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진심으로 설득하면 통하는 법이다
“끄어······ 선생님. 이제 그만 때리시면 안 될까요. 너무 아픕니다. 흑흑.”
“왜? 아까의 그 기개는 어디 가셨나?”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습니다. 선생님.”
“지금은 제정신이고?”
“그렇습니다!”
카시마르는 쭈그려 앉아서 강철 원숭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철 원숭이는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만큼 팅, 팅 부은 채로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그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무논리의 힘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강철 원숭이 아베다는 뛰어난 전사이자 선동가였다. 특히 세치 혀로 상대를 사로잡는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 했다. 그러나 그러한 말 빨도 상대가 들어줄 때나 통하는 법이었다. 강철 원숭이는 맞으면서 카시마르를 설득하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모두 실패였다.
카시마르는 정말로 강철 원숭이에게서 받을 걸 포기하고 두들겨 패는 중이었기 때문에 강철 원숭이 갖가지 감언이설로 넘어가려고 해도 통하지가 않았다. 필요한 게 없는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협상가는 없다. 카시마르가 강철 원숭이가 가진 것을 원해야 협상이라는 게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강철 원숭이를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강철 원숭이는 어디 도망도 가질 못했다. 카시마르에게서 일정 이상 떨어지는 이상 어마어마한 전기 충격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냐. 아직도 제 정신이 아닌 거 같은데?”
“아닙니다. 완죤히 제정신임다!”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빠릿빠릿하게 대답하는 강철 원숭이를 보고 카시마르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진짜 때리고 싶어서 때렸는데 효과가 의외였다.
‘계속 끌려다녔으면 스트레스로 암에 걸렸을 거야.’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강철 원숭이를 카시마르는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뭐. 왜.”
“이제부터는 언행에 조심하겠으니 이제 마을로 가시는 게 어떨까요?”
강철 원숭이가 카시마르를 살피면서 물었다. 카시마르는 가면을 쓴 상태였기 때문에 표정을 알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강철 원숭이는 더 답답했다. 강철 원숭이는 몇 천년을 산 요물이었다. 상대의 표정만으로도 생각을 읽어내는데 고수였는데, 카시마르는 표정을 보여주지 않고 무엇보다 협상 자체가 통하지 않는 다혈질이니 강철 원숭이 입장에서는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고 할 수 있었다.
“캐릭터 설정 참 거지 같이 해놨네. 이거 누가 기획한 거야.”
“네?”
“야. 원숭이.”
“넵.”
“누가 널 마을로 데려간데?”
“예? 그럼 어디로?”
“너 되게 나쁜 놈이잖아. 되게 나쁜 놈들은 원한을 잊지 않더라고. 분명히 내 뒤통수를 칠 게 분명해.”
“아니 선생님! 제가 선생님 뒤통수를 친다뇨.”
“아냐.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신뢰감이 없어. 분명히 나중에 다른 소리할 거야.”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
강철 원숭이가 폴짝 뛰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됐고. 대충 네 이력을 보니까. 아주 아주 아주 우주급으로 나쁜 놈 같으니까. 그냥 여기서 정리하자.”
“무슨 정리를? 선생님? 제가 의외로 재주가 많습니다. 카이로의 꼬리. 제가 초단기간으로 마스터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 내려와서 숨어 산지가 오래 되어서요. 이 대륙에 대해서 속속들이 잘 압니다. 보상을 많이 주는 사냥터를 원하십니까? 말만 하십시오. 제가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응. 안 믿어.”
“아. 선생님. 제가 이 목줄 달고 뭘 어딜 어떻게 한다고 그러십니까.”
“됐어. 본성은 안 변한다는 게 진리더라고.”
“아! 억울합니다! 믿어주세요!”
퍽! 꽥!
강철 원숭이가 소리를 지르자 카시마르는 들고 있던 카이로의 꼬리를 던져버렸다. 카이로의 꼬리는 50cm 정도로 완전히 작아진 상태여서 상당히 둔탁한 느낌이 있었다. 카시마르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강철 원숭이를 두들기고 있었지만, 조금도 미안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강철 원숭이가 말을 타고 오면서 했던 욕들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강철 원숭이는 선악을 구분하자면 악쪽에 가까웠다. 그는 달리 달로스를 힘으로 지배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니 카시마르의 이런 철저한 대응이 어떻게 보면 잘 맞아 떨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 증거로 강철 원숭이는 난생처음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표정을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도무지 카시마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 어떻게 대응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가져와.”
“예!”
카이로의 꼬리에 이마를 직격으로 맞은 강철 원숭이가 재빨리 움직였다. 양손으로 공손히 카이로의 꼬리를 가져오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구타가 효과는 제대로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카시마르는 강철 원숭이를 믿지 않았다.
“지금부터 네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너 저기 달리 뭐시기인가에서는 잘 나갔다며.”
“달리 달로스입니다.”
“그래. 달리 달로스. 거기는 뭐하는 동네냐.”
“달로스님을 신으로 모시는 우주입니다! 여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넓고 아름다운!”
“형용사 붙이지 말고 그냥 사실만 말해.”
“예.”
강철 원숭이는 달리 달로스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달리 달로스는 달로스라는 금속의 신을 숭배하는 세계였는데, 강철 원숭이는 그곳을 오래전부터 지배해온 일족의 우두머리라고 했다. 근데 이놈이 아주 악질이어서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켜서 이곳까지 도망쳐온 것이었다.
강철 원숭이는 카시마르의 협박에 못 이겨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적당히 포장해서 늘어놓았다.
그리고 카시마르는 그걸 적당히 포장해서 늘어놓는 거라고 감안해서 들었다.
감안해서 듣고 보니 강철 원숭이는 천인공노할 나쁜 원숭이 새끼였다. 입에 담지도 못할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놓고 발뺌하는 스타일이 누군가와 심하게 겹쳐 보였다. 카시마르는 아무리 아이템이 중요하지만 이런 놈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야. 이제 그만.”
“넵!”
“네가 충분히 나쁜 놈이라는 건 알았다.”
“네.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착실하게 살겠습니다.”
“응. 진심으로 뉘우쳤으면 좋겠다. 자. 두 가지 옵션이 있다.”
“무슨 옵션 말씀입니까?”
“제일 고통스러운 게 불타서 죽는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말인데 내가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뒤지게 맞아 죽고 나서 화장될래? 아니면 불타서 죽을래?”
“······?”
“선택해라. 선택 안 하면 죽기 직전까지 뒤지게 맞고 불타서 죽는 걸로 마무리하는 걸로 하겠다.”
“선생님? 아니. 살려주신다면서요.”
“내가 언제? 솔직히 조금 그런 마음도 있었는데 네 이야기 듣고 보니까. 아니야. 도무지 내 윤리관으로는 널 용서할 수가 없다. 나쁜 원숭이 새끼야. 아이들이 무슨 죄니? 응? 일반 시민이 무슨 죄야? 나쁜 새끼. 나쁜 짓을 저질렀으면 진심으로 사죄나 하던가. 누가 돈 달래? 이 나쁜 놈의 새끼들. 무엇보다 이름이 가장 마음에 안 들어!”
카시마르는 일어나서 다시 강철 원숭이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대부분을 강철 원숭이를 구타하는데 시간을 버리고 있었지만, 카시마르는 상관하지 않았다.
30분 뒤.
강철 원숭이는 넝마가 된 채로 카시마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눈물 콧물을 한 바가지로 쏟으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누가 보면 카시마르가 아주 악질 동물 학대범으로 보일 정도였다.
***
카시마르는 원래 공략법이 아닌 변칙 방법으로 강철 원숭이를 길들이는데 성공했다.
이건 코즈믹 게이트 내에서 꽤나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시스템에서 운영자에게 이슈 메시지를 보냈다. 그 메시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유동섭이었다.
“팀장님.”
구소형은 팀장실 의자에 느긋하게 누워서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코즈믹 게이트의 인기는 나날이 상승 중이었다. 그런데다가 얼마 전에 있었던 커다란 사건 하나도 잘 수습이 되었으니 크게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유동섭이 팀장실 문을 열고 직접 들어왔다. 구소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입장에서 유동섭을 최대한 안 보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동섭은 시스템상으로 큰 사건이 있을 때만 구소형에게 보고하기로 되어 있었다.
“왜? 뭔 일 있어?”
“강철 원숭이가 잡혔습니다.”
“강철 원숭이가? 그게 잡히는 몬스터야?”
“뭐, 무적은 아니니까요. 잡히긴 하죠.”
“그걸 어떻게 잡았대? 야. 그건 미러 존의 괴물보다 더 잡기 힘든 놈 아냐? 미러 존의 괴물은 그래 신컨으로 잡을 수 있다고 치자. 근데 강철 원숭이는 아니잖아. 그놈은 생명력이 깎이면 스킬 막 사용하잖아. 그 스킬 위력은 레이드급인데. 그걸 어떻게 잡아?”
“일단 원숭이 전투 갑옷 내구도가 얼마 안 남은 걸로 설정되어 있어서요. 생명력이 일정이상 깎이기 전에 한방에 내구도를 깎아버렸으면 공략이 가능하죠.”
“그니까 스킬 쓰기 전에 한 방에 눕혔다?”
“네.”
“그럼 방어력 관통이나 방어력 이용 같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놈이 잡았겠네?”
“그렇죠. 히든 스킬을 얻은 것 같습니다.”
“허. 미러 존의 괴물도 그렇고 강철 원숭이도 그렇고. 우리가 유저를 너무 낮게 평가했나?”
“일단 보고는 드려야할 거 같아서요.”
“강철 원숭이는 미러 존의 괴물처럼 밸붕 아이템 없지? 카이로의 꼬리는 뭐 사용자가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니까 상관 없고.”
“없죠. 다만 강철 원숭이 자체가 밸런스 붕괴인 존재라서요.”
“그놈은 길들이는데 여간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게 아냐. 괜찮아.”
“근데 길들이는 것도 바로 해버렸습니다.”
“어떻게?”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팼답니다. 유저가.”
“뭐? 강철 원숭이가 그걸로 넘어갔다고? 설정 상 강철 원숭이는 그레이트 올드 원인 다곤하고도 맞짱떠서 비긴 놈인데 두들겨 패는 거에 넘어가?”
“그거야 전투 갑옷이 멀쩡하고 달로스의 버프도 받았을 때의 이야기고요. 전투 갑옷 없으면 그다지 센 존재는 아니죠.”
“그래도 우주 한 쪽의 지배자인데. 그러면 이거 문제 생기는 거 아냐?”
“검토를 해봤는데 걸리는 건 없습니다. 어차피 강철 원숭이와 관련된 퀘스트가 생성되려면 한참 멀었고요. 유저가 강철 원숭이의 지식을 이용해서 플레이에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밸런스 붕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요. 다만 걱정되는 건 전투 갑옷의 잔해입니다. 그게 복원되면 밸런스 붕괴 차원 문제가 아니니까요.”
“복원이 가능해?”
“불가능하죠. 다만 그거 잔해로 몇 가지로 무기는 만들 수 있겠죠. 그게 조금 걱정이긴 합니다.”
“그건 감수해야지. 무지막지한 옵션이 붙거나 하지는 않을 거 아냐?”
“그렇죠. 다만 방어력이나 공격력이 어마어마하게 뜨겠죠.”
“그거야 무적이 되는 건 아니니까. 상관 없어. 근데 강철 원숭이 길들이는 거 그거 원래 그런 공략이 있던 거야?”
“설마요. 강철 원숭이 기획한 팀에서도 엄청 놀라고 있던데요?”
“강철 원숭이 정도면 독자적인 인격을 주입시키는 거라 일단 보내놓으면 팀에서도 컨트롤이 불가능한 거라 어쩔 수 없겠지. 근데 좀 많이 의외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왜?”
“진짜로 죽였으면 큰 프로젝트 하나 그냥 날라가는 거니까요.”
유동섭의 말에 구소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네. 그런 거였네. 와. 그거 엄청 큰 프로젝트였지?”
“예. 그래서 일부러 문제 생기지 않도록 초보존에다 데려다 놓은 거였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거기다 그걸 깬 유저가 그런 방식으로 공략할지도 몰랐고요.”
“와. 다행이다. 어쨌든 강철 원숭이 이제 멀쩡한 거지?”
“넵. 다행히 살려는 주기로 한 거 같습니다. 뭐, 우리가 예상했던 그림대로 강철 원숭이가 대접을 받는 건 아닌 거 같지만요.”
“그것도 운명이지. 어쩌겠어.”
구소형과 유동섭은 강철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구소형의 입에서는 신기한 일이라는 이야기만 연신 반복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