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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1화 (11/205)

# 11

돌이냐 금속이냐

“아니. 형님. 그게 아니라니까요. 아오. 답답해. 자 보세요. 부드럽게 톡! 부드럽게 톡!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부드럽게 던져야죠. 힘을 그렇게 막 주고 그러면 어쩝니까. 아오! 답답해.”

강철 원숭이는 카시마르에게 찰싹 붙어서 카이로의 꼬리 사용법을 전수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전수하다가 긴장이 풀렸는지 원래의 말투가 드러나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순화된 모습이었다.

“······.”

“엄청 습득 속도 느리시네. 이래 가지고 언제 카이로의 꼬리 제대로 사용하겠어요. 이 템이 얼마나 좋은 건데.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입니다······가 아니라 처음에는 다 그렇죠 뭐. 하하하. 안 그렇습니까? 선생님!”

카시마르가 말을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자 강철 원숭이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눈빛만 달리해도 바로 긴장을 하는 강철 원숭이었다.

“······.”

“선생님. 날씨가 참 좋습니다요. 하하.”

“······.”

“선생님.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도시가 어딘 줄 아십니까요? 하하.”

“마이애미 하려는 건 아니지?”

“하하. 재밌죠. 마이애미. 하하하하!”

“······.”

강철 원숭이가 크게 웃어도 카시마르는 웃지 않았다. 그러자 강철 원숭이가 얼른 바닥에 무릎을 턱! 하고 꿇고는 큰 소리로 소리쳤다.

“잘못했슴다! 선생님! ”

“이봐. 본성은 안 변한다니까?”

“선생님. 제가 진짜 한 말씀만 드려도 될까요?”

“해봐. 마이애미 이런 거 하면 토치로 그슬려 버린다.”

“저 이래 뵈도 달리 달로스에서 엄청 오래 살았습니다. 평생 이렇게 살았는데 하루 아침에 어떻게 막 바꾸겠습니까. 간혹가다 튀어나오는 이런 말들은 조금만 이해를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진짜 너무 힘듭니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기어오르려고?”

“아닙니다.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요! 전 이제 다 내려놨습니다요. 선생님.”

무릎을 꿇은 채로 온몸을 다해 설명하는 강철 원숭이의 모습이 안 쓰러워서 카시마르는 한 번 봐주기로 했다. 무엇보다 하도 때렸더니 귀찮은 감이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제부터는 더 때리지 않아도 강철 원숭이가 알아서 자제를 하기 때문에 카시마르는 더 손을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이제는 더 때리기도 귀찮다. 알아서 잘하자. 알겠냐?”

“옙! 감사합니다! 선생님! 충성! 충성! 충성!”

“애잔하다. 애잔해. 이거 진짜 누가 캐릭터 설정한 거지? 약 빨고 만들었나?”

카시마르는 말에 올라타서 바로 투기장으로 향했다. 24시간 내로 투기장에서 다시 자크르를 하지 않으면 코인을 다시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카이로의 꼬리 사용법을 더 익히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강철 원숭이를 때리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으니까.

“야. 말고삐 잡아라.”

“네?”

“너 말 탈 줄 알잖아.”

“알죠.”

“여기 지정한 곳으로 몰아라. 너무 늦거나 딴 길로 새 거나하면 진짜 구워버린다.”

“옙!”

카시마르는 강철 원숭이가 말을 끌게 내버려두고 뒤에서 카이로의 꼬리를 연습했다. 카이로의 꼬리는 막대기의 모습이었지만 그 효용이 생각보다 좋았다. 카이로의 꼬리가 변형을 하는 원리는 손잡이 부분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보기에는 앞뒤 구분 없는 것 같았지만 만져보면 촉감에서 차이가 있었고 자세히 보면 생김새도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카시마르는 강철 원숭이가 알려준 사용법대로 손잡이를 변형 시켜보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50cm 정도의 막대기에서 2m 정도까지 늘려서 봉처럼 사용하는 건 가능했지만 그 이상은 좀처럼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손잡이 부분에서 섬세한 조작도 해야 했고, 휘두를 때도 타이밍을 잘 맞춰야 했다.

재미난 점은 이 카이로의 꼬리가 단순히 길이만 늘리는 변형만 가능한 게 아니란 점이었다.

막대 상태에서 길이를 살짝 늘리고 손잡이를 옆으로 꺾어서 톤파처럼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막대기 형태와 톤파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게 가능하다면 전투에 있어서 아주 큰 효용가치가 있을 거였다. 물론, 채찍 형태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그렇지만 채찍 형태는 카이로의 꼬리의 최종형태인만큼 다루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라고 했다.

***

마을에 내려서 말을 반납하고 투기장으로 향했다. 카시마르가 앞장서고 강철 원숭이가 터덜 터덜 뒤를 따라왔다. 털 색깔이 진한 흑색이라는 것 외에는 원숭이와 다를 게 없었다. 걸음 생김새도 그랬다. 사람처럼 걷는 게 아니라 팔을 길게 늘어트리고 앞발과 뒷발을 거의 동시에 내밀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야.”

“넵! 선생님!”

“너 여기서 되게 오래 살았다고 하지 않았냐?”

“그렇습죠.”

“그러면 너 D 랭크로 전직하는 방법 아냐?”

“게이트로 넘어온 여행자들이 하는 랭크 업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건 저도 모르죠.”

“많이 안다며?”

“에이. 랭크 업 그런 거, 저희는 그런 거 신경 안 쓰죠. 그런 잣 바······.”

“잣 뭐?”

“잣나무가 참 보기 좋네요.”

“여기 잣나무가 어딨냐?”

“그러게요.”

“두 번 째다. 시간도 없고 하니 넘어간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질문하면 형용사 붙이지 말고 도움 되는 말을 해. 도움 되는 말을. 달디 달로스의 지배자까지 했다는 놈이 대가리가 그리 나빠? 엉?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말하다 보니 열 받네. 이 새끼 이거.”

“우아아아악! 잘못했습니다요! ”

카시마르가 손을 들자마자 강철 원숭이가 팔을 들어 머리를 보호하고는 주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카시마르는 그냥 손을 내려놓았다. 자기가 생각해도 많이 때리긴 했다. 그렇게 맞고도 살아 있는 강철 원숭이가 신기할 정도로 많이 때렸다.

“아무튼 랭크 업 방법은 모른다 이거지?”

“옙. 여행자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저는 거의 모릅니다요.”

“아는 게 뭐냐?”

“그 부분 외에는 꽤 아는 게 많습죠.”

“없는 거 같은데? 걍 확 구울까?”

“아닙니다! 진짜 네임드 몬스터들 공략법 이런 거 훤히 꿰고 있습니다요. 그리고 제가 여기 지리를 엄청 잘 알지 않습니까. 헤헤.”

“맞다. 너 살던 숲 뒤쪽으로 길 하나 있다고 하던데 거기 이용해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 아냐?”

“나갈 수 있습죠. 근데 나가는 건 가능 하는데 다시 들어오는 건 불가능합니다. 거길 출입할 수 있는 건 땅굴 고블린 밖에 없습죠.”

“땅굴 고블린?”

“넵. 제 식량을 조달해주던 귀여운 녀석들이죠.”

“땅굴 고블린들이 왜 네 식량을 조달해줘?”

“하하하 몇 명 잡아다가 가죽을 벗긴다고 하고 살짝 벗겨줬거든요. 아주 살짝. 그랬더니 요 녀석들이 하하하. 꾸준히 좋은 보석들을 놓고 가더라고요. 하하하. 아나 귀여운 새끼들 하하하.”

카시마르는 강철 원숭이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카이로의 꼬리로 머리를 한 대 경쾌하게 내려쳤다.

똑!

마치 병뚜껑 따는 소리가 들리면서 강철 원숭이가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머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는 피가 튀지 않게 얼른 옆으로 움직였다.

“아! 진짜! 선생님 그걸로 때리시면 어캅니까. 그게 정타로 맞으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데! 가끔 치명타 터지면 진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니까요!”

“어. 그래. 그런 거 같네. 근데 너 괜찮냐?”

“아! 엄청 아파요. 거참 진짜 그거 엄청 되게 위험한 무기라니까요.”

“아니. 피.”

“피요? 무슨 피?”

푸쉬쉬시시.

머리에서 나오는 피분수를 본 강철 원숭이는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서 바닥에 누워 기절했다. 카시마르는 마을 외곽에 버려져 있는 천으로 강철 원숭이의 상처를 대충 묶어주었다. 그리고 기절한 강철 원숭이를 바닥에 질질 끌고 투기장으로 향했다. 지나온 길에 핏자국을 만들면서 끌려가는 강철 원숭이는 애잔함 그 자체였다.

***

투기장에 복귀한 카시마르는 얼른 자크르 한 경기를 해서 시간을 갱신했다. 한 경기만 해도 승리만 한다면 다시 24시간이라는 기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상위 랭커들 중에는 24시간에 한 경기만 자크르를 하는 자들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카시마르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지금 카시마르가 상대하는 자들은 마스터 레벨이라고 해도 카시마르보다 훨씬 약했다. 그냥 약한 것만이 아니라 이제는 레벨 차이도 나고 있었다.

마스터 레벨부터는 레벨 숫자가 올라가지 않지만 몇 레벨을 했는지는 대충 셀 수가 있었다.

카시마르는 지금 레벨업 횟수로만 계산하면 D랭크 10레벨 이상의 유저였다. E랭크 투기장에 있는 마스터 레벨들은 많아봤자 D랭크 3렙 4렙 수준이었기 때문에 카시마르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바람의 가면과 카이로의 꼬리를 얻은 뒤부터 카시마르의 전투 패턴이 훨씬 다양해졌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러다보니 거의 양학 수준으로 승을 챙기고 있는 카시마르였다.

30초당 한 명.

길어야 1분이고 30초도 걸리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맷집이 좋은 클래스 계열의 유저들도 카이로의 꼬리에 한 대 맞거나, 돌주먹에 한두 대 걸리면 그걸로 끝이었다. 이전에는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던 카시마르였지만, 이제는 바람의 가면을 이용하니 그것도 큰 문제가 되질 않았다.

순식간에 30연승.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얼마전부터 카시마르가 만나는 상대 대부분이 ‘약한 상대’로 분류가 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연승 보너스도 그다지 많이 주질 않았고, 획득하는 명성 점수도 별로였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웬만한 사냥보다 마스터 레벨 유저를 때려 잡는 게 레벨업 속도는 훨씬 빠르다는 점이었다.

카시마르는 그 뒤로 레벨 업을 두 번이나 더 했고 돌주먹은 강철 주먹으로 진화했다.

[강철 주먹 lv1 - 이럴 수가! 당신의 주먹은 돌보다도 단단하네요. 웬만한 무기보다 훨씬 강력한 주먹을 지닌 당신. 주먹으로 공격시 강력한 추가 데미지를 줍니다. 아주 낮은 확률로 상대를 그로기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강철 주먹 다음은 뭐가 나오려나?”

E랭크여서 그런지 획득하는 스킬의 개수가 그다지 많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카시마르는 크게 불평하지 않고 투기장에서 시간을 계속 보냈다. 이전처럼 폭발적인 보너스는 없었지만 상관 없었다. 대신에 상대를 때려눕히는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패시브 스킬도 진화를 하니 점점 기괴한 옵션이 붙고 있었다. 강철 주먹에 붙어 있는 그로기 옵션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대단한 거였다. 맞는 상대 입장에서는 생명력이 멀쩡한 상태인데 그로기 상태에 빠질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기 상태에서는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고 스킬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등의 다양한 패널티가 있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했다. 아예 움직임이 멈추는 스턴 상태와는 다른 의미였지만 어떻게 보면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카시마르는 그 뒤로 자크르를 더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강철 원숭이는 의식을 회복했지만 삐졌는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대기실로 돌아온 카시마르가 시무룩하게 있는 강철 원숭이를 불렀다.

“배고프냐?”

“······.”

“대답 없네?”

“예······.”

“배고파?”

“네.”

강철 원숭이가 굉장히 불쌍한 것처럼 보이지만 카시마르는 강철 원숭이가 그동안 저지른 전쟁 범죄를 생각하면 이런 것도 싸다고 생각했다.

“자. 밥 먹어라.”

카시마르는 강철 원숭이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그 무언가는 바로 카이로의 꼬리였다. 강철 원숭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다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면서 카시마르가 던지는 것을 받았다. 그러나 받고 나서 바로 소리를 질렀다.

“아!”

“먹어. 너 금속 좋아한다며. 그거 엄청 귀한 거다.”

“이걸 어떻게 먹습니까! 이거는 깨물면 이빨도 나갑니다.”

“엉? 너 그거는 안 먹는 거냐.”

“진짜 너무 하십니다. 선생님. 너무하세요!”

강철 원숭이가 울먹거리면서 소리쳤다.

“난 네가 그거 먹는 줄 알고 준비했는데. 그럼 어쩔 수 없지. 이거라도 먹어라.”

카시마르가 다시 던진 거는 돌이었다. 강철 원숭이는 이번에도 웃으면서 받다가 소리쳤다.

“먹고 맛있으면 더 말해. 두 개 준비했다.”

카시마르가 손에 든 돌멩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 아!”

“왜? 안 먹어?”

“전 이런 거 안 먹습니다.”

“먹어 봐. 새로운 맛일 거야. 따지고 보면 돌도 금속이다?”

“금속이 돌이겠죠.”

“토 달래?”

“이런 거 함부러 먹으면 피똥쌉니다. 선생님.”

“네가 죽인 사람들은 피똥 싸보지도 못하고 죽었어. 아까 땅꿀 고블린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넌 좀 더 고생을 해야겠어.”

“선생님! 이건 너무하지 않으십니까?”

콰직!

“먹어.”

“네.”

카시마르가 손에 있던 돌멩이를 악력으로 바스라트리면서 말하자 강철 원숭이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평화로운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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