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강철 원숭이(1)
카시마르의 하루는 일정했다. 그는 새벽에 4시 정도에 일어나 가볍게 체력 훈련을 하고 코즈믹 게이트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한다. 어떤 날은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무술이나, 중세 검술에 관한 정보를 훑어보기도 한다. 오늘도 그랬다. 어제 양손 검 사내와 전투한 뒤로 카시마르는 양손 검을 들고 개인 훈련장에서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저녁 식사는 다 같이 하지 못하는 날이 있었지만, 아침 식사만큼은 늘 같이하려고 하는 카시마르였다. 그는 한 가족의 가장이었고 세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둔 아버지였다.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하는 와이프와 아이들을 배웅하고나면 이제 그는 코즈믹 게이트에 접속할 준비를 한다.
코즈믹 게이트는 그의 전투 본능을 해소시켜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평생 남과 대결을 하면서 살아온 카시마르. 은퇴 뒤에는 잠잠해질 줄 알았던 그 본능은 오히려 은퇴 뒤에 더 강렬해졌다.
덕분에 카시마르는 은퇴 뒤에 더 많은 운동을 했고, 이전에는 깊게 파고들지 않았던 각종 무술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맨손 무술부터 시작해서 각종 무기술에 총술까지. 누가보면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긴 시간을 무술에 심취한 채로 살아온 카시마르. 그런 그에게 코즈믹 게이트는 아주 딱 알맞은 게임이었다.
가상 현실이지만 현실과 거의 다름 없는 움직임이 구현 가능했고, 무엇보다 가상 현실에서만 구현될 수 있는 환상적인 전투가 그를 매료시켰다. 아무리 그가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졌다고는 해도 현실에서 허공을 박차고 움직이거나 소용돌이를 소환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코즈믹 게이트에 푹 빠진 이후로 카시마르는 하루의 대부분을 게임을 하며 보냈다. 그가 게임을 하는 시간은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부터 오후 4시까지. 가끔 저녁에 시간이 비면 접속을 하긴 하지만 4시 이후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는 오늘도 코즈믹 게이트에 접속했다. 오늘은 접속하자마자 바로 핏불킹에게 귓말을 보냈다.
[형.]
[접속했냐?]
[어.]
[아이디 안 접을 생각인가 보네?]
[접을까? 대신 접으면 형 아이디도 끝이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요.]
[좀 알아낸 건 있는가? 없으면 일단 몇 글자만 먼저 바꿔봅시다. 핏불에서 핏을 빼고 알을 넣는 거야. 순서도 좀 바꾸고.]
[알불? 불알킹? 야. 자꾸 이러기냐? 너 형이 인마 너 기저귀 찰 때부터 업어 키웠는데 이러기야?]
[기저귀는 개뿔. 나 형 열여덟에 만났잖아.]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카시마르와 핏불킹은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사내들이었지만 여전히 만나면 예전처럼 유치해졌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좋아하기 때문에 둘이 만나면 유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말이야. 내기는 내기고 거래는 거래지. 형이랑 내기해서 한 달 동안 미러 존의 괴물이랑 싸운 사람도 있는데.]
[그건 네가 돌아이라서 그런 거고. 누가 그걸 한 달이나 붙잡고 있냐.]
[오호. 일이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거지?]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아무튼 정보는 알아보고 있다.]
[알아보고만 있으면 뭐합니까요. 결과를 가져와야지 결과를!]
[너 너무 변했어. 게임이 사람을 아주 그냥 난폭하게 만들어버리는구만.]
[형도 전설템 먹고 저주 걸려봐 안 난폭해지나. 그리고 이거 게임 원래 이렇게 더티해?]
[왜? 사기 치는 놈들 만났냐?]
[어. 벌써 두 번이나 만났어.]
[인마. 현실이 그래. 너 운동할 때처럼 정정당당하게만 싸울 줄 알았어? 하긴 운동할 때도 반칙 쓰는 놈들 있긴 했지. 약물 쓰는 놈들도 있었고.]
[근데 여기는 룰이 없어. 기상천외한 사기를 치더라니까?]
[그게 짜증 나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게 또 묘미지.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막장 짓을 여기서는 할 수 있잖냐.]
[그래서 형은 요즘 뭐하고 있는데?]
[나 우리 길드원들이랑 던전 돌지. 그니까 너도 좀 빨리 나와. 너 정도 컨트롤이면 템이나 스킬이 좀 구려도 충분히 같이 돌 수 있어.]
[난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요. 형이 말한 강철 원숭이 한 번 잡아보려고.]
[그거 잡아보게? 쉽지 않을 걸. 미러 존의 괴물이랑은 또 틀릴 거다.]
[할 게 없잖아. 그니까 빨리 랭크 업 할 수 있는 방법 알아와.]
[맞다. 이야기 들은 거 하나 있어.]
[뭔데?]
[그 뭐냐. 너 투기장 돌고 있지?]
[어.]
[투기장에서 계속 싸우다 보면 투사 계열로 전직이 가능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투기장에서?]
[어. 근데 그 기준은 모르겠어. 우리 길드의 아는 유저 중 한 명이 투기장 위주로 플레이하는 사람인데, 투사 전직 그게 떴다고 하더라고. 근데 이게 E랭크에서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데.]
[얼마나 한 사람인데?]
[그건 모르겠는데 아무튼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투기장에서 산 사람 같아. 플레이 스타일이 마법사고 고착이 된 상태라 투사로 전직은 안 했는데, 어쨌든 그런 메시지가 뜨긴 한다더라고.]
[음. 투사라. 그것도 히든 직업이지?]
[그치. 알려진 건 아니니까. 근데 크게 좋아 보이진 않아서 그냥 전직 안 했데. ‘투사’ 크게 포스 있어 보이지 않잖아.]
[하긴 칼날 소환사나 환영 검사에 비하면 그렇긴 하네.]
[그래. 히든 직업 중에는 일반 직업보다 더 별로인 것들도 있어서 잘 선택해야 돼.]
[근데 나는 지금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아무튼 땡큐.]
[근데 그거 확실한 거 아냐. D랭크 일 때만 획득 가능한 직업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그래도 그런 메시지를 받은 건 확실한 거 아냐?]
[그건 확실해. 스샷까지 보여주더라고. 유저들 신기한 템 보거나 메시지 뜨면 캡쳐 해놓잖아.]
[그래. 그러면 확실하겠네. 아무튼 땡큐야. 더 알아낸 거 있으면 알려줘.]
[이걸로 내기 퉁치는 거냐?]
[퉁은 무슨. 내가 그 정보로 D 랭크로 올라가면 퉁쳐준다.]
[오키.]
대화를 마친 카시마르는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 말을 구입하려다가 하지 못한 말을 마저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마을 중앙으로 가자 말 상인이 말을 세워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얼른 말 상인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빌릴 거요? 살 거요?”
“빌릴 겁니다. 제일 좋은 말이 어떤 겁니까?”
“저놈이 가장 좋은 말인데.”
말 상인이 끝에 있는 우람한 근육의 흑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시마르는 주저하지 않고 값을 치르고 흑마를 빌렸다. 흑마를 타고 미리 마킹한 곳으로 움직였다. E 랭크 존은 곳곳에 NPC들이 많이 있었다. 마을도 여러 군데가 있었고 말을 타고 지나가는 유저들이나 상인들도 많이 보였다.
선착장도 두 군데나 있어서 그곳으로 물자가 들어온다고 했는데, 유저들은 탈 수 없다고 되어 있었다.
카시마르의 목적지는 초보존 남쪽에 있는 검은 풍차란 곳이었다. 검은색 풍차가 있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정보상인이 있다고 했다.
질문 하나에 투기장 금화 하나.
꽤 비싼 정보료였지만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는 꽤 신뢰할 수 있다고 했다. 일부러 D랭크 존의 유저들이 초보 유저에게 의뢰를 해서 질문을 얻어올 정도라고 하니 꽤 많은 정보를 다루는 정보상이 분명했다.
검은 풍차 안으로 들어가자 의자에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이 앉아 있었다. 화려한 복장은 아니었고, 시골 아녀자들이 입을만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여인은 카시마르를 보자마자 손을 내밀었다. 카시마르는 투기장 코인을 여인의 손 위에다 올려주었다. 그러자 여인은 카시마르를 보며 씩 웃었다.
이 정보상들은 방문자가 방문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어떨 때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가, 어떨 때는 몬스터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었다. 카시마르가 만난 검은 풍차의 정보상은 여인이었다.
“어떤 대답을 원하죠? 신중하게 질문하세요. 질문 하나에 코인 하나가 값입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한해서 코인을 되돌려드립니다.”
여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스킬을 올리는 것 외에 D 랭크로 전직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카시마르의 질문에 여인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히 NPC였는데 살아있는 사람보다 표정이나 행동이 더 생생했다. 여인은 잠시 카시마르를 보더니 손을 다시 내밀었다. 손에는 투기장 코인이 그대로 있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인가요?”
카시마르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보통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전직하는 방법을 투기장 코인 하나로 쉽게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히든 직업은 특별한 상황을 경험해야지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히든 직업이었다. 정보상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였으면 코즈믹 게이트에는 히든 직업이 넘쳐나고 있을 거였다.
“네.”
“그럼 다른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여인이 다시 웃으면서 폈던 손바닥을 접었다.
“네. 질문하세요.”
“강철 원숭이의 공략법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여인은 이번 질문에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강철 원숭이의 공략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방어력 관통이 옵션이 붙은 무기를 들고 상대할 것, 다른 하나는 혼자서 싸울 것. 강철 원숭이는 도전하는 유저수에 비례하여 강해지는 성향이 있습니다. 2인 3인 파티를 추천해드립니다.”
“1인 공략은 어려운가요?”
“1인일 때 강철 원숭이가 가장 약하지만 보통의 컨트롤로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힘듭니다. 따라서 마법으로 강철 원숭이를 약하게 만든 다음 방어력 관통이 높은 무기로 사냥하기를 추천합니다.”
“방어력 관통이 필요한 이유는?”
“강철 원숭이는 특수한 강철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방어력이 워낙 높아서 웬만한 유저의 공격의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고 들어간다고 해도 아주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방어력 관통 옵션이 붙은 무기가 필요합니다.”
카시마르는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E랭크 유저들이 떼로 덤벼도 강철 원숭이를 잡지 못했던 이유를 알아냈다. 정보상인 말대로라면 강철 원숭이는 적이 많으면 많을 수록 강해지는 종류의 보스몹이었기 때문에 떼로 덤비면 못잡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검은 풍차에서 나온 카시마르는 주저하지 않고 강철 원숭이를 사냥할 생각이었다. 방어력 관통 무기는 없지만, 가면의 옵션에 방어력 이용이라는 어마어마한 능력이 붙어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방어력 관통보다 상위 호환의 능력. 강철 원숭이가 방어력이 높으면 높을 수록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는 물건이기 때문에 지금 사냥에 딱이었다.
카시마르는 원래 정보만 수집하고 투기장으로 가려고 했는데, 마음을 바꾸었다. 아직 투기장 재입장 시간까지 시간이 꽤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일단 강철 원숭이를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강철 원숭이의 서식지가 이곳에서 그다지 먼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