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등급 측정 불가!
좌팔계는 바닥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었다. 강숭이가 그 위에 올라타서 누르고 있었고, 카시마르는 좌팔계의 손을 잡고 계약서에 찍으려는 중이었다. 좌팔계는 필사적으로 팔을 움직이면서 지장이 찍히는 걸 막았다.
“와. 이 돼지놈 독하네. 독해! 강숭아! 이놈 별 거 아니라며?”
“힘이 이렇게 센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요.”
“놔라! 이 도적 놈들아아아아!”
“시끄러워서라도 빨리 끝내자. 셋을 셀 테니까. 그때 맞춰서 딱 힘줘라.”
“알겠습니다요. 선생님!”
“하나! 둘! 셋!”
“안돼에에에!”
강숭이와 카시마르는 환상의 호흡으로 좌팔계를 눌렀다. 그리고 계약서에 지장을 찍는 것까지 성공했다.
“반대 쪽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일단 찍었으면 괜찮습니다요.”
“야. 이제 쉽게 쉽게 가자.”
“뭘 쉽게 쉽게 가! 이 도둑놈들아!”
“계약서도 찍었으니까. 쉽게 가야지.”
좌팔계와 강숭이는 계약서에 지장을 찍은 후의 반응이 판이하게 달랐다. 강숭이는 계약서에 지장을 찍은 순간부터 펑펑 울었는데, 좌팔계는 오히려 더 독이 바싹 오른 모습이었다.
“계약서 안 보여?”
카시마르가 좌팔계에게 지장이 찍힌 계약서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보인다! 이 개놈아!”
“나도 바쁜 사람이야. 빨리 축복 걸어주고 끝내자.”
“뭘 끝내! 난 못 끝내.”
“찰스야. 그냥 좋게 좋게 가자!”
“뭘 좋게 가! 넌 진짜 형도 아니야. 나쁜 원숭이 새끼야. 이래서 천한 것들은 믿지 말았어야 하는데.”
“뭐 인마? 야! 신분으로 따지면 내가 너보다 위지. 나는 달로스님의 직계야!”
“직계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달로스님의 직계면 뭐 다 고귀한 신분이냐? 어디서 나온 폐기물일 줄 알고.”
“이런 똥 돼지 시키가! 야! 오늘 해보자는 거지?”
“뭐! 뭐!”
흥분한 강숭이가 선빵을 날렸고 거기에 맞은 좌팔계가 반격했다. 그리고는 둘이 엉켜서 싸우기 시작했다. 저잣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개싸움. 그나마 강숭이는 싸우던 가닥이 있어서 기술을 쓰곤 했는데, 좌팔계는 그걸 맷집과 체급으로 커버했다.
“야! 이 새끼야! 이거 안 놔?”
“네가 먼저 놔!”
“하! 너 많이 컸다?”
“키는 내가 원래 너보다 컸거든? 이 땅꼬마 새끼야! 너 확! 내가 신고해 버릴 거야!”
“아놔 이 새끼가 근데! 오늘 너 대머리로 만들어준다!”
“아! 야! 털 빠진다고! 탈모 와!”
한참을 엉겨 붙어 싸우던 찰스와 강숭이는 나중에는 머리 끄댕이를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는 그 모습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강숭이는 달리 달로스의 최고 권력자였고 좌팔계는 달리 달로스 우주의 최고 만신이었다.딱 정의 내리자면 둘 다 이 우주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인물들. 그러나 하는 짓은 유치원 막 졸업한 초딩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둘은 서로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유치한 말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좌팔계의 머리 부분에는 사람 머리카락 같은 덥수룩한 갈기가 있었는데 강숭이는 그걸 붙잡고 있었고 좌팔계는 강숭이의 왼쪽 귀 부근의 털을 한 뭉텅이 잡고 있었다.
“강숭아.”
“네! 선생님!.”
“그만하고 나와봐!”
“예!”
싸우는 도중에도 카시마르의 말은 정확히 캐치하는 강숭이었다.
“축복 안 걸어 줄 거냐?”
카시마르가 좌팔계에게 물었다.
“계약서에 도장 찍으면 내가 뭐 아이고 합니다 하고 축복 걸어줄 줄 알았어? 너랑 저 깡통 원숭이랑 나가면 바로 아웃이야! 내 시선에서 아웃!”
“계약서가 있는데?”
“뭐! 뭐! 나 소멸시키게? 해봐! 나 여기 최고 만신이야. 나 죽으면 달로스님의 저주 떨어지거든? 그거 감당할 수 있어? 그럼 해봐! 죽여보라고!”
카시마르는 좌팔계를 설득하려고 몇 번 더 말을 걸었다. 그러나 좌팔계는 전혀 설득이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죽여보라고! 엉! 죽여봐! 어디 계약서 효력 한 번 발휘해보라니까! 이게 어디서 뻥카를 치고! 엉? 어서 해봐! 쫄았냐? 쫄았어!”
좌팔계는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강숭이와 카시마르에게 욕을 쉴 새 없이 내뱉었다. 카시마르는 그 욕을 차분하게 듣고는 강숭이를 바라봤다. 강숭이는 카시마르의 그 시선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야! 야! 찰스!”
“강숭아.”
“네.”
“가만히 내버려 둬라. 어디까지 가나 보자.”
“예.”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강숭이는 찰스에게 언질을 해주려고 했지만 카시마르가 막았다. 좌팔계는 비트라도 튼 것처럼 쉴 새 없이 욕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본인도 주체가 안 되는 지 나중에는 발음이 막 뭉개지고 있었다.
강숭이는 잠시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 때는 누구보다 아끼는 동생이었기 때문에 적당히 수습이 되길 바랬다. 강숭이는 카시마르의 뒤에 서서 좌팔계를 보고 고개를 흔들면서 계속 경고를 주었다. 그러나 좌팔계의 흥분은 가라앉지를 않았다.
“내가 여기 만신이야! 달로스님을 제일 가까이서 모시는 만신이라고! 나한테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거 같아! 아주 내가 네놈 삼족의 깨톡 친구까지 싸그리 찾아내서 내장탕을 끓여 먹어 버릴테니까! 축복? 축복 좋아하네!”
“이제 끝났냐?”
카시마르가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좌팔계는 거칠게 호흡하면서 강숭이를 바라봤다. 강숭이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뭐? 뭐가 끝나! 축복 받고 싶어? 그럼 고기 가져와! 고기!”
“어떻게 너랑 강숭이는 하는 짓이 똑같냐.”
“뭐라는 거야!”
“축복. 필요 없다.”
“뭐?”
“그거 필요 없다고. 대신에 오늘 살풀이 좀 하자. 너 네 내장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 없지?”
“자꾸 뭐라고 씨부리는······ 꾸엑!”
지직!
카시마르는 좌팔계가 말을 끝내기 전에 전격을 끌어올려 감전시켰다. 좌팔계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하여튼 이 새끼들은 말로 해서는 안 들어먹어요. 삼족의 깨톡 친구? 넌 그거 걱정할 때가 아니지. 너부터 걱정해야지.”
“자···잠깐! 이거 뭐하는 짓이야!”
“뭘 뭐해? 축복 안 해준다며.”
“그래서?”
“그래서 뭐. 안 해준다니까 필요 없다고.”
“필요 없는 건 없는 건데.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나 누군지 몰라? 나 팔계야 팔계.”
“야! 이 식빵 무지 달다스키야. 그럼 내가 축복 안 내려준다고 하면 아! 그러세요 하고 그냥 갈 줄 알았냐? 이거 되게 돌 대가리네.”
“형! 아베다 형! 꿰엑!”
“뭘 불러! 부르기는 이미 늦었는데.”
퍽! 퍽!
본격적인 구타가 시작되었다. 좌팔계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숭이는 그 모습을 안 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게 그렇게 경고를 했잖냐.’
“야아아아! 이 시바!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악!”
“와아아아아아아! 나도 소리칠 줄 알거든?”
“자! 잠깐! 아퍼! 아프다고오오!”
“아프라고 하는 거야!”
‘아이고. 나는 안 볼란다.’
이윽고 강숭이가 눈을 가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상담실이 좌팔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검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
“저기! 이보쇼! 이러면 다 죽자는 거요!”
“강숭아.”
“네. 선생님.”
“저놈이 아직 교육이 덜 된 거 같다. 불 지펴라. 가브리살이나 좀 구워 먹자.”
“예!”
“자! 잠깐!”
“입도 막아라!”
“예!”
“야! 원···읍읍!”
좌팔계는 막대기에 꽁꽁 묶인 채 매달려 있었다. 강숭이는 그 위에다가 불을 지피려는 중이었다.
“여기 상담실 진짜 방음 잘 되고 좋다. 근데 여기서 음식 해 먹어도 괜찮은 거냐?”
“그렇습니다요. 전에도 자주 와서 고기 파티하고 그랬습니다요.”
“여기를 접선 장소로 썼던 거구나?”
“아무래도 대놓고 고기를 건네기가 그래서 말입니다요.”
“여기가 악의 산실이었구만.”
“근데 선생님. 진짜로 굽습니까요?”
“그럼? 가짜로 굽는 것도 있냐?”
“그래도 좀······.”
“네가 대신 올라갈래?”
“아···아닙니다요!”
카시마르의 단호한 말에 강숭이는 할 수 없이 불을 지폈다. 그러자 좌팔계가 미친 듯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인마. 가만히 있어. 안 그럼 위험해! 어!”
털썩!
“꾸웨웨웨웨엑!”
“어이고 선생님 어쩝니까요! 진짜 붙었습니다요!”
막대기가 불 위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좌팔계의 몸에 불이 붙었다. 좌팔계는 소금에 닿은 양서류처럼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야! 빨리 꺼줘라. 저놈은 살짝 겁만 주려던 건데 셀프로 불구덩이에 들어가네. 요새 새로운 트렌드냐! 고기는 셀프?”
"꾸웨웨에엑!"
"야! 야! 안 죽어! 안 죽어! 엄살은!"
"꾸웩!"
"말로해 인마! 아! 입을 틀어 막았구나! 강숭아! 저놈 머리에 불 덜 꺼졌다. 제대로 꺼줘야지!"
잠시 뒤.
온몸의 털이 그슬려서 꼬불꼬불해진 좌팔계가 무릎 꿇고 분한 듯이 울고 있었다.
“억울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런 짓을 하는 거냐!”
“거냐?”
“겁니까!”
“네가 잘못한 걸 몰라?”
“그럼 까놓고 물읍시다.”
“해봐.”
“저기 선생님은 돼지고기 안 먹습니까?”
“먹어.”
“그것 보세요! 선생님도 드시지 않습니까!”
“그게 같냐? 정 고기를 먹고 싶으면 소고기를 먹던가. 아님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중간맛 정도인 양고기를 먹던가 해야지. 왜 같은 동족을 잡아먹고 그러세요. 그것도 육회로. 너 생각을 해봐라. 내가 어린 애들 잡아다가 산채로 매달아 놓고 회로 만들어 먹는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끔찍해.”
“내로남불입니다!”
“내로남불은 무슨 내로남불이야! 적어도 인마. 동족을 먹는 건 피해야지. 먹을 게 없어서 그러는 거······ 그것도 좀 그런데. 넌 먹을 거 부족할 것도 없는 놈이 같은 동족을 처먹어? 생각해보니까. 더 끔찍하고 열 받네.”
“자···잠깐만요! 제가 뭐 잘 했다는 건 아닙니다. 저도 나쁜 짓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근데 저보다 저 원숭이 새끼가 더 나쁜 놈이라니까요. 저 원숭이가 무슨 짓 저질렀는지 알고 계십니까?”
“알아.”
“정말로요?”
“응. 들었어. 그래서 충분히 교육을 시켜 줬다.”
“저 원숭이가 전쟁 일으켜서 민간인 학살하고 그런 것도 말했습니까? 군인들한테 애들 노예로 던져주고 그런 것도 들었습니까?”
“그래.”
“그럼 민간인들 잡아다가 무기 생체 실험한 거는요?”
“생체 실험?”
“예. 무기 성능 테스트한다고 민간인 잡아다가 폭탄 터트려서 반경 몇 미터에 있는 애들까지 죽는지 그런 거 테스트하고 그랬습니다.”
“그랬어?”
“야! 찰스! 너 언제적 이야기를 하고 그러냐. 산타 할배 꼬털도 안 난 시절 이야기 잖아!”
“저거 보십시오. 저놈은 반성이라는 걸 모르는 원숭입니다. 더 하이라이트가 뭔지 아십니까? 저렇게 범죄를 저지르고도 사과 한 마디 안 했습니다. 대충 돈으로 때우고 무시하고 자기 책임 아니라고 하고. 그러다가 시민들이 폭발해서 저 꼴 된 거 아닙니까요. 원래대로라면 저놈 저거 시민군한테 잡혀서 껍데기가 홀랑 벗겨졌을 겁니다.”
“그래. 좌팔계 네 말도 맞는 말이네.”
“그쵸?”
“응. 처맞는 말.”
“네?”
빡!
“야! 너는 그럼 뭐 했냐. 너도 저놈이랑 똑같은 놈이었잖아.”
“아니 저는 저 원숭이가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거짓말 하고 있네. 참 시키는대로만 했겠다. 너 저놈이 저런 범죄 저지를 때 소문 통제하고 그런 거 모를 줄 알아?”
“맞습니다요! 아우! 저 가증스러운 돼지 새끼!”
팍!
“엌! 선생님! 아픕니다요!”
“너는 뭐 너는 뭐 결백하니? 네가 더 나쁜 새끼야!”
“선생님! 저는 개과천선 하지 않았습니까요! 악! 선생님! 머리는! 머리는 큰일 납니다요. 그거 카이로의 꼬리!”
카시마르는 강숭이와 좌팔계를 철저하게 교화시켰다. 카시마르의 철저한 설교를 몇 시간 동안 들은 두 미물들은 아주 차분한 모습으로 카시마르의 눈치를 살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선생님.”
좌팔계가 카시마르의 가면에 얹은 손을 떼면서 말했다.
“그래?”
“네.”
강숭이와 좌팔계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둘 다 걸어서 움직이는 게 신기할 정도로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야!”
“네. 선생님!”
“축복 걸었다면서?”
“그렇습니다.”
“근데 왜 바뀌는 게 없어?”
“그게 달로스님의 축복은 천천히 바뀝니다!”
“거짓말 하는 거 아냐? 강숭아!”
“네. 선생님!”
“이놈 말 사실이야? 축복 걸었는데 바뀌는 게 하나도 없네?”
“그렇습니다요. 아주 오래 전이라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천천히 바뀌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요. 야. 얼마나 걸렸냐?”
“보통 한 달에서 많게는 6개월도 걸립니다.”
“뭐야. 그럼 엄청 오래 걸리네?”
“그래도 선생님 효과 엄청나니까 한 번 믿어보십시오.”
카시마르는 인벤토리를 열어 가면을 확인했다. 가면의 옵션 자체는 바뀐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바뀐 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카시마르의 가면은 원래 레전드 등급 아이템.
그런데 지금 카시마르의 눈에 보이는 등급은 레전드 등급이 아니었다.
[바람의 가면 (등급 측정 불가) (깊은 잠을 자는 중) - 베일을 가르는 자라고 불리는 아우터 갓 달로스의 축복이 내려진 아이템입니다. 바람의 가면은 본래의 모습을 탈피하기 위해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