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우주적 존재
피라크는 카시마르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야네크였다. 피라크는 혼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야네크였지만 활용도에 따라서는 정말 강력한 힘도 발휘할 수 있었다.
“디스펠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쓰기에 따라서는 개사기인 거 아냐?”
“그렇겠지. 근데 몇 가지 조건이 있어서 다루기가 까다롭네.”
피라크의 외관은 평범한 신발이었다. 그러나 그 신발의 발등 부분에 눈이 달려 있었다. 그 눈은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고 특정한 상황에서만 나타났다. 바로 상대방이 능력을 사용했을 때였다.
피라크는 기술을 모방하는 능력을 지닌 야네크였다. 피라크가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은 모두 두 가지.
왼발, 오른발 각각 하나씩 능력을 모방할 수 있었다. 같은 능력을 모방해서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각기 다른 능력을 모방할 수도 있었다. 카시마르는 핏불킹의 공격 마법 중 가장 기본 적인 걸 모방해보기로 했다.
파이어볼.
마법사 계열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마법. 핏불킹은 알고 있는 공격 마법이 별로 없었다.
“던져봐.”
핏불킹은 카시마르를 향해서 파이어볼을 던졌다. 그들은 포말하우트 내부에 있는 훈련장에서 한 시간 넘도록 야네크를 시험해보는 중이었다. 카시마르는 핏불킹의 파이어볼을 피하지 않고 맞았다.
파이어볼은 카시마르의 몸을 휘감았다가 금방 사라졌다. 이 정도 공격은 카시마르 입장에서는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어때? 다른 게 좀 있어?”
“확실히 그냥 기술을 볼 때랑 달라. 직접 맞아본 기술은 좀 더 디테일하게 쓸 수 있나봐. 응용도 가능하고.”
“응용 가능하다고 떠?”
“아니. 무슨 수학 기호 같이 허공에 기호가 뜨는데. 이걸 이렇게 하라는 뜻 같아.”
카시마르가 손을 들자 그의 피라크의 한쪽 눈이 떠졌다. 그리고 핏불킹이 사용했던 파이어볼이 카시마르의 오른쪽 손끝에서 생성되었다. 카시마르는 파이어볼에 계속 정신력을 주입했고, 그러자 파이어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작은 공 크기였던 파이어볼은 순식간에 짐볼만한 크기로 커졌다.
“야! 그거 그런 것도 가능해?”
“가능한 것 같은데? 정신력을 소모하면 되는가 봐.”
“그럼 그거 완전 개사기잖아. 야네크 중에서 최고 좋은 거 아냐?”
“그렇게 되나?”
카시마르가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때 나이든 사제 한 명이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포근한 표정의 사내였다.
“야네크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피라크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흉내내기에 불과하죠. 그러니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약점이라도 있는 겁니까?”
“야네크는 완전한 무기입니다. 약점이 있다면 쓰는 사람에게 있겠죠.”
“그러면 흉내내기에 불과하다는 의미는······.”
“야네크는 정신의 힘으로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그 피라크의 능력은 때에 따라서는 흉내내기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만 효율이 좋지 못하죠.”
“정신력을 많이 소모한다는 이야기네요. 원래의 능력보다 더.”
“그렇습니다. 원래의 능력보다 더 강력한 힘을 내려면 더 많은 정신력이 소모되겠지요. 그러니 피라크의 두 눈의 능력을 잘 배합해서 신중하게 사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야네크와는 다른 물건이니까요.”
“조언 감사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포말하우트의 사제일뿐입니다. 포말하우트의 사제들은 이름이 없죠. 포말하우트의 사제로서 야네크에 대한 작은 정보를 드린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포말하우트에 속한 사제들의 임무이니까요.”
“그래도 감사드립니다.”
카시마르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런데 여행자라서 조금 다를 거라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대단합니다. 야네크 사용법을 정말 금방 익히는군요.”
카시마르를 지켜보던 사제가 말했다.
“원래 오래 걸립니까?”
“예. 10년 넘도록 야네크를 다루지 못하는 기사들도 있지요.”
“그러면 불꽃 기사가 못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게 또 비극이라면 비극이지요.”
“왜 비극이죠?”
“가문에 속한 야네크들은 세습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겠지요.”
“그렇습니다.”
“야네크는 보물 중에 보물입니다. 정말 강력한 가문이 아니면 하나 이상 보유하고 있는 가문이 거의 없죠. 그러니 그걸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아······.”
사제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야네크는 보통 가문의 후계자에게 수여되는 게 보통이었다. 후계자가 능력이 뛰어나 빠르게 야네크를 다루는 경지에 이른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면 이제 비극이 생긴다. 야네크와 관련된 비극은 무척 많았는데 그중에는 가문에서 직접 후계자의 목을 베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예전에는 야네크가 세습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양도는 가능했지만 양도 받은 자가 야네크를 다루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야네크는 어쨌든 포말하우트로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지금은 돌아오지 않습니까?”
“지금도 돌아옵니다. 야네크의 소유자가 죽으면 포말하우트로 어떻게 해서든지 돌아옵니다. 과거에는 야네크를 회수를 전담하는 사제들도 있다고 들었지만 지금은 없어졌죠. 언젠가는 이곳으로 야네크는 돌아오니까요.”
“이곳으로 돌아오기는 하지만 다시 가문에서 가져가는군요.”
“네. 그래서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요. 어떤 야네크는 보통 정신력으로는 다루기 힘든 것들도 있으니까요.”
사제는 몇 마디 더 한 다음 훈련장 밖으로 사라졌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동마법을 사용할 준비가 다 끝났다는 것을 알리러 온 것이었다.
“뭔가 페널티가 있을 거라고는 했다만 그래도 양호한 편 아니야?”
“다른 야네크가 정신력을 얼마나 소모하는지 모르니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 근데 난 괜찮아. 생각보다 정신력이 많이 안 달던데?”
“그래?”
“난 유저잖아. 그러니까 정신력이 수치화되어 있으니까.”
“아. 맞다. 정신력은 생명력, 마나 이런 거 합산해서 정해진다면서?”
“응.”
“그러면 너한테 엄청 유리한 거 아냐?”
“그러니까······ 나한테 진짜 딱 맞는 야네크인 것 같아.”
피라크는 정신력 소모가 무척 큰 야네크였다. 트레캄의 능력을 피라크가 흉내 내기를 했다면 어마어마한 정신력 소모 때문에 그리 자주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달랐다. 지금 카시마르의 체력은 비정상적으로 높았고 그게 정신력에 고스란히 반영된 상황이었다. 그러니 피라크가 정신력을 많이 잡아먹는다고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야네크가 좋긴 좋네.”
카시마르가 능력을 해제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다. 운영진이 왜 안 주려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이건 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언터처블 수준인데? 너 지금 트레캄인가랑 다시 붙으면 그냥 이기겠는데?”
“트레캄 강해. 쉽지 않아.”
“그걸로 능력 훔쳐서 싸우면 되는 거 아냐? 너한테 부족한 이동 능력을 그걸로 채울 수 있으니까.”
“그러네. 아. 그러고보니 트레캄 능력이 딱이다. 한쪽 발에 넣어두고 쓰면 딱이겠는데.”
“아무튼 이제 가자. 낳괴한테 귓말오고 난리났다.”
“왜?”
“그 슈브인가 뭔가 있잖아.”
“그 제단 떴다는 거야?”
“아니. 아직 안 떴는데 지금 고레벨들이 그거에 관한 정보 미리 파악하려고 난리라는 거야.”
“그래?”
“그니까 너 저번에 어디서 들은 거 있댔잖아. 그거 썰 좀 풀어봐.”
“기다려봐.”
카시마르는 펫인 강숭이를 소환했다. 펫 레벨이 높아진 강숭이는 평소에는 카시마르의 인벤토리에 마련된 공간에 들어가서 있을 수 있었다.
“선생님! 부르셨습니까요!”
강숭이는 나타나자마자 카시마르에게 인사했다. 카시마르는 나타난 강숭이에게 보석을 하나 던져 주었다. 강숭이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특히 보석을 많이 주면 줄수록 가치 있는 정보를 많이 토해내기 때문에 카시마르는 아낌없이 투자를 하고 있었다.
“너 슈브라고 아냐?”
“슈브요?”
“그래. 슈브.”
“슈브는 모르고 쉬바는 압니다요.”
“쉬바?”
“네. 저기 저 오징어 같은 생긴 놈이 저번에 선생님한테 쉬바라고 했습니다요.”
강숭이가 핏불킹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핏불킹은 강숭이의 도발에 뒷목을 잡고 비틀거렸다.
“그거 말고 네가 전에 이야기 했던 거 있잖아. 우주적 존재 어쩌구 한 거. 슈브 몰라?”
“아아아. 그 아줌마 말씀하시는 거에요? 염소 아줌마?”
“슈브가 염소 아줌마로 불릴 정도였나? 별로 안 센가?”
핏불킹이 물었다. 그러자 강숭이가 피식 웃었다.
“이 냥반아. 나니까 염소 아줌마라고 부를 수 있는 거지. 당신 그 앞에 가면 그냥 바로 삭제야. 삭제. 어디 새카맣······ 헤헤. 선생님. 뭔가 불편하십니까요.”
“그냥 그 슈브에 대해서 설명이나 빨리 해봐.”
이제는 눈치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진 강숭이였다.
“네. 알겠습니다요. 슈브 니구라스. 슈브라고 하는 아줌마는 엄청 센 우주적 존재입니다.”
“우주적 존재가 그니까 신이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신 중에서도 엄청 셉니다요. 달로스님 보다는 약하지만 셉니다요.”
“그럼 그 슈브의 제단이 막 세워지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디요? 이 동네에요?”
“어.”
“그거 확실한 정보입니까요?”
“그래.”
“게이트의 계시라도 있었습니까요?”
“그래. 게이트의 계시가 있었지.”
“흠······.”
설명을 들은 강숭이가 갑자기 턱끝을 쓰다듬으며 꼬리를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걸 본 카시마르는 조용히 카이로의 꼬리를 꺼내들었다.
“선생님!”
“왜?”
“카이로의 꼬리는 왜 꺼내시는 겁니까요?”
“네가 그 자세로 생각을 하면 꼭 헛짓거리를 하는 것 같아서 미리 준비를 좀 해두는 거야.”
“아! 선생님! 아직도 그러십니까요. 전 선생님의 숭이숭입니다요! 이 자세는 생각을 좀 하기 위해서 취한 것입니다요!”
“그냥 슈브에 대해서 아는 걸 말 하면 되지 왜 생각을 해?”
“선생님! 오해이십니다요! 생각을 해보십시오. 제국에 대해서 말을 하라고 하면 충분한 생각을 해야되지 않습니까요. 그에 얽힌 이해관계가 엄청 많지 않습니까요.”
“그렇지.”
“그런데 우주급 스케일을 가진 존재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어떻게 막 나옵니까요. 그냥 특징에 대해서는 술술 말할 수 있겠지만 선생님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요!”
“그···그렇지?”
“그래. 듣고 보니 강숭이 말이 맞네. 야. 야. 이거 집어넣고 차분히 좀 들어보자. 뭔가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핏불킹이 강숭이를 달랬다. 그러자 강숭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우주적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제가 짤막하게 정리를 해보겠습니다요. 그래야 슈브 니구라스에 대한 이야기가 이해가 갈테니까 말입니다요.”
“그래. 해봐.”
“일단 우주적 존재. 쉽게 말해서 신이라구 부르는 존재들 있지 않습니까요?”
“그래.”
“그들은 간단하게 세 분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요. 자고 있는 신, 활동 중인 신, 자고 있는지 활동 중인지 알 수 없는 신.”
“신도 잠을 자?”
“그렇습니다요. 근데 그 잠을 자는 시간이 우리의 기준과는 많이 다릅니다요. 여튼 자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 일단 이 분류를 아셔야 한다는 겁니다요.”
“그래서 슈브는 활동 중인 신이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요. 이제부터는 활동 중인 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요. 이 활동 중인 신 그러니까 온 우주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신은 또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요. 미개한 존재들에게 무관심한 신. 관심이 있는 신. 관심이 있는지 없는 파악도 안 되는 신.”
“마지막은 뭐야?”
“그런 신들이 있습니다요. 우리 주변에도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놈들 있지 않습니까요.”
“있지.”
“그러니 신들 사이에서도 없겠습니까요.”
“그러겠네.”
“어쨌든 활동 중인 신 중에서 90센트 이상이 미개한 존재들에게 무관심한 신입니다요.”
“미개한 존재라고 한다면 어떤 존재를 말하는 거야?”
“대표적으로 인간이 있지 않습니까요?”
“그게 그 신들한테는 미개하다는 거지?”
“표현이 그렇다는 겁니다요. 우주적 존재니까. 그냥 우주도 아니고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우주급 스케일로 노는 거니까. 거기서 보면 여기가 얼마나 작고 하찮겠습니까요.”
“그래. 아무튼 그렇다고 치고. 슈브는 관심이 있는 신이겠네?”
“관심 아주 많은 신입니다요. 무관심한 신들은 사실 문제가 안 됩니다요. 마지막에 분류된 신들도 사실 문제 없습니다요. 그 양반들이 문제 일으키면 그냥 천재지변이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거지요. 문제는 관심이 있는 신들이 문제입니다요.”
“왜?”
“이 관심 있는 신들 대부분은 미개한 존재들이 자기를 숭배하지 않으면 다 죽이려고 하니까요.”
“엉?”
“그럼 슈브도 그런 목적으로 이 땅에 등장하는 거란 말이야?”
“아마도 그럴 겁니다요. 특히 슈브 쪽은 전파력도 강하고 해서 퍼지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요.”
“내가 잠깐 검색을 해봤는데. 이 슈브라는 신 되게 하드코어한데?”
핏불킹이 말했다.
“뭐가 하드코어한데?”
“예배드리는데 산 사람의 내장을 태우고 아무튼 이런다는데.”
“에이. 그 정도는 뭐 신들 치고는 양호한 편입니다요. 그들 중에는 세계를 수족관으로 만드는 취미가 있는 놈도 있는데 말입니다요.”
“수족관?”
“그 크툴루라고 들어보셨습니까요? 어. 여기 이 양반 닮은 오징어 찌질이 있습니다요. 그놈 취미가 그겁니다요. 행성에 딱 들어가면 일단 물을 겁나게 주입합니다요. 그리고 거대 심해어를 막 풀어요. 그러면 문명이 물에 잠기고 할 거 아닙니까요?”
“그러겠지?”
“온 세계가 물에 잠길 때까지 그걸 보는 겁니다요. 그리고 자기 물고기들을 거기다 풀어서 번식시키죠. 그러면서 그거 보고 좋다고 깔깔거립니다요. 그 변태 쉐키가.”
“대체 왜?”
“왜라니요?”
“왜 그런 짓을 하는 거냐고.”
“선생님. 피규어 모으는데 이유가 있습니까요?”
“피규어?”
“그 신들에게 세계는 하나의 피규어 같은 겁니다요. 행성 여러 개 놓고 이건 예쁘게 잘 만들어 졌네 아니네 보고 그냥 만족하는 겁니다요. 그게 미개한 존재들에게 관심 있는 신들의 행태입니다요.”
강숭이의 설명을 들은 카시마르와 핏불킹의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간단한 컨텐츠라고 생각했던 검은 염소의 숭배자들이 예사로운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