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블러핑!
- 악플 달러 간다. 출동!
- 저걸 깨라고 만들어 놓은 거냐. 하여튼 게임사 새퀴들.
- 게임이 재미라도 없으면 모르겠는데. 게임은 오질라게 재밌어서 보이콧도 못하겠네.
- 난이도가 무슨 튜토리얼 보스급이네.
- 인간적으로 너무 세다. 특히 야네크 저거는 사용에 제한도 없나? 쿨타임도 없이 막 쓰는 거 같은데.
-- 일반 스킬과는 발동 메카니즘이 아예 다르다고 했음.
--- 완전 사기 아이템.
---- 그니까 등급 없는 아이템이지.
----- 야네크는 등급으로 따지면 어느 정도 되려나? 영웅 급인가?
------ 레전드 이상 아니겠음? 어쨌든 신의 육체로 만든 무기라는 설정이니까. 신급 무기라는 설정인가.
- 너무 어렵다. 미러존의 괴물 보다도 훨씬 난이도 높은 듯.
-- 너너 난이도는 미러존의 괴물이 훨 높지.
--- 불꽃 기사가 훨씬 높은 거 같은데?
---- 미러존은 상성이라는 게 없어서 그냥 다 어려운데. 저거는 상성 빨로 가능하겠는데? 트레캄이 강하기는 한데 방어 기술 튼튼한 유저면 깨는 거 불가능할 거 같지도 않음. 자크르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30퍼센트 데미지를 주는 거니까.
----- 인정. 저거 히데오 같은 그냥 깰 거 같은데.
------ 히데오는 못 깨지.
------- 왜?
-------- 야네크가 스킬 사용으로 적용되는 게 아니잖삼.
--------- 아.
- 히데오 아니라 컨신 같은 스타일이라면 30퍼센트 정도는 쉽게 달게 할 거 같은데? 연계기 한 번 들어가면 끝나는 거 아님?
-- 저렇게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데 무슨 수로?
--- 거리 근접한 상황해서 스킬써서 뒤 잡은 다음에 콤보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 이론 상은 그럴 듯 한데.
- 아무튼 상성만 잘 맞추면 저 불꽃 기사를 잡는 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음. 30퍼센트만 달게 하면 되니까. 근데 미러 존 보스는 말 그대로 괴물임. 스킬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이겨야하니 그건 불가능함.
- 그래도 너무 세다. 저 속도가 말이 되나. 파괴력도 그렇고.
- 끝났다.
- 아.
- 갓중악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 이래서 게임사 놈들은 믿으면 안 됨.
- 응? 게임 종료가 안 뜨는데?
- 뭐냨!
- 잔상 움직인다!
- 잔상까지 죽여야 끝나는 건가?
- 왓더! 잔상이 갓중악 CPR 중
- 대애박!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저겤 ㅋㅋㅋㅋ
- 응? 저건 무슨 스킬이지?
- 부활!
- 오늘이 바로 부활절!
- 잔상이 갓중악 가슴 두들기는 거 개웃김.
카시마르의 잔상은 많은 레벨업을 통해 진화를 거듭했다. 그러면서 잔상에게 몇 가지 스킬이 생겼고, 그 스킬은 카시마르와는 다른 체계로 발동이 되고 있었다.
잔상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액티브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카시마르는 액티브 스킬을 쓸 수 없지만 잔상은 사용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잔상이 카시마르가 소환한 소환수의 개념이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잔상은 스탯이라는 개념이 없는 편이어서 그의 스킬은 쿨타임이 상당히 길었다. 심폐소생술은 쿨타임이 하루가 넘어가는 스킬이었다. 다른 스킬들은 그보다 쿨타임이 빠르지만 카시마르는 웬만해서는 그 스킬들을 공개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입혀야 할 데미지가 몇 퍼센트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불꽃 기사 트레캄은 위협적인 상대였다. 그렇기에 카시마르는 얼마든지 공개하지 않은 스킬들을 쓸 생각이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운영진에게 얼얼하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 그러나 그대로 뒤통수만 맞고 끝내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카시마르는 제일 먼저 생명력을 확인했다. 생명력은 20분의 1 수준 정도만 찬 상태였다. 그 정도도 다른 유저들에 비하면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 정도 생명력이면 트레캄의 폭발에 한 번 제대로 휩쓸리면 그대로 끝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트레캄의 공격력은 강했다. 그리고 생명력도 많았다. 사람들은 트레캄의 생명력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카시마르의 공격은 일반 공격이어도 추가 데미지가 옵션으로 붙는다. 가면의 기본 옵션인 방어력 이용이 붙어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방어력이 높으면 거기에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카시마르의 공격은 아주 약한 잽이라도 무시 못할 데미지가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트레캄은 그런 공격을 연달아 받고도 그다지 많은 데미지가 달지 않았다. 그 말은 트레캄은 생명력 또한 어마어마한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팡!
트레캄이 먼저 움직였다. 빠르게 카시마르에게 접근한 트레캄은 팔꿈치를 위로 쳐 올리면서 텀을 두고 니킥으로 복부를 노렸다. 카시마르는 침착하게 헤드무빙과 스텝으로 트레캄의 공격을 피했다.
트레캄의 표정이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아까는 이 정도까지 쉽게 공격이 막힌 적이 없었다. 두 번의 연속 공격을 이리도 간단하게 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었다. 발끈한 트레캄은 그 상태에서 물러나지 않고 한 발자국 더 파고 들어가 오른손을 길게 뻗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탁!
‘쳐내?’
패링.
상대의 공격을 손으로 쳐내는 기술. 가드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가드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고급 기술이었다. 가드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목적이 있는 방어에 치중된 기술이라면 패링은 그보다는 좀 더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기술이었다. 패링은 가드보다 어렵고 위험부담도 있지만 성공한다면 그만큼 보상이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트레캄의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카시마르는 왼손으로 쳐내고 왼발을 앞으로 반 발자국 들어갔다. 그리고는 왼팔을 그대로 구부려서 엘보우 형태로 만들었다. 트레캄이 치고 들어오는 타이밍을 계산한 엘보우였다.
펑! 쉬잉!
패링에 이은 엘보우 공격이 트레캄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트레캄은 얼른 야네크를 사용해서 뒤로 물러나버렸다. 자신이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고 들어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엄청난 공방에 각 나라의 중계진은 물론이고 팬들도 입을 떡 벌어진 채 바라봤다.
불꽃 기사와 월드 자크르 챔피언쉽 우승자와의 대결.
주최 측의 의도가 어떠했는지는 몰라도 엄청난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카시마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CPR 기술로 부활한 상태였고 덕분에 사람들은 경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심지어 카시마르에게 처절하게 패배해서 적개심이 남아 있는 유저들마저 경기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제야 타이밍을 알았나보네.”
팔짱을 낀 채로 경기를 지켜보던 오정룡이 말했다.
“저 속도를 읽는 게 가능해요?”
“속도가 큰 폭으로 변하는 게 아니잖아. 그러면 타이밍을 읽을 수 있지. 어마어마한 속도의 공도 여러 번 보다보면 적응하는 게 사람이니까.”
“그래도 너무 빨리 적응하는 거 같은데요.”
“늦은 거야. 이번에 당황 좀 한 거 같아. 안 그랬으면 더 빨리 알았을 거야.”
트레캄은 왼쪽 시야가 붉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시야가 붉게 물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뒤로 물러나면서 카시마르의 엘보우가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트레캄의 눈썹 부분이 찢어졌다. 처음에는 몇 방울 떨어지는 수준이던 피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트레캄의 왼쪽 얼굴이 피로 물들었다. 트레캄은 분노한 얼굴로 카시마르를 바라봤다.
카시마르의 옆에는 잔상이 다시 소환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스킬을 사용 중이었다. 잔상의 두 번째 스킬은 카시마르가 가장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아주 적절하다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스킬은 자동으로 시전되는 스킬.
카시마르의 의지가 아니라 잔상 스스로 발동시키는 스킬이었다. 그 스킬은 바로 도발 모션.
잔상은 트레캄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골반을 과도하게 튕기는 춤. 누가 봐도 도발의 의미로 하는 춤이었다.
그 모습을 본 트레캄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큰 폭발을 일으켜 그대로 경기를 끝내버릴 생각을 한 트레캄.
그는 분노한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잔상과 본체를 혼동하는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잔상을 공격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카시마르 본인을 공격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카시마르 옆에서 도발적인 춤을 추고 있는 잔상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카시마르에게 접근해 공격을 하는 트레캄. 그러자 바로 잔상이 반응해서 트레캄의 뒤를 잡으려고 움직였다.
카시마르는 차분한 모습으로 트레캄이 치고 들어오는 걸 보고 있었다.
휭!
잔상의 공격이 트레캄을 노렸다. 트레캄은 고개를 숙여서 잔상의 공격을 피해버렸다. 잔상을 따돌리고 카시마르를 바라본 트레캄. 그는 이대로 큰 폭발을 일으켜서 경기를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앞의 카시마르를 본 순간 그럴 수가 없었다. 카시마르는 어느 새 뒤로 물러나 있었고, 그의 앞에는 카시마르와 흡사하게 생긴 잔상이 하나 더 소환되어 있었다.
잔상의 세 번째 스킬.
바로 잔상의 모습을 닮은 잔상을 하나 더 소환하는 것.
이 잔상은 첫 번째 잔상과는 다르게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 실체화 되어서 공격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잔상과 똑같은 동작을 수행할 수는 있었다.
‘하나 더 있어?’
춤을 추고 있던 잔상은 사실 아무 의미 없는 잔상이었다. 잔상이 만들어 낸 가짜 잔상. 카시마르는 그 가짜 잔상으로 달려드는 트레캄을 공격해서 혼란을 주었던 것이었다. 트레캄이 고개를 숙여 피할 것을 예상하고서.
블러핑.
퍽! 탁!
카시마르는 실체가 없는 잔상으로 공격을 했고 그게 정확히 트레캄을 흔들었다. 몸을 핀 트레캄에게 잔상의 잽이 들어갔다.
잠시 트레캄의 동작이 멈췄다. 그도 조금만 더 데미지가 들어가면 경기가 끝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잽을 날린 잔상은 트레캄에게 달려들어 오금을 낚아챘다. 별로 힘은 없었지만 그 잠깐의 방해로 충분했다. 그 사이에 카시마르는 봉 형태의 꼬리를 투창처럼 트레캄에게 던지고 있었다.
팡!
트레캄이 양손으로 날아드는 봉을 방어했다. 그의 팔뚝에 봉이 튕겨져 나갔고 트레캄은 가드를 풀었다. 그러나 그가 가드를 푸는 순간 매처럼 날아드는 후속 공격이 있었다. 위에서 내려찍는 모양새의 플라잉 니킥. 보통 플라잉 니킥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것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고 있었다.
퍼억! 콰직!
트레캄의 코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트레캄은 그대로 대자로 뻗어버렸고 카시마르는 쓰러진 그에게 떨어진 꼬리를 손에 들고 무자비하게 내려쳤다.
자크르는 그걸로 종료되었다. 자크르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카시마르는 무려 트레캄의 머리에 다섯 번이나 더 추가 공격을 넣었다.
***
경기가 종료되자 진행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불꽃 기사, 교차하는 소용돌이 휘장에 관한 컨텐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 몇 가지 절차가 있었다. 카시마르의 이벤트 승리를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바로 야네크를 수여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카시마르가 받게될 야네크의 이름과 능력에 대해서도 공개되질 않았다. 다만 카시마르가 선택한 신발과 관련된 아이템이라는 것만 공개되었다.
그 뒤에는 꽤 긴 컨텐츠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유저들도 불꽃 기사나 교차하는 소용돌이 휘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도전 과정에 다양한 컨텐츠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난이도는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커뮤니티의 반응은 더 회의적이었다. 운영진이 설정한 난이도보다 실제 난이도가 더 높은 콘텐츠일 거라는 것이었다. 레이드는 유저들이 여러 명 모여서 싸우면 되는 일이지만 불꽃 기사는 혼자서 소비해야하는 컨텐츠였다.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카시마르 일행은 컨텐츠 설명을 끝까지 듣지 않고 회식 장소로 움직였다.
“형 이거봐요. 대박입니다!”
회식 장소에서 즐겁게 술을 마시던 중에 용재가 외쳤다.
“왜? 코즈믹에서 또 뭔 지랄 했냐? 야네크 안 준데?”
“아뇨. 그게 아니라 반테스요.”
“왜?”
“형 사인 등에다 받았잖아요.”
“그랬지.”
“그거 문신으로 새겼어요. 일차적으로 시술한 거 사진 찍어서 SNS 올렸어요. 대박.”
“허!”
“봐. 내가 이놈 미친 놈이랬지? 광팬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반테스의 문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즐겁게 회식 자리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