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D랭크를 향해(1)
강철 원숭이는 투기장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현재 카시마르는 딱히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카시마르는 보너스 포인트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지금 상태로도 투기장을 도는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카시마르가 보유한 스킬은 강철 주먹과 독에 대한 내성.
그중에서도 주먹과 관련된 스킬이 집중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그 뒤로 두 가지 스킬을 더 얻었다. 중요한 스킬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카시마르가 얻은 스킬은 코즈믹 게이트의 유저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스킬이었기 때문이었다.
독에 대한 내성은 쉽게 얻기 힘들다지만 마법에 대한 내성과 물리 타격 내성은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었다. 카시마르는 조금이라도 늦게 이 스킬을 얻길 바랬다.
그 이유는 조금이라도 늦게 얻어야 강철 주먹 위주로 스킬이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투기장에 복귀한 뒤로 빠르게 연승을 했고, 경험치는 일정하게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아마 연승 보너스가 끝없이 주는 시스템이었으면 지금쯤 카시마르는 레벨업을 40번 이상 했을지도 몰랐다. 카시마르는 스킬 창을 한 번 확인했다.
[강철 주먹 Lv6 , 아주 약한 독에 대한 내성 Lv7 , 아주 약한 마법에 대한 내성 Lv3 , 아주 약한 물리 타격 내성 Lv5]
카시마르의 스킬 창은 그다지 화려한 게 없었다. 그렇지만 생명력과 체력을 확인해보면 그 진가는 확실히 드러났다. E랭크 유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생명력과 체력. 게임 스타트부터 레벨업 때마다 추가 생명력, 체력 보너스를 받았기 때문에 카시마르의 생명력과 체력은 상당히 높았다.
생명력은 유저가 많은 데미지를 견딜 수 있는가의 수치이니 당연히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고, 체력은 유저가 행동을 할 때마다 필요한 수치이니 이것도 당연히 높아야 좋았다. 카시마르는 생명력과 체력 모두 지나치게 좋았다. E랭크 뿐만아니라 D랭크 고렙 유저들보다도 좋은 상황이었다.
“야. 강숭이.”
“넵.”
“너 쓸모 있다고 해서 데려왔는데 전혀 쓸모가 없네?”
카시마르는 강철 원숭이를 줄여서 강숭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강철 원숭이는 처음에는 펄쩍 뛰었지만 몇 대 맞고 나서는 강숭이라는 이름이 정감 간다며 앞으로 그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먼저 말했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아베다라는 이름도 강숭이라고 바꿔야겠다고 아부를 하다가 또 두들겨 맞았다. 어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함부로 바꾸려고 하냐면서.
“형님. 저 쓸모 많습니다.”
“형님?”
“아니. 선생님! 저 쓸모 많습니다요. 근데 쓸 기회를 주셔야하지 않겠습니까. 명검이 있으면 뭐합니까. 칼집 속에 잠만 자고 있으면 아무 쓸모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요.”
“그러니까 네가 명검이라는 거지?”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하하.”
“······.”
“선생님! 저는 돌을 좋아하는 강숭이입니다.”
“그러고 보니 너 요즘 돌 먹잖아.”
“예.”
“그럼 돌 원숭이해서 돌숭이로 바꿀까? 돌숭이 어때?”
“······.”
카시마르의 말에 강숭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카시마르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가 쳐다보기만 하는 이유는 잘못 대답하면 또 무슨 꼬투리가 잡힐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별로야?”
“······.”
강숭이는 말을 하지 않고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카시마르를 쳐다봤다. 금방이라도 울 기세였다. 아니나 다를까 먹던 바나나라도 빼앗긴 원숭이처럼 눈물이 조금씩 눈가에 맺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카시마르는 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알았다. 그럼 강숭이로 하자.”
“옙!”
“근데 네가 쓸모없는 건 사실이야.”
“선생님 그럼 나가서 사냥을 하셔야죠. 여기서 여행자들만 죽어라 잡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기 사냥터는 큰 의미가 없잖아. 그거 잡으러다니느니 여기서 있는 게 훨씬 렙업이 빨라.”
“여기 지나면 이제 제 진가가 드러날 기회가 있을 겁니다. 헤헤.”
“그러면 다행이고. 나 말고 너한테 다행이라는 뜻이야. 무슨 뜻인지 알지?”
“헉. 옙! 명심하겠습니다!”
카시마르는 다시 자크르 경기를 시작했다. 강숭이 말대로 사냥을 나가볼까도 생각 했지만 사냥을 한다고 해서 엄청난 경험치와 보상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카시마르는 D랭크로 랭크 업을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랭크 업할 가능성이 있는 투기장에 투자하는 게 합리적인 거라고 할 수 있었다.
투사
카시마르도 나름 투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았지만 나오는 게 없었다. 코즈믹 게이트는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게임이었다. 특히 히든 직업에 관한 정보는 더더욱 얻기 힘들다고 할 수 있었다.
***
카시마르는 그 뒤로 이틀이라는 시간을 더 투기장에서 보냈다. 투기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매번 새로운 상대를 만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카시마르가 일방적으로 이기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더욱 지루할 틈이 없었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지루할 틈이 없는 법이었다. 카시마르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투기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경기를 하려고 했다.
얼마 전부터 카시마르가 상대하는 유저들은 ‘매우 약한 상대’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그 말은 카시마르와 상대 유저 간에 레벨 차이가 크다는 소리였다.
적어도 20레벨 이상은 차이가 난다는 의미.
D랭크 마스터 레벨이 40레벨이라는 걸 감안할 때, 카시마르의 렙업 속도는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D랭크로 승급하게 되면 1레벨부터 시작하게되니 카시마르는 그만큼 보너스를 얻고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남들보다 늦게 랭크업을 하게 되면 그만큼 손해도 있었다. 직업이 점점 더 전문화가 되어 갈수록 얻게 되는 스킬의 위력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카시마르의 경우는 실보다 득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지하 감옥.
자크르 맵 중에서 가장 무난하다고 할 수 있는 맵이었다. 원통 모양으로 생긴 지하 감옥에서 싸우는 거였는데, 천장이 뚫린 구조로 되어 있어서 빛이 그곳으로 마구 쏟아졌다.
이 맵은 카시마르가 가장 선호하는 맵 중 하나였다.
그가 은퇴하기 전에 활동하던 곳과 생김새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원형이라는 점만 빼면.
거기다 카시마르는 근접 캐릭터였기 때문에 너무 넓은 맵이 걸려버리면 불리한 점이 꽤 있었다. 그에게는 단숨에 접근해서 싸울 수 있는 좁은 맵이 유리했다.
카시마르는 시스템에서 자크르를 외치기 전까지 기다렸다. 통상적으로 맵에 소환되고 5초에서 15초 정도 있으면 자크르가 선언되고 그때부터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 사이에 상대의 외관을 확인하고 대충 플레이 스타일을 유추해야했다.
이번 상대는 놀랍게도 ‘아주 약한 상대’가 아니라 ‘약한 상대’라는 설정이었다.
그 말은 상대가 그만큼 강하다는 이야기.
상대가 마스터 레벨 이후로 보너스 레벨 업을 많이 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히든 종족이거나 히든 직업의 소유자일 수도 있었다.
시스템에서는 단순히 레벨로만 강함을 판단하지 않는다. 연승 여부, 종족, 직업, 획득한 스킬, 스탯. 이런 걸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강함을 설정한다.
카시마르는 액티브 스킬이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이 마이너스 요소로 판정되지만 레벨이 워낙 높아서 E 랭크 존에서는 절대자나 다름없었다.
“자크르!”
상대는 창을 쓰는 자였다. 3미터 가까이 되는 긴 창을 쓰는 상대였는데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세컨이거나 아니면 현실 세계에서 창술을 연마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일 거였다.
휙! 휭! 휭!
카시마르가 접근하려고 하자 재빨리 창을 연달라 찔러넣는 사내.
그 움직임이 무협 영화의 고수들이 쓰는 동작과 흡사했다.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강력했다. 상대는 카시마르 중심선을 따라서 방향을 틀고 접근을 못하게 하고 있었다.
상대는 카시미르의 접근을 철저히 마크했다. 카시마르가 접근하려고 하면 백스텝을 밟으면서 창날로 위협했다. 그러면서 벽에 몰릴 거 같으면 둥글게 스텝을 밟으면서 방향을 전환했다.
확실히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카시마르는 불안감 보다는 오히려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바람 제어술과 카이로의 꼬리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격투술로만 상대하고 있었다. 사내도 특별하게 스킬을 쓰는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이전까지 상대 중에 카시마르에게 가장 오래 버틴 사내는 독술사였다. 독술사 이후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다음부터는 오래 버티는 사내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오래 버틴 상대가 3분이었는데, 지금 창술사와 카시마르는 3분 가까이 서로 유효타가 없었다.
카시마르가 스텝으로 접근하려고 하면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창으로 위협한다. 창을 크게 휘두르거나, 깊게 찌르지도 않아서 카시마르가 공격을 피하고 파고드는 것도 어려웠다.
그때 창술사가 평소보다 조금 더 큰 공격을 집어넣었다.
지이익!
창술사가 깊게 창을 찔러넣어 카시마르의 다리를 노렸고, 카시마르는 발을 들어 창을 피햇다. 창날이 바닥을 긁었다. 그러자 카시마르는 창대 위를 밟고 올라갔다.
타다다닥.
경공이라도 시전한 것처럼 창 위를 경쾌하고 빠르게 달려서 창술사에게 접근하는 카시마르.
그리고 바로 창술사의 얼굴을 노렸다.
위이이잉!
발차기로 창술사의 얼굴을 걷어차려던 카시마르는 갑자기 쏟아지는 빛에 잠시 주춤해야했다.
갑자기 쏟아진 빛에 앞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휭!
창술사는 카시마르의 발차기를 피하고 창을 회수해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서겅!
창술사가 원심력을 이용해서 카시마르의 허리를 벤 것이었다.
[치명적인 공격에 적중당했습니다.]
[출혈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입습니다.]
[출혈 데미지 증가 – 상대는 급소를 공략하는 전문가입니다. 스킬로 인해 당신은 이제부터 두 배의 출혈 데미지를 입습니다. 상처를 얼른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창술사는 맵 중앙에서 자리를 잡고 카시마르를 바라봤다. 카시마르의 허리 쪽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허리에 깊게 상처가 나 있었다.
카시마르는 생명력이 높았고 가면의 힘까지 있어서 웬만한 출혈로 죽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공격에 몇 번 더 적중당하면 위험할 수 있었다.
카시마르는 깎이는 데미지를 바라봤다. 상당한 수준이었다.
카시마르는 얼른 강숭이를 불렀다. 강숭이와의 대화는 둘만이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창술사에게는 카시마르가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창술사는 치명상이 들어갔기 때문에 굳이 접근해서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대로 두어도 죽을 거기 때문에 달려드는 것을 받아치기만 해도 된다는 생각.
보통 독에 중독되거나, 출혈 상태에 빠지거나 하면 자크르 상황에서는 내가 먼저 눕기 전에 상대를 눕히는 게 정석이었다. 팀전에서는 아군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만 자크르에서는 그런 게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회복 스킬을 지니고 있는 유저들도 있었지만 직접 전투 직업군 중에 그런 스킬을 지닌 자는 손에 꼽을 수 있었다.
“야. 강숭이.”
“넵.”
“너 방금 봤지?”
“봤습니다요..”
“저거 방금 뭐냐?”
“창에 당하셨잖습니까요.”
“그거 말고 눈에서 번쩍 한 거 있잖아.”
“아. 그거 윰족의 능력입니다.”
“윰족?”
“저기 빛의 행성에서 사는 애들을 윰족이라고 하는데요. 쉽게 말하자면 눈에 빛의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는요. 방금처럼 눈으로 빛을 발산하거나, 염동력을 쓴다거나 하죠. 눈에서 빛 쏘는 건 아주 낮은 수준이에요.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저거 빛 쏘는 건 시야 어지럽히는 거 외에는 없는 거지?”
“지금은 그렇습죠.”
카시마르의 허리에서 나오는 피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출혈 데미지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팔 다리가 부러져도 몇 분 있다가 다시 붙는 것처럼 출혈 데미지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가장 길게 지속되는 상태 이상은 바로 독 종류라고 할 수 잇었다. 출혈은 상태 이상 중에서도 지속 시간이 짧은 편이었다. 대신에 깎이는 데미지가 높았다.
“야. 혹시 저거 나중에 눈에서 막 레이저 같은 쏘고 그러냐?”
카시마르가 물었다. 그러자 강숭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요? 그래서 윰족이 그 에너지 증폭 시키는 장비를 눈에다 착용하곤 하죠. 나중에 가면 꽤 세지죠. 저한테는 안 되는 놈들이고요. 하하하.”
“어. 그래.”
카시마르는 왠지 그런 설정일 것 같아서 물어봤는데 역시나 그랬다.
‘참 교묘하게도 이용해 먹는구만.’
카시마르는 출혈이 거의 멈추자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등 쪽에서 카이로의 꼬리를 꺼내 든 상태였다.
철컥.
카시마르는 카이로의 꼬리를 톤파 형태로 변형시켰다. 이제부터 제대로 붙어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