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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87화 (87/205)

# 87

산제물의 의식

카시마르는 불꽃의 기수로 선정되었다. 불꽃 기사들 중에서도 관록이 있는 자들을 선별해서 불꽃의 기수 자격을 내려줬는데 카시마르는 이 성전의 시작을 여는 중심인물이므로 기수 자격을 주어야 한다는 거였다.

불꽃의 기수는 성전이 진행되는 동안 지휘권을 얻게 되고 각종 혜택도 많이 얻기 때문에 카시마르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른 불꽃의 기수들은 보이질 않는군요.”

“그들은 이미 전장으로 떠났습니다.”

사제가 카시마르의 등에다 손을 얹고 주문을 외웠다. 사제의 손에서 잠깐 빛이 흘러나왔고 그걸로 카시마르는 불꽃의 기수가 되었다.

“깃발은 안 주시는 겁니까?”

“자연스럽게 그분의 깃발이 나타나게 될 겁니다.”

사제가 웃으며 말했다. 카시마르는 무언가 달라진 게 있나 확인해봤지만 딱히 외관으로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난리네. 난리야. 점점 더 박터지게 싸우고 있다네.”

카시마르가 걸어오자 핏불킹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유리한 상황이야?”

“비등한 거 같아. 일단 불꽃 기사들이 검은 교단 쪽 애들 넘어오는 거 잘 막고 있으니까.검은 교단은 이제 시작 단계잖냐.”

“그러니까. 제국이 가지고 있는 기반을 무너트리기는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왜 그런 페널티를 준 걸까?”

“점점 뒷심을 발휘하는 거 아닐까요.”

용재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그건 그렇고 꿀매너 길드 분들 언제 도착해? 그분들이 와야 우리도 나가지.”

“야. 와도 정비를 하고 나가야지. 어차피 우리만 가는 게 아니라 교단 병력들도 같이 갈 거 아냐.”

“그렇지.”

카시마르는 신입 불꽃 기사였다. 그런데다가 아직 영지를 하사받지 못했기 때문에 휘하에 배정된 기사들이 없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카시마르가 부릴 수 있는 병력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어느 지역으로 가는 게 좋을까?”

“일단 루콘 인근 지역은 다 치열하다고 봐야 돼.”

“조금 널널한 지역은?”

“남부가 그래도 좀 널널한 것 같아.”

“그쪽은 아무래도 검은 교단 쪽에서 노리는 곳이 아니니까요.”

“그들의 목표는 여기야. 포말하우트. 그러니 수도인 포말 쪽으로 진격하겠지.”

“우리는 어느 쪽을 공략해도 상관 없습니다. 남부 쪽도 나쁘지 않아요. 루콘으로 밀고 올라가면 되니까요. 아직 검은 교단 측은 차지한 땅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남부 쪽에서 견제만 해줘도 중앙으로 진격하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겠지. 저쪽도 성지가 날아가면 그대로 게임이 끝나는 거니까.”

카시마르 일행은 제국의 지도를 펴놓고 전략 회의를 했다. 그때 사제 한 명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사제복 후드 사이로 얼핏 보이는 사제의 얼굴은 굉장히 창백했다. 조각처럼 깍아진 것 같은 미남이었다. 사제는 가까이서 카시마르의 눈을 바로 쳐다보았다. 사제의 눈빛은 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과묵한 표정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힘이 담겨 있는 눈빛. 사제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았습니까?”

“예. 아직 정하고 있습니다.”

“사제 롯다오라고 합니다.”

롯다오는 카시마르에게 먼저 자기 소개를 하며 인사를 했고, 카시마르도 따라서 인사했다.

“카시마르라고 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알고 있습니다. 불꽃 기사 카시마르님. 그보다 아직 위치를 정하지 않았다면 의논 드릴 계획이 있습니다.”

“어떤 계획입니까.”

“사실 검은 교단의 출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어렴풋이 듣긴 했습니다.”

“검은 교단은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지만 바로 진압되었지요. 그때는 그리 큰 위협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훗날이라도 다시 이 땅에 검은 교단이 출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교단에서는 루콘 성에 지하 시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롯다오의 말에 카시마르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하 시설이요?”

“예.”

“그 지하 시설이 여기서부터 이어져 있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그렇죠. 하지만 그곳에는 이동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루콘 성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카시마르의 말에 롯다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왜 다른 불꽃 기사들에게 말씀을 하지 않으신 겁니까?”

“그 이동 마법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포말의 사제 중에서도 극소수입니다. 무엇보다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마법진이어서 작동할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확인을 해보셨군요.”

“그렇습니다. 확인 작업을 마쳤을 때는 불꽃 기사들이 모두 휘하의 병력을 데리고 출격을 한 상태더군요. 다행이 카시마르님이 포말에 남아 있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된 겁니다.”

“제가 그곳으로 가주었으면 하는 겁니까?”

“예. 하지만 거절하셔도 됩니다. 보급 문제로 복귀하는 불꽃 기사들도 있을테니까요.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좋은 기회가 있으면 잡아야죠.”

“기회를 드릴 순 있습니다. 다만 준비를 철저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 많은 인원이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법진은 딱 두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예. 왕복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신중해야겠군요.”

“그래서 목적을 확실히 정하고 가는 게 중요합니다.”

“루콘 성 안 쪽으로 들어가는 상황이라면 전투가 더 치열해진 다음에 쓰는 게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루콘 성은 이제 검은 교단의 영역입니다.”

“그 시설이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거로군요.”

“예. 이미 발각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몇 명이나 데려갈 수 있습니까?”

“카시마르님 휘하에는 잿빛 기사단의 정예 500명이 주어진다는군요. 그 인원 정도는 데려갈 수 있습니다.”

“제 동료들까지 합치면 600명 정도 되겠군요.”

“예. 큰 타격을 주기에는 그리 많지 않은 숫자지요. 무엇보다 검은 교단의 성지 내부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있는지 모르니 더 그럴 겁니다.”

“가장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루콘에는 지금 검은 교단의 신전이 솟아 있습니다. 신전을 지탱하는 기둥은 슈브의 힘으로 지탱이 되고 있습니다. 그 기둥 하나를 박살 내는 게 목표입니다.”

“그게 도움이 될까요?”

“그게 검은 교단의 다크 영이 슈브에게 힘을 받는 통로입니다. 그 여섯 개의 기둥 중에서도 특별히 힘을 많이 받는 기둥이 있는데 그 기둥을 파괴하면 아주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승기를 완전히 가져올 만큼.”

롯다오의 설명을 들은 카시마르는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동료들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강숭이에게 귓속말을 넣어서 기둥에 대해 설명했다.

[그거 기둥이 아니라 뿌리입니다요.]

[뿌리?]

[네. 기둥 모양이긴 한데 보통은 검은 뿌리라고 부릅니다요. 신이 피조물에 힘을 내려주는 건 일종의 소환과 같은 겁니다요. 신전은 그니까 뭐랄까··· 아! 안테나! 안테나 같은 겁니다요.]

[그래. 안테나.]

[그 안테나를 작동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게 그 뿌리입니다요. 마법진과 같은 거랄까요. 다만 그걸 입체적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요.]

[그럼 부수면 확실히 효과는 있겠네?]

[당연합니다요. 그 뿌리 중에서도 첫 번째로 생성된 뿌리를 파괴하면 나머지 뿌리의 힘도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요. 쉽게 설명하자면 성지의 기능이 상실한다고 보면 되겠습죠.]

[뭐야. 그럼 그거 파괴하면 게임 끝나는 거잖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요.]

[그 기둥 위치 파악할 수 있겠냐?]

[제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말입니다요. 다만 어디에 있을지 대략 짐작은 갑니다요.]

[그러면 그쪽으로 넘어갔을 때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군.]

[그렇습니다요. 근데 선생님.]

[왜?]

[전 언제까지 여기서 있어야 합니까요?]

[일단 위험한 상태는 아니잖아.]

[그렇습니다요.]

[그럼 이번 전쟁 끝날 때까지 거기 좀 있어.]

[정보원 역할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요?]

[그래.]

[저 들키면 바로 아웃됩니다요.]

[너 힘든 거 알아. 내가 그걸 알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이야? 충분히 보상해주마. 맛있는 보석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요!]

띠링!

카시마르가 강숭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알림 메시지가 나타났다.

[검은 교단의 성전 미션 ‘산제물의 의식’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그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불꽃 교단에 속한 유저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산제물의 의식의 내용은 충분히 탄식이 나올 만큼 불꽃 교단 쪽에게 불리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교단의 성전 미션 ‘산제물의 의식’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검은 교단의 유저들은 공헌도 높은 불꽃 교단의 인물을 생포하면 추가 보너스를 얻게 됩니다. 특히 불꽃 기사나 불꽃의 기수를 생포하게 되면 더 큰 보너스를 받게 됩니다.]

[불꽃 교단의 유저들이 검은 교단에게 포로가 되어 산제물 의식의 희생양이 되면 성전이 끝나는 기간 동안 부활이 불가능합니다. 희생양이 된 유저는 평소 죽을 때보다 몇 배 큰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상대 교단과 전투가 시작되면 로그아웃이 불가능해집니다. 신중하게 전투 하십시오.]

[상대 교단의 영역에서는 자살이 불가능해집니다. 상대 교단의 영역에서 자살하게 되면 정신을 잃은 것으로 판정되며 포로 상태에 빠집니다.]

“이게 뭐야!”

메시지가 뜨자마자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탄성의 주인은 죄다 유저들이었다.

“야. 이거 좀 크다.”

핏불킹이 얼른 카시마르 옆으로 다가와서 말 걸었다.

“300시간 페널티를 준 이유가 이런 거였네.”

“불꽃 측은 이런 거 없는 건가?”

“그러니까 신이 잠을 자고 있다는 표현을 하겠지. 앞으로 저런 페널티가 더 늘어날 거야.”

“그러면 한 번 뒤집히면 그냥 쭉 밀린다는 거잖아. 동기 부여도 저쪽이 훨씬 강력하고.”

“그러니까 이번 작전을 제대로 해야 될 거 같아. 누구 루콘 성 지도 들고 있는 사람 있는지 알아봐.”

“유저들 중에?”

“어.”

“근데 너무 대놓고 찾으면 저쪽에 정보가 샐 수 있어. 믿을만한 사람들 위주로 한 번 찾아봐.”

“근데 루콘 성에 저런 신전이 생겼는데 그게 그대로 있겠냐?”

“일단 지리는 익히고 가야지.”

“너 길치잖아.”

핏불킹이 말했다. 카시마르는 길치 수준은 아니어도 길눈이 아주 밝은 편은 아니었다.

“내가 무슨 길치야. 그리고 나 혼자 가는 것도 아니잖아.”

“아무튼 알아는 볼게. 그보다 너 호주에는 언제 갈 계획이냐?”

“그러니까. 자꾸 일이 생기네. 호주에 가기 전에 팀에도 들려야 하는데.”

“팀에는 내가 이야기 해놓을 테니까. 너는 제수씨한테 이야기 잘 해. 제수씨가 아무리 보살이어도 자꾸 그러면 불화가 생기는 거야."

"와이프한테는 잘 말해두고 있어. 가서 잘 해야지."

"늘 느끼는 거지만 너 진짜 결혼 잘 했다."

"알아."

카시마르가 웃으며 말했다. 핏불킹은 선수를 모으는 감독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소리를 치며 움직였다. 카시마르는 사제 롯다오에게 다시 다가갔다.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요.”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곳은 이미 검은 교단의 영역입니다. 반대로 함정을 파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겠죠. 그나마 저희는 게이트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단의 기사들은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그게 더 걱정이군요.”

“교단의 기사들은 언제든지 산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카시마르는 롯다오를 따라서 포말하우트의 훈련장에서 대기 하고 있는 잿빛 기사단을 향해 움직였다.

“여기서부터는 카시마르님의 역할입니다.”

무수히 많은 야네크를 보관하고 있는 곳인 포말하우트는 그곳에 상주하고 있는 사제들이 아니면 길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길이 복잡했다. 몇몇 층의 길은 사제들조차 길을 잃는 경우가 있을 정도의 미로여서 외부인은 항상 안내를 받아 움직여야 했다. 원래 포말하우트는 굉장히 조용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곳곳에서 여러 소음이 들리고 있었다. 포말하우트에 속한 사제들이 저마다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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