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복귀!
코즈믹 게이트 대회의 본선은 이틀에 나눠서 치러지게 되어 있었다. 토너먼트 형식인 건 전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패자부활전처럼 하루에 결승까지 다 치러지는 게 아니었다. 첫 번째 날에 4강까지의 경기가 치러지고, 마지막 날에 4강부터 결승까지 치러지는 경기 방식이었다. 마지막 날의 경기는 3위 4위 결정전이 치러지고 난 뒤 결승전이 시작되도록 일정이 잡혀 있었다.
“뭐 이렇게 많이 왔어요.”
“대형 길드의 응원전도 만만치가 않다고 하더군요. 그런 거에 기죽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천하의 나이트메어가 복귀하는 일인데요.”
우공학이 웃으면서 말했다. 우공학은 예전과 다르게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였다. 유중악은 현역 때나 별 차이 없는 모습이었는데, 우공학은 달랐다. 많이 늙었다. 그만큼 시간이 지난 것이었다.
“슈트를 입으니까 현역 시절 생각이 나네요. 여전히 잘 어울려요.”
이영민이 말했다.
“이 대표님이 좋은 옷을 가져다주셔서 그런 거죠.”
“이거 제가 고른 거 아닙니다. 이트니씨가 보내준 겁니다.”
“아. 와이프가요?”
“이야기 못 들으셨어요?”
“이런 이야기는 도통 하질 않으니까요.”
“아무튼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대회 시작은 저녁인데 벌써부터 가야합니까?”
“대회 시작 전에 진행팀과 미팅이 있거든요. 인증 절차도 거쳐야한다고 하고요. 아무래도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보는 걸테니까요.”
“그건 미리미리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회 당일에 그런 거를.”
“전 세계에서 오는 거라 유저 중에는 당일에 넘어오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 것 때문에 그리 진행한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근데 차가 대체 몇 대에요. 진짜로 이거 너무 많습니다.”
“경호팀도 섞여 있어서 그래요. 인파가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합니다. 그리고 알아보니까 다른 길드도 본선 진출자한테 이 정도 투자는 한다고 하던데요? 기 싸움입니다. 기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되죠.”
“아무리 그래도 이러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즐기세요. 중악씨."
유중악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변에는 열 대가 넘는 SUV와 세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유중악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라탔다.
***
코즈믹 게이트의 본선 대회장에는 벌써부터 인파가 잔뜩 모여 있었다. 대회만 진행되는 게 아니라 각종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이 벌써 대회장 밖에서부터 모여 있었다. 유중악은 차를 통해서 단번에 대기실 앞쪽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본선 대회 진출자분이신가요?”
차가 대량으로 들어서자 진행팀의 사람이 나와서 차를 가로막았다. 유중악은 얼른 내려서 진행팀 앞에 섰다.
“예. 제가 진출자입니다.”
“저기요. 이렇게 차 많이 끌고 오시면 안 됩니다. 다 빼주세요. 진출자분만 안으로 들어오시고요. 게임 아이디가 어떻게 되세요?”
“예. 카시마르입니다.”
“아. 카시마르씨. 안으로 들어오시죠.”
“예.”
진행팀은 유중악의 얼굴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바쁜 상황이기도 했고 주차장 쪽이어서 조명이 어두운 탓도 있었다. 그 모습을 이영민과 우공학은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유중악이 움직이자 이영민이 얼른 따라서 움직였다.
“저기 참가자 외에는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요.”
“저분 매니저 자격으로 왔습니다.”
“매니저 자격이어도 안 됩니다. 밖에서 대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다른 참가자들은 매니저 동행이 허락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는 길드 관계자 분들이라 신원이 확실한 상황이어서요.”
이영민은 품속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진행팀에게 건넸다. 이영민의 명함은 이 바닥에서 결코 가볍지 않았다. 헐리우드 스타들도 많이 데리고 있는 매니지먼트 업계의 큰손이었다. 진행팀 사내는 이영민의 명함을 보고는 얼굴을 확인했다. 진행팀 사내는 너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이영민 뒤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영민 뒤에 있는 사내는 이영민 만큼이나 유명한 사내였다.
우공학. 세계적인 스타 유중악의 에이전트로 시작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에이전시 대표인 사람. 우공학과 이영민은 같은 회사를 운영하는 사이였다. 매니지먼트 사업부와 에이전트 사업부로 나눠져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방송 관계자라면 이영민과 우공학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둘은 방송에도 종종 얼굴을 보일 정도로 유명했으니까.
진행팀이 멍하니 있자 이영민이 부드럽게 질문했다.
“크게 문제 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매니저 자격으로 조용히만 있을테니 들어가게 해주시죠.”
“아... 예! 들어가시죠!”
진행팀이 놀라는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기실에서 유중악을 본 진행팀 사내는 카시마르가 유중악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유중악. 유중악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타라고 일컬어지는 사내.
진행팀은 떨리는 마음으로 유중악이 카시마르임을 확인했다.
“그래도 개인 대기실이라 다행이네요.”
“본선 진출자에 대한 대우가 상당히 좋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까 보니까 그렇지도 않은 거 같더데요?”
이영민이 웃으면서 말했다.
“워낙 바쁘니까요. 32명을 다 확인하고 안내하려면 아무래도 바쁘겠죠.”
유중악은 이영민과 대화를 나누면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잠시 뒤에 우공학도 대기실로 들어왔다.
“어떻게 들어왔어요?”
“말하니까 들여보내 주더군요. 인증 절차만 끝나면 크게 문제는 없는가 봅니다. 근데 정룡씨는 안 왔습니까?”
“정룡이형 이미 와 있겠죠. 근데 대기실에 있겠습니까? 위에 가서 코스프레 감상하느라 정신 없을 걸요? 이번에 전 세계에서 유명한 코스프레어들 다 온다더군요. 정룡이형이 그런 걸 놓칠리 없죠.”
유중악은 이영민, 우공학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서 대회 시작 시간이 되었다.
***
- 아. 드디어 시작이다. 이거 게임 시작 전에 본선 진출자들 나와서 소개한다던데 맞나?
- 맞음. 그 예전에 월드원처럼 하는가 봄. 근데 실물로 나오니까 환상이 와장창 깨질 거 같은데.
-- 푸셔나 알파니아는 선방하던데.
--- 인정 알파니아는 실물이 더 예쁜 듯.
---- 그건 실물이 그닥이어서 그럼.
----- 알파니아가 그닥이라고? 알파니아 존예인데.
------ 호불호 갈리지 않나?
------- 얼굴이? 몸매가?
-------- 몸
--------- 얼굴
---------- 둘 다
- 아이고 의미 없다. 알파니아 정도 되면 실제로 보면 존예임.
- 그래. 그리고 게이머가 배우도 아닌데 외모가 뭐 중요해!
-- ㅋㅋㅋ 그래도 실물이랑 다르면 뭐라 할 거잖아.
- 근데 지금 본선 진출자 중에 실물 공개 안 된 유저 없지 않나?
-- 카시마르랑 이브닝 아이리쉬가 실물 공개 안 됨.
--- 이브닝 아이리쉬는 실물만 안 나왔지 다 공개된 거 아닌가? 마법사라서 얼굴 다 보이는데. 그게 실물이지.
---- 그런가?
----- 이브닝 아이리쉬는 진짜 존잘임.
- 시작한다아!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월드 자크르 챔피언쉽 본선을 시작하겠습니다. 본선 대진을 추첨하기 전에 먼저 본선 진출자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호명하면 본선 진출자 분들은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팬분들은 본선 진출자가 등장하면 큰 박수로 맞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제일 먼저 이 선수가 등장합니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코즈믹 게이트의 정점에 있었던 유저. 컨트롤 갓. 컨신 선수입니다. 컨신 선수는 패자부활전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본선에 진출하였습니다.”
컨신이 등장하자 많은 유저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컨신은 게임 상의 모습이나 실물이 큰 차이가 없었다.
진행자는 그 뒤로 본선 진출자를 계속 호명했다. 재치 있는 설명을 덧붙여서 진출자를 불렀고 어마어마한 인파들이 그들에게 환호성을 건넸다. 오프라인으로 몰린 유저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대회장 안쪽은 이미 꽉 차 있었고 밖에서도 대형 스크린으로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 야! 이브닝 아이리쉬 대박이다. 머리 하나로 저렇게 인상이 바뀌다니.
- 아. 탈모인이었어.
- 요즘 머리 심는 거 그리 안 어렵지 않나?
- 저렇게 완탈인 상태면 힘들어. 돈 엄청 듬. 나이도 얼마 안 먹었는데 아쉽네.
- 이제 저거 방송 탔으니까 협찬 들어오지 않을까?
-- 오키. 협찬 들어가겠다. 우리 나라 의느님 분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이브닝 아이리쉬 다음은 카시마르의 차례였다.
“자. 이제 팬분들이 정말 기다리던 유저분의 얼굴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대회의 돌풍의 핵이었죠. 이분이 한국 예선에서 우승할 거라고는 아마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 예선을 압도적으로 치르고 올라온 카시마르 선수입니다. 특히 카시마르 선수는 실물이 한 번도 공개된 적 없어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는데요. 이제 카시마르 선수가 입장하겠습니다.
유중악은 다른 유저들과 다르게 복장이 말끔했다. 다른 유저들은 길드 홍보를 위해서 화려한 복장을 입고 있었는데, 유중악 홍보를 할 이유가 없어서 말끔한 슈트 차림이면 충분했다.
푸른색 슈트를 말끔하게 입고 대회장에 나타난 유중악의 모습은 모두를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게임 상의 카시마르는 이상적인 몸매를 가진 전사였다. 그러나 그런 몸매는 게임 상에서 충분히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했다. 종족을 인간보다 큰 종족으로 선택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또 인간 중에서도 체격이 큰 인종이 존재했기 때문에 게임 상의 체격과 실제 비율이 다른 경우가 상당했다. 컨신도 게임 속의 모습보다 실제 키가 5cm 정도 작은 상태였다.
그런데 유중악은 달랐다. 실제 비율과 게임 속의 모습이 차이가 없었다. 실제로 유중악은 190cm에 가까운 키에 100kg 정도의 몸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100kg이어서 빌더 같이 큰 근육을 지니고 있을 거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유중악의 몸매는 딱 보기 좋았다. 체지방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격투기 선수들 사이에서도 발군의 몸매였는데, 게이머들과 나란히 있으니 유중악의 외모는 더욱 부각이 되고 있었다.
유중악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진행자도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진행자는 유중악을 보며 몇 초간 아무런 말도 못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음 진출자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아니라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가 이내 환호로 바뀌었다.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고 진행자가 진행이 멈추는 현상까지 발생되었다.
관중들은 미친 듯이 커뮤니티에 접속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화면에는 유중악의 얼굴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팬들만 유중악을 보는 게 아니었다. 같은 본선 진출자들도 옆으로 얼굴을 내밀어서 유중악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만큼 유중악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진행자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아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인지도를 가진 얼굴. 그게 바로 유중악이었다.
- 카시마르가 갓중악이었어?
- 와. 대박.
- 그럼 그 컨트롤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거네?
-- 미친. 우연이 아니라는 건 이미 여러 번 증명했는데. 어디서 또 우연 타령이냐. 컨신 빠 또 등장했네.
--- 컨신 인터뷰 이불킥이다.
---- ㅋㅋㅋ 심층 인터뷰에서 편법 컨트롤 어쩌구 하면서 카시마르 디스하던뎈 아놔 ㅋㅋㅋㅋ
----- 그랬음?
------ 대놓고 카시마르라고는 안 했는데 누구를 의미하는지 다 알지. 모르면 바보임. 컨신 겁나 거만하게 인터뷰 했는데 잣됨.
- 나이트메어가 돌아왔다아!!!
- 전에 해설자가 카시마르가 러시아어로 악몽이라고 진짜 유중악 선수 아니냐고 한 다음에 엄청 웃었는데 그게 사실이었어.
- 대애박. 우리 중악이 은퇴하고 게임 했구나.
-- 보니까 게임에 적응도 제대로한 것처럼 보임.
- 이제 카시마르가 어마어마한 연봉을 왜 거부했는지 이해가 감.
- ㅋㅋㅋㅋ 아마 본선 진출자들 길드 자산 다 합친 것보다 갓중악이 돈이 더 많을 걸?
-- 아마가 아니라 사실임.
--- 대애박. 진짜 너무 놀람.
- 갓이 강림했다!
- 아아아 오늘을 갓이 부활한 부활절로 지정하여야 한다.
-- 그래 국가 차원에서 진행해야지
- 갓이 부활하셨다아아! 다들 경배!
- 성지 순례 왔습니다! 갓중악님 돈벼락이 떨어지게 해주세요!!
- 갓중악님 키가 20cm만 더 크게!
- 갓중악님 금수저로 환생하게 해주세요.
- 저도 성지 순례 갓중악님 저희 집 고양이가 애교를 안 부립니다. 개냥이가 되게 해주세요!
- 갓중악님 위에 소원 다 들어주세요!
- 미친놈들 ㅋㅋㅋ
- 그만해 미친놈들아!
커뮤니티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더불어 전 세계 포털 사이트에 카시마르, 카시마르 유중악, 카시마르 나이트메어, 나이트메어, CFC, 코즈믹 게이트 같은 검색어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