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검은 염소의 숭배자들
- 반테스 부럽다.
- 가보가 생김.
- 넘나 부러운 것.
- 나이트메어! 하고 소리치는데 약간 소름 돋았음.
- 중악이도 멋지다.
- 앞으로 코즈믹 게이트 대회 열리면 갓중악 자주 볼 수 있는 건가?
-- 이번 대회 성적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 성적은 충분히 좋음. 실력도 완벽하게 인증함. 아마 근접전 피지컬로는 갓중악 따라올 사람 없을테고. 문제는 갓중악이 대형 길드 소속이 아니라는 건데. 그것도 뭐 충분히 커버 가능하지 않을까?
---- 맞아. 재력의 단위가 다름.
----- 근데 갓중악은 현질에 과도하게 돈 쏟고 이런 거 안 할 거 같은데. 한계도 있고.
------ 나중에 길드 만들던가 하겠지. 아니면 가입을 하던가. 그건 중악님이 알아서 하니까.
“반테스가 MMA룰로 싸우자고 했냐?”
오정룡이 물었다. 유중악은 대기실로 들어와서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바로 마셨다.
“어. 대뜸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고.”
“MMA룰로 싸우는 거 보고 대충 짐작은 했다. 완전 미친 놈이거나 아니면 네 광팬이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지. 둘 다 미친 건 마찬가지네.”
“형은 말을 왜 그렇게 해. 그냥 내 팬인가 보지.”
“야. 등에다 싸인을 해달라고 할 정도면 보통 팬은 아냐. 그래도 보기 좋더라.”
“보기 좋았으면 됐지. 나도 뭔가 뭉클하는 게 있었어.”
반테스와 기념적인 경기를 마친 유중악은 손쉽게 4강에 안착했다. 8강에서 만난 러시아의 막스는 반테스처럼 유중악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의 플랜은 일단 상대와 거리를 벌린 뒤 강력한 마법을 소환해서 몰아치는 스타일인데, 유중악은 자동 투척의 힘으로 막스를 계속 견제할 수 있을뿐더러 선택된 맵 조차 공간이 가장 협소한 곳이어서 막스는 제대로 거리를 벌리지도 못하고 잡혀서 패배했다. 본선 경기 중에 가장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였다.
본선 경기 1일 차가 끝나고 회식이 있었다. 이영민이 섭외한 장소는 음식점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단독 주택이었다.
“음식점으로 가면 귀찮은 일이 많아서 일부러 이런 집으로 구했나 보네. 역시 이대표는 센스가 있어. 이 대표. 그래서 오늘 회식은 고기 구워 먹는 거야?”
오정룡이 물었다. 그러자 이영민이 웃고 말았다.
“아닙니다. 다들 종일 피곤한데 고기 굽는 것까지 할 수 없죠. 특별히 쉐프를 섭외했습니다. 몇 가지 요리를 만들어줄 겁니다.”
“오오.”
제일 크게 반응을 보인 건 골낳괴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어제부터 계속 유중악과 스케줄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정룡은 그들을 응원단이라고 놀렸는데, 골낳괴 친구들은 그것마저도 좋다는 반응이었다.
“응원단들이 요새 호강하는구나. 좋냐?”
“네에에!”
“제일 좋았던 건 어제 먹은 한정식이 아닐까? 어제 거기 맛있긴 했어? 그치?”
“네. 맛있긴 한데······.”
“돈 주고 사먹긴 아까운 느낌이었지?”
“네. 그랬어요.”
“괜찮아. 정룡이 형이 냈으니까. 기부천사라고.”
“너는 그 이야기 하지도 마. 아오. 야. 그보다 내일 4강전 상대 이브닝 아이리쉬인데 괜찮겠냐?”
“내일은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
“경기를 쭉 지켜봤는데요. 딱히 파훼법이 보이질 않는 스타일이었어요."
용재가 말했다.
“내 생각도 그래. 마전사에 대한 이해가 가장 높은 캐릭터라고 할까. 일단 상성으로는 네가 훨씬 불리해. 쓰는 마법도 여러 가지고 그걸 엄청 조합해서 쓰니까.”
“그냥 즉흥적으로 파훼법을 찾아야한다는 소리네?”
“그렇지. 패턴을 예측할 수가 없으니까. 내가 이브닝 아이리쉬 경기 지켜보면서 스텝, 동작, 스킬 다 체크 했는데 예측이 불가능해.”
“MMA랑은 다르지?”
“MMA는 복잡하기는 해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거든. 근데 이건 스킬이라는 변수가 들어 있으니까.”
종합격투기 선수는 보다 효율적인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한다. 거기다 물리 법칙에서 벗어나 있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기에 패턴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코즈믹 게이트에서는 그게 어려웠다.
“그렇지만 이브닝 아이리쉬도 무적은 아니었어요. 컨신이랑 하는 거 보니까 공격 꽤 들어가던데요. 컨신이 자랑하는 연계기가 안 들어가서 그렇지.”
“아예 공격이 들어가질 않으면 사기지. 어쨌든 저쪽은 생각보다 널 많이 때릴 거고, 네 공격은 생각보다 잘 안 들어갈 거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겠냐?”
오정룡이 맥주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카운터 치라고?”
“그렇지. 원래 싸움에서는 선빵만한 게 없지. 근데 프로의 세계에서는 선빵이 마냥 좋은 건 아니거든. 그 선빵을 잘 파악해서 쳐내는 것이 바로 기술 아니겠냐. 컨신은 자기가 주도해서 들어가다가 더 말려든 감이 있어.”
“근데 아이리쉬 경기 보니까 쉽지 않겠던데요. 워낙 화려해서.”
아르케도 맥주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우공학이 와인을 비롯해서 각종 술을 가지고 나오는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카운터 치기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지. 이놈은 컨신보다 탄탄하니까 생각보다 볼 수 있는 게 길어지거든.”
“장기전 가라는 이야기네?”
“어. 이브닝 아이리쉬 공격력은 별 볼일 없어. 속된 말로 하자면 짤짤이로 시작해서 짤짤이로 끝내는 놈인데. 이게 또 자크르에서는 엄청 까다로운 거지. 격투기 처럼 판정도 없고 제한 시간도 없으니까 이런 스타일이 나오는 거야. 무엇보다 이런 스타일에 잘 당하는 건 밖에서 보는 것보다 실제로 보면 더 까다로워. 너 처음 격투기 할 때 기억 나냐?”
“나? 나 처음 경기할 때 지시대로 잘 했는데?”
“그래. 잘 하긴 했지. 근데 왜 이렇게 재수가 없냐.”
오정룡의 말에 사람들이 웃었다.
“그럼 뭐?”
“시합 때 말고 처음 대표님랑 스파링할 때 어떤 느낌이었냐?”
“삼촌이랑?”
“어.”
“아. 그때 장난 아니었지. 생각하던 거랑 완전히 달랐지. 펀치도 밖에서 볼 때랑 직접 날아올 때랑 다르고. 번쩍, 번쩍 하니까.”
“바로 그거야. 이브닝 아이리쉬랑 붙는 유저들은 바로 그런 느낌을 느낀다고. 화려한 스킬 조합에 몸이 제대로 반응을 못하는 거지. 그런 건 솔직히 여러 번 싸워봐야 알아. 단 판으로는 그 스타일에 반응하기 어려운 거야. 근데 넌 좀 다르지 않겠냐?”
“어쨌든 이브닝 아이리쉬는 그거 말고는 답이 없다는 거지?”
“그렇지. 그놈은 머리로 상대하는 게 아니라 감각으로 대처해야 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야. 뭐, 패턴을 가늠할 수가 있어야지.”
“그럼 결승에는 누가 올라올 거 같아? 아무래도 히데오겠지?”
“어. 히데오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게임을 쉽게 풀어서 올라왔으니까. 솔직히 히데오가 쓰는 그 스킬에 대한 정체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어. 본선에 와서부터 쓰기 시작한 그 구체 뿌리는 거. 그게 어떤 데미지가 어떻게 들어가는지를 알 수가 없으니 난감하지.”
“솔직히 이브닝 아이리쉬보다 더 했어요.”
히데오가 쓰는 스킬 중에는 허공에 공만한 구체를 뿌리는 기술이 있었다. 그 구체는 허공에서 날아가다가 어느 순간 멈춘다. 멈춰 있다가 특정 상황에서 갑자기 유저에게 달려들어서 공격을 했다. 싸우면서 쿨타임 때마다 그 구체를 뿌렸고, 그 구체의 개수는 계속 늘어난다. 유저들은 그 구체를 날려버리거나 없애려고 했지만 히데오의 명령에 따라 그 구체는 다시 근처로 돌아온다.
“가장 높은 가능성은 그게 스킬에 반응하는 트랩 같은 거라는 의견이 제일 많았지.”
“근데 이전 경기를 보면 꼭 스킬에만 반응하는 게 아니었어요. 스킬을 쓰지 않을 때도 움직이고, 스킬을 썼을 때도 움직이고.”
“거기다가 데미지도 상당한 거 같더라고.”
“네. 말랑말랑한 공처럼 보이는데 공격할 때는 단단해지는 거 같고.”
“일단 히데오에 관한 이야기는 이브닝 아이리쉬를 잡고 나서 하자고. 이브닝 아이리쉬도 쉬운 상대는 아니니까.”
유중악은 사람들과 회식을 하면서 즐겁게 술을 마셨다. 현역 때는 입에도 대지 않는 유중악이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론, 내일 경기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그렇게 많이 마신 사람들은 오정룡과 골낳괴 친구들이었다.
***
우승자가 가려지는 날이 다가왔다. 경기는 저녁에 열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죄다 늦잠을 자고 있었다. 유중악은 어제 이영민이 섭외한 단독 주택에서 잠을 잤다. 유중악이 지내는 숙소보다 이영민이 섭외한 저택이 훨씬 넓고 좋았다. 방도 여러 개 있어서 여러 사람이 자는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유중악은 늘 그렇듯이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했다. 모르는 동네였기 때문에 밖을 돌아다니지는 않았고 런닝머신으로 가볍게 땀을 뺀 유중악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거의 매일 빼먹지 않고 해온 습관이었다. 술을 조금 마셨다고해서 그게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그의 체력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수준이었기에 술 몇 잔에 무뎌지거나 하지 않았다.
유중악이 샤워를 하고 거실로 나왔다. 아침 운동을 끝낸 유중악은 늘 커피와 계란 요리를 먹는다. 보통은 미리 삶아 놓은 계란을 한 두 개 집어 먹거나 하는데 오늘은 미리 준비해두지를 못했다. 그래서 유중악은 계란 후라이를 해먹으려고 주방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때 현관문을 열고 누군가 들고왔다.
“커피 가져왔습니다.”
“이대표님 어제 집에 가시지 않았어요?”
“중악씨 아침에 운동할 거 같아서 왔습니다.”
“이대표님 집 인천이잖아요. 거기서 여기가 멀잖아요.”
“새벽에는 길이 안 막힙니다.”
“이대표님 이러면 부담스럽습니다. 이제는 제 전담 매니저도 아닌데 왜 이러세요. 회사의 대표이시잖아요.”
“오랜만에 중악씨 매니저 기분을 내 본 거죠. 근데 예전 같지 않네요. 예전에는 서너시간만 자도 괜찮았는데요.”
“이제는 그렇게 주무시면 큰일 납니다. 형수님한테 저 엄청 욕 먹겠네요.”
“그럴 일 없게 제가 와이프한테 번쩍 거리는 거 하나 선물 하죠. 돈도 많은데 이럴 때 써야죠. 하하.”
이영민이 웃자 유중악도 따라 웃었다.
“안 그래도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었어요. 근데 없네요. 커피가.”
“여기가 꽤 오랫동안 빈집이어서요. 그래서 제가 온 겁니다.”
“없으면 나가서 사 먹어도 되었을텐데요.”
“꽤 멀리 나가야 했을 겁니다.”
“그런가요.”
“어쨌든 드시죠. 중악씨가 잘 먹는 스타일로 사왔습니다.”
“제가 잘 먹는 스타일이요?”
“롱 블랙이요.”
“감사합니다.”
“근데 정룡씨와 친구들은 아직이죠?”
“당연히 뻗었죠. 아마 점심 때나 일어날 거 같던데요.”
“그래서 중악씨 것만 사왔습니다.”
“잘 하셨어요.”
“아침 드셔야죠.”
“그러려고 했는데 주방에 뭐가 없네요.”
“저랑 같이 아침 드시러가시죠. 이 근처에 해장국 아주 잘하는 곳 있습니다. 이제 그런 거 먹어도 되지 않습니까.”
“되죠.”
“우 대표도 온다고 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올 때 포장도 좀 해가지고 오고요.”
“포장을요? 아. 정룡이형이요?”
“네. 우리 팀의 브레인 인데 챙겨줘야죠.”
“어찌 사람이 저렇게 한 결 같은지.”
“왜 유쾌하고 좋던데요.”
“맞다. 어제 이대표님이랑 우대표님은 1차까지만 하고 가셨죠?”
“그랬죠.”
“그러니까 그러죠. 어제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놈들 술버릇이 그런 줄 어제 처음 알았어요.”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단체로 울기 시작하는데 정룡이형은 술 취해서 그거 또 따라 울고. 무슨 이산 가족 상봉한 줄 알았다니까요. 왜 우냐고 물어봤더니 대답도 대박이더라고요.”
“뭐라고 했는데요?”
“음식이 맛있어서 감동 받았다네요.”
“하하하하. 다행이네요. 오쉐프한테 그거 전해줘야겠는데요? 당신 음식 먹고 일행 중 하나 펑펑 울었다고.”
***
준결승 1경기는 카시마르와 이브닝 아이리쉬의 경기였다. 경기 전에 각종 이벤트 경기와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준결승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새로운 컨텐츠를 발표했다.
컨텐츠의 이름은 검은 염소의 숭배자들.
“검은 염소의 숭배자들 컨텐츠는 제국과 북제국 지역에 슈브 니구라스의 제단이 랜덤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제단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강력해지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없애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다른 선택도 가능합니다. 바로 유저가 그 제단에 종속되는 것이죠. 먼저 제단을 발견하는 유저에게는 그만큼의 보상이 주어지고, 제단을 파괴하는 유저에게도 보상이 주어집니다. 검은 염소 컨텐츠를 통해서는 기존에 공개되지 않았던 아이템과 스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단, 난이도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그렇게 되겠죠. 이 컨텐츠는 단순히 제단을 찾아내고 파괴하는 컨텐츠가 아닙니다. 이와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무척 다양한 플레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각적인 면에서 접근하여 플레이 하는 걸 추천합니다. 그러면 재밌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이 컨텐츠는 결승전이 끝나고 24시간 후에 공개됩니다. 감사합니다.”
일종의 확장팩 같은 느낌의 컨텐츠였다. 그 이유는 검은 염소의 숭배자가 맵에 등장하면서 수많은 하부 컨텐츠들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컨텐츠 설명을 들은 유중악이 무언가 떠오른 듯이 말했다. 그러자 오정룡이 반응했다.
“왜?”
“저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슈브 니구라스?”
“어.”
“유명한 신이잖아. 크툴루 신화.”
“아니, 게임 하다가 들었다니까.”
“어디서 들어? 저거 처음 공개된 컨텐츠라고 했잖아.”
“아냐. 분명히 들었는데.”
유중악의 기억은 확실했다. 슈브 니구라스. 어디서 분명히 들어본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