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프락치
카시마르는 바로 포말하우트로 소환되었다. 카시마르가 소환되자 사제들이 얼른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네가 선전포고를 받은 기사인가?”
“그렇습니다.”
“슈브의 성지를 확인했나?”
“네. 루콘에 있더군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건가.”
“불꽃 기사들을 소집해야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겠지. 일단 자네가 알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네.”
카시마르는 그동안의 상황에 대해 사제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핏불킹에게 연락을 넣어서 포말로 올 수 있도록 했다. 카시마르의 요청에 사제들은 이동 마법을 열어서 핏불킹을 쉽게 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선생님!]
“뭐야.”
[선생니임!]
[야. 이게 뭐야? 너 어딨어.]
[선생님 저 두고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요!]
[너 어딨는데?]
[저 아까 그 마을에 있습니다요.]
[너 왜 안 따라왔냐?]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요.]
[야. 거기 이제 적진이야. 얼른 나와.]
[잡혔습니다요. 아무래도 아까 그 검 먹은 거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요.]
[그래? 그럼 내가 소환 명령을 내려볼게.]
[감사합니다요.]
카시마르는 펫을 소환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강숭이는 소환되지 않았다. 소환할 수 없는 지역에 있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야. 거기 벗어나야 너 데리고 올 수 있다는데? 너 근데 어떻게 안 넘어온 거냐?]
[누가 수를 쓴 거 같습니다요.]
[그게 가능해? 너 안 잡힌다면서.]
[여기가 슈브의 영역이라 달로스님의 힘이 미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요.]
[그런 것도 있어?]
[성지 근처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요.]
[좀 이상한데?]
[제가 힘을 다 잃었지 않습니까요.]
강숭이는 달로스의 힘 덕분에 원래 일반적인 스킬로는 탐색도 되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존재였다. 그러나 같은 우주적 존재인 슈브의 힘이 미치는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원래의 힘을 지닌 강숭이라면 슈브의 영향력 정도는 그냥 무시할 수 있겠지만, 지금 강숭이는 힘을 완전히 잃고 카시마르의 펫이 된 상태였다. 당연히 슈브 니구라스의 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쩌냐? 너 그 검 먹은 거 다시 뱉을 수 있냐?]
[이미 다 소화되었습니다요.]
[그럼 너 죽는 거 아냐?]
[선생님! 제가 죽기를 바라십니까요!]
강숭이가 펄쩍 뛰었다.
[지금 내가 거기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지 않냐.]
[압니다요.]
[일단 그 지역을 벗어나 봐. 그리고 귓속말을 해.]
[그게 말처럼 쉽지가······.]
[일단 무슨 짓을 해서든지 살아남아라. 그래야 내가 널 다시 불러주던지 하지. 안 그래?]
[알겠습니다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곳을 벗어나겠습니다요!]
[그래! 나도 방법을 찾아볼게.]
강숭이와 귓속말이 끝나자마자 핏불킹과 친구들이 포말로 등장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K길드에서 이전부터 접촉이 있었나봐. 검은 교단이랑.”
“그러면 우리가 거기 갔으면 다 죽었겠네?”
“그나마 다행이지. 아마 왔었으면 다 죽었을 거야. K길드 전체가 거기 지키고 있더라.”
“지금 커뮤니티에서도 난리 났어. 성전이 뭐냐고.”
“형도 메시지 받았어?”
“저희 다 받았습니다. 교단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도 다 성전에 참여할 수 있다던데요.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은 교단 쪽으로 넘어가는 거 같더라고요. 거기 지금 제국에 기반 둔 대형 길드들 대부분 다 합류했어요.”
골낳괴가 말했다.
“그게 그렇게 영향력이 큰가?”
“크죠. 대형 길드만 해도 인원수가 어마어마하잖아요. 거기와 관련된 유저들까지 합하면 더 엄청나겠죠.”
“대신에 이쪽은 제국이 나서서 막지 않을까? 불꽃 기사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말이야.”
“그것도 무시 못하는 건 맞죠. 제국에 가문들이 몇 개인데요. 검은 교단이 아무리 힘을 받아도 힘들 거예요.”
“아냐. 이 전쟁의 승패는 인간이 문제가 아니라 뒤에서 서포트 해주는 신이 얼마나 서포트를 해주느냐에 달린 거라고 했어. 안 그러냐? 강숭아?”
핏불킹이 카시마르를 보며 말했다.
“강숭이 없어.”
“응? 강숭이가 왜 없어.”
“나 거기서 추방될 때 갇혔나봐.”
“야! 그러면 그쪽 관련 정보는 어떻게 물어보냐. 아니 그보다 그놈이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놈이었어? 따지고 보면 되게 급 높은 놈이라며.”
“지금은 그냥 말하는 원숭이야. 힘 다 잃었잖아. 그리고 원래는 안 되는 건데. 지금 그쪽 지역이 슈브의 영역이라 어쩔 수가 없나봐.”
“슈브의 영역 안에서는 힘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거군요. 디버프가 너무 강해서 버프가 효과가 없어지는 것과 비슷하네요.”
“그러면 그놈은 어떻게 하냐? 거기서 죽는 건가?”
“모르겠어. 펫이니까 죽어도 부활할 거 같은데. 근데 알잖아. 그놈이 죽으려고 하겠어?”
“펫 중에는 부활이 불가능한 펫도 있어요. 강숭이 같은 특이한 케이스는 부활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용재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다 쏠렸다.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일반 펫이 아닌 경우라서요. 희귀한 펫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대신 부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가끔씩 있잖아요. 그 유명한 유저 있잖아요. 펫으로 해츨링 얻었다가 죽어서 게임 접어버린 유저요.”
“모릭이었나.”
“모르릭이었을걸.”
“아무튼 갓 태어난 드래곤이었는데도 밸런스 파괴급으로 강했었죠. 모르릭이 욕심만 안 부렸으면 그 사람 지금 랭커로 잘 나가고 있었을 거에요.”
“근데 강숭이가 그 정도로 강하지는 않잖아.”
“그래도 엄연히 따지면 그보다 훨씬 윗급 아니에요?”
“그렇긴 하다만.”
“강숭이가 있어야 검은 교단에 대해 조언을 받고할텐데. 난리났네.”
“조언은 받을 수 있어. 나랑 이어져 있어서 귓속말로 대화 가능해. 문제는 지금 그놈이 슈브 니구라스의 영역에 있어서 데려올 수가 없다는 거야.”
“그게 문제네. 그쪽에서 처리를 하려나?”
“바로 처리 안 할 거야. 강숭이가 잡힌 이유가 컨신의 검을 먹어버렸거든. 반쯤. 그것 때문에 잡은 걸 거야.”
“컨신의 검?”
“컨신의 검이라면 페테로의 마검인가 그거요?”
“이름은 잘 몰라.”
“컨신이 눈에 불 켜고 달려들만 하네요. 그 정도면. 그 아이템 검 계열 중에서는 코즈믹 게이트에서 가장 비싼 아이템일 걸요?”
“그래?”
“수리비만 어마어마하게 깨질 겁니다. 수리하는 것도 쉽지도 않고요.”
“그러면 강숭이를 죽이지는 않겠네. 수리 방법을 알아내야 하니까.”
“강숭이 그놈 똑똑해서 잘 살아 있을 거야. 안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컨신한테 연락해서 데려와야지.”
“아이템 주고?”
“달라는 대로 줘야지.”
“돈 엄청 깨질텐데요.”
“그래도 애를 죽일 순 없잖아. 부활이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도 모르는데.”
“야. 근데. 이거 오히려 잘 된 거 아니냐?”
핏불킹이 턱끝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뭐가 잘 돼?”
“그놈이 지금 적진 깊숙한 곳에 있는데 너랑 연락은 된다는 거 아냐.”
“어.”
“그러면 프락치로 그만한 녀석이 어딨냐. 너랑 연락이 된다는 걸 그쪽에서는 모를 거 아냐.”
“모르겠지.”
“그러면 그것만 들키지 않으면 완벽한 스파이 아냐?”
“그게 그렇게 되나······.”
“핏불 형님. 근데 그거는 너무 잔인하지 않아요?”
슭곰발이 말했다.
“뭐가 잔인해. 솔직히 말해서 강숭이가 전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뭐 큰 능력이 있냐? 여기 있어봤자 큰 도움 안 돼.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게 제일 큰 무기인데 그 정보는 언제든지 얻을 수 있으니 그냥 거기 두는 게 최고 좋아.”
카시마르가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성전 관련된 설명이 뜨기 시작했다. 내용이 꽤 많았는데 정리하자면 성전의 최종 목표는 성지를 탈취하는 것이었다.
불꽃 교단이나 검은 교단이나 상대의 성지를 점령하면 성전은 그걸로 끝이 나는 것이었다.
다만 불꽃 교단과 검은 교단의 승리 조건에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불꽃 교단은 검은 교단의 다크 영을 죽이거나 성지를 점령하게 되면 승리하게 되는 거고, 검은 교단은 300시간 내에 포말을 점령해야 이긴다는 거잖아.”
“네. 쉽게 말해서 검은 교단이 공격자인 셈이죠. 300시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검은 교단의 세력은 축소된다고 나와 있네요.”
“그러면 우리들은 버티기만 해도 되는 거 아닌가? 이쪽이 훨씬 조건이 유리한 거 같은데?”
“나는 왜 이런 페널티가 주어졌는지 알 거 같아.”
카시마르가 말했다.
“왜?”
“강숭이 말이 맞는 거야. 지금 크투가나 아품 자는 활동 중인 상태가 아니라는 거지. 반면에 지금 슈브 쪽은 분신격인 다크 영까지 보내서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잖아.”
“받는 버프의 질이 다르다는 건가?”
“그렇지.”
“제국이라는 거대한 기반 시설을 흔들 만큼?”
“전파력이 강하다고 했잖아. 이거 상황 모르는 거야.”
“이거 북제국에서도 이벤트 있다고 했잖아. 북제국도 똑같은 건가? 누구 북제국 소속에 아는 사람 있어?”
“제가 물어볼게요.”
아르케가 손을 들었다. 아르케는 얼른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뭐래?”
“북제국은 승리 조건이 달라요. 혼돈의 교단 쪽이 훨씬 불리하게 설정되어 있어요.”
“그럼 강숭이의 이야기가 맞네. 현재 니알라토텝은 활동을 하고 있는 걸로 되어 있으니까 슈브의 침공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거지.”
“그럼 그쪽은 그쪽대로 나름 균형을 맞춘거네. 밸런스를.”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근데. 이 이벤트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유저는 참가 안해도 크게 문제 없는 거 아냐? 누가 이기던지 참가 안 해도 페널티 없잖아. 어차피 유저들은 소속만 제국, 북제국으로 나눠져 있지 왕래가 불가능하지도 않고 교단에 가입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고.”
“그렇긴 한데. NPC들은 상황이 좀 다르겠지. 그리고 거기에 적극 참여하기로 한 유저들은 이제 거기에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야.”
“너도 강제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고?”
핏불킹이 카시마르를 보며 말했다.
“불꽃 기사니까.”
“그래 알았다. 그러면 열심히 싸우도록 해. 응원하도록 하마.”
“응?”
“우리는 게임 라이프가 있으니까.”
“오호.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알았어. 그렇게 해.”
“인마. 농담이야. 이런 빅 이벤트는 손해를 보더라도 참여해야지. 이런 게 원래 이런 종류 게임의 진수 아니겠냐.”
“근데 이번 전쟁에서 얻는 보상이 상당한 것 같은데요. 각 교단의 주요 인물을 죽이면 아이템과 다양한 보상을 준다니 유저들이 참여안 할 이유가 없겠어요.”
“보상이 너무 많아. 주요 인물을 죽이기만 해도 그 진영에 버프가 내려진다니. 야. 네 목에도 현상금 많이 걸리겠다.”
성전 컨텐츠는 경쟁을 보다 유발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상대 진영의 주요 인물을 죽이면 교단 기여도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특수한 아이템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다가 주요인물을 죽이는 순간 그 교단에 소속된 유저들은 능력치가 상승하게 된다고 하니 이 전쟁에 끼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론은 그거네. 박 터지게 싸우라는 거지.”
핏불킹의 예상은 적중했다. 성전 관련된 공지가 뜨자마자 각지에서 전투가 발생했다. 누가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불꽃 교단과 검은 교단이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
“무슨 방법 없어?”
강숭이는 멀뚱한 모습으로 목줄에 묵여 있었다. 컨신은 강숭이를 힐끔보더니 가까이서 빤히 쳐다봤다.
“말을 할 줄 모르는 거 같아요. 그냥 애완용 펫인 거 같아요. 오빠.”
“아냐. 분명히 내 검을 씹어 먹었다니까.”
“펫 중에 그런 능력 있는 펫은 처음 들어봤는데요. 착각한 거 아니에요?”
류미의 말에 컨신이 인상을 썼다.
“내가 두 눈으로 봤다니까. 야! 야!”
팍!
컨신이 류미의 옆에 다소곳하게 서 있는 강숭이의 머리를 기분 나쁘게 때렸다.
“오빠! 때리지 마요.”
“이놈 말 알아 듣는 거 같아. 야! 너 말 할 줄 알지. 엉?”
컨신이 다시 한 번 때리려고 하자 강숭이가 반응했다.
“우끼끼?”
속에서는 쌍욕이 치밀어 오르는 강숭이.
그러나 인내 해야 했다. 일단 살아남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우끼끼? 안 되겠다. 이 원숭이 새끼 배를 갈라버려야지. 이리와! 쓸모도 없으면 뭐하러 데리고 있어!”
컨신이 흥분하자 강숭이가 얼른 류미에게 달라붙었다.
“오빠아!”
류미가 갑자기 버럭 소리쳤다.
“엉?”
“그런 흉측한 소리를 해요. 동물들이 말을 못 알아 먹는다고 해도 어떤 뉘앙스인지는 다 감지한다는 그런 소리도 못 들어봤어요? 이봐요. 엄청 겁먹었잖아요.”
눈치 빠른 강숭이는 얼른 류미의 다리를 붙잡고 와들와들 떠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류미가 강숭이를 안아 들었다.
풍만한 류미의 가슴에 냅다 얼굴을 파묻은 강숭이는 멍한 표정의 컨신을 힐끔 바라봤다.
“킥.”
그리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컨신에게만 보일 정도로 미세한 비웃음. 당연히 컨신은 그 모습을 봤고 류미는 보지 못했다. 강숭이는 떠는 척 하면서 류미의 가슴에 얼굴을 부볐다.
“응? 뭐야! 이 변태 원숭이 새끼! 말 알아 듣지! 어? 말 알아 듣는 거지!”
“오빠! 진짜 왜이래요. 진짜 겁먹었잖아요. 어휴. 이 떠는 거 봐. 배는 안 고프니? 가자 누나가 맛있는 거 줄게.”
“아냐! 방금 웃었다니까!”
“나중에 방법 찾아봐요. 일단은 좀 진정 시켜야겠어요.”
류미는 강숭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동안 컨신의 방에서는 고함소리가 계속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