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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69화 (69/205)

# 69

싸인

탁!

반테스는 그라운드 기술에 대해 무지하지 않았다. 카시마르가 4점 포지션 니킥을 다시 날렸을 때 반테스는 팔을 뻗어서 무릎이 머리 쪽으로 날아들지 않도록 방어했다. 그러자 카시마르는 허공에 올렸던 무릎을 회수하는 동작과 동시에 반테스의 허벅지를 누르고 그 위로 올라탔다.

하프가드 포지션.

상대의 한 쪽 허벅지 위에 올라타서 공방을 주고 받는 자세. 이 자세에서는 다양한 기술을 걸 수 있었다. 상대의 상체에 아예 올라타는 마운트 포지션으로도 가기 쉽고 여차하면 다시 사이드로 돌아가서 상대를 압박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브미션이라고 불리는 관절기를 집어넣기에도 아주 유용한 자세였다.

카시마르는 하프가드 포지션을 취했고 그러자 반테스가 몸을 옆으로 틀었다. 마치 새우처럼 몸이 동그랗게 된 자세였다. 반테스는 그 자세에서 다른 쪽 발로 카시마르를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자신의 상체를 반테스의 상체 쪽으로 구부려서 달라 붙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큰 파운딩이나 엘보우 공격은 하지 못하지만 반테스가 포지션을 전환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카시마르는 일단 반테스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러자 반테스가 가드 포지션으로 전환하려고 했다.

가드 포지션은 하프 가드 포지션 보다 아래에 깔린 사람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포지션이었다. 물론, 그라운드 공방에서는 상위 포지션을 점유한 사람이 하위 포지션을 점유한 사람보다는 무조건 유리했다. 그렇지만 가드포지션은 그 유리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뒤집기 쉬운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상태에서 다양한 서브미션 시도와 컨트롤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반테스가 가드 포지션으로 전환하려고 하자 바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키락을 걸었다. 키락은 상위 포지션에 있는 선수가 걸 수 있는 서브미션으로 상대의 팔을 꺾는 기술이었다. 그 모습이 열쇠 모양 같이 된다고 해서 키락이었다. 반테스는 키락을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그의 얼굴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더 이상의 출혈은 나지 않고 있었다. 코즈믹 게이트는 부러진 상처도 가만히 내버려두면 회복되는 시스템이었다. 출혈 정도는 더 공격만 당하지 않으면 멈추는 게 정상이었다. 무엇보다 반테스는 생명력이 아주 출중했기에 이 정도 공격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카시마르 선수! 바로 니킥을 날립니다. 저건 MMA에서 금지된 기술 아니던가요?]

[4점 포지션 니킥이라고 하죠. 그렇지만 아예 금지된 건 아닙니다. 아직도 허용하는 단체는 있으니까요. 같은 MMA라도 단체에 따라 룰이 다릅니다. 그러니 반칙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죠. 그리고 여기는 코즈믹 게이트입니다. 반칙이라는 게 사실상 없죠.]

[치열한 그라운드 공방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격투기 경기를 보는 거 같은데요. 사실 저희가 MMA 중계 전문이 아니어서 설명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전 MMA 중계도 괜찮습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 이렇게 배신 하긴가요.]

[사실을 말한 겁니다. 하하. 어쨌든 지금 카시마르 선수가 상당히 유리하죠. 지금 반테스 선수와 카시마르 선수는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피지컬 컨트롤로 싸우자는 합의를 본 거 같은데요. 이렇게 되면 카시마르 선수가 질 이유가 없습니다. 지게 된다면 그거 자체로도 이슈가 될 거고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컨트롤 부분에서는 이길 수가 없죠. 유중··· 아. 아니. 카시마르 선수가··· 죄송합니다.]

[자! MMA 해설은 물 건너 간 것으로 알겠습니다.]

캐스터가 웃으면서 말하자 해설도 따라 웃었다.

[아무튼 카시마르 선수가 상위 포지션을 점유하고 있어요. 이 상태에서는 쉽지가 않습니다. 카시마르 선수의 상위 포지션 압박을 진짜 상대해본 선수들은 혀를 내두르거든요. 카시마르선수는 피니쉬를 위해서 상위 포지션 압박을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유행한 적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2000년대 초반에 많이 유행했었죠.]

[그때 탄생한 용어 중에 유명한 게 있습니다. 바로 우주방어라는 말이죠. 카시마르 선수의 상위 포지션 압박을 우주 방어 스타일이라고 평가하는 팬들이 꽤 있었습니다. 보통 MMA에서 상위 포지션을 점유한 선수들은 목적이 확실합니다. 데미지를 주거나 기회를 봐서 서브미션을 걸려고 합니다. 그런데 카시마르 선수는 다릅니다. 그냥 상대를 눌러놓는데 중점을 둡니다. 그러면서 이득을 볼 건 다 봐요. 파운딩 공격을 날리는 횟수는 다른 선수들보다 확연히 적은데 적중률은 최고입니다. 무엇보다 무리를 안 하니 상위 포지션 상황에서 체력을 별로 쓰지 않아도 되고요. 아! 키락이네요.]

[서브미션 걸렸습니다! 반테스 선수 바로 풀어버립니다.]

[카시마르 선수가 풀어줬다고 봐야겠죠. 물론, 반테스 선수도 움직임이 나쁜 거 아닙니다만 기량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게 코즈믹 게이트여서 체력이 떨어지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누워 있는 동작만으로는 체력이 고갈되지 않으니까요.]

[실제 경기였으면 밑에 깔린 선수의 체력이 쭉, 쭉 빠지겠지요?]

[그렇습니다. 원래 스탠딩보다 그라운드 공방이 훨씬 체력이 많이 빠집니다. 그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기때문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의 움직임은 그리 자유롭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그라운드 움직임은 상대와 붙어 있기때문에 계속 힘을 써야하고요. 아래에 깔린 선수는 중력의 영향과 더불어 위에 있는 선수의 무게와 힘까지 감당하면서 싸워야하니 훨씬 더 힘들죠. 그런데다가 심리적 압박감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실제 경기에서는 포인트까지 빼앗기게 되니 말이죠.]

타앙!

카시마르의 엘보우가 쏜살처럼 반테스의 얼굴을 흔들고 지나갔다. 반테스는 엘보우가 날아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이유는 카시마르가 오른손으로 시야를 가린 다음에 교묘하게 왼손으로 엘보우를 때렸기 때문이었다. 대놓고 시야를 가렸다면 반테스가 얼굴을 흔들어 봤겠지만, 카시마르는 엘보우를 날리는  타이밍에 맞춰서 살짝 팔을 뻗어 페이크를 주었다. 이러니 반테스가 날아오는 엘보우를 눈치채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반테스 선수 카시마르 선수를 밀어내려고 합니다. 그러자 카시마르 선수가 다시 키락을 겁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갈까요?]

[저건 다른 목적을 위한 셋업 동작이라고 봐야할 거 같군요. 보십시오. 키락을 거는 척 하면서 바로 마운트 포지션을 점유해버립니다. 이제는 뭐 반테스 선수는 샌드백이라고 봐야죠. 저 상태에서는 빠져나오는 게 정말 힘듭니다. 프로들도 힘들어 하는 자세거든요. 하물며 이렇게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죠.]

마운트 포지션을 점유한 카시마르는 반테스의 얼굴에 무자비한 파운딩을 날리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반테스는 몸을 돌려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이 상황에서 섣불리 몸을 돌리면 결과는 하나였다. 바로 목을 잡힌다는 것이었다. 카시마르는 가볍게 반테스의 목을 휘감아 졸랐다.

리어네이키드 초크.

반테스는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나서 저항을 하려고 했지만 카시마르는 매미처럼 반테스의 등에 올라타서 풀어주지를 않았다.

[초크가 들어갔네요.]

[리어네이키드 초크입니다. 뒤에서 상대의 경동맥을 압박해서 기절 시키는 기술이죠. 저 기술에 제대로 걸리면 기절하기까지는 10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보통 그러기 전에 선수들은 탭을 치지요. 탭 타이밍을 놓쳐서 기절한다고 해도 바로 심판이 말려주니까요.]

[그렇지만 여기는 코즈믹 게이트입니다. 심판이 없어요. 저 상태에서 체력이 다 할때까지 버티면 카시마르 선수의 승리가 됩니다.]

[그렇지만 반테스 선수의 체력이 적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 코즈믹 게이트에서 저런 조르기 판정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고 봐야죠.]

[자. 여기서 반테스 선수가 어떻게 나올까요. 스킬을 쓸까요?]

툭! 툭!

해설자가 여러 가지 상황을 예측하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반테스는 카시마르의 팔을 가볍게 툭, 툭 쳤다.

실제 경기에서는 탭을 의미하는 동작.

카시마르는 주저하지 않고 초크를 풀어주었다. 반테스는 뒤돌아서 카시마르를 보더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기권을 선언했다.

경기는 그걸로 종료되었다.

[경기가 바로 종료되었습니다. 반테스 선수가 그 상황에서 바로 기권을 하네요. 남자답다고 할까요? 이 상황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상성 상 반테스 선수가 제대로 경기를 했어도 이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럴 거면 오히려 이렇게 깔끔하게 끝내는 게 낫겠죠. 이번 경기는 반테스 선수에게는 아주 큰 추억 될 수도 있습니다.]

[경기 시간을 보니 MMA로 따지면 1라운드도 걸리지 않은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더 일찍 끝내려면 더 일찍 끝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카시마르 선수 움직임이 죽지 않았네요. 현역으로 다시 복귀해도 될 것 같습니다.]

[카시마르 선수가 은퇴한 이유도 부상 때문이지 기량이 감퇴했기 때문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죠?]

[네. 그의 팬이라면 다 기억할 겁니다. 로버트 데루데르와의 혈전은 정말 MMA 역사에 남을만한 명경기였죠. 하긴 카시마르 선수의 경기가 명경기 아닌 게 어딨습니다. 무패로 5체급을 석권하고 은퇴한 유일한 선수인데요.]

[카시마르 선수가 반테스 선수에게 인사를 하러 갑니다. 반테스 선수는 웃고 있습니다. 얼른 일어나서 카시마르 선수를 맞이하네요. 후련한 표정이네요.]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저 당신 빅팬이에요. 아주 오래전부터요.”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포옹 한 번만 해봐도 되겠습니까?”

반테스가 반짝반짝한 눈으로 물었다. 그러자 유중악이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보통은 악수를 짤막하게 하고 승자가 패자를 지나쳐서 나가는 게 순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중악과 반테스가 오랫동안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자 카메라가 얼른 둘의 모습을 클로즈업 했다. 그들은 중계진이 아니라 선수였기 때문에 마이크를 차고 있지 않았고, 그렇기에 둘의 대화는 전달 되지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표정만으로도 둘이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반테스는 게임 속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운동을 꽤 했는지 몸이 좋긴 했지만 게임 캐릭터처럼 덩치가 크거나 하지는 않았다. 중간 정도 키에 운동을 많이 해서 다져진 몸매 정도였다.

유중악은 흔쾌히 반테스에게 포옹을 해주었다. 유중악이 팔을 벌리자 반테스가 얼른 달라붙어서 포옹했다.

“싸인도 해드릴까요?”

그에게 유중악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유중악은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반테스는 유중악 앞에서 덜덜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테스와 포옹한 유중악은 그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네?”

“그 펜이요. 싸인 때문에 가져온 펜 아니에요?”

“아! 네!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반테스는 싸인펜을 카시마르에게 넘겨주었다. 카시마르는 펜을 들고 종이를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반테스는 종이 대신에 등을 돌리고는 상의를 벗어버렸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그는 벗기 쉬운 헐렁한 티셔츠로 갈아입고 나온 것이었다.

“종이 대신에 여기에다 해주세요!”

“등에다가요?”

“네! 크게요!”

유중악은 피식 웃으면서 반테스의 등에 크게 싸인을 해주었다.

[유 중 악]

유중악의 싸인은 이름을 한글로 크게 쓰는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글씨가 별로여서 이쁘게 보이지도 않았다. 유중악은 유중악이라는 이름을 쓰고 그 밑에다가 작은 글씨로 ‘좋은 경기였습니다. 반테스 선수!’ 라고 적어주었다.

그 모습을 각국의 중계진들은 경기를 중계하듯이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싸인이 끝났다. 반테스는 웃으면서 부스 안에서 나와서 뒤돌아서 선 다음 양팔을 위로 만세하듯이 뻗었다.

유중악의 싸인이 크게 보이도록. 그걸 자랑하듯이. 그러면서 큰 소리로 소리쳤다.

"나이트메어!"

와아아아아!

그러자 관중들이 미친 듯한 함성으로 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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