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땅굴 고블린의 보석
[바람의 가면 Lv2
바람 제어술 Lv1
바람의 가호 - 바람의 가면 착용자는 바람의 가호를 받습니다. 랜덤 확률로 가면의 착용자 주변에 강력한 바람이 불어 원거리 공격을 빗나가게 합니다. 랜덤 확률로 착용자의 이동 속도를 높여줍니다. (이 스킬은 레벨 업이 불가능합니다.)]
바람 제어술의 레벨이 오르지 않은 건 아쉬웠지만 좋은 스킬이 생성되었다. 레벨 업이 불가능한 스킬이었지만 그 능력은 충분히 좋았다. 통상적으로 레벨업이 불가능하게 지정된 스킬들은 일반 스킬보다 좋은 경우가 많았다.
바람의 가호도 그랬다. 자동으로 사용되는 패시브 스킬이니 여기서 레벨 업까지 가능하면 그야말로 밸런스 붕괴에 가까웠다.
카시마르는 흡족한 눈으로 바람의 가면을 살펴본 뒤 다시 자크르를 재개하려고 했다. 아직 시간이 오전 밖에 되질 않아서 자크르를 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야!]
카시마르가 다시 경기를 하려고 할 때 핏불킹에게 연락이 왔다. 그에게 귓속말을 하는 사람은 핏불킹 외에는 없었다. 카시마르는 얼른 답장을 날렸다.
[와이 부르셔? 뭐 좀 알아낸 거 있어?]
[너 아직도 그 투기장에서 있냐?]
[여전히 여기서 노는 중이야.]
[그걸로 투기장은 잘 돌아지냐?]
[당연히 돌아지지.]
[아. E랭크는 자크르만 있지?]
[그렇지.]
[그러면 뭐 양학하겠네. 지금 마스터 이후로 렙업도 엄청 했을 거 아냐.]
[그래. 근데 무슨 일인데. 뭐 알아낸 거 있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왜 했어. 바쁜데.]
[네가 바쁠 게 뭐 있냐. 투기장이나 돌면서. 바쁜 건 이 형님이 바쁘지.]
[자꾸 짜증나게 할래? 아이디 바꾸까?]
[야.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연락한 거야.]
[왜?]
[야. 랭크 업 방법 그거 알아봐 주는 대신에 아이템 좋은 거 주면 그걸로 대신하면 안 되겠냐? 어차피 여기는 아이템 사용하는데 레벨 제한 없잖아.]
[됐거든요.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줘봐. 랭크 업을 못하면 의미가 없지.]
[야. 이번에 내가 얻게 될 아이템 꽤 좋은 거야. 너한테 딱일 거 같다니까.]
[내가 어떤 식으로 플레이하는 줄도 모르면서 어케 예상을 하슈?]
[네 플레이 스타일이야 뻔하지. 그냥 냅다 두들겨 패는 거 아냐? 컨트롤로 공격 피하면서?]
핏불킹의 말에 카시마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거든?]
[웃기네. 내가 널 모르냐? 넌 마법사를 해도 근접 전투 마법사를 할 놈이고, 소환사를 해도 소환수 소환해놓고 네가 직접 가서 팰 놈이야.]
[형. 나 현역 시절 스타일 몰라? 냉정한 히트맨 스타일?]
[응. 그러니까 냉정하게 직접 가서 두들겨 패겠지.]
[······.]
[아무튼 템 좋은 거 구하면 그걸로 퉁 치자.]
[전설템 정도야?]
[야. 전설템 지금 시점에서 밸붕이라니까? 대충 예상하기로 전설급 아이템은 A랭크 유저 나올 정도 되어야 할텐데 지금 C랭크 유저도 얼마 없는 상황에서 무슨 전설템 타령이냐.]
[그럼 어떤 템인데.]
[있어 봐. 아무튼 그 템 보고 마음에 들면 그 아이디 변경 건은 없는 걸로 하자.]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쿨하게 바꾸는 거다?]
[쿨하게 바꾸기는 하겠는데 인마 노력을 생각해서 좀 순화시켜주라. 진짜 뇌 쪽쪽 빠는 사람 이런 건 너무 한 거 아니냐?]
[그럼 뇌 촉촉한 쿠키?]
[······그건 저작권 좀 위험하지 않냐?]
[가짜 산삼킹 이런 것도 괜찮아.]
[개객끼야!]
카시마르의 말에 핏불킹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허. 나이도 지긋하게 잡수신 양반이 어디서 도라지를 틀고 그래. 당장 바꿀까? 내가 가서 강제로 바꿔줘? 비행기 탄다? 재작년에 농담처럼 한 내기에서 형이 이기니까 어떻게 했는지 기억 안 나? 그때 비하면 난 양반이지. 진짜 많이 봐주는 거야. 그때 형이 한 것처럼 해볼까?]
[······열심히 찾아볼게.]
카시마르는 내기의 대가는 확실하게 받는 사내였다. 특히 핏불킹에게는 더욱 그랬다. 예전에 몇 번 혹독한 대가를 치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이 이렇게 심한 내기를 할 수 있는 건 둘이 그만큼 막역한 사이이기 때문이었다. 둘은 서로 오래 보아왔고, 그만큼 신뢰가 깊었다.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한 때는 거의 매일 보는 사이이기도 했다.
“선생님.”
이번에는 조용히 있던 강숭이가 카시마르를 불렀다. 카시마르는 자크르를 하려다가 말고 인상을 찌푸리며 강숭이를 바라봤다. 강숭이는 카시마르가 부르지 않으면 귀찮게 하지 않았다. 괜히 눈에 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왜?”
“선생님. 저 진짜 보석 작은 거라도 하나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요 며칠 돌만 먹었더니 진짜 몸에 기운이 없고 그럽니다요.”
“보석 비싸.”
“그럼 날붙이라도 하나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진짜 의욕이 없습니다요.”
“네가 달리 달로스에서 저지른 범죄를 생각해라. 너는 죄 없는 사람들 수용소에 넣고 이보다 더한 짓도 했잖아? 안 그래? 지금 이 정도도 감사하게 생각해.”
카시마르의 말에 강숭이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강숭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바닥에 떨어진 돌을 집어 들었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듯 폴짝 뛰었다.
“혀··· 아니 선생님!”
“또 왜?”
카시마르는 키슈에게 자크르를 신청하려다가 말고 다시 뒤돌아섰다. 인상을 찌푸렸지만 가면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땅굴 고블린 말입니다! 땅굴 고블린!”
“땅굴 고블린이 왜?”
“보석이요! 보석! 그 녀석들이 한 달마다 한 번씩 보석을 놔두고 가거든요. 제가 그걸 먹고 지내지 않았습니까요.”
“그래서?”
“그거 수거하러 가시죠. 며칠 전에 보석을 놔두고 갔을 겁니다. 날짜가 그럽니다요!”
강숭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나 카시마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카시마르는 기본적으로 물욕이 별로 없었다. 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D 랭크로의 승격이지 보석 따위가 아니었다.
“바빠. 오늘은 하루 종일 자크르를 할 거다.”
카시마르는 자크르 1000 연승을 앞두고 있었다.
1000 연승.
말도 안 되는 수치였지만 그의 특수한 위치를 고려해보면 불가능한 수치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E랭크 존에서는 적수가 없었기에 E랭크 존의 일반 몬스터를 잡아봤자 경험치도 주질 않았다.
지금 투기장에서 경험치가 오르는 것도 상대 유저를 잡아서 오르는 게 아니라, 연승 보너스에서 얻는 경험치가 전부였다. 그게 일반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더 많았기 때문에 카시마르는 겸사겸사 자크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보통 한 유저가 1000연승을 하면 어떻게든 커뮤니티에 말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카시마르를 만났던 유저들이 대부분 카시마르를 다시 만나지 못하고 D랭크로 승격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한 유저가 카시마르를 여러 번 만났다면 ‘버그 캐릭터’를 운운하면서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을 수도 있었다.
“그러지 말고 가시죠? 땅굴 고블린들이 놓고가는 보석 좋은 거 많습니다요.”
“됐어. 시간 아깝다. 그리고 이제 그 근처에 몬스터들 나온다고 했어. 그거 처리하면서 가려면 시간 걸려.”
“거기에 최상급 마정석도 항상 한 개 정도 껴서 옵니다. 선생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최상급 마정석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가서 마정석 얻으면 네가 먹으려고?”
“하하. 아닙니다. 선생님 다 드려야죠. 그렇지만 길 안내한 기념으로다가 아주 작은 보석 한 두 개 정도만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요.”
“최상급 마정석이라······.”
물욕이 없는 카시마르도 흔들리게 할 정도로 최상급 마정석은 희귀한 물건이었다. 지금 상위 랭커들이 거래하는 마정석들 중 제일 좋은 게 상급인 것을 감안하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마정석은 아이템에 마법 속성을 부여할 때 꼭 필요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수요가 넘쳐났고,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꼭 써먹을 기회가 오는 아이템이었다.
“가시죠. 하루 정도 시간을 뺀다고 해서 손해는 아닐겁니다요. 마정석 아니더라도 좋은 보석 많습니다요. 헤헤.”
“바쁜데······.”
카시마르는 턱을 한 번 쓰다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상급 마정석이 있다면 하루 정도는 시간을 빼볼만 했다.
카시마르는 투기장에서 나와서 마을로 움직였다. 가장 좋은 말을 구입해서 강철 원숭이가 있던 장소로 움직였다.
***
예상대로 강철 원숭이가 살던 숲은 몬스터들이 차지했다. 카시마르와는 레벨 차이가 너무 나서 거의 잡몹 수준의 몬스터들이었다. 그렇지만 카시마르는 숲에 들어서자마자 5분만에 후회했다.
몬스터들의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거의 떼거지로 몰려 있는 수준이었고, 한 명의 몬스터를 치자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카시마르를 공격했다. 몬스터들이 아무리 많아봤자 카시마르에게는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카시마르가 입고 있는 방어구의 성능이 상당히 좋은 것이었고, 가면의 힘 덕분에 10 이하의 데미지는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몬스터들에게 카시마르가 당할 일은 없어졌지만 강철 원숭이가 말한 장소로 움직이기 까지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십쇼! 고지가 코 앞입니다요!”
카시마르는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냥을 해야 했다.
이곳에 왜 이렇게 몬스터들이 득실 거리는가. 그 이유는 강철 원숭이가 잡혔기 때문이었다.
이 숲의 뒤쪽에는 그림자 군도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곳에 유저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몬스터들이 어마어마하게 생성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강철 원숭이가 그쪽에 진입하는 유저들을 막아주었지만 지금은 강철 원숭이가 없기 때문에 거기를 막을 몬스터들이 필요했다.
“후.”
긴 사냥 뒤에 나오는 한숨.
쉬지 않고 전투를 치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피로가 몰려왔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몬스터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처음부터 오지 않았을 카시마르였다.
“어디냐?”
“저깁니다! 저 나무 아래에요!”
강숭이가 폴짝 뛰면서 인근 나무들 중에서도 유난히 커다란 나무 앞으로 움직였다. 강숭이는 나무에서 열 발자국 정도를 움직이더니 그 위를 폴짝 뛰었다.
“없는데?”
“아참. 형님도 아마추어 같이 왜 그러십니까? 땅굴 고블린 아닙니까. 땅굴 고블린. 땅을 파야죠.”
“땅속에 묻어두고 간다 이거지?”
“네.”
“얼마나 파면 되는데?”
“한 10미터 정도만 파면 됩니다.”
“10미터?”
“금방입니다. 거기서 잠깐 숨좀 돌리고 계세요. 형님.”
강숭이는 말투는 이전보다 훨씬 편하게 바뀌어 있었다. 카시마르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강철 원숭이가 하는 걸 바라봤다. 강숭이는 폴짝 뛴 장소위를 손으로 파기 시작했다.
촤촤촤촤차착!
마치 개가 땅을 파는 것처럼 양손으로 흙을 뒤집어 엎는 강철 원숭이. 그러나 맨손으로 땅을 파는 것은 아무리 무른 땅이어도 쉽지가 않은 법이었다. 강숭이는 맨손으로 땅을 파다가 쉽지 않자 잠시 동작을 멈추더니 카시마르에게로 다가왔다.
“······.”
“그거 잠깐만 빌려주시겠습니까요? 헤헤. 그냥 손으로 하려니까.”
강숭이가 카시마르의 허리춤에 있는 카이로의 꼬리를 가져갔다. 카시마르는 팔짱을 낀 채로 강숭이가 하는 걸 바라봤다.
촤악! 촤착!
“헤헤.”
강철 원숭이는 카이로의 꼬리로도 잘 파지지 않자 카시마르를 보며 슬쩍 웃었다. 보석에 눈이 멀어 그가 큰 착각을 했다. 그건 바로 지금 자신이 전투 갑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전투 갑옷을 입은 강철 원숭이와 전투 갑옷을 입지 않은 강철 원숭이의 힘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강철 원숭이는 그 차이를 망각했다. 그는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열심히 땅을 파는 척을 했다. 그러나 이미 등에서는 식은 땀이 줄줄 흐르는 중이었다.
“이게 말입니다요. 회전력을 이용해서 해야 합니다요. 헤헤”
땅을 파다가 막히자 강숭이가 카이로의 꼬리를 바닥에 꽂고 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카시마르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팔짱을 풀었다.
하루라는 시간이 그냥 날아갔다. 네 시간 동안 사냥을 한 셈이었지만 별 소득은 없었고, 경험치도 자크르 열 경기 한 정도 밖에 얻질 못했다.
그야말로 하루를 그냥 날린 셈이었다.
“너 거기 잠깐만 서 있어 봐.”
“네?”
“딱 있어 봐.”
카시마르는 강숭이를 세워놓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그리고는 재빨리 달려나가서 프리킥을 차듯이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자 강숭이가 프리킥에 맞은 공처럼 날아갔다. 무회전으로.
퀙!
카시마르는 날아간 강숭이를 쫓아가 무차별로 밟기 시작했다.
“회전 좋아하네! 네놈 대가리가 무회전이다! 10미터가 무슨 뉘집 애 이름이냐? 그 정도면 석유도 나오겠다. 왜? 아주 100미터 정도 파가지고 용암까지 끌어 오지? 용암으로 오일 풀링을 시켜버릴까부다. 아주 매를 벌어요. 벌어!”
“아이고 선생님! 제게 시간을 좀 더 주신다면! 크헉! 선생님! 잘못했슴다! 선생니이이임!”
강철 원숭이가 얼른 카시마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상태였다. 카시마르는 헛고생을 한 대가를 톡톡히 받아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