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계약서
“으허헝! 성님!”
“개스키! 개스키! 개스키!라고 부르면 개스키한테 미안해지는 스키!”
퍽! 퍽! 퍽! 퍽!
강숭이는 운율에 맞춰서 찰지게도 패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카시마르에게 맞을 때 들었던 욕설까지 적절하게 섞어서 폭력을 구사하는 강숭이는 그야말로 복수의 화신이었다.
“아오. 내 손이 다 아프네. 선생님. 저 카이로의 꼬리 좀 잠깐만 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 그래.”
카시마르는 선뜻 카이로의 꼬리를 강숭이에게 빌려주었다. 그러자 오른우가 눈을 치켜뜨면서 카시마르를 노려봤다. 강숭이는 그걸 보지 못한 채 카이로의 꼬리를 조작하고 있었다.
“강숭아.”
“넵. 선생님.”
“저 친구가 나 막 노려보는데? 이거 무서워서 면접 보겠냐? 이러다 가호 이상한 거 받는 거 아냐?”
카시마르의 말에 강숭이가 오른우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있던 오른우는 강숭이의 시선을 회피했다.
“네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오른쪽 눈만 두 개 상하로 달아버려야 정신을 차리지?”
“성님. 그거 카이로의 꼬리인 거 아시잖소? 그거 위험한 거 꾸억!”
“안 죽어! 내가 다 실험 해봤어. (내 몸으로) 안 죽더라고!”
강숭이의 구타가 다시 시작되었다. 오른우는 필사적으로 빌었고 강숭이는 무자비하게 두들겼다.
“여기서 먹고 잘 살았나보다? 배신자 스키야! 배에 마블링 낀 거 봐. 마블링! 아주 투뿔이네! 투뿔이야!”
“성님! 살려주십시오! 이제 그만!”
“이 무식한 소 스키야! 아직도 모르겠냐? 내가 널 이렇게 패는 이유를? 내가 너 없애려고 했으면 계약한 거 읊어서 한 방에 없앴지. 그런데도 이렇게 하는 이유를 정녕 모르겠어? 나도 마음에 아파! 아프다고!”
강철 원숭이가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 빌고 있는 오른우를 슬픈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그러자 오른우가 입을 꾹 다물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
“정말입니까? 성님? 성님을 배신한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겁니까?”
오른우가 울면서 매달리자 강철 원숭이는 표정을 싹 바꿨다. 오스카 상 연기 대상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대단한 표정 변화였다.
“아니.”
빠악!
강철 원숭이는 다시 인상을 쓰면서 오른우의 이마빡을 카이로의 꼬리로 내려쳤다. 오른우는 이마를 붙잡고 쓰러졌다.
“왜 잠깐 믿었냐? 믿었어? 엉? 믿었냐고! 잠깐이지만 달콤했지? 근데 어때? 기분이 어떠냐고! 배신 당하면 기분이 그래! 그리고 너! 내가 코에 피어싱 빼랬지. 어린 놈의 시키가 어디서 겉멋만 들어가지고!”
“제가 성님보다 나이는 몇 살 많은데요!”
“그래! 좋겠다! 좋겠어! 안 되겠어! 너 이거 뜯어버려야지!”
강철 원숭이가 오른우의 코에 있는 피어싱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오른우가 필사적으로 강철 원숭이의 손을 잡았다.
“성님! 이거 피어싱 아니요! 이거 부모님이 달아주신 거요! 이건 안 됩니다!”
“참나!”
오른우가 필사적으로 매달리자 강철 원숭이가 피식 웃었다.
“이게 끝까지 야부리를 터네. 부리를 하도 털어서 새가 되겠어요. 이 씨조새 같은 새끼야. 너 오른 행성 전쟁 고아 출신인 거 다 아는데 어서 어머니, 아버지를 들먹여. 아주 숭악하고 영악한 놈아! 등에 날개 돋는다! 이 꽉 물어!”
강철 원숭이는 오른우의 코뚜레를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아악! 이건 안 돼!”
“운명의 데스트니여. 받아들여!"
푸슈슈슉!
면접실에 피가 튀기 시작했다.
***
강철 원숭이와 오른우의 볼 일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면접실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강철 원숭이는 면접관 의자인 오른우의 자리에 앉아 있었고, 오른우는 대걸레를 들고 바닥에 묻은 피를 닦고 있었다. 그는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휴지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선생님. 이게 가호 리스트인데요. 좀 종류가 많습니다.”
강숭이가 리스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성님! 그 위에 거는 안 되는 거 아시죠!”
“알아! 인마. D랭크 가호는 맥시멈 점수가 100점이라는 거. 이 시스템 만들 때 내가 자문위원이었어! 청소나 해!”
“A랭크에 주어지는 가호는 총 300점이네? 그럼 B랭크 를 전담하는 면접관, A랭크를 전담하는 면접관 그거 다 다른 건가?”
“반반입니다요. C랭크만 담당하는 찌질한 면접관들도 있지만 간혹 C랭크부터 A랭크까지 다 담당하는 면접관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힘이 좀 있어야 B랭크나 A랭크도 감당이 되니까요. 야! 오른우!”
“예······.”
“너 어디 랭크까지 담당하냐?”
강철 원숭이가 오른우에게 물었다.
“성님. 절 뭘로 보시고 그러십니까. 전 당연히 A랭크까지 하죠.”
“진짜 잘 살고 있었구나. 밀크를 피로 물들여서 딸기우유로 만들어버릴 스키야!”
강철 원숭이가 다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카시마르가 제지했다.
“저주 없애는 가호는 없냐?”
카시마르가 물었다.
“액티브 스킬 관련된 거 말씀이지요?”
“그래.”
“저도 아까부터 그걸 찾아봤는데 그런 가호는 없는 것 같습니다요. 가호라는 게 뭔가를 부여하는 성격이지 있는 걸 가져가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래. 그런가. 그럼 스킬은 여전히 쓸 수 없겠네.”
“아! 선생님!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요!”
“뭔데?”
“선생님의 가장 큰 약점이 무엇입니까요?”
“스킬 못 쓰는 거?”
“근데 이게 있으면 그게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요. 보자아! 여기 있습니다요. ‘원소 정형’ 80점이네요!”
“이게 뭔데?”
“이게 마법을 쓰는 애들이 좋아하는 가호죠. 이게 원래 어디 애들이 쓰는 거냐면 말입니다요.”
“야!”
“네?”
“유래 같은 거 됐고. 이게 뭔지나 설명해봐. 이게 있으면 약점을 좀 극복할 수 있다며.”
“쉽게 말해서 이건 원소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가호입니다요. 선생님이 번개 만들어낼 수 있지않습니까?”
“그렇지.”
“원래는 그 번개에 형태가 없잖습니까. 근데 이건 그 번개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요.”
“그럼 마법처럼 쓸 수 있다는 거야?”
“예. 그런데 스킬은 아니죠. 선생님이 생각하는데로 원소의 모양이 변합니다요.”
“그럼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셈이네?”
“그렇습니다요. 대신에 이건 주변의 힘은 빌려올 수 없습니다요. 선생님이 소환한 힘만 쓸 수 있지요. 야! 소!”
“네. 성님.”
“#B7U6R9N8 가호 부여해봐.”
“원래 이러면 안 되는데······.”
“원래 네가 여기 있으면 안 돼.”
강철 원숭이의 요청에 오른우가 얼른 스마트워치로 번호를 찍어 가호를 부여했다.
[원소 정형 - 아크롬의 가호가 부여되었습니다.]
“선생님. 한 번 해보시지요. 마음에 안 드시면 다시 거둬갈 수 있습니다요.”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일단 전격 부르시고 그걸 가지고 원하는 모양 만들어보세요.”
“출력 10”
카시마르는 블랙 알라딘의 검은 전격을 만들어내고 원하는 모양을 상상했다. 작은 상자 모양이었다. 작은 상자 모양을 상상하자 건틀릿에서 생성된 전격이 움직이다가 바로 방전되었다.
“좀 많이 하셔야죠.”
“출력 100.”
지지지직!
이번에는 블랙 알라딘에서 아까보다 훨씬 많은 전기가 생성되었다. 그러자 전기가 카시마르의 앞 허공으로 모여들더니 작은 보석함 만한 검은 상자를 만들었다. 카시마르는 그 뒤에도 몇 번 더 검은 번개를 이용해 다양한 모양을 만들었다. 그때마다 생명력이 줄어들었지만 오른우가 다시 생명력을 회복시켜주었다.
카시마르의 현재 생명력은 500이 넘었다. 카시마르는 생명력 400을 투자해서 커다란 양손검을 만들었다.
면접실을 환하게 만들 정도로 위협적인 검은 번개로 만든 검.
“위력을 조절하면 지속시간에도 차이가 생기는군.”
“예. 원래 이건 마법사들이 좋아하는 가호입죠. 스킬을 사용하면 아무래도 효율이 좋으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지금 내게 제일 필요한 건 이거다. 이 가호로 하자. 이게 제일 좋은 거 같네.”
“그럼 이제 가호 하나만 더 고르면 되는 거네요.”
“가호를 또 고를 수 있어?”
“있습니다요. 원래 가호는 100점이라는 한도 내에서 면접관이 재량으로 주는 겁니다요. 개수에는 제한이 없는데······ 아시잖습니까. 원래 이런 일 하는 놈들이 귀찮은 거 싫어하는 거 그냥 대충 하나 주고 마는 거죠. 아마 그래도 가호 점수에 맞춰서 받은 놈들도 있을 겁니다요.”
“그럼 나머지 가호는 어떤 걸 하지?”
“아크롬 계열에 대한 내성 같은 가호 넣으면 되지 않겠습니까요? 선생님 이제 기술 쓰기 편하게 말입니다요.”
“내성은 데미지 받다보면 자동으로 패시브 스킬이 생길 거야. 그거 말고 데미지 감소 같은 가호를 찾아봐.”
“아! 알겠습니다요.”
강철 원숭이는 즉시 리스트를 검색해서 아크롬 계열 데미지 감소 가호를 찾아내었다.
“10점 밖에 안 하는 가호네요. 이거 상위 버전이 있는데, 그건 150점짜리 가호라서 얻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요.”
“그걸로 해.”
“레벨당 생명력 증가하는 가호 어떻습니까? 이거 10점이니 이거까지 하면 10점 딱 맞을 거 같은데요.”
카시마르는 100점을 딱 채워서 100점짜리 면접을 치렀다. 그의 약점을 극복하게 해줄 좋은 가호를 3개나 얻었다. 강철 원숭이는 면접이 끝나는 순간까지 오른우를 갈궜다.
면접이 끝나고 시스템에서 시작 포인트를 물었다. 시스템에서 정해준 몇 가지 시작 포인트가 있었는데, 카시마르는 당연하게 투기장이라고 말했다.
슝!
카시마르의 몸이 투기장에 떨어졌다. 이제부터 제대로된 게임의 시작이었다. 투기장에 도착한 카시마르는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원소 정형 연습하시려는 겁니까요?”
“연습 좀 하고 해야지.”
“헤헤.”
카시마르는 훈련장에 들어서자마자 카이로의 꼬리 끝에 전격을 생산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강철 원숭이의 목덜미에 가져갔다.
지지지지직!
강철 원숭이가 부들부들 떨면서 쓰러졌다.
“왜 그러십니까요!”
강철 원숭이가 황당한 표정으로 카시마르를 바라봤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계약서 쓰자.”
“대체 왜 이러십니까요!”
“계약서 쓰자고. 너 되게 좋은 시스템에 묶여 있다면서. 달로스님의 이름을 걸고 계약을 하면 어길 수가 없다며?”
카시마르의 말에 강철 원숭이의 눈이 튀어나올듯이 커졌다. 강철 원숭이는 얼른 도망가려고 했지만 목줄이 걸려 있는 상태여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카시마르는 카이로의 꼬리를 들고 천천히 강철 원숭이를 압박했다.
지직! 지직! 지직!
검은 번개를 켰다 끼기를 반복하면서 강철 원숭이를 위협하는 카시마르.
“왜 그 좋은 시스템을 안 말했냐?”
“그······그건! 안 됩니다요!”
“안 되는 게 어딨어.”
“그건 절대 안 됩니다요! 제가 선생님 시키는 일 어긴 적 있습니까요! 다 하지 않았습니까요! 근데 왜 이러십니까요! 진짜 너무 하십니다요!”
“너무하는 건 너지. 너 오른우 두들겨 패면서 몰래 복화술로 지령 전달한 거 모를 줄 아냐?”
“······.”
“눈 돌아가는 거 봐라.”
“전 절대 그런 적 없습니다요! 전 선생님의 숭이숭이! 꽥! 믿어주십시오! 으악!"
지직! 지직! 퍽! 퍽!
훈련장에 강철 원숭이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
한 시간 뒤.
“으허허허허헝!”
강철 원숭이는 펑펑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 어떤 구타를 당해도 저렇게까지 서럽게 울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달랐다. 진심으로 나라를 잃은 원숭이처럼 울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흡족한 표정으로 강철 원숭이의 지장이 찍힌 계약서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