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공의 비밀
- 명경기네. 명경기야.
- 그러게 대박임.
- 이브닝 아이리쉬 넘 사기인 거 아님?
-- 그렇게 따지면 갓중악이 더 사기지.
--- 카시마르는 피지컬이 어마어마해서 그런거고. 그건 사기라고 할 수 없지. 근데 이브닝 아이리쉬는 좀 상성 무시캐 아님? 밸런스가 좀 안 맞는 거 같은데?
---- 아직 직업, 스킬 다 공개되지도 않은 게임에 밸런스를 어떻게 찾음. 그리고 이브닝 아이리쉬는 본인이 캐릭터 육성을 잘한 거 잖삼.
- 이브닝 아이리쉬가 무적 캐는 아니라고 보는데. 즉시 시전이 사기스럽긴 하지만 마법사 계열이면 즉시 시전 마법 한 두 가지는 가지고 있는 거고. 오히려 이브닝 아이리쉬가 스탠다드한 마법사한테 걸리면 어려울 거 같은데? 아이리쉬 마법은 위력도 약해서 마법 저항력 높은 마법사가 배리어 치고 큰 마법 쓰면 당해낼 수 없다고 봄. 이동기도 딱히 없는 거 같은데.
-- 인정.
--- 근데 그보다 더 쉬운 파훼법이 있음. 얼음 마법 계열 저항력을 높이면 끝임. 아이템 세트를 그렇게 맞추던가. 그러면 느려질 이유가 없으니까.
---- ㅋㅋㅋㅋ 이게 정답이네.
---- 그래 죽으면 됨. 죽으면 느려질 이유가 없잖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ㅋㅋㅋ
------ ㅋㅋ 맞아 게임 접으면 됨. 접으면 느려질 이유가 없지.
------- 아닙니다. 더 간단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됩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느려진 것을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 ㅋㅋㅋ 무심하게 읽다 빵 터짐 ㅋㅋ
- 대회 중에 아이템 세트를 바꿀 수 없다는 게 중요하지.
- 이브닝 아이리쉬는 마력에 별로 투자를 안 한 마법사 같음. 맷집을 보니 다양한 마법을 쓰기는 하지만 근접 캐릭터에 가까운 거지. 난 그보다 갓중악이 마지막에 보여준 스킬이 더 신기하던데. 저게 무슨 스킬임?
- 분신, 환영 이런 거 같음.
- 3위 4위전이 기대된다.
준결승 1경기가 끝나자 인터뷰가 있었다. 어제는 경기가 끝나도 따로 인터뷰를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달랐다. 잡힌 경기가 그다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인터뷰를 해도 시간은 충분했다.
“카시마르 선수 오늘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를 상대로 멋진 경기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묻고 싶은 질문이 무척 많은데요. 그에 대한 질문을 하는 시간이 아니니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와 치렀던 경기에 대해서만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먼저 이브닝 아이리쉬 선수와 싸워본 느낌은 어떻습니까?”
“어. 예상했던 대로 무척 까다로운 상대였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창의적인 전투를 구사하는 선수죠. 얼음 마법 계열의 특수성을 아주 잘 이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번 경기가 꽤 치열한 양상이었다고 봅니다. 카시마르 선수도 그렇게 느끼셨는지요.”
“예.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상성상 쉬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럼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리쉬 선수가 스스로 왼팔을 잘라서 거리를 벌리지 않습니까? 그때 마법을 쓰느라 딜레이 시간이 필요했는데 왜 들어가지 않으신 건지요?”
“어. 승부가 거기서 끝이 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일단 팔이 잘리게 되면 아이리쉬 선수의 주력 스킬이 봉쇄되니까요.”
“거기서 승부는 갈렸다고 보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멋진 경기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있다 결승전이 끝난 뒤에 다시 인터뷰 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중악의 인터뷰가 끝나자 이브닝 아이리쉬의 인터뷰가 있었다. 이브닝 아이리쉬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어는 다양한 질문을 던지다가 마지막에는 카시마르에게 던졌던 질문을 똑같이 했다. 팔이 잘린 다음에 왜 먼저 치고 들어갔냐는 이야기였다.
“출혈은 멈췄지만 반쯤 그로기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마나도 바닥난 상황이었고요. 주력 스킬이 봉쇄된 상황에서는 시간을 끌어도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원래 그 상황에서 카시마르 선수가 기다려주지 않아도 된 건데 기다려준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짧게 인사를 한 거죠.”
“그 장면이 그렇게 해서 탄생한 거네요. 과연 직접 자크르를 하는 유저들끼리는 무언가 통하는 게 있나 봅니다. 눈빛만으로도 그런 메시지가 교환이 되는군요.”
4강전 첫 번째 경기가 끝났다. 그리고 바로 두 번째 경기의 시작이었다. 4강전 두 번째 경기는 일본의 히데오와 스웨덴의 라크비스트였다. 라크비스트는 커다란 양손 검을 쓰는 전사였고 이번 대회에서 가장 평범하다는 평가를 받는 유저였다. 그런데 라크비스트는 4강까지 올랐다. 사람들은 그게 신기하다는 평이었다. 신기하다는 평은 있지만 라크비스트가 히데오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히데오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4강에 안착했기 때문이었다.
“히데오가 이기겠지?”
“저 공이 쌓이기 전에 뭔가 승부수를 내면 모르지. 근데 그러긴 힘들 거야. 컨트롤이 좋으니까.”
“라크비스트는 평범한 스킬 위주던데?”
“어. 전사 딱 그 자체야. 양손 검으로 연속 공격을 하거나 스턴을 걸거나 해. 돌진기도 있고. 스킬은 다양하게 쓰는데 그리 엄청난 건 아냐.”
“그런데도 4강까지 올라왔으면 대단하긴 하네.”
“대진운이 좋았던 것도 있고. 일단 쉽게 올라온 경기가 하나도 없거든.”
“비주얼 하나는 제대로네. 바이킹 보는 거 같네.”
“딱 그런 느낌으로 육성한 거 같아요.”
“너한테는 진짜 쉬운 상대지. 양손 검이라 동작도 크겠다. 확정 스킬 몇 개가 있긴 하겠지만 크게 위협적이지도 않고. 엄청 스탠다드한 타입인데 다른 유저와 다른 장점이 있어.”
“그게 뭔데?”
“안 죽어. 경기를 하면 상대보다 훨씬 많이 맞거든. 근데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라크비스트야. 엄청 고생해서 올라오니 히데오나 아이리쉬 이런 애들보다 주목은 덜 받았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엄청 대단한 거더라고.”
“그쪽과 관련된 가호나 스킬이 있나보네.”
“어떤 쪽? 생존과 관련된 쪽?”
“어. 체젠이 엄청나다거나 아니면 데미지를 줄이는 스킬이 있던가.”
“뭐 그렇겠지. 그렇게 보면 이 게임 어찌 될지 모르네. 히데오가 유리하긴 한데 몰라. 라크비스트의 맷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면 의미 없는 거지. 근데 그게 가능하려나?”
“히데오는 일단 스킬이 무엇인지 조차 파악이 확실히 안 되었어.”
“파악을 해보려고 해야지.”
바로 준결승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히데오 대 라크비스트의 대결. 히데오는 근접전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상대에 따라서는 시간을 끄는 플레이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히데오에게 5분 이상 버틴 유저가 없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준결승에 진출한 히데오.
“예상대로네.”
히데오는 시작하자마자 라크비스트 쪽으로 공을 하나 던졌다. 말랑말랑한 느낌의 공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어느 순간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크비스트는 히데오가 뿌린 공을 처음에는 잘 막아냈다. 그러면서 히데오에게 접근해 데미지를 입히려고 했다. 그러나 히데오는 라크비스트와 근접전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히데오 선수 노골적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예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인데요?]
[히데오 선수도 피지컬이 좋은 편이어서 근접전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다른 모습이네요.]
[히데오 선수에게도 라크비스트 선수와의 접근전은 부담스러운 것 같습니다. 일단 히데오 선수의 저 신비스러운 공을 몇 개라도 뿌려두겠다는 심산이겠지요.]
[이제 세 번째 공을 꺼냈습니다. 저 공의 발동 매커니즘이 너무 궁금합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대부분의 의견은 스킬에 반응하는 것일 확률이 높다고 했는데요.]
[스킬 트랩 종류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히데오 선수의 저 공은 스킬 트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데미지가 강하다는 겁니다. 물리 방어력이 높은 탱커 스타일의 선수들도 너무 쉽게 무너졌거든요.]
[자. 마지막 결승전 진출자를 가리는 경기. 히데오 선수와 라크비스트 선수가 자크르를 펼치고 있습니다. 경기는 1분 지난 상황입니다. 라크비스트 선수가 좀처럼 히데오 선수를 못 잡네요.]
해설자가 말하는 순간 라크비스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히데오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에 맞은 히데오의 몸이 반짝 거리기 시작했다.
[어! 저게 무슨 스킬인가요. 라크비스트 선수 이전에는 꺼내 들지 않았던 스킬을 꺼냈습니다. 무슨 스킬인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요.]
[히데오 선수는 계속 거리를 벌리고 있습니다.]
“저거 붙잡아두는 거네.”
“그러네 라크비스트한테서 일정이상 떨어지면 끌어오는 스킬이네.”
히데오는 라크비스트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공을 소환하려는 게 목적이었는데, 거기에 제동이 걸려버렸다. 기회를 잡은 라크비스트는 히데오에게 달려들어 양손 검을 휘둘렀다. 거기에 각양각색의 스킬까지 더해졌다. 라크비스트는 쓸 수 있는 스킬을 모조리 쓰면서 히데오에게 전진했다. 화려한 이펙트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대체 스킬을 몇 개 쓰는 거야? 마법사도 아닌데 저게 다 마나가 감당이 돼?”
“마나 관련된 가호를 받았나 본데? 전사가 저 정도로 스킬 연달아 쓰기는 쉽지 않지. 이번 공격에 아예 승부를 걸겠다는 거네.”
[아! 히데오 선수 위기인 거 같습니다. 그 순간 히데오 선수 네 번째 공을 소환합니다.]
히데오가 네 번째 공을 던졌고 라크비스트는 전투 포효 스킬을 쓰면서 히데오의 움직임을 더욱 느려지게 만들었다. 라크비스트의 양손 검이 히데오의 목을 치려는 순간 허공에 있던 공들이 맹렬하게 움직였다.
투투두둑!
네 개의 공이 일제히 다른 방향에서 라크비스트를 공격했다. 사방에서 동시에 달려드는 모양새라 라크비스트는 제대로 대처를 할 수가 없었다.
“끝났네. 저거 저렇게 동시에 들어가면 답 없어.”
다들 라크비스트가 히데오의 공에 맞고 큰 데미지를 입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크비스트에게는 큰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보통 히데오의 공에 맞았을 때는 물폭탄이 터지는 듯한 임팩트가 생겼다. 데미지가 크면 클수록 그 임팩트는 커지기 마련인데 지금은 달랐다.
조금의 데미지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맹렬하게 라크비스트를 때렸던 공은 마치 장난감 공처럼 가볍게 라크비스트의 몸에서 튕겨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일제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작 더 당황한 건 라크비스트와 히데오였다. 히데오는 경악에 가까운 눈빛으로 라크비스트를 보는 중이었고, 라크비스트도 그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
[어! 이게 무슨 일인가요. 히데오 선수의 공격에 라크비스트 선수 조금도 데미지를 받지 않은 모습입니다. 대체 무슨 상황이죠?]
[히데오 선수의 스킬과 관련된 상황 같은데요. 어. 이러면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죠. 히데오 선수는 저 공을 사용하지 못하면 되게 어정쩡한 캐릭터가 되거든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라크비스트는 히데오를 끌어와서 양손 검으로 데미지를 입혀 잡아냈다. 히데오는 그 뒤로 두 번이나 더 공을 움직여서 라크비스트를 때렸지만, 조금의 임팩트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에 맞은 라크비스트는 평온 그 자체였다.
“알겠다.”
경기를 지켜보던 유중악이 말했다.
“알아차렸냐? 저거 마나랑 관련된 거 같다. 사용한 마나만큼 상대에게 추가 데미지를 입히는 거지.”
“그러면 왜 스킬이 발동 될 때는 움직이지 않는 걸까요?”
아르케가 물었다. 그러자 오정룡 대신에 유중악이 대답했다.
“중첩이 가능한 거겠지. 히데오는 그걸 조절할 수 있는 거고.”
“그러면 지금 스킬이 발동 되었다고 해도 그걸 중첩해놨다가 원하는 상황에 쓸 수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
“그러면 라크비스트는 왜 데미지를 입지 않은 거죠? 분명히 스킬을 사용··· 아! 그거구나.”
“그거 뭐?”
골낳괴가 물었다.
“마나 대신에 체력 소모하는 스킬 있거나 하면 이해가 되지. 아무튼 마나만 소모 안 하면 데미지는 없는 거니까. 보니까 저 공은 상대가 스킬을 사용하면 발동이 가능해지고, 사용한 만큼 마나를 저장해뒀다가 그걸 물리 데미지로 바꿔서 때리는 거야. 중첩이 된 상황이면 그걸 몇 배로 돌려주고.”
“뭐가 됐든 스킬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미치는 거네. 그래서 저놈이 그렇게 빨리 게임을 끝낼 수 있었구나.”
“그렇지.”
“그런데 라크비스트는 마나 대신에 체력을 소모하는 스타일인 거야. 스킬을 써도 소모되는 마나는 0이니 당연히 데미지가 없지. 이런 해석이면 이해가 가네.”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히데오는 의외의 상황에 빠져서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결승전은 라크비스트대 카시마르의 대결로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