라가는 게 정석이라고 해서 왔는데 님 포스가 장난 아니네요.”

“마스터 레벨이면 연승 중 아니어도 연승 상대 걸리기도 합니다.”

“하. 저 보시면 알겠지만 직접 전투 직업군이 아니어서요.”

“지원 계열입니까?”

“음유시인 쪽으로 올라갈 생각인데 제가 투기장을 너무 만만하게 봤나 보네요.”

“지원 계열은 자크르에 어울리지 않아요. D랭크 가셔서 팀플 쪽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카시마르는 말을 하고 천천히 음유시인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자 음유시인이 손을 내밀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잠깐만요!”

“왜요?”

“가기 전에 연주 한 번 괜찮지 않습니까? 거. 연주하기 좋은 날씨인데요.”

“음유시인한테 왜 연주를 하게 내버려둡니까. 님 이거 자크르에요.”

“저 음유시인이라 연주 해봤자 버프 밖에 스킬 없습니다.”

“디버프 스킬 있잖아요.”

“그건 위로 올라가서 직업군 정해야 할 수 있는 거고요.”

“그래서요?”

“저 원래 현실에서 플롯 전공 했거든요? 연주 한 번 들어보시지 않을래요?”

사내의 말에 카시마르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악기 이름이 뭐에요?”

“연주 끝나고 알려줄 게요. 소리나 한 번 들어보세요.”

사내의 말에 카시마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떤 소리인지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형태나 크기를 봐서는 아프리카 전통 악기와 비슷한 묵직한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사내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카시마르를 향해 악기를 똑바로 향하더니 있는 힘껏 숨을 불어넣었다.

취이이!

사내의 볼이 빵빵해지고 악기를 가장한 무기에서 연기가 흘러나왔다. 연기가 잠시 시야를 흩뿌렸고, 카시마르는 얼른 뒤로 물러났지만 연기를 한 모금 맡을 수밖에 없었다.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일정 시간마다 독에 대한 데미지 3씩 받게 됩니다. 독에 대한 내성이 없다면 독데미지는 당신이 죽을 때까지 지속됩니다.]

카시마르는 자신이 약간 순진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내는 음유시인이 아니라 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 악기는 악기 모양으로 생겼을 뿐 독연기를 뿜어내기 위한 도구였다.

10연승을 하는 동안 희한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유저들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설마 자크르를 하는데 이렇게 더러운 스타일로 하는 인간이 있을 줄 몰랐던 것이었다.

“하. 거참. 별 거지 같은······ 안 그래도 스타트가 지랄 맞아서 받은 열이 식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불을 붙여 주는군. 그래서 그대로 도망치시겠다 이거지?"

카시마르가 소리쳤다. 그러자 숲속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럼 잡아보시던가! 마침 맵이 이래서 잡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하하하! 참고로 E 랭크구간의 유저 중에 독에 대한 내성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질 못했습니다! 당한 게 바보죠.”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E 랭크 존에서는 독 내성과 관련된 스킬을 얻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독 내성에 관한 스킬을 얻으려면 특별한 아이템을 얻거나, 혹은 독으로 인한 데미지를 자주 입어서 자동으로 스킬이 생성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보아하니 사내는 이런 식으로 투기장에서 꽤 재미를 본 모양이었다.

카시마르는 숲으로 들어가려다가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연기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 이유는 가면의 옵션이 의외의 효과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의 가면에 의하여 독에 대한 데미지가 중화되었습니다.]

[카시마르의 가면에 의하여 독에 대한 데미지가 중화되었습니다.]

가면의 옵션에 의하면 받는 데미지를 무조건 10 줄여준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독으로 들어오는 데미지도 해소가 되는 것이었다. 사내가 랭크업을 해서 좀 더 강력한 독을 사용했다면 카시마르도 위험했겠지만, 사내는 이제 E랭크에 불과했다. 그러니 들어오는 데미지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카시마르는 입구의 나무 위로 올라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내는 이런 식으로 상대를 중독시킨 다음 알아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플레이를 쓰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도 카시마르가 나타나지 않으면 스스로 입구로 모습을 내밀 게 분명했다. 카시마르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는 모르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의 생명력은 전혀 깎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화면에는 독에 대한 데미지가 중화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투기장의 자크르는 기본적으로 시간 제한이 없었다. 물론, 폐허의 마탑 같은 경우는 맵 특성상 시간 제한이 있었지만, 정령의 숲은 그런 페널티가 없는 맵 중 하나였다. 누군가 먼저 접속을 해제하거나 강제 종료하지 않는 이상 경기가 끝날 일은 없었다. 카시마르는 느긋하게 나무 위에 올라서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한 10분쯤 기다렸을까?

[독에 대한 아주 약한 내성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계속 시간을 끌면 스킬이 생성될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는데 진짜로 획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다가 예상대로 독술사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구간에서 생명력이 아무리 높아 봤자 5분이면 게임이 끝나야 정상인데, 그 배의 시간이 지체되었는데도 게임이 끝나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었다.

“뭐야? 왜 안 끝나?”

독술사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카시마르는 얼른 점프해서 지상으로 착지했고, 그대로 무릎으로 독술사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현실에서는 한 방에 사람을 즉사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공격이었지만, 여기는 게임이었다.

빠각!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독술사가 그대로 바닥에 개구리처럼 뻗어버렸다. 즉사는 하지 않았지만 상태 이상에 걸려버린 것이었다.

“어··· 쓰바. 이거 뭐야. 왜 멀쩡해!”

“뭐긴 뭐야. 자크르지. 너 내가 웬만해서는 더티한 플레이 안 하거든? 특히 브레이깅 같은 비매너 행위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너 때문에 오늘 처음으로 하게 될 거 같다.”

브레이깅은 브레이크와 티배깅의 합성어로 쉽게 말해서 상대의 무기를 부순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부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승패가 갈린 상황에서 상대의 무기의 내구도를 일부러 깎는 것을 의미했는데, 이게 실제로 유저에게 피해가 가는 행위인만큼 유저들 사이에서는 욕설이나 티배깅보다 훨씬 더 비매너로 분류되고 있었다.

코즈믹 게이트의 대부분의 아이템은 내구도가 있었고 전투를 하면 당연히 그 내구도가 소모되었다.

특히 투기장에서 전투를 하더라도 무기의 내구도는 소모되기 때문에 틈틈이 수리를 해주는 게 중요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기를 수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꽤 비쌌다.

특히 무기가 완전히 부서진 경우라면 더 많이 들었다. 그런데다가 특수한 무기들은 일반 수리점에서 수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독술사 사내의 무기는 누가봐도 특수한 것이었다.

“뭐? 뭘 하려고?”

카시마르는 독술사의 피리를 들고 악마처럼 웃어 보였다. 철제 무기가 아닌 이상 딱 봐도 내구도가 약해 보였다.

“이거 잘 부서지게 생겼네. 부서질까?”

“저··· 저기 님? 브레이깅 비매너인거 아시죠?”

“너님 플레이는 참 매너 있고요?”

“그래도요. 이건 아니죠. 이건 아닙니다. 님! 저기요? 걍 끝내주시죠?”

“보아하니 제대로 스턴 걸린 거 같은데. 그동안 이거나 만져주고 있겠습니다.”

“님! 야! 쓰바! 야아!”

“잘못했습니다. 해봐.”

카시마르가 독술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독술사가 눈을 껌뻑이더니 얼른 대답했다.

“잘못했습니다. 님.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렇게 더티하게 플레이 안 하겠습니다. 해봐."

"다시는 이렇게 더티하게 플레이 안 하겠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님. 그거 일반 대장간에서 수리도 안 되는 물건이란 말입니다."

“응. 그래. 알았어.”

카시마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피리를 두툼한 나무 기둥에다 내려쳤다.

빠각!

피리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단단해도 나무 기둥보다 단단할 순 없었다. 카시마르의 가면처럼 특수한 템이 아닌 이상 내구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 왜! 잘못했다고 했잖아!”

“어. 잘못한 거 알면 됐어.”

“근데 왜! 왜! 왜! 왜 그러는데에! 왜에!”

사내가 발광하듯이 소리쳤다.

“더티하게 게임 하면 더 더티하게 당한다는 걸 보여주는 건데? 이 씨부앙 새야? 어서 사기를 치고 앉아 있어. 너도 당해보니까 엿 같지?”

“야! 야!”

빠각! 빡! 파악!

카시마르는 쉬지 않고 계속 나무에다가 피리를 내려쳤다. 몇 번 내려치자 피리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때 사내가 상태 이상을 회복한 채로 카시마르에게 달려들었다.

빠각!

사내가 달려들어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카시마르는 등뒤를 덮친 사내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주고는 그의 피리로 이마를 두들겨 주었다.

“와. 이거 무기로도 쓸만한 대? 어때? 데미지가 좀 들어가? 데미지가 아주 달달하지?”

“너 이 개······.”

“착하게 살라는 이야기는 안 한다. 게임인데 좀 나쁜 짓하고 그러면 어때? 근데 새끼야. 사기는 치지 말아야지. 음유시인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너 이런 식으로 해서 당한 유저들한테 겁나 놀리고 티배깅 했지? 잘 가라!”

“근데 너 왜 안 죽어. 버그냐?”

“그게 궁금하면 운영자한테 문의 넣던가.”

빠가각!

카시마르는 피리로 상대의 머리를 다시 한 번 내려쳤다. 상대의 머리에서 피분수가 솟아 올랐고, 피리는 그대로 두동강이 나서 떨어졌다. 사내는 두 동강이 난 피리를 보면서 그대로 죽임을 당했다.

카시마르는 죽어가는 사내를 향해서 묘한 미소를 지어주고 있었다. 현실에서 그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여기는 가상현실이었다. 룰을 어긴 게 아니었으니 어떤 행동을 해도 상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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