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전부 죽여!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역시 선생님이십니다요. 그냥 한 방에 보내버리셨네요. 근데 전 검은 번개를 쓰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요.”
강숭이가 웃으면서 말했고 카시마르는 쉐프를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적어도 카시마르가 의도한 건 이게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간단한 연계 공격으로 기선 제압을 하려고 했지 쉐프를 그로기 상태에 빠지게 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이렇게 허약할 리가 없는데?”
“대단하십니다요. 선생님!”
강숭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아부를 떨었다. 그러나 정작 카시마르는 전혀 기쁜 기색이 아니었다.
“한 방에 보내시려는 의도 아니었습니까요?”
“아냐. 그냥 살짝 두들긴 거라고. 그래. 테이크다운을 건 거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나간 거긴 해. 그렇지만 이건 너무 쉽게 아웃이잖아.”
“선생님. 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지면 웬만하면 다 못 일어납니다요. 뚝배기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잖습니까요. 저 정도면 좌뇌랑 우뇌가 혁명적으로 바뀝니다요.”
“야. 이놈은 배에 칼을 맞고도 멀쩡히 움직이던 놈인데 이 정도로 그로기라고?”
“배에 칼 맞은 건 의지로 버티는 게 가능합니다만 머리는 다릅니다요.”
“너 한 번 배떼지에 칼 맞아볼래? 의지로 버텨지나?”
카시마르가 강숭이를 보면서 말하자 강숭이가 얼른 자세를 고쳐잡았다.
“하긴 좀 이상하긴 합니다요. 전에 생명력이 빠진 상태여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요?”
“생명력이 빠진 상태여서 그렇게 되었다면 이해는 가네. 근데 왜 유령으로 변하지도 않지?”
“곧 변하지 않겠습니까요?”
카시마르는 쉐프를 위에서 쳐다보았다. 쉐프는 마치 죽은 것처럼 미동도하지 않고 있었다.
“계속 안 변하는데?”
“그러면 죽은 척 하고 생명력 회복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요?”
“그런가?”
카시마르는 쓰러진 쉐프를 발로 툭, 툭 건드려보았다. 쉐프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있었다.
“반응이 없습니다요.”
“진짜 아직 회복이 안 된 건가? 아니면 꼼수를 부리는 건가.”
카시마르는 쉐프의 얼굴 쪽으로 이동해서 주먹으로 해머링을 날렸다. 쓰러진 쉐프를 향해 쪼그려 앉아서 해머링을 날리는 카시마르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그보다 공포스러운 게 없었다.
무한 - 어휴. 잔인하다.
무한 - 쉐프 형. 어쩌다······.
무한 - 차라리 깔끔하게 목을 따라 나쁜 놈! 상태 이상으로 만들어 놓고 저리 조롱을 하다니.
무한 - 그냥 기권해! 형!
니시토 - 어케 된 거야?
니시토 - 들어가서 백드롭으로 넘겨버렸어.
니시토 - 그게 가능해?
니시토 - 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튼 이긴 거 같아.
골낳괴 - 막심아 저분 진짜 D랭크 초보 맞아?
김막심 - 맞아. 정보창 봐봐. 레벨이 D랭크 초반이라고 써 있잖아.
니시토 - 근데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나오지?
김막심 - 움직임이랑 레벨이랑은 상관없으니까 그렇겠지. 현실에서 무술 같은 거 좀 하시던 분 같아. 그래도 대단하네. 상대도 움직임 되게 좋던데.
골낳괴 - 레슬러 계열의 히든 클래스인가?
김막심 - 레슬러? 그런 직업도 있나?
골낳괴 - 사채업자도 있는 판에 레슬러가 없으려고. 이 게임에 불가능한 게 있겠어?
유저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카시마르는 여전히 쉐프를 깨우고 있었다.
툭! 툭! 툭!
“어이. 일어나 봐!”
카시마르는 반쯤 깨우려는 의도였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그의 주먹은 아프게 꽂혔다. 쉐프의 얼굴이 금세 피범벅이 되었다. 쉐프는 카시마르가 몇 대 때리다가 그만 둘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시마르는 그만 두질 않았다. 쉐프의 얼굴을 일정한 간격으로 두들겼다. 쪼그려 앉아서.
‘젠장!’
피를 회복하려고 시간을 끌던 쉐프는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바로 기권을 해버렸다. 그의 몸은 유령이 되어서 팀으로 움직였고 다음 주자가 등장했다.
로브로 몸을 꽁꽁 싸맨 사내였다.
사내의 아이디는 젠부샤쓰.
젠부샤쓰는 다리 위에 오르자마자 로브를 벗어던졌다. 로브를 벗어던진 그의 모습은 강숭이와 카시마르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거 괜찮은 거냐? 어째 정상인 놈이 없어 보이지?”
“정상도 이 세계에 오면 비정상이 된다고 했습니다요.”
“저런 건 문제 안 생기나 몰라?”
“그러게 말입니다요.”
젠부샤쓰는 예전에 유행하던 게임 유명 캐릭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리에 올라서자마자 자세를 잡는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두 눈은 가린 상태였고 하의만 입고 있었다. 펑퍼짐한 수련 바지를 입고 그럴 듯하게 캐릭터의 동작을 흉내 내는 모습.
문제는 젠부샤쓰의 몸이었다. 젠부샤쓰가 코스프레한 캐릭터는 굉장히 근육질의 사내였다. 근데 젠부샤쓰는 아무리 봐도 60kg이 넘어 보이지 않았다. 근육은 하나도 없었고 갈비뼈만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크!”
볼품없는 몸매로 캐릭터의 자세를 취하면서 진지한 대사까지 읊으니 카시마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대사까지 똑같네.”
“그래도 종결 어미는 바꿨습니다요.”
“그래. 그렇네.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어휴.”
카시마르는 젠부샤쓰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결투장 끝에 선 젠부샤쓰는 1분 넘도록 진지하게 캐릭터의 동작을 따라 했다. 그리고는 카시마르를 바라봤다.
“망설임은 없는 것이오! 이크!”
카시마르를 바라보자마자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발차기를 날렸다. 카시마르에게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였는데 충격파가 날아왔다. 카시마르는 가드를 올려서 충격파를 막아냈다.
“뭐야? 근접 캐가 아니었네?”
“그러게 말입니다요.”
젠부샤쓰는 볼품없는 외관과 다르게 근접 전투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가 무술 동작을 취하면 그에 따른 충격파가 날아와 카시마르를 공격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푸왕! 팡!
푸른색 충격파가 카시마르에게 쏟아졌다. 카시마르는 그걸 막으면서 젠부샤쓰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그러나 젠부샤쓰는 웃기는 외관과 다르게 나름 스타일이 확립된 유저였다. 그는 카시마르가 접근하려고 하자 어설픈 무술 동작을 그만두고 합장을 했고, 그러자 사방으로 충격파가 쏟아졌다.
데미지는 주지 않는 충격파.
대신에 카시마르를 뒤로 밀어버리는 공격이었다. 카시마르가 뒤로 밀려나면 젠부샤쓰는 다시 자세를 취하고 무술 동작을 시작했다. 그러면 다시 그 동작에 걸맞는 충격파가 날아와 카시마르에게 꽂혔다.
“더럽네.”
그랬다. 특히 카시마르 같이 근접 전투 캐릭터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더러운 방식이었다. 공격 범위가 넓은 액티브 스킬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카시마르에게 그런 건 없었다. 그러니 젠부샤쓰는 멀리서 마음 껏 스킬을 사용하며 카시마르를 두들기고 있었다.
“데미지는 강하지 않은데 말입니다요.”
“그러기는 하는데 저 소리가 짜증나서 한 대 패줘야겠어.”
젠부샤쓰는 계속 대사를 읊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제 정신은 아닌 것 같았지만 여기서 그런 걸 따져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카시마르는 알고 있었다.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다는 것.
가상현실이라는 건 바로 그러한 걸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세계였으니까.
카시마르는 바람 제어술을 이용해서 젠부샤쓰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그러나 젠부샤쓰는 조금의 틈도 보여주질 않았다.
“짜증나네······ 저게 무슨 무투가야.”
“무투가는 맞는 것 같습니다요. 다만 기공술에 특화된 거 아니겠습니까요.”
“저런 클래스가 있다고?”
“가호와 스킬을 조합하면 저런 스타일도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요. 무투가 2차 전직 중에 하나 일수도 있고 말입니다요.”
“공략법은?”
“일단 접근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요? 아니면 번개를 이용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요.”
“번개도 접근을 해야 의미가 있지. 저렇게 멀리 떨어져서는 의미가 없어.”
“그러면 상대가 지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있습니다요.”
“계속 쓸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요. 하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요. 마나 회복이 엄청 빠르게 되는 가호를 받았거나, 아니면 사용하는 스킬의 마나가 엄청 적게 드는 가호가 있거나 하면 계속 쓸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요.”
“레벨이 높으니 저런 지랄도 가능하구나.”
C랭크 유저가 이래서 무서웠다. D랭크에서는 가호와 스킬 조합이 아무리 강하여도 저런 플레이 스타일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C랭크로 승격을 하게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지니는 가호가 2개가 되고 직업도 전직을 하게 되기 때문에 특이하고 강력한 스킬을 보유할 수 있었다. 그걸 잘 조합하면 지금의 젠부샤쓰 같은 기괴한 캐릭터가 탄생하는 것이었다.
젠부샤쓰의 플레이 스타일은 자크르에 적합했다. 그리고 이 맵에 아주 특화되어 있었다. 만약 은폐, 엄폐물이 많은 맵이었으면 젠부샤쓰는 금방 카시마르에게 붙잡혔을 거였다. 그런데 지금 맵은 사방이 뚫려 있어서 카시마르가 젠부샤쓰의 기술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날아오는 충격파는 막거나 피한다고 해도 밀어내는 충격파는 광역 스킬이었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카시마르라도 밀려드는 바람을 어쩔 수는 없는 것이었다.
“공중에서 들어가는 것밖에 답이 없나?”
“위를 노리시려는 겁니까요?”
“그래. 저놈이 쓰는 밀어내는 스킬은 지상의 적에게만 해당 되는 거 같으니까.”
“보아하니 그거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요.”
“그렇겠지?”
“그렇습니다요.”
"그래도 해봐야지."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젠부샤쓰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고 카시마르는 조금씩이지만 에너지가 닳고 있었다. 충격파는 가드를 해도 데미지가 들어왔다. 카시마르는 특유의 움직임으로 충격파를 피하고는 있었지만 다 피할 수가 없었다.
충격파는 반쯤 범위 공격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파앙!
젠부샤쓰가 어설픈 뒤돌려차기를 하자 충격파가 카시마르에게 쏟아졌다. 카시마르는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이 앞으로 전진하다가 바닥을 굴러서 충격파를 피했다. 그러자 젠부샤쓰가 정권 지르기 자세를 취했고 그의 주먹에서 다시 충격파가 발생했다.
카시마르와 젠부샤쓰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젠부샤쓰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으면서 접근했고, 카시마르가 5미터 지척까지 접근하자 다시 합장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밀어내기 충격파가 카시마르에게 날아왔다. 카시마르는 그 타이밍에 얼른 높이 점프를 뛰어서 뒤로 밀려나는 걸 방지했다.
카시마르가 충격파를 피하려고 높이 위로 떠오른 순간.
합장을 하고 있던 젠부샤쓰가 합장을 풀었다. 그리고는 소리 내서 웃더니 눈을 가린 천을 풀어버렸다.
“걸려들었구나. 오늘 당신에게 승산은 없는 법!”
합장을 하고 있던 젠부샤쓰가 갑자기 로켓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그의 주변으로 푸른 충격파가 발생했다.
우우우우웅!
심상치 않은 이펙트의 스킬.
젠부샤쓰는 빠른 속도로 카시마르에게 접근했다. 그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시마르의 표정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바람 제어술의 게이지를 채우고 있었고, 젠부샤쓰가 다가오자 바람을 발로 걷어차서 방향을 틀어버렸다.
팡!
“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젠부샤쓰는 당황했고 카시마르는 바닥에 유유히 착지했다. 그리고 젠부샤쓰가 착지할 지점을 따라서 움직였다. 그런데 젠부샤쓰는 착지하지 않았다. 그대로 로켓처럼 하늘을 향해 쭉, 쭉 올라가고 있었다.
“어?”
“응?”
“저기. 님? 내려오셔야죠?”
“그만가도 될 거 같은데······.”
팀원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젠부샤쓰는 그대로 경기장 바깥까지 날아갔다. 카시마르의 강숭이는 그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제정신 아닌 것 같다고 했잖아······.”
“선생님 말에 백퍼센트 공감합니다요.”
“근데 젠부샤쓰 뜻이 뭐냐? 예전에 얼핏 들었던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전부 죽여 라는 뜻 아닙니까요?”
“그런 의미의 ‘전부’였군. 근데 저거 어디까지 가냐?”
“달까지 갈 기세인데요. 근데 잘 날아가네요. 시원합니다요.”
“그러네. 시원하게 잘 나네.”
카시마르는 상대를 한 대도 때리지 않고 데스매치에서 승리를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