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드디어 랭크 업!
오늘따라 날씨가 무척 좋았다. 보통 카시마르는 오전 체력 단련을 집에 있는 런닝 머신 위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날씨가 좋아서 밖에서 조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스마트워치를 차고 트레이닝 복을 입고 카시마르가 나오자 아이들 방에서 자던 개들이 문을 긁었다. 문을 열어달라는 소리였다.
아이들이 깨지 않게 문을 살살 긁는 모습에 카시마르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카시마르가 아이들 방 문을 살짝 열어주자 듀나, 반짝이, 곱슬이, 빨강이가 얼른 나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그래. 같이 나가자고? 바나랑 네라도 왔네?”
카시마르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집안에서 이 시간에 깨어 있는 사람은 카시마르 밖에 없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개들은 카시마르가 밖으로 나갈 줄을 알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바깥 날씨가 괜찮은 날에는 늘 밖에 나가곤 했으니까. 그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 정도는 늘 바깥에서 새벽 운동을 했고, 어떤 날에는 일주일 내내 바깥에서 새벽 운동을 할 때도 있었다.
개들이 나와서 꼬리를 흔들면서 애교를 피우자 카시마르가 쪼그려 앉아서 개들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뒤쪽에서 고양이들이 등장했다. 고양이들이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카시마르의 등 쪽을 스윽 비비고 지나갔다.
카시마르는 하루의 대부분을 게임을 하면서 보낸다. 그렇다고 해도 집안의 동물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쪽은 카시마르였다. 카시마르의 와이프는 한창 일을 하느라 늘 바빴고,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 학원을 다니느라 바빴다.
그러다 보니 반려동물과 카시마르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많이 보낼 수밖에 없었다. 카시마르가 코즈믹 게이트를 하는 방은 꽤 넓은 공간이었다. 부스라고 칭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넓었기 때문에 카시마르가 게임을 할 때는 고양이와 개들도 자연스럽게 그쪽에 와서 시간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카시마르를 방해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코즈믹 게이트를 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카시마르는 개들에게 목줄을 꼼꼼하게 해주었다. 아무리 순한 녀석들이라고는 해도 대형견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카시마르는 목줄을 꼼꼼히 매고 밖으로 나섰다.
더블 베이의 새벽 공기는 맑았다. 해안가에 위치한 동네였기 때문에 아침이 되면 꽤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아직 주변은 어두컴컴했지만 곧 밝아지기 시작할 터였다. 카시마르는 개들을 데리고 천천히 해안가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날이 완전히 밝아지기 전에는 달리는 게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한적한 동네였지만 아예 차가 다니지 않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자 카시마르는 점점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은퇴한지 상당히 지났는데도 그의 체력은 어마어마했다. 대형견들의 속도를 맞춰서 달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카시마르는 적절하게 속도 조절을 하며 움직였다. 아침 일찍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카시마르를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카시마르는 이 동네에서 꽤 유명 인사였다. 사람들은 그를 만날 때마다 ‘챔프 혹은 레전드’라고 반쯤 농담 섞인 말로 친밀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조깅을 하고 돌아온 카시마르는 간단하게 샤워를 한 다음 개인 훈련장에 들어갔다. 그가 요즘 오전마다 하고 있는 게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톤파를 다루는 기술이었다. 카시마르는 은퇴를 하고 각종 무술에 집착했다. 현역 시절에 이루지 못한 목표가 있어서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주먹이 깨지는 부상을 당했다. 꽤 심각한 부상이었고 그는 은퇴를 해야했다. 주먹에 뼈를 대신할 신소재를 이식하는 수술을 했고, 다시 운동을 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주먹 뼈의 단단함은 이전보다 더 강해진 상황.
그러나 그가 활동하던 단체에서는 그 수술을 받은 선수는 경기 자체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카시마르는 은퇴를 했다. 현역 생활을 더 하자고 반칙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카시마르는 톤파를 다루는 훈련을 마치고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소박하지만 맛있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을 배웅하고 나면 카시마르의 개인 시간이 주어졌다. 그는 오늘 투기장에서 어제 하지 못한 1000승을 달성할 계획이었다.
그가 1000승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1000승이 투사로 전직하는 조건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000승이 아니라 투기장에서 1000경기를 가지는 게 전직 조건일 수 있었다. 핏불킹이 말해준 정보에 의하면 투사 전직 메시지를 받은 유저가 한 달 동안 투기장에서 살았다고 했고, 대충 계산을 해보면 1000경기 정도 치렀을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과연 E 랭크에서도 전직이 가능하냐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카시마르는 랭크업만 가능하다면 액티브 스킬을 사용할 수 없더라도 충분히 상위로 치고 나갈 자신이 있었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만해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코즈믹 게이트의 접속.
카시마르는 자신의 외관을 한 번 확인한 다음 게임에 접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코즈믹 게이트의 세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카시마르의 또 다른 인격이 튀어나오는 시간이었다.
***
강숭이는 말 수가 줄어들었다. 10미터의 땅을 파는 건 보통 장비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흙으로 뒤덮인 땅이어도 몇미터 파다보면 돌이 나오고 돌이 나오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 땅을 파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카시마르는 처음부터 그걸 깨닫고 강숭이를 두들겨 팬 다음 투기장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강숭이는 카시마르가 시선만 줘도 고개를 숙이는 상태가 되었다.
오전에 접속한 카시마르는 투기장에서 순식간에 20연승을 했다. 루카스와 같은 상대는 만나지 않았고, 대부분 쉬운 상대들이었다. 오늘 제일 처음 만났던 마법사는 마법을 제대로 쓰기도 전에 카시마르의 공격의 주먹 두 방에 뻗어버렸다.
처음 뻗은 주먹이 마법사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고 그대로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강숭이.”
“네!”
“이거 늘리는 게 잘 안 된다.”
카시마르는 자크르를 하면서도 카이로의 꼬리를 다루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톤파 형태로 막대기를 바꾸는 건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가능했는데, 그 이상 길이를 늘리는 게 문제였다.
얼른 길이를 늘릴 수 있어야 카이로의 꼬리의 최종 형태는 채찍으로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카시마르는 거의 톤파로만 카이로의 꼬리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카이로의 꼬리의 기능을 10분의 1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선생님. 이건 진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랄까요. 계속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요.”
“빨리 마스터하게 도와준다며?”
“근데 선생님이 좀 감각이 무디신 편이라서요. 원래 이게 채찍 형태로 가는 거 까지가 어려운 법인데, 선생님은 기본적인 길이 늘리는 것도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러면 힘들죠.”
카이로의 꼬리를 다루는 법은 쉬운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잘 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카시마르는 연습을 하다가 이제 1000승을 채워줄 경기를 하러 움직였다.
1000승을 한 뒤에도 투사 랭크 업 메시지가 뜨질 않으면 카시마르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불확실한 일에 마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강철 원숭이의 구역 뒤쪽에 있는 다리를 건너서 E랭크 존을 나가서 방법을 찾아볼 거였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합리적이다 할 수 있었다.
1000승의 상대는 살짝 휘어진 도를 지닌 무사였다. 무사 계열은 화려한 스킬과 빠른 스피드 뛰어난 공격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직업군이었다. 다만 방어력이 마법사나 도적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어서 사냥 위주로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많이 선택하지를 않았다. 그 이유는 팀 단위로 사냥할 때 포지션이 어정쩡했기 때문이었다.
메인 딜러도 아니었고 탱커 역할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도적처럼 상태 이상에 특화된 것도 아니어서 포지션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무사 계열을 선택하는 유저들은 스스로의 컨에 자신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다 대인전에 특화된 직업군이어서 천적이 거의 없다는 것도 유저들이 많이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휭!
한 손으로 도를 들고 있던 사내가 얼른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찌르기를 시전했다. 카시마르가 헤드 무빙으로 찌르기를 피하자, 사내는 앞으로 돌격하듯이 달려들어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켜 도를 휘둘렀다.
휘잉!
날카로운 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촤자작!
그러자 사내가 다시 한 바퀴 돌아서 카시마르를 쫓았다. 사선으로 베어 올리는 기술. 사내의 도에서 날카로운 도기가 흘러나와 카시마르를 위협했다. 카시마르는 오소독스 자세로 있다가 앞으로 한 바퀴 데굴 구르면서 몸을 낮춰서 사내의 공격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왼손에 잡은 톤파로 사내의 한쪽 무릎을 가격했다.
파아악!
무릎에 톤파의 강력한 일격이 들어갔고 사내는 휘청거렸다. 사내는 절뚝 거리면서 자세를 잡으려고 했는데, 카시마르는 이미 사내의 백을 잡고 사내의 뒤통수에 카이로의 꼬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콰직!
머리가 으깨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사내가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다.
[축하합니다! 1000연승을 달성하였습니다.]
익숙한 메시지가 들렸다. 그리고 익숙한 정도로 경험치가 소폭 상승했다. 밖에 나가 사냥하는 것보다는 많은 경험치였지만, 이제 이것도 그다지 많다고 할 수가 없었다. 카시마르는 차분하게 또 다른 메시지가 들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또 다른 메시지가 들렸다.
[D랭크 히든 클래스 투사로 진급할 수 있습니다. 히든 클래스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특수한 방법으로만 선택 가능한 직업을 말합니다. 일반 직업과 히든 직업의 차이는 진급 방식과 희귀 유무이며 히든 클래스라고해서 일반 직업보다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십시오. 투사로 전직하시겠습니까?]
카시마르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예.]
카시마르는 주저하지 않고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투사라는 직업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코즈믹 게이트에서는 히든 직업의 설명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그 직업을 선택해야만 알려주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코즈믹 게이트에서는 직업에 대한 정보도 상당히 비싸게 거래되고 있었다.
특히 몇몇 직업은 선택지가 없이 자동으로 전직이 되는 것들도 있어서 주의가 필요했다.
[투사는 모든 전투 유형에서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입니다. 근접, 간접, 원거리 모두 가능합니다. 투사는 유저 고유의 플레이 스타일을 강화하는 직업군이며 차후에 더 세분화된 직업으로 랭크 업이 가능합니다. 투사는 다른 직업보다 대인 전투에 특화된 스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카시마르는 대인 전투에 특화된 스킬이 많다는 이야기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예상을 하고 있던 부분이기 때문에 크게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투사라는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이 대인 전투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특화될 거라는 생각은 이미 있었던 상황이었다.
[투사 직업의 스킬이 랜덤으로 다섯 개 생성됩니다.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D랭크 승급 과정과 같았다. 근데 다른 직업과 다른 점은 세 가지가 아니라 다섯 가지라는 점이었다.
보통 D랭크로 승급하면 그 직업군에 관한 스킬 세 가지가 랜덤으로 생성되고, 그 중에 하나를 유저가 선택하여 갖게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섯 가지였다. 카시마르는 좋은 스킬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메시지를 기다렸다. 좋은 스킬이 나와야 위로 치고 올가는 과정이 수월해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