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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22화 (22/205)

# 22

조삼모사

계약서를 완성한 카시마르는 흡족한 표정으로 계약서를 확인했다.

“이거 좀 덜 찍힌 거 같은데?”

“으허허허허헝!”

“야! 그쪽 손 줘봐.”

보통은 인주로 지장을 찍는 게 보통이지만 카시마르가 그런 걸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강숭이의 피로 지장을 찍었다. 강숭이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에서 피가 줄줄 새고 있었지만 강숭이는 계속 울고만 있었다.

카시마르는 그런 강숭이를 무시한 채 반대쪽 엄지손가락도 깨물어서 피가 나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강제로 계약서에 지장을 찍게 했다. 강숭이는 모든 걸 포기한 듯 울고만 있었다. 카시마르는 엉엉 울고 있는 강숭이를 바라보다가 밴드 하나를 꺼냈다.

“이거 소일 밴드라는 건데 소일하다 다치면 붙이는 거야. 특별히 네 손에다 붙여준다. 자 두 개.”

“으허헝헝헝헝!”

카시마르가 아무리 말을 해도 강숭이는 계속 울기만 할 뿐이었다.

“야. 그만 울어.”

“으헝헝.”

“자. 그만 울자아.”

“으허허허허헝!”

“······.”

지직! 지직!

카시마르가 검은 번개를 끌어올리자 강숭이의 울음이 잠시 멈췄다. 그러나 강숭이는 다시 울려고 하고 있었다.

“야. 좋게 생각하자. 계약서도 쓰고 했으니까. 이제부터 내가 너 돌 안 주고 밥 제대로 주고 할게. 그러면 너도 좋은 거 아냐?”

“······.”

“지금 울음 딱 그치고 제대로 밥 먹으면서 다닐래. 아니면 울음이 안 나올 때까지 뒤지게  맞을래?”

카시마르의 말에 강철 원숭이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는 쪼그려 앉은 채로 미소를 지었다.

“강숭아. 이렇게 하자. 너랑 나랑 이제 완전한 계약으로 묶인 사이 아니냐? 그러니까 이제부터 나도 쓸데없이 너한테 손대고 안 그럴게. 그리고 먹는 것도 매일 철조각 하나씩 준다. 삼 일에 한 번씩은 작은 보석이라도 주고. 어때?”

카시마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강철 원숭이를 달랬다. 강철 원숭이는 훌쩍거리다가 카시마르를 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석을 좀 더 주면 좋겠습니다요.”

강철 원숭이의 말에 카시마르가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인심 쓴다! 보석은 일주일에 두 번씩 주도록 하마. 어때 좋지?”

“······.”

카시마르의 말에 강철 원숭이가 눈을 매섭게 치켜떴다.

“선생님······.”

“왜?”

“저를 대체 어떻게 보신 겁니까요······ 진짜 너무 하십니다요.”

“하하하. 농담 좀 한 거야. 농담.”

“순간 욕 나올 뻔 했습니다요.”

카시마르는 일주일에 세 번 보석을 챙겨 주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상당히 많은 밥값이 들어갈테지만 강철 원숭이의 지식과 인맥은 언제 또 중요한 순간에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적당히 달래서 데리고 다니는 게 최선이었다. 이제 이전처럼 도망가거나 계략을 꾸밀 걱정도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잘해주는 것도 필요했다.

카시마르는 시간을 확인하고 로그아웃을 하려고 했다. 면접을 보고 강철 원숭이를 두들기는데 시간을 다 쓴 상태였다. 카시마르가 로그아웃을 하려고할 때 시스템 창에서 메시지가 들려왔다.

[강철 원숭이가 달로스의 계약으로 당신에게 종속됩니다. 이제부터 강철 원숭이는 당신의 펫으로 지정됩니다. 강철 원숭이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원숭이입니다. 금속을 주식 삼아서 성장합니다.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따라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달라집니다.]

[강철 원숭이의 목줄이 50미터로 늘어납니다. 강철 원숭이의 펫 레벨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목줄의 길이는 늘어납니다.]

[강철 원숭이는 당신의 부름에 답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제 강철 원숭이는 전투 중에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강철 원숭이에게 무기를 주면 무기를 이용해 전투를 합니다. (강철 원숭이는 전투 중에 총 30초간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30초간 모습을 드러내면 15분 있다가 다시 재등장할 수 있습니다. 강철 원숭이의 펫 레벨이 오르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이런 걸 생각하고 계약서를 쓴 건 아니었는데 상당히 좋은 상황이 나왔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강철 원숭이를 부르는 건 스킬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원래 강철 원숭이는 평상시에는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도, 전투에는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투에도 참여가 가능했다.

물론, 현재 강철 원숭이는 그다지 도움 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전투력도 일반 원숭이와 다를 바가 없었고 30초밖에 등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강철 원숭이를 제대로 활용할 방법을 한 번 생각해봐야 했다.

카시마르는 로그아웃을 한 다음에 아이들을 마중 나가러 움직였다. 아이들이 돌아오자 간단한 간식을 만들어준 카시마르는 핏불킹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해.]

[바빠!]

[어휴. 게임 폐인이야. 게임 폐인.]

[너는 폐인 아니냐? 지도 하루 종일 게임하면서. 왜?]

[나는 봐봐. 딱딱 시간 맞춰서 현실 세계로 넘어오잖아. 형이랑은 다르지. 아주 달라.]

[무슨 일이야.]

[아이템은 어떻게? 구하셨나?]

[아직. 조금만 더 시간과 예산을 주신다면.]

[난 못 기다리겠는데?]

[님. 이러지 마세요. 제발 제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일단 방어템은 하나 킵해놨습니다.]

[ㅋㅋㅋ 아이템 필요 없어. 형 나 랭크 업 했어.]

[뭐? 랭크 업 했어? 어떻게?]

[투사로 랭크 업 했음.]

[아. 그게 E 랭크도 되는 거였구나.]

[엉. 근데 지금 오픈한지 꽤 지났으니까 투사 클래스 전직 권유 받은 유저 꽤 있을 거 같은데?]

[그거 조건이 투기장에서 자크르 1000게임이냐?]

[아마 그런 거 같아.]

[그럼 그거 D랭크 이하에게만 해당되는 건가 보네. 아는 유저 중에 C랭크인 사람 있거든. 근데 그 사람한테는 그 전직 메시지가 안 떠올랐다니까.]

[아마 그럴 거야. 근데 쉽지 않은 거 아냐? 투기장에서 D랭크 안쪽으로 1000게임 하는 거. 승률이 아예 바닥이 아닌 이상 보통 그 정도 하면 C랭크 찍을 거 아냐.]

[시작부터 끝까지 투기장에서 놀았다고 봐야지. 너는 보통 방법으로 전직 불가인 상황이니까 그리된 거고.]

[그런 것 같아.]

[그래서 투사는 어때? 쓸만하냐? 느낌상 그리 좋은 직업이 아닐 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보통 히든 클래스 이름이 그리 간단하면 망이더라고. 좀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줘야 좋아.]

[이 게임 뭐 직업이 전부인 것도 아닌데. 직업 자체는 그냥 평범한 거 같아.]

[확실히 말해줘. 좋아? 나빠?]

[왜 그렇게 캐물으셔?]

[아는 사람 중에 직업 망인 사람 있으면 그걸로 전직하라고 하려고 그런다. D랭크도 전직 되는 시스템이니까.]

[직업 자체는 중간이라고 평가할게. 근데 또 몰라 투사 관련으로 직업이 계속 승급 되는 시스템이니까. 위에 가서는 좋은 직업이 나올지도 모르지.]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거고. 아무튼 중간 정도라는 거지? 알겠다.]

[원래는 안 알려주는 건데 내가 인심 쓴 거야.]

[지롤하네. 그거 하는 방법 내가 알려줬는데. 안 그랬으면 너 아직도 E랭크 존에서 캐삭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거 아냐.]

[전혀 아니거든요.]

[아니기는. 아무튼 너 랭크 업 했으니까 아이디 바꾸는 건은 무효다.]

[그래도 템은 주셔. 날 위해서 준비해놨다며.]

[ㅋㅋㅋㅋ 욕해도 되냐?]

[줘. 나쁜 인간아.]

[무기 구하려고 했는데 구하지는 못했어. 대신에 헬멧 구했다.]

[헬멧?]

[폭주한 이계인 퀘스트라고 있는데 그놈이 첨단 장비 비스므리한 거 떨어트리거든. 거서 헬멧 나왔다. 모양새는 그냥 오토바이 헬멧 같은데 옵션은 되게 좋아. 너 D랭크 온 기념으로 그거 준다.]

[그럼 내일 주셔.]

[내일 안 돼. 나 내일 던전 마저 돌아야 해. 던전 끝나고 만나면 주마.]

[언제 끝나는데?]

[내일이면 다 돌 거야. 근데 던전 끝나고 할 일이 많다는 거 알지 않냐.]

[이상한 템이기만 해봐.]

[야. 이 시리즈 템 요새 고렙들한테 유행하는 거야.]

[옵션이 그리 좋아?]

[아니. 이 비슷한 시리즈 아이템들이 성장형이 많아. 마법 부여도 쉽고. 옵션 자체는 그닥인데 성장형이라는 게 또 그렇잖냐. 가능성을 보고 믿고 가는 거니까.]

[그래서 요새 고렙들이 그거 죄다 쓰고 다닌다는 거야?]

[오죽하면 쇠갑옷을 특징으로 달고다니는 탱커들조차 헬멧은 이거 쓰는 경우 있다니까. 잘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템이야.]

[가면 쓰고 착용 가능한 거지?]

[가능하지. 가능 안 하면 내가 너한테 주겠냐? 뭔 욕을 얻어 먹으려고? 아무튼 옵션은 생각보다 그런데 성장형이니까. 레벨 업하는 거 감안하고 돈 생기면 비싼 마법 부여하고 사용하면 나쁘지 않다는 거지. 물론, 엄청 좋은 템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요즘 그런 말이 나와요. 잘 키운 레어 성장형 하나 열 유니크 안 부럽다. 이게 딱 맞는 거거든. 아무리 옵션이 좋아봤자 자기 캐릭터한테 안 맞으면 별로야. 별로.]

[어. 그거 하나는 내가 인정할만 하네. 내가 그거의 산 증인이잖소. 전설템 들고 개고생한 거 생각하면······.]

[그니까. 근데 면접은? 잘 치렀지? 가호 뭐 받았냐? 저주 푸는 거 받았으면 대박인데.]

[그건 아닌데 면접은 엄청 잘 봤어. 형이 들으면 깜짝 놀랄 가호가 떨어졌다.]

[뭔데?]

[어허. 캐릭터에 관한 정보는 혈육이어도 잘 안 가르쳐준다는 거 모르시낭? 알만한 사람이 왜 그러셔.]

[쳇. 알았다. 그럼 너 내일부터는 뭐 할 거냐? 기본 퀘스트들 돌 건가?]

[아니. 일단 투기장에서 있어 보려고. 이번에는 팀전 한 번 해보게.]

[팀전? 팀전?아니면 데스매치.]

[아무 거나. 광장가서 팀 만들어서 한 번 해보려고.]

[내일 투기장 광장에 사람 별로 없을텐데?]

[왜 없는데?]

[가문전 있잖아. 내일. 투기장에 있는 사람들은 가문전 관전하면서 돈 걸 수 있으니까 그거 보러 가지 않겠어? 내일 꽤 유명한 가문들이 붙는다고 하던데?]

[그런 거 뜨면 사람이 그리 없나?]

[별로 없을 거야. 아마.]

코즈믹 게이트의 주 무대인 루테스 대륙에는 가문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했다. 유저들 끼리 이해관계로 얽힌 곳이 길드라면 가문은 루테스 대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속해 있는 곳이라고 보면 쉬웠다.

길드는 길드원들끼리 수평적 관계라고 할 수 있었지만 가문은 달랐다. 수직적 관계였고 루테스 대륙에 일정한 작위가 없는 유저는 만들 수조차 없었다. 코즈믹 게이트는 아직 오픈 초기여서 유저가 만든 가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에 기존에 있던 가문에 속해서 활동을 하는 유저들은 상당수 있었다.

[그럼 봐서 자크르나 해서 투기장 쿨타임이나 갱신해놓고 나가서 사냥하던가 해야지. 아니면 그냥 자크르나 더 하던가.]

[자신감 보소. D랭크도 저렙들은 네 밥이다 이거냐?]

[붙어봐야지. 그래도 D랭크는 가호도 있고 하니까 좀 힘들지 않을까 싶어.]

[조심해라. D랭크부터는 레벨보다 스킬, 직업, 가호의 연계빨로 준 사기캐들이 판치니까 조심 해야 돼. 이제 컨으로 비비는 게 안 되는 시간이 온다니까?]

[어차피 D랭크부터는 전적도 리셋이라 비슷한 레벨이랑 붙어서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자신감 충만한 건 보기 좋네. 하긴 생각해보니 너 스킬 레벨이랑 생명력, 체력 수치가 그 레벨 대가 아니겠구나? 생명력이 대충 얼마냐? 한 200되냐?]

[그보다 더 높아. 그 정도만 알고 있으라고.]

[시방. 버그캐 시키. 이제 1렙 짜리가 나보다도 높네. 이거 어디 버그 게시판 이런데 리폿 해야 되는 거 아냐?]

[하시던가요. 하는 김에 내 전설 템에 대한 이야기도 꼭 첨부 부탁드립니다.]

[야. 아무튼 내일 볼 수 있으면 보자고. 헬멧은 넘겨 줄 테니까. 아니면 던전 돌아서 원래 너 주려던 무기 나오면 그걸로 줘도 되고.]

[어허이. 뭘 그런 걸 고민하고 그래. 그냥 둘 다 줘. 고민 고민 하지망!]

[미친 놈. 네 팬들이 너 이런 시키인 걸 알았어야 하는데. 은퇴하고 나서 애가 변태가 되었어. 아니 원래 변태였던가.]

[아무튼 내일 보자고. 형. 던전 돌다가 꼭 함정 밟아서 기존에 있던 템 다 떨구고 렙 다운도 몇 번 당하길 바래.]

[%$#%%$%$!]

카시마르는 핏불킹의 욕설을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보니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조금 있으면 아내가 퇴근할 시간.

이제는 현실 세계의 삶에 충실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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