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결승
라크비스트와 카시마르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이 경기가 상당히 치열한 경기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라크비스트는 다양한 버프와 스킬을 가진 전사였다. 정직한 느낌의 캐릭터지만 확실히 강했다. 정통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변칙 플레이어들을 이기려면 그만큼 강력한 부분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경기가 상당히 재미난 경기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경기 양상은 그렇게 되어가질 않고 있었다.
[라크비스트 선수의 공격! 다시 빗나갑니다! 지금 라크비스트 선수 카시마르 선수에게 평타를 한 대도 때리지 못한 것 같은데요.]
[경기가 또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근접전에서는 카시마르 선수가 유리할 거 같다는 예상은 누구나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거라고 누가 예상을 했겠습니까. 라크비스트 선수도 컨트롤 나쁘지 않거든요. 검술 충분히 훌륭하고 적재적소에 적절한 스킬 잘 집어넣는 선수에요. 근데 저걸 스텝과 상체 움직임으로 교묘히 피해버리니 진짜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카시마르 선수 로우킥을 집어넣고 옆으로 빠집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라크비스트느 선수의 옆으로 빠져 있어요. 분명히 민첩성은 다른 유저들과 크게 차이가 없을 텐데요.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유려하고 빠른 동작이 나올까요.]
쿵!
라크비스트의 양손 검이 목탑 바닥을 찍었다. 라크비스트와 카시마르는 목탑의 최상층에서 움직이지 않고 전투를 하고 있었다. 라크비스트는 근접 전사라 딱히 이동하면서 싸울 이유가 없었고 그건 유중악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둘은 목탑의 최상층에서 대결을 펼치는 중이었다.
팅!
카시마르는 톤파를 휘둘렀다. 라크비스트는 재빨리 양손검을 회수하면서 톤파의 공격을 막아냈다. 톤파와 양손검이 비켜 부딪히면서 작은 불협화음을 만들었다. 금속끼리 제대로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퍽!
카시마르는 처음부터 톤파로 공격을 성공시키려는 게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톤파를 이용해 들어갈 타이밍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 그는 카이로의 꼬리를 일부러 봉 형태로 만들지 않고 톤파로 만들어서 쓰고 있었다. 사거리에서의 이점을 포기하는 대신 공격 옵션의 다채로움을 선택한 것이었다.
공격 옵션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실제 자크르 경기에서는 공격 옵션이 많은 것보다는 사정거리가 긴 게 유리한 경우가 많았다. 옵션이 많아도 그걸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달랐다. 다양한 스킬이 없어도 움직임만으로 상대를 흔들고 있었다.
스위치 스텝.
카시마르 현역 시절 자신보다 큰 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완성한 기술. 다양한 선수들의 스위칭 스타일을 혼합해서 만든 스텝은 그에게 격투의 신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주었다. 지금 카시마르는 그 스타일을 적극 활용해서 라크비스트를 공략하고 있었다.
확정 스킬이 날아오는 타이밍에는 최대한 뒤로 물러나서 후속타가 날아드는 걸 방지했고, 그 외의 스킬은 교묘한 전후 좌우 스텝으로 피해버렸다. 이런 화려한 스텝의 장점은 체력 소모가 극심하다는 단점이 있어서 현실에서는 꼭 필요한 순간에만 쓰는 게 보편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움직임은 체력이라는 스탯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체력이 워낙 좋은 카시마르였기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스텝을 밟을 수 있었다.
특히 카시마르는 가면의 영향으로 레벨에 비해 지나치게 체력 수치가 높았다. 보통 근접 전사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체력 스탯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라크비스트는 카시마르의 움직임을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움직임은 라크비스트보다 카시마르가 배는 많은데, 체력은 라크비스트가 먼저 소진되니 난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카시마르 선수 정말 화려한 스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역 시절에도 저 정도의 스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정말 화려한 스텝입니다.]
[눈으로도 쫓아가기 힘들 정도에요. 보통 저렇게 스텝을 밟으면 발이 꼬이거나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선천적인 양손잡이가 아닌 이상 주로 발달되는 쪽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소독스, 사우스포를 아무리 잘 바꾼다고 해도 어느 정도 패턴이 정형화 된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카시마르 선수는 왼쪽으로도 치고 들어가고, 오른쪽으로도 치고 들어가고 그걸 다시 오소독스 자세로도하고 사우스포 자세로도 합니다. 라크비스트 선수의 사각을 치고 들어가도 하고, 반대로 치고 뒤로 물러나버리기도 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무엇보다 저 톤파를 아주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보십시오. 톤파의 꺽여 있는 손잡이 부분을 앞으로 향하게 해서 라크비스트 선수의 양손검을 내려버리지 않습니까!]
[무술 시범을 보는 것 같은 동작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걸 실전에서 그것도 이렇게 빠르게 공방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쓰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팅! 끼릭!
카시마르는 톤파의 손잡이 부분을 갈고리처럼 사용해서 라크비스트의 검을 끌어내렸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라크비스트의 균형이 앞으로 쏠렸다. 카시마르는 그틈을 놓치지 않고 무릎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콰앙!
니킥이 제대로 적중했다. 라크비스트의 얼굴이 들썩였다. 얼굴이 찢어지면서 피도 흘렀다. 라크비스트는 몸으로 카시마르를 밀었는데, 카시마르는 투우사처럼 살짝 턴을하면서 힘을 흘려버렸다.
그리고 막대기 형태로 변형시킨 톤파로 뒤통수를 후려쳤다.
팡!
후두부를 공격하는 것은 MMA에서는 명백한 반칙. 그러나 이곳에서는 반칙이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MMA를 벗어난 코즈믹 게이트에서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스텝에 차이가 있으면 백을 잡는 건 의외로 쉽다. 인간의 시야는 의외로 좁은 곳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스텝의 교묘함으로 그 시야 밖을 거니는 일쯤이야 카시마르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스킬의 힘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카시마르에게는 스킬 없이도 가능한 일.
라크비스트가 휘청거리고는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카시마르는 얼른 백스텝을 밟으며 상체를 보호했다. 붉으스름한 기운이 검끝에서 흘러나와 카시마르를 덮쳤다.
몸이 잠시 휘청거리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큰 데미지는 주지 못했다. 확정 스킬은 늘 이랬다. 상대를 확실하게 공격하지만 위력은 크게 보장할 수 없었다.
[노련하네요. 카시마르 선수 라크비스트 선수의 스킬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어요. 이쯤 되면 쿨타임 시간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벌써 세 번째죠?]
[라크비스트 선수가 그 전 경기에서 스킬을 노출한 게 너무 많았어요. 반면에 카시마르 선수는 스킬을 그다지 많이 공개하지 않았거든요. 아직 감추고 있는 게 많습니다.]
[라크비스트 선수가 히데오 선수에게 썼던 링크 스킬을 사용했지만 별 효용이 없습니다. 카시마르 선수는 딱히 크게 거리를 벌리는 선수가 아니니까요. 저걸로 균형을 흔들어도 균형도 안 흔들립니다. 이 무슨 괴물 같은 컨트롤입니까!]
라크비스트가 히데오에게 사용했던 스킬은 상대와 자신을 연결해서 거리가 멀어지면 상대를 되려 당겨오는 스킬이었다. 라크비스트는 경기 초반에 이 스킬을 적중시키는데 성공했다. 딱 붙은 상태에서 스킬을 써서 카시마르도 피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처음에 스킬을 성공 시킬 때는 좋았다. 그러나 그 스킬로는 카시마르를 묶어둘 수가 없었다. 계속 손해를 보던 라크비스트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카시마르가 거리 안쪽에서만 움직이자 자신이 뒤로 물러나서 카시마르의 균형을 무너트리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카시마르가 그것마저도 이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파앙!
당기는 힘은 바꿔 말하면 추진력이 될 수 있었다. 그걸 이용해서 공중에서 폭격을 퍼붓듯이 공격이 들어갔다.
라크비스트가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냈다. 체중과 힘이 실린 공격에 두꺼운 양손 검을 들고도 휘청거리는 라크비스트. 카시마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타앙! 타앙!
검과 톤파가 부딪히면서 불꽃이 튀었다. 몇 번의 공방이 있었는데 이 상황에서도 이득을 본 건 카시마르였다. 카시마르는 무리하지 않았다. 라크비스트의 스킬을 가까이서 허용하면 연계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라크비스트를 상대했다.
덕분에 라크비스트는 늪에 잠기듯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 같습니다. 카시마르 선수 조금 더 공격을 해도 될 거 같은데 들어가지 않아요. 딱 이득 볼 것만 보고 빠져나옵니다.]
[근데 신기하게 카시마르 선수가 빠져나오는 타이밍에 딱 라크비스트 선수의 반격이 터져나옵니다. 스킬도 그때쯤 나오고요. 지금 라크비스트 선수는 일부러 템포를 바꿔가면서 스킬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그 타이밍 마저도 카시마르 선수가 귀신 같이 읽고 있습니다.]
[아! 잽! 이후에 바디 더블! 거기다 로우킥까지. 전광석화네요.]
[무기를 버리고 달라붙어서 때리는 패턴이라 라크비스트 선수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무엇보다 카시마르 선수는 염력으로 저 무기를 다시 회수하거든요. 다시 로우킥 들어갑니다. 저것도 다 데미지로 환산되는 거죠.]
[그렇지만 라크비스트 선수 경기 시작 5분이 넘어가는데 아직 멀쩡한 모습입니다. 라크비스트 선수의 생명력은 아직까지 바닥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가 결승까지 올라온 선수에요. 비책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카시마르 선수는 완전히 방심할 수 없을 겁니다.]
[비책이 있다고 해도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될지 의문입니다. 일단 카시마르 선수도 생명력으로 따지자면 약한 편이 아니거든요. 이 경기를 뒤집으려면 라크비스트 선수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카시마르 선수의 움직임을 읽어야 해요. 하지만 이건 이론상의 이야기고요. 실제로는 쉽지가 않죠.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도 쫓아가기 어려운데 바로 앞에서 보는 라크비스트 선수는 얼마나 어지럽겠습니까. 지금 저렇게 반응을 하는 것도 대단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트레이드 마크인 양손 검을 버리거나 하는 식의 과감한 파이팅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요.]
[클래스 스킬 중에는 무기를 들어야지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있으니까요. 아마 아! 톤파를 던지고 로우킥을 다시 맞춥니다! 라크비스트 선수 지금 방금 휘청거렸거든요!]
[집요하고 무섭습니다. 이게 바로 나이트메어의 스타일인가요. 일말의 감정도 섞지 않은 채 라크비스트 선수를 부수는 중입니다.]
라크비스트는 10분 이상을 더 경기했다. 카시마르는 동일한 방식으로 덤덤하게 라크비스트에게 공격을 넣었다. 라크비스트는 이브닝 아이리쉬처럼 마지막 러쉬 같은 건 감행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잠이 들듯이 스르륵 뒤로 넘어가 쓰러졌다. 어떠한 감흥도 반전도 없는 결승이었다.
15분 동안의 일방적인 공격.
구타에 가까운 자크르를 끝낸 라크비스트는 굳은 표정으로 카시마르와 악수했다.
- 뭔가 감흥은 없는데. 경기는 되게 재밌었음.
-- 동작 하나하나가 액션 영화.
--- 피지컬이 뭐 저러지?
- 아이 페이크 주고 하이킥 날리는 거 소름 돋았음.
-- 난 그거보다 페이크 줘서 로우킥 세 번 연달아 때릴 때가 더 소름. 분명히 라크비스트가 양손 검을 들어서 찌르거나 베기만 해도 맞을 거 같은데, 그 타이밍을 페이크로 쪼개서 공격을 못하게 만들고 로우킥을 날리다니.
--- 그건 진짜 고급 수 싸움이었음. 라크비스트가 나름 카운터 치려고 딱 보고 있었던 거 같은데, 그걸 비집고 툭, 쉬고! 툭! 쉬는 척 하고 바로 다시 로우킥.
- 우승했다. 근데 경기 내용을 보니 정말 쉽게 우승한 거 같은 느낌이 듬.
-- 쉽지는 않았지. 결승만 쉬웠음.
- 지금 좋아할 게 아냐. 이거 말고 더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음.
-- 맞음. 야네크냐 소용돌이 휘장이냐.
--- 교차하는 넣어야 됨.
---- 뭘 따져.
----- 다름. 그냥 라면과 계란 넣은 라면의 차이랄까.
------ 라면은 그냥 먹는 게 더 맛있는데?
- 갓중악 성격이라면 소용돌이 휘장도 원할 거 같은데. 지금 아이템 들고 있는 게 다 좋아 보여서 그럴 거 같음.
- 둘 다 엄청나게 좋은 건 사실임.
- 개부럽.
- 갓중악이 진짜 갓이 되는 건가.
- 근데 시험에 통과해야 되잖아.
- 으! 게임사 놈들. 이런 농간을.
-- 왜 재밌겠는데. 실패해도 유니크 아이템 주니까 나쁘진 않은 듯.
--- 유니크랑 야네크, 휘장이랑은 비교 불가
결승전이 끝이 났다. 무대 위에서 우승자 인터뷰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