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D랭크를 향해(2)
딸칵! 딸칵!
카시마르는 곤봉 형태와 톤파 형태를 번갈아가면서 바꿔가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창술사는 카시마르의 피가 멈춘 것을 보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자세를 잡았다.
보통은 저 정도로 출혈 데미지가 들어가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강한 상대라고 뜰 때부터 이상하다 싶더니. 세컨인가? 아니면 히든?’
세컨은 이미 플레이 경험이 있는 상대이니 확실히 초보 존의 다른 유저들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창술사는 창 끝을 살짝 흔들면서 천천히 카시마르를 압박해 들어갔다. 한 번 썼던 수법은 다시 통하지 않을 테니 조심해야 했다.
팅!
창술사가 기습적으로 카시마르의 얼굴을 노렸다. 긴 창의 무서운 점은 바로 이런 거였다. 상대의 공격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의 공격이 닿는다는 것. 코즈믹 게이트에서는 이러한 공격들을 공략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었지만, 현실 전투에서는 쉽지 않은 법이었다.
지금 카시마르는 별다른 액티브 스킬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가지고 있는 패를 꺼내들 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게이지는 이미 풀로 찬 상태였지만 바람 제어술을 쓰지는 않고 있었다.
바람 제어술은 만능 기술이 아니었다. 카시마르의 전투 능력과 합쳐졌을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기술이지, 기술 자체로는 큰 힘이 없었다.
팅! 휭! 탕!
마치 잽을 날리는 것처럼 창으로 급소만 골라서 공격하는 창술사. 카시마르는 톤파에서 막대기 형태로 변경한 다음 창을 쳐냈다. 맨손으로도 충분히 쳐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맨손으로 쳐내는 것과 무기로 쳐내는 것은 안정감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
그 이유는 방어할 수 있는 공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공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상대의 변칙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에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손은 길어야 50cm 공간 안쪽에서 상대의 공격을 처리하지만, 무기를 들면 그 거리가 훨씬 길어진다.
지금처럼 50cm 가량의 막대기라도 하나 쥔 경우에는 훨씬 수월하게 창을 쳐낼 수 있었다.
팅!
창과 카이로의 꼬리가 부딪히면서 경쾌한 금속음을 냈다. 둘의 공방은 점점 더 빠르게 진행 되었다.
창술사는 집요하게 카시마르에게 달라붙었고, 카시마르는 그걸 묵묵히 막아내며 창술사의 패턴을 익혔다.
그런 카시마르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창술사는 창대를 짧게 잡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찌르기를 더 빠르게 회수하기 위해서 창대를 짧게 잡은 것이었다.
딸칵!
카시마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꼬리를 톤파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손잡이 반대 부분을 잡고, 톤파의 손잡이로 창을 걸어버렸다.
끼릭!
ㄱ자로 꺾인 톤파의 손잡이가 창을 위에서 내려버렸고, 창술사는 위로 힘을 주려고 했지만 카시마르는 이미 접근해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창술사는 양손으로 잡던 창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카시마르의 훅을 방어했다.
퍽!
전완근으로 방어했는데도 데미지가 꽤나 들어왔다. 창술사는 상대가 괜히 건틀렛을 끼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근접에서 계속 싸워줄 수는 없지.'
창술사는 창대를 짧게 잡고 몸을 옆으로 틀어서 톤파에게 짓눌려 있던 창을 스무스하게 빼버렸다.
몇 발자국 떨어져서 자세를 잡은 창술사. 그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가 창을 내렸다. 카시마르는 톤파를 막대기 형태로 다시 바꾼 다음 자세를 잡고 있었다. 창술사가 창을 내리자 카시마르도 잠시 자세를 풀었다.
“님. 컨트롤 진짜 장난 아니시네요. 아이디가 어떻게 되세요?”
창술사가 물었다.
“그건 왜 묻죠?”
“D 랭크로 가면 다시 한 번 붙어보고 싶어서요. D랭크까지 몇 레벨 남았습니까? 얼마 안 남았죠?”
사내의 질문에 카시미르가 피식 웃었다.
“한참 남았다면 믿겠어요?”
“농담하지 말고요. 많이 남아봤자 4레벨 3레벨 남았을 거 같은데. 보너스 레벨 너무 올리는 것도 그다지 좋지 않아요.”
“세컨인가 보죠?”
“전 이번만 세 번째 키우는 거예요. D랭크 캐릭터 두 개나 갈아버렸습니다. 클로즈 베타도 했었고요.”
“아깝지 않아요?”
“아직은 게임 초반이니 괜찮다고 봅니다. 지금 이 캐릭터는 잘 나왔어요. 아참. 제 아이디는 루카스입니다.”
“카시마르입니다. 그거 히든 종족이죠?”
카시마르의 질문에 창술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님도 베타 플레이어에요?”
코즈믹 게이트는 오픈 베타를 시행하지 않았다. 대신에 여러 번의 클로즈 베타를 시행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클로즈 베타에 참여하려고 했었지만 선택된 사람들은 소수였다. 클로즈 베타 유저들이 오픈 때 받은 혜택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들은 클로즈 베타 때 얻은 노하우로 지금 한창 위로 치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그냥 그 종족에 대해서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윰족에 대한 정보는 정말 소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근데 님 정보를 알고 계셨는데 왜 윰족을 선택 안 하신 거죠?”
“님은요? 앞서 지운 캐릭터 두 개다 윰족은 아니었을 거 아니에요.”
“윰족 선택 퀘스트를 하려고 했는데 실패해서 그냥 키웠었죠. 근데 D랭크 올라가보니까 너무 뒤처지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해보자고 한 게 성공한 겁니다.”
“그 종족 선택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보군요.”
카시마르의 질문에 루카스가 웃었다.
“예. 윰족 선택 방법은 모르시나보군요. 하긴 그 정보를 아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저도
정말 우연히 알아낸 거니까요. 이건 베타 때 제가 알아낸 정보입니다. 지금은 저희 클랜원들과 공유하고 있고요. 제가 알아낸 정보인데 저만 매번 실패해서 좀 그랬었죠. 이제는 치고 올라가려고 합니다. 님도 궁금하시면 저희 클랜 들어오시죠. 소수 정예로 운영되는 클랜입니다. 님 정도 실력이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저는 이 캐릭터를 키워볼 생각이라서요.”
“네. 아무튼 D랭크 올라오시면 언제 한 번 귓말 주시죠. 사냥이나 같이 하던가 하게요. 아마 투기장에서 계속 치고 올라오시면 상위 랭크에서 저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상위 랭크에 가실 자신이 있으신가 보네요.”
“저 이 아이디 생성하기 전에도 그랬지만 아직 투기장 자크르에서 져본 적이 없습니다.”
루카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카시마르는 호응이라도 하듯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루카스는 자신만만 했다. 카시마르는 루카스 정도라면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루카스의 플레이에는 그다지 빈틈이라는 게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루카스 같은 창술사는 스탠다드한 기사 계열에게 약할 수밖에 없었는데, 루카스는 그런 스탠다드한 기사 계열도 나름 상대하는 노하우가 있는 것 같았다.
루카스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카시마르도 다시 전투 자세를 취했다.
“위에서 보죠.”
“예.”
말을 마친 루카스는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카시마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는 차분하게 공격을 막으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전투 시간은 계속 길어지고 있었지만 카시마르는 지금의 전투가 무척 재밌었다.
과거의 현역 시절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근거리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해야만 했다. 그거에 비하면 지금 날아오는 루카스의 창은 훨씬 상대하게 수월했다.
그때는 여러 패턴에 대비해야 했지만 지금은 한 두 가지 패턴만 눈에 익히면 막는 데는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루카스는 찌르기를 한 다음 뒤로 회수하지 않고 옆으로 휘둘러 변칙을 주었다.
까앙!
창날과 카시마르의 꼬리가 부딪히면서 청아한 소리를 만들었다. 카시마르는 막자마자 루카스에게 접근하려고 했는데, 루카스는 아까보다 더 짧게 창을 고쳐 잡고는 스킬을 시전했다.
강력한 찌르기를 연달아 시전하는 스킬.
연속 공격이 들어갈 때마다 가속도가 붙어서 속도도 빨라지고 위력도 강해지기 때문에 방패 없이 이 스킬을 다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시마르는 얼른 뒤로 움직이려고 했지만 뒤에 공간이 별로 없었다. 루카스가 교묘하게 카시마르를 몬 것이었다.
캉! 캉! 캉!
순식간에 아홉 번의 찌르기가 카시마르에게 쏟아졌다. 창술사는 승리를 확신하고 미소를 지었다. 공격 하나하나가 급소를 노리는 스킬이었다. 한 대만 적중되어도 출혈 데미지가 들어가게 된다. 급소에 제대로 맞으면 추가로 다른 상태 이상도 유발할 수 있었다.
펑! 펑! 펑! 펑! 펑! 카앙!
카시마르는 처음 세 번의 공격은 꼬리로 쳐내고, 나머지 공격은 다리를 딱 붙이고 서서 위빙으로 죄다 피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로 쏟아진 공격은 톤파 형태의 꼬리로 창날을 세차게 내려쳐서 날려버렸다.
불가능한 일.
루카스는 적어도 제 자리에서 액티브 스킬 구룡격을 모두 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딱히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뒤로 물러난 것도 아니었고 방패 같은 방어에 특화된 무기를 쓴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기로 몇 번 공격을 쳐낸 것과 상체 움직임만으로 랜덤 패턴의 공격을 피해버렸다.
루카스는 놀란 눈빛이었고 카시마르는 덤덤한 모습이었다.
“님? 지금 그거 컨으로만 피하신 거에요?”
카시마르는 대답대신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거 스킬인가요?”
루카스는 대답 대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좋은 스킬 아니네요. 위로 올라가면 다른 스킬 배우세요.”
카시마르의 말에 루카스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D랭크 고레벨이나 C랭크 유저들이 배우는 스킬보다는 낮지만 구룡격인 창술사 계열이 E랭크에서 얻을 수 있는 스킬 중에서는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증거로 카시마르의 뒤에 벽에는 선명한 스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루카스는 카시마르가 접근하자 얼른 자세를 잡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반응이 한 발 늦었다. 카시마르가 바람 제어술로 고속 이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루카스는 반격을 하려고 움직였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놀랍게도 들고 있던 카이로의 꼬리를 루카스의 얼굴에다 던져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루카스가 창을 들어서 꼬리를 막아냈고, 그 사이에 카시마르는 루카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사실 카시마르는 초반부터 얼마든지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시간을 끈 건, 간만에 쓸만한 상대를 만났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자크르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좀 더 여러 기술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루카스는 자신이 스킬만 제대로 쓰면 상대를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처음 자크르를 시작할 때 ‘강한 상대’라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카시마르는 접근한 상태에서 컴비네이션을 날렸다. 먼저 왼손 잽을 더블 날려서 루카스의 얼굴을 흔든 다음, 양발 로우킥으로 다리를 마비시켰다. 그다음 양손으로 짧게 바디를 두들겼다.
카시마르가 양손 바디를 날렸을 때 이미 루카스의 생명력은 바닥난 상태였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쓰러지는 루카스를 향해 기어이 원투 스트레이트를 맞춰버렸다.
퍼퍽!
스르르 허물어지는 루카스의 얼굴을 향해 아래로 임팩트 있게 내려 꽂히는 스트레이가 꽂히자 루카스의 얼굴에서 콰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철 주먹 효과가 제대로 들어간 것이었다.
루카스는 창을 양손에 쥔 채로 죽었다.
“아홉 번은 쉬운 게 아니구나. 스킬은 스킬이네.”
승리 메시지가 뜨고 전투를 지켜보던 강숭이가 카시마르를 향해 다가왔다.
“와우. 형님 진짜 좀 치시네요. 그럼 그렇죠. 제가 아무한테나 그리 당하지는 않는다니까요.”
딱!
카시마르는 강숭이의 머리를 톤파로 아주 살짝 때려주었다. 아주 살짝 때려주었지만 강숭이가 느끼는 고통은 상상 초월이었다. 강숭이는 머리를 한 대 맞자마자 몸을 비비 꼬면서 이를 악물었다. 소리를 지르면 시끄럽다고 더 때리는 게 카시마르라는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카시마르’라는 이름과 딱 어울리는 악질이었다. 강철 원숭이 아베다의 입장에서는.
강숭이가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카시마르는 새로 생성된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레벨 업을 했다.
이미 수많은 레벨 업을 했기 때문에 레벨 업 하나에 카시마르는 이렇게 미소 짓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 레벨 업이 평소의 레벨 업과 다르다면 미소가 지어질 수도 있었다.
[바람의 가면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카시마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보통의 레벨 업보다 몇 배는 보기 좋은 메시지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