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71화 (71/205)

# 71

야네크

유중악은 인상을 잔뜩 쓴 채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런데 쉽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디서 들은 이름일까?

“분명히 들은 기억이 있는데.”

“듣긴 뭘 들어. 인마. 그거보다 네 걱정이나 해. 아이리쉬 쉬운 상대 아냐.”

“카운터 잘 치면 된다면서?”

“그거야 이론상의 이야기고. 쉽지 않아.”

“나도 나름의 비장의 수가 있잖아. 그걸 한 번 활용해봐야지.”

“비장의 수가 있어? 강철의 권능?”

“그거 말고. 또 아껴둔 게 있지.”

“아껴둔 거라. 그거 쓰면 이길 가능성이 있냐? 아이리쉬는 방어도 탄탄해. 특히 간간히 쓰는 얼음 보호막 그거 실제로 보면 진짜 짜증나겠더라. 무슨 스킬이 발현 이펙트도 없냐.”

“이펙트 있는 거 같던데?”

“얼음 보호막이 발동 이펙트가 있다고?”

“약간 반짝하는 거 같던데.”

“그거는 그놈이 소환한 얼음에 빛이 반사된 거고. 내가 확인해 봤는데 발동 이펙트가 없어. 얼음 화살은 왼손을 앞으로 내밀어서 쓰고, 얼음 검은 오른손으로 주로 쓰고. 기둥을 소환할 때는 합장을 하고 그러는데. 얼음 보호막은 동작도 없고 그래.”

“근데 그 얼음 보호막이 아이리쉬를 따라다니니지는 않는 것 같던데요.”

아르케의 의견에 유중악과 오정룡이 반응했다.

“그래?”

“그니까 그 보호막을 쓰면 그 자리에서 평면 형태의 얼음 막이 생기는 거죠. 유리벽처럼요.”

“아이리쉬는 그걸 가지고 시간을 벌거나 낚시를 하는 거고?”

“그렇죠.”

“복잡하네. 아무튼 나도 비장의 카드가 있으니까. 제대로 한 번 싸워보고 올게.”

“그래. 그거 써서 이겨라. 얼굴까지 다 깐 마당에 이겨야지.”

“그랬으면 좋겠네.”

“예전 경기하던 때처럼 해. 이번 우승자는 어마어마한 우승 상품 준다잖냐.”

“뭐가 나올까?”

“소문으로는 야네크를 준다고도 하던데?”

“불꽃 기사의 아이템?”

“그렇지. 아직 유저 중에는 불꽃 기사의 칭호를 받은 사람이 없으니까.”

불꽃 기사는 제국의 정점에 존재하는 기사들을 의미했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힘의 상징이었고, 그 힘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불꽃 기사의 수는 상당히 많았지만 유저 중에서는 불꽃 기사가 된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불꽃 기사의 칭호를 받을 만큼 강한 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야네크는 불꽃 기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기였다. 일반적인 마법 무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힘을 지닌 괴이한 무기. 마나를 이용해서 사용하는 무기도 아니었다. 정신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도 자격만 있으면 야네크를 쓸 수 있다. 또 재미난 점은 야네크에는 한계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야네크에는 등급이 없었다. 야네크는 야네크라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네크는 사용자에 따라서 레어 등급의 힘도 낼 수 있고, 그 이상의 힘도 낼 수 있었다.

“소문으로는 아품 자의 빙염 조각으로 만들어진 무기라서 내구도도 없다고 하더군.”

“파괴 불가의 물건이라는 거야?”

“그렇다고 하던데 확실히는 모르겠어.”

“그런데 야네크는 불꽃 기사만 다룰 수 있는 무기인데요. 그걸 얻게 되면 불꽃 기사의 칭호를 얻게 되는 거 아닙니까?”

용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보면 그러네. 그러면 우승자가 유저 최초로 불꽃 기사가 되는 건가?”

“근데 그렇게 되면 형평성이 어긋나. 북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저들은 불이익을 받는 거 아냐? 북제국에서 불꽃 기사는 적대적인 이미지잖아.”

“엄청 복잡하네. 그럼 상품이 야네크가 아닌 건가?”

“지금 대부분이 야네크가 우승 상품이라고 확신하고 있던데요?”

“뭐가 되든 주겠지. 야. 어쨌든 이겨. 이기면 되는 거야. 준결승 끝나면 상품에 대해 발표한다고 했으니까.”

“알았어.”

“강숭이인가 하는 그놈을 쓸 수 있었으면 대박인데 말이야. 그러면 이브닝 아이리쉬의 게임은 바로 무너지는 거거든. 옆에서 살짝만 견제해줘도 흐림이 딱! 끊기는 거니까.”

“소환수가 아니라 펫으로 설정된 상태여서 어쩔 수가 없어. 소환수였다면 당연히 데려다가 썼지.”

“카시마르 선수!”

“너 부른다. 잘 다녀와. 이겨라.”

“최선을 다한다니까.”

유중악의 경기 차례가 다가왔다. 스텝을 따라서 복도를 지나 무대에 올랐다. 그러자 관중들의 큰 환호가 들렸다.

오늘의 첫 자크르 경기의 시작.

자크르 경기의 장점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쪽이 기권하거나 쓰러질 때까지 싸운다. 코즈믹 게이트에 대해 많이 알면 많이 알수록 재밌지만, 많이 알지 않아도 감상하는 데 지장이 없다. 화면만 봐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거기에 해설까지 같이 들으면 상황은 대부분 파악이 된다.

덕분에 코즈믹 게이트에 가입하는 신규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성공적 개최의 이면에는 유중악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존재했다. 긍정적인 변수. 유중악, 카시마르, 나이트메어는 계속 실검에 오르고 있었다.

[이제 결승의 첫 번째 진출자를 가려보겠습니다. 바로 돌아온 악몽! 카시마르 선수와 얼음 왕자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의 대결입니다. 이 두 선수의 상성은 놀랍게도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가 조금 더 우위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MMA 경기가 아니니까요.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의 스타일은 아직 제대로된 파훼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건 카시마르 선수도 마찬가지죠. 그렇지만 카시마르 선수의 스타일은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의 스타일보다 단조롭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스킬 보다는 힘에 집중한 스타일이랄까요.]

[두 선수 모두 접속을 완료했습니다. 이제 어떤 맵이 나올지 궁금해지는데요. 두 선수 모두 맵에 따른 전투력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봐야겠죠?]

[그렇습니다. 두 선수 모두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스타일이니까요.]

[맵이 선정되었습니다. 맵은 레토 다리입니다. 카시마르 선수는 예선 때 이 맵에서 경기를 가진 적이 있었죠. 이 맵은 일직선 상에 길고 커다란 다리가 있습니다. 낙사도 가능한 맵이지만 워낙 넓고 길어서 낙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봐야합니다.]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는 이 맵이 처음인데요. 그렇다고는 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투기장에서 이미 많이 경험했을 맵이니까요. 바로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카시마르와 이브닝 아이리쉬는 레토 다리의 끝과 끝에서 시작했다. 카시마르는 조언대로 카운터를 노려볼까도 생각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이브닝 아이리쉬에게 다가가면서 암기를 날렸다.

[카시마르 선수!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암기를 날립니다! 이건 마법사들을 상대할 때 많이 쓰는 패턴인데요.]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에게는 통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스킬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선수거든요.]

카시마르의 암기는 다양한 각도로 이브닝 아이리쉬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브닝 아이리쉬는 차분하게 스킬을 시전해서 날아오는 암기를 미리 차단했다.

팡! 팡! 타앙!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 차분하게 날아오는 암기를 쳐냅니다. 카시마르 선수는 계속 암기를 던지면서 접근을 하는군요.]

[드디어 두 선수가 만나게 되겠습니다. 어쨌든 두 선수는 접근전에서 결판을 내야해요.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의 마법은 다채롭긴 하지만 위력 면에서 떨어지죠. 위력이 약하다는 것에 의미는 단순히 데미지의 고하를 논하는 게 아니라 사정거리 범위도 포함이 되는 거니까요.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의 마법은 사정거리가 유난히 짧습니다.]

[유난히 짧은 사거리와 높지 않은 데미지. 이런 마법 스타일 때문에 지금의 이브닝 아이리 선수의 스타일이 만들어진 걸 수도 있겠습니다.]

팡!

아이리쉬와 카시마르는 보자마자 서로에게 공격을 날렸다. 아이리쉬는 얼음 검으로 카시마르의 봉을 막아냈다. 카시마르는 바로 움직이려고 했지만 바로 아이리쉬의 마법이 날아왔다. 왼손에서 발사된 마법은 바로 얼음 화살이었다. 송곳처럼 생긴 얼음으로 된 화살을 아이리쉬는 바로 코앞에서 발사했다. 그것도 카시마르의 얼굴을 향해.

휘잉!

아이리쉬는 당연히 얼음 화살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붙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발사한 화살이었다. 당연히 맞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카시마르는 머리를 까딱 움직이는 것만으로 화살을 피해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앞으로 전진하면서.

‘그걸 피한다고?’

아이리쉬는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면서 얼음 검을 휘둘렀다. 카시마르는 낮게 파고들면서 아이리쉬에게 봉을 찔러넣었다.

티잉!

얼음 검과 봉이 어긋나면서 서로를 튕겨냈다. 제대로 부딪힌 게 아니라 서로를 찌르면서 얽힌 것이었다. 아이리쉬의 공격은 당연히 닿지 않았고 카시마르의 봉은 아이리쉬의 얼굴을 노렸지만, 아이리쉬가 얼음 보호막을 형성해서 막았다.

콰지직!

봉의 끝부분이 투명한 얼음을 반쯤 깨고 박혔다. 아이리쉬는 계속 뒷걸음질 쳤다. 카시마르의 공격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봉이 얼음 막에 의해서 막히자 과감히 봉을 버리고 아이리쉬에게 달려 들렸다.

쉬슁!

아까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얼음 화살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두 발. 아이리쉬는 얼음 화살을 연속해서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 이유는 이 얼음 화살은 쿨 타임 때마다 충전이 되는 형식이어서 7발을 다 사용하고 나면 한동안 얼음 화살을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잘 조절해서 써야 끊기지 않고 계속 얼음 화살을 쏠 수 있었다.

팡!

카시마르는 주먹으로 날아오는 화살 하나를 쳐내고 나머지는 더킹으로 피해버렸다. 더킹은 상체를 꼿꼿하게 세운 상태에서 무릎을 구부려서 상대의 펀치를 피하는 기술. 그러나 MMA에서는 변형된 더킹을 많이 사용했다. 앞발을 반 발자국 정도 내밀면서 무릎을 구부리는 것도 변형된 더킹 중 하나. 이렇게 되면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과 피하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유용했다.

특히 사이드 스텝을 기가 막히게 점유하는 유중악은 이 상태에서 상대의 사각으로 치고 들어가 공격 퍼붓는 것도 아주 잘했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전에서 쓰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기술.

카시마르와 근접전에 능한 유저들간의 차이는 바로 이러한 점에 있었다.

바로 격투 기술의 디테일.

그들은 다양한 격투 기술을 쓸 줄은 알지만 유중악처럼 디테일한 동작은 수행하지 못했다. 방금 유중악이 수행한 동작은 프로 파이터들도 흉내 내기 어려운 곡예였고, 이러한 차이가 이브닝 아이리쉬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 카시마르 선수!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의 핵심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저 얼음 화살을 죄다 피하거나 쳐냅니다. 지금 건 두 개의 화살이 날아왔는데도 간단히 쳐내버리네요. 일단 저 화살에 적중이 되면 둔화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일정 시간 느려진 상태로 움직여야죠.]

[그렇습니다. 무척 간단한 마법이지만 저렇게 근거리에서 사용하면 막기 어려운 게 사실이죠. 컨신 선수도 저 화살에 많이 고전을 하지 않았습니까.]

[카시마르 선수 진짜 대단하네요. 아이리쉬 선수에게 계속 달라붙고 있습니다! 이러다 잡게되면 게임을 엄청 쉽게 풀어갈 수 있거든요.]

[아이리쉬 선수도 대단합니다.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카시마르 선수를 계속 견제하면서 뒤로 물러나고 있어요. 숨을 돌리자 이거죠. 둘 다 여기가 승부처입니다. 카시마르 선수는 접근해서 데미지를 먹여야 하고, 아이리쉬 선수는 뒤로 물러나서 템포를 늦춰야 합니다.]

[카시마르 선수가 잡을 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뒷걸음질 치는 것보다 전진하는 게 빠를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지금 카시마르 선수는 무기도 버렸어요. 그 말은 아예 초 근접전 상태로  가려는 생각인 겁니다. 카시마르 선수의 주특기인 격투기의 거리에서 싸우자는 거죠. 반면에 아이리쉬 선수는 근접전을 좋아하는 마법사라고 해도 좋아하는 거리가 훨씬 멉니다. 얼음 검을 이용해 공격할 수도 있고요. 나머지 스킬들도 그보다 먼 거리에서 들어가는 거니까요.]

[카시마르 선수와 아이리쉬 선수는 선호하는 거리가 완전히 다르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리쉬 선수가 이렇게 카시마르 선수를 밀어내려는 겁니다.]

[카시마르 선수! 계속 접근합니다. 지금 다리 끝에서 아이리쉬 선수를 계속 밀고 있는 상황이에요. 100미터 이상 이동한 것 같은데요.]

휭!

카시마르는 아이리쉬의 앞까지 당도하는데 성공했다. 바로 왼손 잽을 날린 카시마르. 그러나 아이리쉬는 그걸 피해버렸다. 피한 게 아니라 피해진 거라고 봐야 옳았다. 아이리쉬가 잽에 반응해서 뒤로 고개를 젖히다가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기 때문이었다.

관중석에서 큰 반응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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