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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24화 (24/205)

# 24

11초

골낳괴의 말에 따르면 김막심의 원래 포지션은 대장의 위치라고 했다. 보통 대장 포지션은 데스매치에서 가장 고레벨을 배치하는 게 보통이었다. 고레벨도 고레벨이었지만 상성이 최대한 없는 유저가 유리했다.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다 대처할 수 있는 밸런스 좋은 유저가 대장에는 딱 적합했으니까.

골낳괴는 김막심이 그런 유저라고 했다. 랭크도 높지만 컨트롤도 좋아서 자크르에서는 상당한 승률을 보장한다고 했다. 그런데 상대인 쉐프가 김막심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근데 골낳괴가 무슨 뜻입니까?”

“골드가 낳은 괴물이요. 제가 생계형 유저다보니까요.”

“아.”

“전에 일할 때보다 수입은 좀 적어도 즐기면서 하니까 좋아요. 종족도 히든이니 지금 유지비가 많이 들어도 후반에는 더 좋아질테고요.”

“그러겠네요. 히든 종족이면. 근데 돈을 벌려면 던전을 돌거나 장사를 하는게 더 낫지 않아요? 자크르는 그닥 돈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자크르도 연승가능하면 돈 되죠. 랜덤 상자 떨어지면 대박이잖아요.”

“랜덤 상자에 꽤 좋은 게 나오나보네요?”

“랜덤 상자는 말 그대로 확률이니까요. 투기장 연승으로 나오는 랜덤 상자는 등급이 다릅니다. 데스매치를 기준으로 들자면 10승은 브론즈, 30승은 실버. 이런식이죠. 근데 브론즈라고 해서 좋은 템이 안 나오는 게 아니에요. 확률은 낮지만 나와요. 그래서 데스매치 10승이라도 하면 좋다는 겁니다. 진짜 좋은 템도 간혹 나오거든요. 템이 아니라 다른 것도 나오고요.”

“다른 거라면 골드?”

“그런 것도 나오지만 간혹 스킬이 나올 때도 있다고 하던데요.”

“오. 그래서 데스매치를 많이하는군요.”

“예. 근데 데스매치는 10승하기가 진짜 어려워서요. 팀전이나 자크르는 연승해도 붙는 상대 레이팅이 그다지 높아지지 않는데, 데스매치는 한 5연승만 해도 C랭크가 등장하기 시작하니까요.”

“팀전은 조합이 중요하니까 연승 보너스가 낮은가 보네요.”

“네. D랭크만 있어도 조합만 잘 갖추면 10연승은 금방이에요. 무엇보다 팀전은 하는 유저들 숫자가 제일 많으니까요.”

“자크르가 제일 많은 게 아니라요?”

“자크르도 결국엔 데스매치랑 비슷해요. 캐릭터가 모든 부분에서 강력할 수는 없거든요. 어떤 캐릭터든지 약점은 있어요. 데스매치나 자크르도 자신이랑 상성 안 맞는 상대 만나면 지는 거죠. 근데 팀전은 그걸 조합이라는 걸로 커버가 가능하니 많이들 하는 거죠. 무엇보다 팀전은 게임 방식이 여러 가지 잖아요. 팀전이 의외로 재밌어요. 조합만 잘 갖춰서 연승만 되면 돈도 꾸준히 들어오고. 데스매치는 상자 획득 기준이 낮은 거. 그거 하나만 보고 가는 거죠.”

골낳괴와 카시마르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에 김막심과 쉐프의 대결은 치열해지고 있었다.

둘 다 움직임은 상당히 좋았다. 다만 카시마르의 눈에는 허점이 전혀 보이질 않는 건 아니었다.

김막심은 적절하게 스킬을 쓰면서 쉐프를 공략했다. 김막심이 몇 차례 큰 공격을 집어넣었는데도 쉐프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쉐프는 두 개의 회칼로 김막심에게 슬쩍, 슬쩍 잔 상처를 집어넣었다.

팅! 스윽!

오른쪽 회칼로 김막심의 검을 비껴낸 쉐프. 그리고는 왼손을 길게 뻗어 김막심의 겨드랑이 부근을 그었다. 찌르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밀어넣고 고기를 썰어내려오듯이 세게 긋는 방식.

김막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갔다면 출혈 데미지가 상당했을테지만, 김막심이 발로 쉐프를 밀어버리면서 치명상을 피해버렸다.

“별다른 스킬은 없어보이는데······ 쓰러지질 않네요. 의외로 방어력이 높은 타입일까요?”

골낳괴가 말했다.

“모르죠. 저 옷이 의외로 레어한 템일 수도 있고요.”

“설마요.”

“이 게임에서 설마가 어딨습니까.”

“잘 안 쓰러지는 거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전투는 더 치열해졌다. 김막심도 상처를 몇 군데 입어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쉐프는 옷이 거의 넝마처럼 변해 있었다. 그런데도 쉐프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어!”

“뭐야!”

“어어어!”

팀원들이 동시에 소리를 쳤다. 골낳괴도 같이 소리를 쳤는데 카시마르는 그냥 조용히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푸슉!

김막심의 검이 쉐프의 배를 관통했다. 보통이었으면 그대로 게임이 끝났어야 하는 상황.

그런데 쉐프는 그 상태에서 움직였다. 배에 검을 관통 당한 상태에서 김막심의 목에 회칼을 집어넣은 것이었다.

회칼이 김막심의 목을 뚫자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김막심은 왼손으로 목을 부여잡았고 그 틈에 쉐프는 김막심에게 더 접근했다.

푹! 푹! 푹!

그리고 김막심의 배에 회칼을 집어넣는 쉐프. 쉐프의 배에 김막심의 칼이 박힌 상태여서 김막심은 제대로 공격을 피하지도 못했다.

김막심은 바로 그로기 상태가 되어서 비틀거렸다. 쉐프는 그런 김막심을 보면서 씩 웃었다.

“C랭크인가 보네요? 이 정도까지 버티는 걸 보면? 맷집 좋습니다.”

“무슨 가호입니까?”

“그걸 알려 주겠어요?”

쉐프는 김막심에게 마무리 일격을 가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네 시뻘건 토마토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로지 카시마르만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패배한 김막심이 팀 대기 장소로 유령이 되어서 돌아왔다.

“C랭크에서도 고렙인 거 같습니다.”

김막심이 말했다.

“그 정도면 랭커 아냐?”

“일부러 랭킹에 등록 안 했나보지.”

“기권할까요?”

팀원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때 김막심이 카시마르에게 다가와 물었다.

“기권할까요?”

“저 사람 가호 뭔지 아시겠어요?”

카시마르는 김막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생명력 회복과 관련된 건 확실합니다. 데미지가 꽤 들어갔는데 계속 멀쩡해지는 걸 보면 그래요.”

“나머지 하나는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게임 하실 건가요? 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해야죠.”

카시마르는 천천히 구름 계단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니 시뻘건 토마토 팀은 초상 분위기였고, 상대팀은 꽤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니시토 팀의 팀원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느라 카시마르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이미 졌다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D랭크 1렙 유저가 C랭크 유저를 자크르에서 이겼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으니까.

그들은 카시마르를 D랭크 초보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반쯤은 정확했다. 레벨 수치로 따지자면 카시마르는 초보가 맞았다.

그러나 전투에 있어서는 초보가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계단 위로 올라 쉐프를 바라보면서 강숭이와 대화를 나눴다.

데스매치에서 승리를 하면 소량의 생명력과 체력 마나가 회복되었다. 그렇지만 많은 수치는 아니어서 지금 쉐프는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검이 배를 관통 했는데살아 있다. 대체 무슨 가호나 스킬이길래 버틸 수 있는 걸까?

“무슨 가호 같냐? 불사와 관련된 건가?”

카시마르가 강숭이에게 물었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요. 저건 스킬 가호 조합으로 인한 것 같습니다요.”

“나도 그건 알고 있어. 액티브 스킬을 쓰지 않더라고.”

“데미지를 나눠 받는 가호와 생명력 회복, 생명력 흡수이면 상황이 설명될 거 같습니다요.”

“데미지를 나눠 받는 가호?”

“네. 어마어마하게 데미지를 받더라도 그걸 출혈 데미지처럼 몇 초에 걸쳐서 나눠서 받는 거지요. 아니면 횟수일 수도 있고요.”

“음. 그거면 설명이 좀 되네. 큰 데미지를 입어도 그걸 나눠서 받으면 피 회복이나 생명력 흡수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니까.”

쉐프는 웃으면서 카시마르에게 다가왔다. 카시마르는 쉐프가 다가와도 신경 쓰지 않고 강숭이와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 저런 놈은 그냥 한 방에 보내버리면 됩니다요.”

“한 방에?”

“예. 나눠 받을 수 없을 만큼 큰 데미지를 주면 즉사 판정이 나오지요.”

강숭이의 조언에 카시마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숭이의 조언은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간만에 만난 움직임이 좋은 상대였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면 모를까, 충분히 수집한 상황.

카시마르는 블랙 알라딘을 쓰지 않고도 쉐프를 잡을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피지컬 싸움에서 그는 무적에 가까웠으니까.

무엇보다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보면 쉐프는 카시마르가 딱 잡아먹기 좋은 상대였다.

별다른 액티브 스킬 없이 독특한 가호, 스킬 조합으로 플레이하는 유저는 카시마르에게는 큰 위협이 되질 못했다. 그런데다가 카시마르는 쉐프의 움직임도 충분히 감상했다. 두 개의 회칼로 펼치는 전투는 효율적이고 좋았지만 허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쉐프는 카시마르가 움직이지 않자 적당한 거리에서 머리를 긁었다. 그는 카시마르가 달려들지 않자 그냥 가만히 서서 있었다.

“기권하던가요. 어차피 그쪽 진 거 같은데.”

김막심이 뒤를 턱짓으로 가르키면서 말했다. 뒤에는 팀원들이 서로 마주보고 설전을 펼치고 있었다.

카시마르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

카시마르는 정면을 바라보고 자세를 잡았다. 쉐프는 카시마르의 자세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투 쪽이면 님보다 훨씬 센 사람이 우리 쪽에 있어요. 자주 싸우다 보니 엄청 익숙하죠.”

쉐프의 말에 카시마르는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움직였다. 쉐프가 움직이지 않으니 그가 움직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쉐프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시간을 끌어서 생명력을 회복하려는 속셈.

슁! 팅!

쉐프가 가볍게 오른쪽 회칼을 잽처럼 찔러넣었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왼손으로 날아오는 회칼을 위에서 아래로 쳐 내린 다음 그 손으로 플리커 잽을 집어넣었다.

퍽!

마술 같은 잽이 쉐프의 눈을 가렸다. 아주 잠깐 쉐프의 시야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카시마르에게는 그 시간이면 충분했다.

패링으로 회칼을 쳐내고 잽을 넣은 다음 긴 스트레이트. 스트레이트는 쉐프의 턱에 정확히 꽂혔다.

퍼억!

쉐프가 놀란 눈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세를 잡으려고 했지만 카시마르의 동작이 좀 더 빨랐다.

카시마르는 쉐프의 품에 파고들었고 쉐프는 회칼로 그 동작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태클?”

카시마르가 시전한 동작은 초저공 태클이었다. 제대로된 방어법도 모르는 경장비의 유저에겐 아주 효과적인 기술.

카시마르는 쉐프의 허리를  쉽게 감아서 그립을 완성했고, 부드럽게 백으로 돌아들어갔다.

그리고 그대로 쉐프를 뒤로 넘겨버렸다.

백 드롭.

프로레슬링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기술.

그러나 이 기술은 방어법을 모르는 상대에게 쓰면은 그 어떤 레슬링 기술보다도 치명적이었다.

바로 경추에 직접적인 손상을 주는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퉁! 콰직!

쉐프 머리부터 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를 만들었다. 그 모습에 설전을 벌이던 니시토 팀의 팀원들이 경기를 바라봤다.

상대 팀도 입을 떡 벌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11초.

카시마르가 C랭크 유저인 쉐프를 제압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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