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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88화 (88/205)

# 88

카시마르와 600명의 강도(1)

슈브 니구라스.

다산과 풍요의 신이라는 별칭이 있을만큼 숭배자들에게 베푸는 게 많은 존재.

특히 대부분의 우주적 존재들이 직접 힘을 행사하는 경우가 드문 반면에 슈브 니구라스는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다크 영을 이용해서 현실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해서 혼돈을 야기하는 니알라토텝과는 또 다른 스타일의 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크 영인 램파드는 제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다크 영의 제자는 12명에 불과했다. 다크 영의 제자는 불꽃 교단의 불꽃 기사와 대적하기 위한 존재였기 때문에 12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자의 자격은 함부로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자를 지정하면 램파드는 그만큼 힘을 쏟는다. 다크 영의 제자가 되는 순간 강력한 권능을 손에 넣기 때문이었다. 성지를 완성하기 전까지는12명의 제자만 둘 수 있었는데 성지가 완성되면서 휘하에 둘 수 있는 제자의 숫자가 몇백명 단위로 늘어났다.

덕분에 K길드의 정회원 대부분이 다크 영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제자가 될 자들이 모이자 램파드는 직접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려 하고 있었다.

다크 영이 기거하는 곳은 슈브를 의미하는 문양이 바닥이 그려져 있었다. 성지의 신전에서도 가장 중앙에 위치한 곳.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두침침한 하늘이 그대로 보였다. 까마득한 높이로 솟아오른 신전의 눈과 같은 곳인 거였다.

슈브 니구라스의 눈을 형상화해서 만들어진 곳.

램파드는 커다란 염소의 얼굴을 지닌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완전한 염소의 모습은 아니었다. 얼굴의 일부분은 양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램파드는 다크 영이 되자마자 다크 영의 모습으로 점점 변모하고 있었다. 이제 그의 얼굴에서 양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염소의 뿔이 완전히 솟아나면 이제 그는 완벽한 다크 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열두 제자들. 당신들은 제가 제일 첫 번째로 제자로 삼은 자들입니다. 다른 제자들과 달라. 그러니 일을 제대로 해줘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램파드의 뒤에는 그의 아들들이 서 있었다. 모두 양의 얼굴을 한 사내들이었는데 털 색깔부터 비롯해서 생김새가 확연히 달랐다.

“불꽃 기사는 아직 잡지 못했습니까?”

램파드가 물었다.

“예.”

“잡기는 커녕 아직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구요. 아버지. 이봐. 당신들은 죄다 겁쟁이 밖에 없어? 큰 힘을 받았으면 직접 나가서 싸워야할 거 아냐!”

램파드의 뒤에서 삿대질을 하며 큰 소리를 내는 자는 바로 램파드의 첫째 아들인 그램이었다. 그는 검은 털을 뒤집어 쓴 양이었고 뒤에 서 있는 세 아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작았다. 그러나 성격은 제일 급했다.

“무식한 새끼.”

그램이 나서서 소리치자 둘째인 슬램이 조용히 말했다. 슬램은 세 형제 중에서도 제일 덩치가 컸다. 갈색 털을 지닌 슬램은 동그란 안경을 끼고 말끔한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소매를 걷어부치고 멋대로 옷을 입은 그램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방금 뭐라고 씨부렸냐!”

“또 그런다 또!”

그램은 주저하지 않고 슬램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자 하램이 인상을 쓰면서 둘 사이를 뜯어 말리기 시작했다. 열두 제자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차분한 표정으로 있을 뿐이었다.

“왜? 내가 틀린 말 했냐? 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이야기를 씨부려야지. 불꽃 기사 숫자가 얼마나 많은데 지금 저 친구들을 먼저 내보내. 그랬다가 역으로 잡히거나 죽기라도 하면? 네가 책임질래? 이 무식한 새끼야!”

“이 시바. 형한테 말하는 거 보소. 그러면 재네는 그냥 뒤에서 놀고만 있는 애들이냐? 이 십새. 야채랑 앞뒤로 같이 꽂아서 케첩을 만들어버릴까부다.”

“아! 이 양반들아! 그만해!”

“아오. 돌대가리야. 케첩이 아니라 케밥! 어떻게 이런 새끼가 한 배에서 나왔지. 케첩은 핫도그에 찍어 먹는 거고! 오늘 케첩 한 번 쏟아 볼래?”

“그래! 오늘 하나가 죽자!”

“아! 아! 이거 안 놔! 이게 형이라고 봐주니까!”

“그만해애에에에!”

그램과 슬램의 싸움을 보던 램파드가 개입했다. 램파드가 소리치자 그램과 슬램이 싸움을 멈췄다. 램파드는 소리를 지른 다음 말 없이 그램과 슬램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램과 슬램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진짜. 자식 새끼들만 아니면 진작에 산제물로 바쳐버리는 건데. 이거 매번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말씀하시죠.”

메디아가 능숙하게 램파드의 말을 받았다. 슬램과 그램 형제는 회의 때마다 싸움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처 방안도 알고 있었다. 대처 방안은 간단했다. 개입하지 말고 그냥 지켜볼 것. 그러면 램파드가 알아서 둘을 진정시켰다.

“더 할 이야기가 뭐가 있겠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불꽃 기사를 원하십니다. 산제물로 바쳐질 불꽃 기사를 반드시 잡아오세요. 그래야 어머니께서 더 강한 힘을 내려주실 겁니다.”

램파드의 눈빛이 빛났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열두 제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이제 제자들을 만나보러 가지요.”

램파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로 세 명의 아들들과 열두 제자들이 따라붙었다. 몇 번의 통로를 지나자 커다란 제단이 나타났다. 그곳에 새로 제자로 지정될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유저들은 일정한 간격의 줄로 서 있었다.

그들은 초기에 검은 교단에 가입한 길드에 소속된 자들로 그 비율은 K길드가 가장 많았다.

수 백명의 제자 후보들이 서 있었고 그 중에는 류키의 동생인 류미도 있었다. 류미의 품에는 강숭이가 꼭 안겨 있었는데, 류미는 계속 강숭이를 아기처럼 쓰다듬으면서 의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램파드가 등장하자 제자 후보들이 박수 치기 시작했다. 램파드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제자 후보들을 한 번 내려다보더니 말없이 내려와서 걷기 시작했다. 수 백명의 제자 후보들 사이를 램파드는 말없이 걷고 다녔다. 그 뒤를 그 아들이 따랐다. 열두 제자도 마찬가지였다.

“음······.”

말없이 제자 후보들 사이를 걷던 램파드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그램의 말에 램파드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손짓을 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강숭이는 램파드의 시선을 똑똑히 느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다크 영이 된 이후부터 램파드는 우주의 존재에 대한 기억을 얻고 있었다. 슈브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다크 영들은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램파드가 강숭이를 보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 램파드가 완벽하게 다크 영이 된 상태였다면 강숭이를 더 주의 깊게 보았을 수도 있었다.

“아버지 왜 그러는데요?”

“아니 다크 영의 기억이 아직 다 들어온 게 아니라서 말이야. 고대의 존재 중에 원숭이와 관련된 존재가 있거든.”

“원숭이요?”

“어.”

“꽤 유명한가 보내요. 공유된 기억 속에 딱 박혀 있는 거 보면.”

이번에는 둘째인 슬램이 물었다. 그램과 슬램은 아버지인 램파드와 이야기할 때 만큼은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러모로 유명한 놈이지. 아무튼 가자. 의식을 마무리 해야지. 다들 성전에서 활약해야될 바쁜 사람들이니까.”

램파드가 자세히 보았다고 해도 강숭이를 알아보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 강숭이의 모습은 다크 영들이 기억하는 강숭이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으니까. 강숭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카시마르에게 다급하게 귓속말을 보내고 있었다.

거사를 진행하기에는 지금이 딱 적기였기 때문이었다.

***

[선생님! 선생님!]

잿빛 기사단을 향해 움직이려던 카시마르는 강숭이의 귓속말을 받았다. 카시마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강숭이의 귓속말에 귀를 기울였다.

[왜.]

[그 작전 언제 실행하실 겁니까요.]

[지금 준비 중이야.]

[준비 대충하고 지금 넘어오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요!]

[왜.]

[지금 다크 영이랑 열 두 제자들이 한 자리에 다 모여 있습니다요.]

[성지에?]

[네.]

[그러면 가면 손해 잖아. 죽을래?]

[아! 그게 아니지 말입니다요.]

[뭐가 아닌데?]

[지금 다 모여 있으니 다른 곳 방비가 허술할 거 아닙니까요. 어차피 치고 빠지는 작전인데 지금 치고 들어가는 게 제일 좋은 거 아닙니까요?]

[그렇다고 방비가 허술하겠어?]

[적어도 제자들이 포진하고 있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요.]

[그 말도 일리가 있다만.]

[어차피 성지에는 병력 많습니다요.]

[알았어. 있어 봐.]

[네! 감사합니다요!]

강숭이의 말을 들은 카시마르는 바로 핏불킹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 상황을 설명하자 핏불킹은 주저하지 않고 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가야지. 뭘 망설여?]

[난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 같아서.]

[어차피 거기는 적진이야. 이것 저것 따질 것도 없어. 미션 메시지 뜬 거 못 봤냐? 이러다가 불꽃 기사가 하나라도 산제물로 바쳐지는 날에는 전세 확 뒤집힌다. 지금도 슈브가 받는 버프가 장난 아닌데 나중에는 얼마나 많아지겠냐. 흐름이 넘어가지 않았을 때 쐐기를 박아야 해.]

[쐐기는 좋은데. 형. 그 신전의 기둥이 어디 있는지 알아?]

[모르지.]

[그거 모르는데 가서 뭐하냐고.]

[그니까 가서 피해를 주면서 찾아봐야지. 그러다가 운 좋으면 찾는 거고 못 찾아도 충분히 피해를 주기만 하면 이득이야.]

[목적은 최대한 많이 죽이라는 거네?]

[지금 유저들은 대부분 전선에 나가서 싸우고 있을 거야. 그래야 공헌도가 높아지고 얻을 게 많으니까.]

[거길 지키고 있는 병력들은 유저들이 아니라 NPC들이라는 거네.]

[그렇지. NPC는 부활이 안 되잖아. 무엇보다 검은 교단 쪽의 간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자들 다 모여 있다며. 자잘한 병력들 쓸어버리기에는 적기야.]

[검은 교단 쪽은 안 그래도 숫자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이니 괜찮겠네.]

[그래. 줄여놔야 돼. 영역을 지킬 병력이 없으면 흔들기가 쉬워지니까.]

[그럼 지금 가자.]

[일단 잿빛 기사단을 만나고.]

[빨리 준비해.]

[인사만 할 거야. 지도는 구했어?]

[이미 구해서 훑어보는 중이었다. 루콘 성이 생각보다 넓어. 짜증나게. 네가 말한 그 시설이 어디에 위치 하냐에 따라서 성공 여부가 달라지겠어. 지금 아르케랑 같이 머리 맞대고 확인 중이다.]

[아르케랑?]

[아르케가 이런 건 빠삭하게 잘 안다더라고. 지도를 한 번 보면 훅 하고 눈에 들어온다나?]

[잘 좀 보고 있어. 금방 갈테니까.]

카시마르는 대기 중인 잿빛 기사단에게 다가갔다. 잿빛 기사단은 모두 같은 갑옷을 입고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들은 교단에서 가장 오래된 기사단 중 하나라고 했다. 실력도 뛰어나지만 가장 용맹한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일을 하는데는 아주 적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카시마르라고 합니다.”

“잿빛 기사단의 단장 루첼입니다.”

“설명은 들으셨겠지요?”

“저희는 카시마르님 휘하에 배정된 기사들입니다.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명령이 내려오면 움직이는 게 저희들 역할입니다.”

루첼의 눈빛은 강렬했다.

“든든하네요. 바로 움직일 겁니다. 절 따라오시죠.”

“예!”

카시마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롯다오에게 갔다. 롯다오는 그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움직였다. 꽤 복잡한 길을 지나서 도착한 사방이 꽉 막힌 방이었다.

“꼭 성공하길 바라겠습니다.”

롯다오의 말에 카시마르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롯다오가 주문을 외우자 사방에서 빛이 쏟아졌고 6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새하얀 빛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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