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선전포고!
파팍!
점프 킥으로 제일 앞에 있는 상대의 얼굴을 가격한 다음에 그 힘을 이용해서 옆에 있는 상대의 머리를 톤파로 가격했다.
팅! 휘익!
휘잉! 큭!
톤파로 인한 공격 다음에는 엘보우 공격이었다. 그러나 검을 든 전사는 카시마르의 공격을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살짝 고개를 젖혀 엘보우를 피했다. 그렇지만 엘보우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카시마르의 팔뚝 부분에 낫처럼 칼날이 돋아나 있었다. 칼날은 위빙으로 공격을 피한 검사의 목줄기를 강하게 베고 지나갔다.
피가 솟구쳤고 카시마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후속 공격을 날렸다. 카시마르를 포위한 세명 다 나름 단단히 준비한 상태였지만, 근접전에서는 카시마르를 어찌 해보지 못했다.
쿵! 콰직!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카시마르는 톤파로 마무리 일격을 날렸다. 카시마르는 상대를 무력화시킨 다음 제압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방어력 이용 옵션이 붙은 데다가 카이로의 꼬리는 일정 확률로 크리티컬 데미지가 상당히 높게 들어가기 때문에 데미지는 상당하다고 봐야 했다. 보통 공격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카시마르.
카시마르는 류키팀의 포위를 뚫고 빠져나갔다. 카시마르가 저 멀리 멀어질 때쯤 컨신이 언덕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류키를 향해 다가왔다.
“그놈은 어디갔어?”
“뚫고 나갔어요. 야네크의 힘이 대단한 것 같던데요.”
“그냥 보냈단 말이야?”
“걱정 마세요. 그가 향한 쪽으로 로드로드가 오고 있어요. 그는 빠져나가지 못해요.”
“로드로드는 왜 불렀어.”
“부른 게 아니라 전투 때문에 이목이 쏠린 거예요. 다른 팀들도 다 몰려들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중요하지 않아요.”
“왜?”
“다른 길드들이 합류하기로 합의가 됐습니다. 이제 그들도 검은 교단의 일원이에요.”
“펑크 라이온도?”
“그들 뿐만이 아니에요. 다른 길드··· 근데 그 검 왜 그래요. 그거 형이 엄청······.”
“그러니까 잡아야 돼. 그놈이 데리고 다니는 원숭이가 이렇게 만들었어. 빨리 토해내게 만들어야 해.”
“수리비만 몇 천 깨지겠네요.”
“그게 문제야? 그놈 없으면 이거 수리도 못해. 이게 얼마짜리 검인지 너도 알잖아.”
“근데 아까봤을 때는 원숭이는 안 보이던데요.”
“은신 기능이 있는 펫인 거 같아.”
“류미를 부를게요.”
“죽이면 안 돼. 무조건 생포해야 돼.”
“카시마르는 죽이지 않고 생포하기에는 너무 강하던데요. 차라리 죽이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이제는 정보가 조금 새어나간다고 문제 생길 일은 없으니까요. 펑크 라이온이 뮤테이션 길드와 해피 드라이브 길드까지 초기 멤버로 끌어들였어요.”
펑크 라이온, 뮤테이션, 해피 드라이버는 K길드와 버금가는 대형 길드였다. 특히 뮤테이션 길드는 코즈믹 게이트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랭커를 보유하고 있는 길드였고, 펑크 라이온은 길드원 수가 가장 많은 길드였다. 그리고 해피 드라이버는 다른 길드에 비해서 규모는 조금 떨어지지만 숨은 고수가 무척 많이 있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해피 드라이버는 이름과 다르게 상당히 더티한 플레이로도 유명한 길드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도둑, 강도 같은 PK와 관련된 직업의 유저들이 모여서 만든 길드여기 때문이었다. 그런 유저들이 모여서 길드를 만들었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쪽에 유저들은 해피 드라이버 길드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K길드, 펑크 라이온, 뮤테이션 같은 길드들이 그래도 나름 룰을 지키면서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라면 해피 드라이버는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플레이를 하는 길드였다.
“해피 길드까지?”
“네.”
“그놈들은 의견이 조금 갈리지 않았나?”
“다크 영이 오케이 했어요. 어차피 이번 계획은 초기만 잘 넘기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월드 자크르 챔피언쉽이 오히려 득이 되었어요.”
“이목이 쏠리긴 했지.”
컨신은 부러진 검을 집어넣고 스페어 검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특정 몬스터를 잡을 때 쓰는 속성 검이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이거라도 감사히 써야할 상황이었다. 어쨌든 컨신의 연계 기술은 검이 있어야지만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류미가 왔네요.”
류키가 뒤쪽에서 나타난 여성 유저를 보고 말했다.
“카시마르를 죽이기 전에 펫을 먼저 포획해야 된다는 거죠?”
“그래. 그래야 카시마르가 죽더라도 펫을 우리가 잡고 있을 수 있으니까.”
류미는 펫이나 소환수를 포획하거나 죽이는데 특화된 직업을 가진 유저였다. 전투력은 별 볼일 없지만 이렇게 특수한 상황에서는 아주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류키의 팀에서도 꽤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류미는 류키의 친동생이었다. 류키, 류미 둘 다 상당히 멋진 외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
특히 류미는 메디아와 더불어서 K길드의 여신이라고 불리고 있을 정도로 외모가 화려했다. 외모만큼 컨트롤 실력이 뛰어난 게 아니어서 평소에는 이런 전투에 소집되지 않지만 류미가 필요한 상황이 간간히 나오긴 했다. 특히 보스 몬스터들 중에는 유저처럼 펫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었고, 그럴 때 류미를 활용하면 수월하게 보스몹을 잡을 수 있었다.
“왜 불렀어? 오빠?”
“류미. 저기에 은신 중인 펫 있나 확인 좀 해줘.”
류키의 요청에 류미가 얼른 새를 소환해서 주변을 탐색했다. 그녀의 눈에 강숭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작은 원숭이 말하는 거야?”
“어. 맞아. 포획 가능하지?”
“포획은 가능하지. 다만 좀 더 가까이 붙어야 돼. 가까이 붙어서 표식 남기면 펫이랑 주인이랑 분리가 가능해.”
“역시. 류미는 펫 전문가야.”
“고마워요. 오빠.”
“천천히 가서 작업해놔. 이제 곧 메디아님이 올 거야.”
컨신의 칭찬을 슬쩍 넘긴 류미는 천천히 카시마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는 여전히 밀려드는 적들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성지 작업으로 바쁜 걸로 아는데 직접 온다고?”
“불꽃 기사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전달이 된 것 같아요. 다크 영이 무언가 지시를 내린 것 같던데요.”
“무슨 지시? 제물로 바칠 생각 아닌가?”
“그게 아닐 수도 있어요. 포섭을 원할 수도 있죠.”
“불꽃 기사가 포섭이 되는 존재인가?”
“포섭 못할 건 없죠. 그리고 포섭만 된다면 훨씬 일이 쉽게 풀리겠죠.”
“지금도 쉽게 풀리고 있어. 난 반대야.”
“형. 여기는 K길드가 아니에요. 이번 컨텐츠가 진행되는 동안은 어쨌든 다크 영의 지시를 따라야하는 상황이라고요.”
컨신은 류키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인상을 썼다. 류미는 적당한 거리에 서서 마법을 시전했다. 강숭이의 목에 검은 목줄이 생성되었다. 강숭이는 자신의 목에 목줄이 하나 더 생긴 것을 모르고 주변을 살피는 중이었다.
“바퀴벌레도 아니고 뭐 이리 많이 밀려드는지.”
“K길드에서 다 몰려온 것 같습니다요.”
두두두두두둑!
적이 많아지니 날아오는 화살도 단위가 달랐다. 한 호흡에 화살이 대 여섯 발 정도가 떨어졌다. 카시마르는 컨신의 기술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상황을 타개해보려고 했지만 워낙 수가 많았다.
로드로드 팀이 도착한 다음에 바로 테이크의 팀도 도착해서 사방을 포위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인원이면 카시마르가 뚫고 지나온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게 합리적일 수 있을 정도였다.
로그아웃이 불가능한 결계가 쳐져 있다는 걸 알고 있는 K길드는 무리해서 카시마르를 압박하지 않았다. 특히 정회원들은 일부러 나서지 않고 있었다. 혹시라도 앞으로 나섰다가 카시마르에게 당하기라도 한다면 나름 큰 손실이기 때문이었다.
“또 왔네.”
“그러게 말입니다요.”
왼쪽에는 테이크가 팀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카시마르의 주변은 수 백명의 유저들로 가득찬 상태가 되었다. K길드는 사방이 막힌 상황이 되자 오히려 병사들을 보내지 않고 원거리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유저들을 앞으로 세웠다.
카시마르를 서서히 말려 죽이려는 심산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포위망을 뚫고 나와 카시마르에게 말을 건넨 유저는 바로 메디아였다. 메디아는 차분한 눈빛으로 카시마르를 보고 있었다.
“그러게요.”
“포기하시죠. 카시마르님.”
“포기한다는 말은 그쪽으로 넘어가라는 말입니까?”
“그렇죠. 당신이 어떻게 알고 여기를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 코즈믹 게이트에서 준비한 컨텐츠는 가볍지 않아요. 게임의 판도를 바꿀만한 강력한 컨텐츠이에요. 월드 자크르 챔피언쉽은 이 컨텐츠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우승자인 당신이 불꽃 기사와 대결을 펼친 것도 이 계획의 일부죠. 왜 우승자에게 그런 대결을 시켰는지 이해 하시겠어요?”
메디아의 말투에는 조곤했다. 마치 오랜 안부를 묻는 사람 같았다.
“불꽃 기사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서인가요? 그래야 유저들이 불꽃 교단에 많이 가입할테니까?”
“맞아요. 코즈믹 게이트의 유저들은 제국이나 북제국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교단에 속해 있지는 않죠. 제국민이나 북제국인이 대부분은 교단을 믿는 것과는 다르게요.”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그런 이벤트를 준비했다는 거군요.”
“실제로 당신이 불꽃 기사와 싸우는 장면이 나간 뒤에 불꽃 교단에 가입한 신도수가 많이 증가했다고 해요.”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저희는 슈브 님의 어린 양인 다크 영을 모시고 있어요. 다크 영께서는 당신을 환영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를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요?”
카시마르의 말에 메디아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다크 영께서는 그보다 더 큰 계획이 있으십니다. 바로 유저이자 불꽃 기사인 당신을 13번째 제자로 받아들이는 거죠. 당신은 이전보다 더 큰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야네크는 버려야겠군요.”
“버리지 않아도 됩니다. 슈브님의 권능으로 그 야네크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혜택도 얻을 수 있고요.”
“페널티는요?”
“없어요. 거기다 다크 영의 직속 제자의 직위는 아무한테나 주는 게 아니에요. 대형 길드의 수장 정도에게만 주는 직위입니다. 길드 소속도 아닌 당신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건 그만큼 파격적인 거에요.”
“확실히 좋은 제안이네요.”
“빨리 가입할 수록 교단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아요. 당신과 당신 지인들도 교단에서 높은 자리를 약속하겠어요.”
“너무 제안이 좋으니 의심스러운데요.”
카시마르의 말에 메디아가 다시 한 번 웃었다.
“카시마르님. 이 제안은 제가 단독으로 하는 게 아니라 다크 영의 네 번째 사제의 자격으로 하는 거에요. 거짓은 말하지 않아요.”
“······.”
“이 컨텐츠는 이런 내용입니다. 유저들끼리 벌이는 거대한 전쟁. 코즈믹 게이트에서는 단순히 보스 몬스터를 잡고 이런 컨텐츠가 아니라 성전을 기획한 거예요. 그러니 어느 편에 서든지 합류해야 할 거예요. 특히 당신은 불꽃 기사니까요.”
“성전이라······.”
“딱히 신앙심이 생긴 것도 아니지 않나요?”
“그런 게 있을 리 없죠.”
“그러니까요.”
메디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거절하겠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전 불꽃 기사니까요. 불꽃 교단 쪽에서 싸워야죠. 불꽃 기사가 된지 반나절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근데 이번 컨텐츠 설명에는 제단이 세워지고 레이드를 하는 거라고 되어 있지 않았나요? 근데 내막을 보니 전혀 다른데요.”
“설명에 틀린 부분은 없어요. 제단은 계속 세워질테고 검은 교단이 아닌 자들이 제단을 무너트리면 막대한 보상을 받겠죠. 다만 그러는 것보다 검은 교단 측에 합류하는 게 더 쉽게 이득을 얻는다는 설명을 하지 않았을 뿐.”
“이 게임은 진짜 예상을 매번 빗나가게 하네요.”
“당신도 그래요.”
“그러면 이제 절 포박하는 겁니까? 아니면 죽이는 겁니까? 죽인다고 약속 하면 가만히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자살보다는 그게 더 페널티가 적을테니.”
“죽이지 않을 거에요. 당신에게 선전포고를 할 테니까요. 슈브 니구라스의 어린 양 램파드의 이름으로 살아 있는 불꽃의 교단에게 선전 포고를 합니다.”
[검은 교단이 불꽃 교단에게 선전포고했습니다.]
[루콘 성이 검은 교단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메디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메시지가 마구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을 너머로 보이는 루콘 성에 커다란 첨탑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첨탑 주변에 다른 첨탑이 생겨났고 그 주변으로 기이한 흑색 구름이 생성되었다.
카시마르는 물론이고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공포스럽지만 경외스러운 슈브 니구라스의 상징물.
[성전이 발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메시지.
슝!
그 메시지를 끝으로 카시마르는 다른 곳으로 추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