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새로운 스타일!
카시마르는 핏불킹이 접속하기 전까지 골낳괴와 사냥을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퀘스트는 어려웠고 레벨이 맞는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카시마르는 그러면서 경매에 올라온 아이템을 보거나 커뮤니티의 자크르 챔피언쉽에 관련된 정보를 읽었다.
“핏불킹 형 접속했네요. 훈련장으로 가죠.”
“사냥 딱 끝나니까 들어오네.”
카시마르는 투기장에 있는 개인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무슨 기술이야?”
“내가 이번에 강철의 권능이라는 기술을 얻었어. 쉽게 말해서 달리 달로스 세계에 속한 금속을 조종하는 능력이야.”
“그 금속 여기에는 거의 없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있더라고.”
카시마르는 품속에서 작은 공을 꺼내 들었다. 그 공은 바로 강숭이의 전투 갑옷 잔해였다. 달리 달로스의 신비의 금속 그로는 무게는 가볍지만 엄청난 방어력을 지니고 있어서 무기로 잘 활용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걸 던지는 것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거지? 공처럼?”
“그렇게는 별 의미 없어. 이거는 거의 무게가 없는 물건이거든. 던져봤자 아프지도 않아.”
“그러면?”
“가볍지만 방어력 하나만큼은 장난 아니지. 그리고 내가 그랬잖아 달리 달로스의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고.”
철컹!
카시마르가 왼쪽 손가락을 꿈틀거리자 작은 공 모양이던 그로가 커다란 칼로 모습을 바꾸었다. 1미터 넘는 길이의 칼이었다.
“아. 이렇게 활용이 가능하다는 거네?”
“그래. 증식이라는 스킬이 많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더라고.”
“증식은 또 뭐야.”
“금속을 원래 부피 이상으로 변형시키려면 증식이라는 능력도 필요해. 말 그대로 크기를 늘리는 능력이지.”
“그 능력 덕택에 이렇게 모양을 바꿀 수 있는 거구만?”
“그렇지. 대신에 전에 쓰던 능력이 많이 사라졌어.”
“어떤 거?”
“바람 부리는 능력. 상대에게 빠르게 접근하거나 공중에서 방향을 틀거나 혹은 회오리를 날려보내거나 하는 거.”
“그거 네 전투 스타일의 핵심 능력 아냐? 그거랑 이거랑 바꾸면 손해인 거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완전 손해보는 거라고. 나중에 이 능력이 더 강해지면 모를까. 지금은 손해라고 생각했지. 근데 아니더라고.”
“왜? 증식으로 늘릴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아?”
“증식 능력에 얼마 투자도 안 했어. 투자해봤자 큰 차이가 없더라고. 차라리 권능에 투자하는 게 이득이야.”
“그러면?”
“지금 그걸 보여주려고 형을 부른 거야. 용재야!”
“네! 형님!”
“불 큰 거 한 방 부탁한다.”
“넵. 버프 걸어놨습니다.”
용재는 멀찍이서 커다란 불구덩이를 소환했다. 각종 버프와 약물을 섭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용재가 만든 불구덩이는 사람 하나는 가뿐하게 집어삼킬 정도로 컸다.
“너 뭐하려고?”
“봐봐.”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는 불구덩이를 카시마르는 침착하게 바라봤다.
위잉!
카시마르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그로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도트가 분해되었다가 재조립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로는 2미터가 넘는 커다란 방패로 변했다. 불구덩이는 원래 목표였던 카시마르 대신에 그로 방패를 삼키고는 이내 사라졌다.
“뭐야. 그렇게까지 크게 변형이 된다고?”
“이것보다 더 될 걸?”
“증식에 얼마 투자 안 했다면서?”
“이게 작게 보여도 부피가 상당한 거래. 그래서 증식에 투자하지 않아도 이 정도 크기로 변형하는 건 문제가 없다는 거지.”
“그거 완전 사기잖아. 마법도 저렇게 막아질 정도면 마법사는 이제 너 못 잡는 거 아냐?”
“완전 사기는 아냐. 이렇게 방어해도 데미지는 어느 정도 들어와. 마법이라서 완전히 막아지지는 않는 거 같아.”
“어느 정도나 줄어드는데?”
“꽤 많이 줄어드는 거 같아.”
“아니 그게 줄어드는 것보다 그 정도 크기로 변형이 가능하면 활용도가 어마어마해지는 거 아냐? 그게 더 사기잖아.”
핏불킹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얼핏 보면 그저 그런 능력일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보면 지금 카시마르가 얻은 능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이렇게 만들어 두려고.”
카시마르가 다시 손가락을 움직이자 그로가 왼손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카시마르의왼쪽 건틀릿이 살짝 부풀어 올라서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전에는 왼손과 오른손이 차이가 없었지만 그로가 스며든 뒤에는 확연하게 차이가 보였다. 그렇지만 두 손의 크기는 그다지 차이가 나질 않았다.
“거참. 본선 때 반응 엄청 나오겠네. 어디서 엄청난 템 얻어왔다고 할 거 아냐.”
“그렇지?”
"어. 장난 아닐 거 같다."
“근데 형님들. 본선 때는 어차피 반응이 장난 아닐텐데요?”
조용히 지켜보던 아르케가 끼어들었다.
“왜?”
“왜?”
핏불킹과 카시마르가 동시에 물었다.
“형 정체 밝혀지는 순간 대회 이미 뒤집어지는 거 확정 아니에요?”
“아. 그렇겠다. 그걸 깜박하고 있었네.”
“아무튼 난 이제 해설하러 간다. 다들 게임 재밌게 해.”
“우리 게임 안 할 건데? 너 해설하는 거 볼 거야.”
“아냐. 보지마.”
“아냐. 볼 거야.”
“아. 알아서 해. 나는 간다.”
카시마르는 훈련장에서 나와 바로 중계 장소로 움직였다. 코즈믹 게이트에 접속한 상태에서 하는 중계였기 때문에 따로 인증 절차는 필요하지 않았다.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월드 자크르 챔피언쉽 본선의 마지막 진출자를 가리는 와일드카드 최종 결정전이 시작되겠습니다. 오늘 32강 경기가 다 치러질 텐데요. 1일 차부터 경기가 엄청 치열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재환 해설?]
[그렇습니다. 치열하긴 했지만 대부분 예상했던 카드들이 올라왔죠. 특히 컨신 선수의 변신은 놀랄만한 것이었고요.]
[예. 어제 가장 돋보이는 플레이어는 역시 컨신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컨신 선수를 와일드카드. 패자부활전으로 떨어트린 선수를 모셨습니다. 바로 이번 대회에서 돌풍의 핵이라고 평가 받는 선수죠. 한국 예선 우승자인 카시마르 선수입니다. 카시마르 선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코즈믹 게이트의 유저분들이 카시마르 선수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 많습니다. 경기 시작전에 최대한 많이 질문을 던지라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카시마르 선수. 카시마르 선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코즈믹 게이트를 플레이하는 사람입니다.]
카시마르의 대답에 캐스터와 해설이 크게 웃었다. 카시마르는 코즈믹 게이트의 복장 그대로 중계석에서 차분하게 해설했다. 중계진은 카시마르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카시마르는 크게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해설은 처음이었지만 인터뷰는 수도 없이 한 경험이 있는 카시마르였다. 카메라 앞에서 아마추어처럼 말을 더듬거나 하는 실수는 없었다. 그리고 딱히 긴장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코즈믹 게이트의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상 현실 게임이 코즈믹 게이트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영수 캐스터가 물었다.
[완성도에서 차이가 있는 거겠죠.]
카시마르가 대답했다. 그러자 안재환 해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성해내기 어려운 데이터를 코즈믹 게이트는 아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습니다. 기존에 있던 데이터를 인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활용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코즈믹 게이트 같은 볼륨이 큰 게임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코즈믹 게이트의 제작팀은 그 데이터를 아주 오래전부터 모아왔다고 합니다. 가상 현실이 구현되기 전부터요. 단순히 데이터를 모이는 것만 아니라 데이터를 정리하고 그걸 활용해 방향성을 제시하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단순히 데이터를 모아놓고 재미난 게임을 만들어라 한다고 해서 게임이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안재환 해설의 의견은 철저한 준비 덕분이라고 봐도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가 카시마르 선수의 말처럼 완성도라는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 거고요. 코즈믹 게이트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소스를 가져왔습니다. 그걸 아주 재밌게 버무렸죠. 기본 베이스는 판타지 세계이지만 뻗어나갈 가지가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니 이 게임을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아직까지 운영도 잘 하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운영을 훌륭하게 한다고 봐야죠. 특히 캐쉬템 같은 부분이 코즈믹 게이트에서는 많이 없으니까요.]
[자. 코즈믹 게이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예선 1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오늘 토너먼트에서 두 명의 최종 본선 진출자가 정해집니다. 일단 유저들이 제일 유력한 카드로 뽑고 있는 선수는 컨신이 되겠습니다. 한국 예선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더군요. 카시마르 선수도 어제 경기를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셨습니까?]
[예. 봤습니다.]
[어떻던가요?]
[전보다 화려하던데요.]
[하하하. 그렇죠. 확실히 전보다 플레이 스타일이 화려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컨신 선수는 원래부터 플레이 스타일이 화려했죠. 그런데 이번에 더 화려진 거 같더군요. 구사할 수 있는 스킬이 늘어난 것 같았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중계진들은 경기에 대해 해설하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는 자주 발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부분에서 해설이나 캐스터가 캐치하지 못하는 부분을 짚어서 이야기 해주었다. 실제로 제대로 플레이를 하는 유저만이 알 수 있는 팁 같은 부분이었다.
[그렇군요. 실제로 운동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그렇게 차이가 있는 거로군요. 전 컨트롤로 그게 다 커버가 가능한 건 줄 알았습니다.]
[그게 직업마다 차이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근접 전투를 선호하는 유저들은 격투기 수련자가 유리하다고 봐야죠.]
[그럼 카시마르 선수도 격투기 수련을 하신 겁니까?]
[어. 이 부분은 대답하기가 좀 그런데요. 최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게 본선에 유리하다고 들어서요.]
[지금 이보다 더 정보를 안 주기 어렵습니다. 지금 저희 3시간 넘게 중계를 했는데, 그 동안 카시마르 선수에 대한 정보를 건진 게 없습니다.]
이영수 캐스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카시마르와 안재환 해설이 따라 웃었다.
[수련했습니다.]
[어떤?]
[이것 저것 다양하게 손을 댄 편입니다.]
[카시마르 선수가 컨신 선수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컨트롤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는 이야기로군요.]
최종 예선의 중계는 순조롭게 흘렀다. 4시간 정도 중계를 한 뒤에 최종 진출자가 정해졌다. 컨신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우승했고 미국의 클라우드가 준우승을 거뒀다. 클라우드는 컨신과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준우승까지 올라온 유저였는데, 컨신을 상대로 3분도 견디질 못했다.
중계를 마친 카시마르는 대기실로 움직였다. 대기실에는 핏불킹과 골낳괴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푸하하하!”
“뭐? 왜 웃어?”
핏불킹은 카시마르를 보자마자 웃었다.
“와 겁나 뻔뻔해.”
“왜?”
“이것 저것 다양하게 손을 댔습니다. 찔리지 않더냐?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내가 이래서 보지 말라고 한 거야. 이걸로 얼마나 놀려 먹으려고?”
“모르겠는데?”
핏불킹이 카시마르의 말투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면서 놀렸지만 카시마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핏불킹은 계속해서 카시마르를 놀렸다. 열 번 넘게 핏불킹이 놀리자 카시마르가 소리치면서 핏불킹을 쫓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