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응용!
“선생님 제대로 포위 당한 것 같습니다요.”
강숭이는 투명한 상태로 변해 카시마르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보통 같았으면 인벤토리에 들어갔을 테지만 지금은 강숭이까지 나와서 전투를 해야할 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강숭이가 딱히 나서서 싸우는 건 아니었지만 상당히 전투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했다. 강숭이가 있으면 볼 수 없는 뒤쪽 시야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에 카시마르는 강숭이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아직 피라크의 제대로된 힘을 쓰고 있지 않았다. 최대한 좋은 기술을 모방해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이동을 할 수 있는 기술. 그러나 컨신의 무리들은 이동과 관련된 기술은 쓰지 않고 있었다.
“포위하는 법도 제대로 배웠네. 딱 거리 잡고.”
“이거 뿌리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요.”
카시마르는 로그아웃을 하는 방법도 생각을 해봤다. 그러나 이 근처는 메시지 전송도 불가능했지만 로그아웃도 불가능한 곳이었다. 로그아웃도 불가능하면 최후의 수단은 자살 밖에 없었는데, 카시마르는 자살은 웬만해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코즈믹 게이트에서 자살은 페널티가 상당했다. 일반적인 죽음보다도 아이템 드랍 확률도 더 높았고, 레벨 다운도 1레벨에서 2레벨 정도 더 되는 편이었다.
카시마르가 착용하고 있는 템은 대부분 귀속 아이템이라 아이템 드랍 확률은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문제는 레벨 다운이었다. 카시마르 정도 되는 고렙에게 레벨 다운은 꽤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컨신이 나서지 않는 걸 보니 이상하긴 한데. 죽이려는 목적이 아닌 것 같지?”
“생포하려는 목적일 겁니다요.”
“나는 불꽃 기사라서 교화도 안 된다며?”
“그렇습죠.”
“그런데 생포해서 뭐해?”
“생포해놨다가 제물로 바치려는 거 아니겠습니까요.”
“제물?”
“네.”
“그리되면 뭔가 다른 문제가 생기겠지?”
“저도 아직 안 당해봐서 모르겠습니다요. 다만 그냥 죽는 거랑은 아무래도 다르지 않겠습니까요. 거기다 그렇게 큰 제물은! 선생님! 화살!”
“알아!”
팅! 팅!
카시마르는 날아오는 화살을 강철의 권능을 이용해서 막아냈다. 왼팔의 그로를 살짝 변형시켜서 화살을 비켜나게 한 것이었다.
퍽!
그와 동시에 더킹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전사가 있었기 때문에 카시마르가 고개를 숙이자 상대의 다리 부분이 보였다. 카시마르는 그로를 다시 변형시켜서 갈고리 모양으로 만든 다음 전사의 오금 분을 걸고 긁어버렸다.
털썩!
전사가 딸려오면서 바닥에 주저 앉았고 그때 다시 한 번 화살이 날아왔다.
“이 새끼들 일부러 고통 주려고 그러는 건가. 적극적으로 공격을 안 하잖아. 너무 속 보이는데.”
“그니까 제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요. 선생님을 제물로 바치려는 것 같습니다요.”
“내가 무슨 고사상 돼지도 아니고 왜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거야.”
“선생님 불꽃 기사 아닙니까요. 원래 슈브는 다른 교단들을 잡아먹으면서 더 빨리 성장합니다요. 아직 제단이 세워지지도 않았는데 불꽃 기사를 잡아먹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요.”
“엄청 빨리 퍼진다 이거지?”
“그렇습니다요.”
빠각!
카시마르는 톤파로 쓰러진 전사의 머리를 뽀갰다. 카시마르는 무긴의 귓속말로 적들의 기술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파악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무긴의 귓속말은 카시마르에게 적의 정보를 물어다줄 뿐 그 이상의 힘은 발휘하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정보를 물어다 주는 속도도 그리 빠른 게 아니었다.
자크르에서는 상당한 힘을 발휘하는 무긴의 귓속말이지만 지금은 그다지 도움이 되질 않는 가호였다.
카시마르는 달려드는 적을 상대하면서 컨신에 대한 시선도 거두질 않았다. 지금 가장 위험한 상대는 컨신. 특히 컨신 같은 스타일은 다수로 소수를 압박할 때 그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었다.
기회를 보고 있다가 암살자처럼 상대의 뒤를 잡아 연계 기술을 날려버리면 그걸로 끝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카시마르는 컨신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냥 지켜보는 정도지만 가장 위험한 상대였으니까.
“컨신이 조금씩 움직입니다요.”
“이제 슬슬 잡겠다는 거겠지. 모르겠다.”
카시마르는 이것 저것 재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날아오는 화살을 일부러 몸을 옆으로 틀어서 맞았다. 화살은 카시마르의 삼두근 쪽에 날아와 박혔다. 그때 카시마르의 야네크인 피라크의 눈이 하나가 떠졌다.
카시마르는 화살을 날리는 기술을 모방한 것이었다. 물리적인 기술이어서 그게 모방이 될까 걱정을 했는데, 크게 상관이 없었다. 카시마르는 바로 투명한 모양의 화살을 만들어서 허공에 띄울 수 있었다.
“화살?”
그 모습을 보고 제일 먼저 반응한 자는 꾸준히 화살을 쏴서 카시마르를 견제하고 있던 궁수였다.
투명한 마법 화살이라 실체가 있는 것과는 달랐지만 모양은 많이 보던 것이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화살의 생김새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푸슉!
궁수가 고민하는 사이에 화살이 날아왔다. 투명한 화살은 속도도 위력도 자신이 쓰는 것과 흡사했다. 궁수는 화살을 피했고 그 뒤에 어마어마한 장면을 목격했다. 바로 카시마르의 주위로 투명한 화살 수십 개가 사방으로 퍼져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미친!”
궁수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 컨신이 카시마르의 코앞으로 다가선 상태였다.
챙! 챙!
야네크의 힘을 거두고 컨신의 찌르기를 막아낸 다음 반격을 시도했다. 카시마르의 스트레이트가 컨신의 얼굴로 날아갔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옆쪽에서 커다란 방패를 든 전사가 다이빙을 하듯 차징을 시도했다.
퍽!
카시마르가 비틀거리면서 언덕 아래로 몇 바퀴 굴렀다. 카시마르는 몇 바퀴 구른 다음 언덕 끝부분에서 부드럽게 착지하고는 얼른 위로 몇 발자국 올라섰다. 아래로 떨어지면 마을로 진입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가 받은 데미지는 그다지 크질 않았다. 공격을 허용하긴 했지만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직 체력이나 생명력은 많이 남아 있는 상황. 정신력도 화살을 사용하면서 많이 사용하긴 했지만 아직 절반 정도 남은 상태였다.
카시마르는 다시 한 번 화살을 사용하려 했다. 그러자 컨신이 그 틈을 치고 들어와서 공격했다.
휭!
컨신의 공격을 사이드스텝으로 피하면서 카운터를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컨신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의 중요 스킬 중 하나가 펼쳐진 것이었다.
푹!
뒤쪽으로 모습을 드러낸 컨신. 그의 검이 카시마르의 간쪽을 꿰뚫었다.
“잡았다!”
푸슉!
그와 동시에 카시마르의 가슴으로 화살이 날아왔는데, 카시마르는 그걸 팔뚝으로 막았다. 화살은 팔뚝을 뚫고 15cm정도 튀어나왔다. 그만큼 이번에 날아온 화살은 강력했다.
콰앙!
카시마르가 컨신의 검에 뚫려 비틀거리는 사이에 방패를 든 사내가 카시마르의 머리를 강력하게 쳐버렸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다시 비틀거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쓰러지거나 하지 않았다. 컨신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잡아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 포기하시죠 카시마르님. 이 정도면 잡힌 거 아닙니까?”
컨신이 비릿하게 웃었다. 카시마르는 고개를 뒤로 돌려서 컨신을 바라봤다. 얼핏 보면 컨신의 말에 대답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뒤쪽에 있는 강숭이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강숭이는 컨신의 검으로 입을 가져가고 있었다.
“너 이빨 나간다.”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요.”
“조심해.”
“헤헤.”
강숭이는 웃으면서 투명한 모습을 풀었다. 컨신은 갑자기 강숭이가 나타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발로 차버렸다.
“뭐야. 이 원숭이는!”
컨신의 발길질을 버티면서 강숭이는 카시마르의 등에 박혀있는 컨신의 검날을 그대로 깨물어버렸다.
와그작!
금속을 주식으로 먹는 강숭이.
“이 미친 새끼! 뭐하는 거야!”
컨신이 반쯤 부서진 검을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강숭이는 컨신이 검을 빼기 전에 얼른 검을 한 번 더 깨물어서 아예 잘라버렸다. 이윽고 컨신의 검이 두동강이 나버렸다.
“이··· 야아아!”
컨신이 발광을 하듯이 소리쳤고 카시마르는 강숭이의 꼬리를 그대로 붙잡았다. 피라크의 왼쪽 눈이 떠지면서 카시마르의 신형이 사라졌다. 방패를 휘두르던 사내는 갑자기 상대가 사라져서 허공에 헛손질을 하고는 앞으로 굴렀다.
“어?”
궁수는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라진 카시마르가 자신과 10미터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타나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궁수는 너무 놀라서 화살을 엉뚱한 곳에다 발사하고는 얼른 나무 위에서 내려와서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암기를 여러 개 꺼내서 궁수에게 날렸다.
투투두둑!
뒤돌아서 달리다가 암기에 적중당한 궁수가 털썩 쓰러졌고, 카시마르는 얼른 달려가서 궁수의 뒤통수를 세차게 밟고 위로 향했다. 그때 저 멀리서 컨신의 발악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죽여! 아니! 잡아! 잡으라고! 다 연락해! 팀장들한테 다 연락하라고!”
컨신은 두 동강이 난 검을 보면서 울부짖었다. 그 사이 카시마르는 유유히 위쪽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컨신의 순간이동 기술을 연달아 사용하여 포위망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컨신의 기술은 야네크도 연달아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만능은 아니라는 소리네.’
그렇지만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카시마르는 피라크를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피라크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고 응용까지 하려면 단순한 능력을 모방하는 게 좋았다. 그래야 응용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컨신의 순간 이동 스킬 같이 그 원리를 알 수 없는 복잡한 능력은 모방해봤자 그 능력 이상으로 사용하는데는 무리가 있었다.
방금도 카시마르는 연달아 사용하려다가 사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받은 상태였다. 그를 쫓아오는 무리들을 뒤쫓은 채 언덕 위로 올라간 카시마르는 잠시 숨을 골라야했다. 거기에는 류키의 팀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류키의 팀을 보자마자 화살을 소환하고는 손을 허공에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뭐하십니까요. 차라리 아래가 낫겠습니다요.”
“기다려 봐.”
류키는 몇초간 상황을 지켜보다가 컨신과 똑같이 포위 명령을 내렸다. 순식간에 카시마르를 포위하는 병력이 두 배로 늘어났다.
슈웅!
류키의 무리들이 흩어짐과 동시에 허공에 백 개가 넘는 투명 화살이 떠올랐다. 그 상태에서 카시마르는 열심히 허공에다 손을 움직였다.
5초 정도 지났을까?
류키의 팀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는 사이에 허공에 떠 있던 화살들의 모양이 변했다. 투명 화살은 투명한 단검으로 모습을 바꿨다.
“이게 생각보다 좋은 능력이더라고.”
촤앙!
카시마르가 투명한 단검을 사방에 뿌렸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예상했던 것처럼 투명한 단검들은 일반적인 궤도가 아니라 기괴한 궤도로 춤을 추면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화살이 단검으로 바뀌면서 자동 투척 패시브의 효과를 받게 된 것이었다.
흩어지던 류키의 팀들이 갑자기 수많은 단검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냥 단검도 아니었다. 기괴한 각도로 비행하듯 날아오는 단검은 제대로 쳐내기도 힘들 정도였다.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카시마르는 얼른 제일 허술한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