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일렉트로닉 플렉스
코즈믹 게이트.
이 게임의 이름이 코즈믹 게이트인 이유는 게임 배경이 우주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코즈믹 게이트는 루테스 대륙이라는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그것이 루테스 대륙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설정 자체가 이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루테스 대륙에서 각축전을 벌인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별들이 제 자리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온 우주에 문이 열리고
약속의 땅으로 이계의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코즈믹 게이트를 설명하는 하나의 문구.
문구대로라면 코즈믹 게이트에 한계는 없었다. 현실 세계의 기술도 충분히 이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현재 코즈믹 게이트는 보통의 판타지 세계관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아직 게임 초반이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강철 주먹의 랭크 업 리스트를 보고 고민에 빠졌다. 다이너마이트 펀치는 예상대로 강철 주먹의 상위 버전이었다. 강철 주먹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스킬이었는데, 강철 주먹과 다른 점은 상대를 밀어내는 기능이 있다는 거였다.
[다이너마이트 - 강철 주먹의 위력을 더 강화한 스킬입니다. 상대를 미는 효과가 있고 강철 주먹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더 강력한 차지 효과가 발생합니다.]
정밀 타격도 카시마르의 예상을 벗어나는 건 아니었다. 정밀 타격은 급소를 공격했을 때 데미지와 상태 이상의 효과를 증가시켜주는 것이었다. 다이너마이트나, 정밀 타격 모두 카시마르에게는 필요한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가벼운 무장을 한 상대와 싸울 때는 정밀 타격이 유리할 거였고, 방패를 전사 계열과 싸울 때는 다이너마이트 계열의 유리했다. 코즈믹 게이트는 아무리 방어력이 낮아도 가드와 정타의 개념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강력한 무기로 상대의 방패를 때려봤자 데미지는 거의 들어가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고로 카시마르 같이 액티브 스킬이 없고, 근접 타격을 위주로 싸우는 사람에게는 방패 전사 계열은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다이너마이트는 그런 상대와 싸우기에 적합한 스킬이었다.
정밀 타격은 방어구가 가벼운 상대들과 싸울 때 아주 효과적이었다. 밀리는 상황이 오더라도 급소에 재대로 공격을 집어넣기만 하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카시마르는 이 두 가지의 스킬을 놓고 고민을 해야 했다.
근데 카시마르의 마음을 잡는 건 다름 아닌 일렉트로닉이었다.
[일렉트로닉 - 일렉트로닉 플렉스 공방의 회원권과 추천서를 발급합니다. 일렉트로닉 플렉스 공방은 스킬 포인트를 소모하여 방문할 수 있습니다. (이 스킬은 더 이상 레벨 업과 랭크 업이 불가능합니다.)]
카시마르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체계의 스킬이 나왔다. 카시마르는 얼른 강철 원숭이를 불렀다.
“일렉트로닉 플렉스 공방이 뭐냐?”
“처음 듣는데요?”
“진짜 쓸모 없네.”
“그렇지만 플렉스는 뭔지 알고 있습니다.”
“플렉스가 뭔데?”
“이 세계에 존재하는 기계 장치죠. 신체를 강화하는 기술입니다.”
“기계 장치라는 이야기지?”
“예. 특수한 능력을 부여하는 장치죠.”
“그래. 알았다.”
강철 원숭이의 설명을 들은 카시마르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일렉트로닉은 기계 장치를 이용한 스킬 같았는데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공방 회원권과 추천서를 준다는 게 전부인 데다가 레벨 업이 불가능한 스킬이라는 게 이상했다.
카시마르는 고민을 하다가 일렉트로닉 스킬을 선택했다. 후회를 하더라도 궁금증은 풀고 후회하자는 심정이었다.
[일렉트로닉 스킬을 선택하셨습니다. 일렉트로닉 플렉스 공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신체 부위가 양손으로 제한됩니다.]
[일렉트로닉 플렉스 공방으로 이동합니다. 이후의 방문은 스킬 포인트를 소모합니다.]
카시마르가 일렉트로닉을 선택하자마자 그의 몸이 빛으로 휩싸였다. 카시마르가 이동된 곳은 작은 행성이었다. 무수히 많은 우주의 별들이 그대로 보이는 곳이었다. 카시마르는 공방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살펴보느라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선생님? 뭘 그렇게 보세요?”
“응?”
카시마르는 얼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강철 원숭이도 따라 온 상태였다. 카시마르가 강철 원숭이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고할 때, 어디선가 트럭 한 대가 빠르게 다가와서 섰다.
[일렉트로닉 플렉 공방의 기술자 우리가토가 등장하였습니다. 현재 공방에서 만날 수 있는 기술자는 우리가토 하나 뿐입니다.]
“어이. 난 가토라고 하는데? 회원권이랑 추천서 가져 왔지?”
“카시마르라고 합니다.”
“오케이. 회원권이랑 추천서 주시고.”
운전석에서 말을 건넨 남자는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었다. 머리는 사방으로 뻗힌 상태였고, 수염은 명치까지 올 정도로 지저분했다. 카시마르는 사내에게 회원권과 추천서를 건넸다.
회원권 추천서 모두 종이로된 서류 한 장이었다. 가토는 운전석에서 회원권을 받아보고는 다시 카시마르에게 돌려주었고, 추천서는 자신이 가져갔다.
“양손만 해당 사항이 있구만. 그럼 일단 타도록 하라고.”
카시마르는 가토의 말에 뒷좌석에 올라탔다. 카시마르와 강철 원숭이가 뒷좌석에 타자마자 트럭에서 띠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트럭이 엄청난 속도로 어딘가로 이동했다. 트럭의 목적지는 커다란 트레일러였다. 트럭은 트레일러 안쪽으로 들어갔고 가토는 카시마르에게 내리라고 했다.
트레일러 안은 커다란 상점이었다. 상점이라기 보다는 건물에 가까울 정도로 넓었다. 밖에서 본 트레일러와 안에서 본 트레일러는 기이할 정도로 모습이 달랐다. 가토는 카시마르를 어디론가로 데려갔다.
“약간 오픈 준비가 덜 된 걸 이해하라고. 우리가 또 이렇게 여행자들이 빨리 방문하게 될 줄 몰랐거든? 적어도 두 달은 더 걸릴 줄 알았단 말이지. 어떤 또라이가 패시브 스킬 하나를 이렇게 막 올릴 줄 알았나? 하하 자네가 또라이라는 소리는 아니고 말이야. 원래 공방 출입권은 B 랭크나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인데 말이야.”
“그럼 제가 첫 방문자라는 소립니까?”
“그렇지. 우리 아직 오픈도 안 했어. 근데 시스템에서 갑자기 연락 받고 준비하는 거라니까? 공방 기술자들도 더 차고 물건도 더 만들어놔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 그래서 우리가 또 그런 부분은 좀 이해하도록 하자고.”
“여기 대체 뭐하는 뎁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그러자 가토가 고개를 흔들면서 카페 같은 테라스로 카시마르를 안내했다.
“그래 이야기를 해줘야겠지. 뭐가 뭔지 모를테니까.”
“예.”
“그럼 커피 한 잔 마시겠나? 그 옆에 원숭이는 뭐 먹지? 바나나?”
가토의 말에 아베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달려들려고 했는데 카시마르가 시선 한 번으로 제압했다. 보통 유저의 눈에는 아베다가 보이지 않는데 가토의 눈에는 보이는 듯 했다.
강철 원숭이는 모습을 드러내고 숨기는 걸 조절할 수 있었다. 대부분 그가 모습을 드러낼 때는 밥을 먹을 때였는데, 그 외에는 특별한 일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카시마르만 따라다니곤 했다.
가토는 커피를 가져와서 카시마르에게 주었다.
“일단 플렉스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야할 거 같은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플렉스는 신체 대용이라고 보면 돼. 자네 집에서 요리하다가 손가락을 뚝 썰어 먹었어. 그럼 어떻게? 손가락 없이 살 거야? 아니잖아. 플렉스는 그거야 그거. 그리고 우리 공방은 그 플렉스를 이용한 무기를 만드는 곳이고.”
“그럼 제 손을 잘라야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안 잘라도 되고. 우리가 또 요즘은 그렇게 막 영업하지는 않으니까. 아무튼 지금 보다 세지고 싶어서 온 건 맞지?”
“그렇죠?”
“그럼 잘 온 거야. 요즘 누가 노오오력으로 세지고 그러나. 트렌드에 맞게 놀아야지. 강해지는 것도 효율적으로 해야 돼. 시간과 노력을 최대한 줄여야지. 그런 의미에서 자네는 트렌디한 최초의 여행자가 되는 거야.”
“아까 B랭크 이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무슨 뜻이죠?”
“원래 여기 출입할 수 있는 경우는 세 가지가 있어. 자 하나는 플렉스 공방 관련 직업을 획득 했을 경우야. B 랭크부터 선택할 수 있지. 이해 했어? 설명이 어려우면 말하라고 우리가 또 고객한테 제대로 설명 안 하고 그러면 위에서 감사 들어오고 그러니까?”
가토의 말투는 되게 독특했다. 가볍고 부드러우면서 운율이 있었다.
“예. 이해 했습니다.”
“그래. 두 번째는 우리 공방과 관련된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우리가 또 초대권이나 회원권을 발급해요. 초대권과 회원권의 차이는 알고 있지?”
“뭔가요?”
“초대권은 말 그대로 초대 받아서 오는 거니까 한 번만 올 수 있다 이거고. 살 수 있는 물건에도 한계가 있다 이렇게 알아두면 좋겠고. 회원권은 그런 게 없다라고 일단은 알아두면 간단하겠지? 이해했나?”
카시마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토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마지막이 스킬 습득으로 오는 건가요?”
“그렇취! 이 친구 아주! 자네 이름이 보자아 카시마르! 그래. 아주 이해력이 빠르구만. 마음에 들어.”
“그럼 스킬 레벨을 올리다 보면 다 이곳에 방문할 수 있다 그겁니까?”
“그렇긴 한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패시브 스킬 한정이니까. 보라고. 플렉스 계열의 직업을 선택한 유저와 퀘스트를 한 유저만 여기 공방에 올 수 있으면 얼마나 불공평해. 봐봐. 남들은 막 검에서 불 나가고 그러는데 자네는 돌도끼 들고 막 돌진해? 그럼 좋아? 싫지? 불공평하잖아. 기술력에서 차이가 나는데. 그래? 안 그래?”
“그렇죠. 하지만 그건 선택에 따른 거니까.”
“그래. 선택의 차이이긴 하지. 그래도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스킬 관련된 이벤트를 해놓은 거야. 근데 그게 너무 쉽게 되어 버리면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나, 죽어라 퀘스트를 클리어한 사람한테 미안하잖아? 그래서 우리가 패시브 스킬이 B랭크 이상 랭크 업시에 그런 선택지가 주어지도록 제약을 걸어놨단 말이야. 패시브 스킬을 B랭크 이상 올릴 정도면 적어도 A랭크는 되어야 가능하니까. B랭크에 공방 관련 직업으로 전직하는 여행자와 대충 밸런스가 맞잖아? 그치?”
“그렇게 되네요.”
“근데 자네가 딱 튀어나온 거지. 패시브 스킬을 냅다 B랭크 이상 올려버렸네? 이제 D랭크인 양반이?”
“그럼 제 주먹 관련 스킬이 B랭크 까지 올랐다는 겁니까?”
카시마르의 말에 가토가 추천서를 훑어봤다. 그리고는 차근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 자네가 처음에 얻은 스킬이 꿀주먹? 이거 맞지?”
“네.”
“패시브 스킬은 무슨 랭크인지 알려주지 않지만 그래도 스킬마다 다 랭크가 있어요. 자. 꿀주먹 E랭크, 돌주먹 D랭크, 강철 주먹 C랭크. 맞지? 그리고 다음 스킬이 B랭크. 오케이?”
“그러네요.”
“아무튼 자네가 공방에 관련된 정보를 얻어서 스킬 하나에 포인트를 이렇게 때려 박는 미친 짓을 하지는 않았을테니까. 그치? 그냥 운이 참 좋았다라고 생각을 하자고.”
“······.”
“자. 그러면 설명은 대충 끝났고.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지?”
“한 가지만 더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뭐?”
“그럼 여기 오려면은 신체에 관련된 스킬만 올 수 있는 겁니까? 다리라던지, 팔이라던지.”
“아니지. 플렉스 앞에 뭐라고 붙어 있나? 일렉트로닉이라고 붙어 있지? 우리가 또 플렉스만 취급하는 게 아니라서 말이지. 방패를 예로 들자고. 방패 패시브 스킬 뭐 단단한 방어 이런 거 있지 않아? 여행자들이 흔히 얻는 거? 그치?”
“예.”
“그게 랭크 업을 한 단 말이야. 전에는 가드할 때 데미지를 줄여주는 거였는데, 랭크업을 하다보니 이게 막 변해? 엉? 어떻게 변해? 공격을 막 튕겨 내내? 어떤 경우는 공격만 튕겨내는 게 아니라 때린 놈한테 데미지를 넘겨주기도 한단 말이지? 그렇게 랭크업을 하다가 우리 관련 스킬을 얻어서 왔어. 그럼 어떻게 되겠어?”
“그 방패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거군요.”
“그렇지. 대신에 직업 관련해서 여기 온 사람들이랑 자네 같은 케이스랑은 차이가 있다. 뭔 차이가 있냐. 바로 그 스킬 관련된 무기나, 신체 부위만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이거지. 이해가 좀 가나?”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또 물건을 보면서 깊게 이야기를 나눠 봐야 겠지? 우리가 또 손님이 오면 하는 농담처럼 이야기가 있거든?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
가토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카시마르는 가토의 말에 잠시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사적인 질문인데요. 그 가토라는 이름 본명 아니죠?”
“어. 그건 어찌 알았스까? 내 스승님이 지어준 이름인데. 우리가토라고 좋은 이름이라고 나한테 아주 딱 어울린다고 지어주셨다니까. 날 보니까 이름이랑 딱 어울리나 보지? 허허 이름이 아주 착착 감기지? 내가 스승님한테 받은 것 중에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 이름! 사람이 이름이 그만큼 중요한 거거든. 이 이름을 받고 나서 아주 인생이 술술이야. 뜻도 되게 좋은 거라더라고? 뭐라더라?”
가토라는 이름에 대해 묻자마자 가토는 신이 난듯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는 사내의 이야기에 대충 대답하면서 사내를 따라 움직였다.
“어······ 그렇네요.”
카시마르는 차마 ‘우리가 또’에서 그 이름을 유추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다만 저 캐릭터를 기획한 개발자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만 속으로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